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양도성 동쪽 외사산 아차산(峨嵯山 295.7m)이다.
아끼산·액끼산·에께산·액계산·액개산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아차산은 서울 중랑구와 광진구,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를 이루며
용마봉을 제일 높은 봉우리로 삼아 야트막한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
조선시대 한양은 유교적 통치이념과 풍수지리사상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차산은 인왕산, 남산, 청계산과 더불어 서울의 4대 명산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산이다.
한양은 내사신사와 외사신사가 두 겹으로 둘러싼 장풍득수국의 풍수적 명당에 속한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5km의 반경내에 북악산(342m) 인왕산(338m) 남산(262m) 낙산(125m) 등
내사산이 한양을 둘러싸고 있다.
또 5km의 반경내에 북한산(836m)-덕양산(125m)-관악산(632m)-용마아차산(348m)의 외사산이 감싸고 있다.
한양을 꽃에 비유한다면 겹꽃에 해당한다. 내사산은 속꽃꽅받침이고 외사산은 겉꽃곷꼴받침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양의 내사산은 청룡 낙산이 백호 인왕산에 비해서 약하다. 내사산은 백호 덕양산에 비하여 청룡 용마.아차산이 더 강하다.
풍수상으로 한양은 그 형국은 전후좌우 균형이 잘 잡혀있는 세계적인 명당도시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역사적으로 아차산은 고구려와 신라. 백제가 치열하게 전투를 치루던 격전지다. 지금도 그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 땅에서 패권을 노리는 세력들은 서로 아차산을 차지하려고 치열한 혈투를 벌이던 요세중의 요세 아차산이다.

아차산은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화강암은 지하 600-700m 깊이에서 서서히 식어서 만들어진 암석이다.
그 생성연대는 6천만년에서 1억7천만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차산의 경우 지하 600m의 깊은 곳에서 지상 200미터까지 솟은 세월이 6천만년이상이 걸린 셈이다.
아차산은 한양의 외청룡으로 한양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아차산의 동쪽은 너른 공간 중앙으로 커다란 물줄기가 유유히 흐른다.
그것이 한강이다. 서쪽은 북한산과 도봉산이 위엄을 보이고 있는 공간이다.
북한산과 북악산은 조선 왕권의 상징이었고 정치공간의 상징이었다.

동쪽에서 흘러온 한강이다.
그 한강은 구리를 지나 아차산으로 힘차게 내닫고 있다.
한강이 품고 있는 생기(生氣)와 북에서 내려온 한북정맥의 용맥이 만나 신비함을 연출하고 있다.
세종부터 성종 조에 이르는 동안 살았다고 전해지는 홍계관(洪啓寬)이라는 맹인 점술가가 있었다.
영의정 상진도 그에게서 점을 보았고, 계유정란의 공신으로 세조에게 신임을 받은 홍윤성도
그에게서 점을 보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아차산의 지명에 얽힌 홍계관 설화이다.
그의 점술이 정확하다는 소문이 파다하였기에 임금이 그를 불러 상자 속에 있는 쥐의 수를 맞춰보라고 했다.
홍계관은 쥐 한 마리를 다섯 마리라고 하였다가 사형장으로 보내졌다. 쥐의 배가 이상하여 갈라보니
새끼 네 마리가 들어 있어 어미 쥐와 합하여 다섯 마리였다.
임금은 “아차 내가 잘못했구나”하며 사형을 중지하게 하였으나 이미 그는 죽었다.
이에 그를 일러 신복(神卜)이라 했다.그가 사형당한 곳이 아차산이어서 산의 이름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렇게 지명에는 역사가 숨어 있다.
한양도성은 풍수상으로 북쪽의 백악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남산이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내사산의 모양을 갖추기 전 어떤 산이 한양의 안산(案山)이며 남쪽의 주작을 되려고 기를 쓰고 달렸다.
그 산이 한양에 도착하기 전 아차산 부근에 한양 쪽을 바라보니 이미 그 자리에 종남산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그 산은 "아차!"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래서 아차산의 이름이 생겼다는 전설도 있다.
나라에 난리가 터졌다. 의병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한 우국지사가 한양으로 달렸다.
한양을 지키려고 온 힘을 다해 한양으로 향했다. 아차울 고개를 막 올라서 한양을 바라보았다.
이미 한양을 적의 수중에 들어간 뒤었다.
적에 함락당한 사실에 그 우국지사는 '아차!늦었구나!"고 탄식한다.
여기서 아차산의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말도 전한다.

동쪽에서 발원한 한강은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한양의 득수처는 아차산과 남한산이 만나는 곳이다.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일원에서 내린 물들이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모여들어 양수리에서 합수가 된다.
구리와 하남의 좁은 지역을 통과하여 W자로 돌면서 한양에 왕성한 그 생기를 공급해 주고 있다.
하남 송파일대는 백제시대의 수도 최초의 강남 서울이며 천년 전에 서울의 역사를 시작한 지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