1905년 손병희가 창시했으며 동학을 모태로 하고 있다.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과 최시형의 사인여천 사상을 계승하여, 손병희는 인내천 사상을 전개했다. 제1세 교주인 최제우를 대신사, 제2세 교주인 최시형을 신사, 제3세 교주인 손병희를 성사라고 각각 부른다. 천도교가 등장할 때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개화파와 김연국 등을 중심으로 한 국내파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손병희 측이 일진회 사건을 계기로 김연국 일파를 출교 처분함으로써 결국 동학은 천도교와 시천교로 분립되었다. 이후 천도교는 합동과 재분열의 과정을 겪다가 1940년 최종적으로 합동하게 되었다. 남북분단으로 인해 교인의 90% 이상이 살고 있었던 북쪽 교단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 결과 현재의 천도교는 동학시절이나 일제강점기에 비해 교세가 매우 약하다.
1905년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에 의해 창시되었다. 1860년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도된 동학을 모태로 하고 있다. 현재 천도교에서는 제1세 교주인 최제우를 대신사(大神師), 제2세 교주인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을 신사(神師), 제3세 교주인 손병희를 성사(聖師)라고 각각 호칭하고 있다.
이것은 천도교가 동학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도교가 동학의 근본정신을 정통적으로 계승했는가에 대해서는 천도교 등장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고 현재에도 천도교가 동학의 근본정신을 벗어났다고 주장하는 동학의 분파들이 많이 있다. 사실 천도교가 등장할 때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개화파와 김연국(金演局) 등을 중심으로 하는 국내파 사이에는 상당한 갈등이 있었고, 결국 손병희측에서 김연국·이용구 일파를 일진회(一進會) 사건을 계기로 하여 출교(出敎) 처분함으로써 동학은 천도교와 시천교(侍天敎)로 분립되었던 것이다. 그후 천도교는 손병희를 중심으로 하여 중앙집권적인 대도주(大道主) 체제로 유지되다가 후계자 문제 등으로 내적 갈등을 겪게 되었다. 그결과 오지영을 중심으로 하여 급진적인 의회주의적 분권제를 주장했던 연합교회파(聯合敎會派)가 먼저 분립해 나가게 되었다. 교회에 남았던 파들은 결국 중앙집권적인 대도주 체제를 폐지하고 민주적인 중의제(衆議制)를 채택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제4세 교주로 춘암(春菴) 박인호를 인정할 것인가 등의 문제로 신파와 구파로 분열하게 되었다. 그후 양파는 합동과 재분열의 과정을 겪다가 1940년 최종적으로 합동하게 되었다. 8·15해방 후 분단으로 인해 당시 천도교의 90% 이상의 교인이 살고 있었던 북쪽의 교단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결과 현재의 천도교는 교세에 있어서 동학시절이나 일제강점기에 비해 매우 약세에 처해 있다. 1993년 현재 전국에 200여 교구가 있으며, 교역자 5,100여 명에 신도 100만여 명이 있다.
교리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과 최시형의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을 계승하여 인내천으로 종지(宗旨)를 삼았다.
최제우시대에는 신앙대상으로서의 하느님은 초월적·인격적 성격이 강한 '천주'로서 인간이 숭배대상으로 모셔야 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시형시대에는 이러한 하느님 개념이 '양천주'(養天主)나 '사인여천' 사상에서 잘 나타나듯이 상당히 내재적이고 비인격적인 성격으로 전환했다. 즉 하느님은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하여 있으므로 인간이 잘 길러야 하는 존재로서 나타나거나 '천주'에서 '주'자(字)가 빠지게 되었다.
천도교로 개편되는 손병희시대에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으로 전개되었다. 즉 하느님 개념이 더 극단적으로 추상화되고 내재화되었다. 이때의 하느님은 상당히 비인격적 형태를 띤 '천'으로서 성리학에서의 천 개념과 유사한 성격을 보이고 있다. 그후 교리가인 이돈화(李敦化)와 백세명(白世明) 단계에 이르러서는 하느님이 '한울님'으로 개칭되면서 범신론적인 형태를 취했다. 여기서의 한울님은 우주 자체를 지칭하며 변화·발전하는 생명체로 인식된다.
따라서 인간성 안에 내재한 한울님을 스스로 발견하고 깨치면 자기 자신이 한울님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당시 서구의 관념론 철학과 유기체적 진화론을 천도교 교리에 수용함으로써 천도교의 신관을 더욱 사변화시키고 관념화시켰다. 따라서 현재 천도교 교단에서는 최제우가 내세웠던 초월적인 하느님 사상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의례
천도교도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규정으로서 5관이 제정되어 있다. 이것을 이행하지 않으면 교인의 자격이 박탈된다.
5관이란 주문·청수·시일·성미·기도이다.
주문은 최제우가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시천주'를 비롯하여 그가 직접 수도에 도움이 되기 위해 만든 여러 가지가 있다. 주문을 외우는 목적은 도성입덕의 인격을 이루려는 데 있다고 한다.
청수는 민간신앙에서의 정한수를 수용한 것으로서 수행할 때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사용된다.
시일은 매주 일요일에 공동으로 행하는 정기적인 의례이며,
성미는 교단의 운영을 위해 각 교인이 교회에 물질적으로 보답하는 행위이다. 초기에 교인 가족이 매 끼니마다 식구수에 따라 한 숟가락씩 쌀을 비축했다가 교회에 바치는 것에서 유래했다.
기도는 한울님에게 마음을 고하는 의식으로서 '심고'라고도 한다.
그밖에도 특별한 기념일로 최제우의 득도기념일인 천일, 최시형의 승통기념일인 지일, 손병희의 승통기념일인 인일이 있다. 그리고 특징적인 의례의 하나로 향아설위가 있다. 이것은 조상에게 제사지낼 때 제상을 벽을 향해 차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쪽을 향해 차리는 것이다. 그 이유는 조령이 따로 있다고 보지 않고 나를 통해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단조직과 사회활동
교단조직
동학 당시에는 접주를 중심으로 하는 포접제가 있었다. 현재는 전도인과 수도인의 인맥관계로 조직되는 연원조직과 지역단위로 조직된 교구조직이 있다. 연원조직은 동학이 사교로 탄압받던 비밀시대에 포교상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속인주의 원칙에 근거하여 조직된 것이다. 그러나 천도교로 합법화된 이후에는 중앙총부가 새로이 설립되고 그 산하에 교구와 전교실이 수직적으로 편제되는 속지주의가 채택되었다.
따라서 포교활동 및 교단의 비밀활동은 연원주(主)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교단의 운영이나 공개적인 활동은 교구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이원조직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천도교가 3·1운동에 대거 참여한 것은 교구단위가 아니라 연원조직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현재 중앙총부는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교령을 최고직책으로 하여 그 산하에 현기사·종무원·종의원 등을 설치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교직자는 임기 3년의 선거제에 의해 선출된다. 이러한 민주적인 선거제는 교단의 운영활성화에 긍정적인 기능도 하지만 종교단체라고 하는 특성상 교단분열 등의 여러 가지 부정적 기능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 연원제는 포교성적에 따라 연원주가 신훈(信訓)·교훈(敎訓)·도훈(道訓)·도정 등으로 승급(昇級)하는 원리가 있다. 이것은 포교를 활성화시키는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만 연원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부정적인 기능도 있다. 현재 도훈 이상의 연원들로 구성된 연원회는 교령산하에 편입되어 있으므로 과거만큼 연원의 자율성이 많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교단분열을 막는 데는 일정한 기여를 하지만 교세확장에는 그만큼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사회활동
1919년 3·1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상당한 탄압을 받았으며 그후에는 주로 문화활동과 계몽활동에 주력했다. 즉 〈개벽 開闢〉을 비롯한 여러 잡지를 발간하여 신문화운동을 전개했으며 조선농민사 등의 사회단체를 결성하여 농촌활동과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1934년 오심당독립운동사건, 1938년 무인멸왜기도사건 등의 항일운동에 동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