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은 왜 칼날 위에서 춤을 추는가>
- 창간4주년에 부치는 말-
무당들은 왜 시퍼런 작도날 위에 올라서서 춤을 추는가? 그것은 편편한 흙길이 아니다. 넓은 마당이 아니다. 선선한 마룻바닥이거나 누워서 잠자던 방바닥이 아니다. 그것은 소용돌이 위에 걸려 있던 머리카락 같은 다리, 혹은 숨막히는 좁은 굴 속, 현기증 나는 위험한 벼랑이다.
그런데 왜 무당들은 평탄한 땅을 두고 시퍼런 칼날 위에서 춤을 추는가? 흥행사의 채찍 밑에서 벌어지는 曲藝(곡예)가 아니다. 피가 많은 몸을 지니고 神靈(신령)들이 사는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머리칼 같은 칼날의 다리를 건너야만 한다. 이웃집에 나들이를 가듯이, 짚신짝을 끌고 늘 다니던 동리 길을 걷듯이 그렇게 신들린 세계로 이를 수는 없을 것이다. 시퍼런 작도날은 지금껏 내가 살아오던 日常(일상)의 시간과 낯익은 그 空間(공간)을 단절 시키는 칼날이다. 관습에 젖어버린 편안한 세계를 끊어버리지 않고 魂靈(혼령)과의 대화를 할 수가 없다. 不在(부재)하는 것들의 몸짓과 그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선뜻한 칼날, 그 뾰족한 칼끝은 이 世俗(세속)이 끝나는 자리이며 神靈(신령)들의 세계가 시작하는 자리이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는 문지방은 그처럼 좁고도 위태롭다.
그것을 넘어서는 긴장 없이는, 그 위험 없이는 그리고 그 시련 없이는 저 세계로 건너갈 수가 없다. 옛날에는 애가 자라 어른이 되려면 반드시 通過祭儀(통과제의, initiation)를 겪어야만 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苦痛(고통)과 시련을 치루어야만 어른이 되는 새 世界(세계)의 문을 열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무당들이 작도 칼날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象徵的(상징적)인 祭禮(제례)를 치루어야만 한다. 언제나 새로운 것은 그렇게 시작된다. 헌옷을 벗어버리고 새옷을 바꿔 입듯이 그렇게 精神(정신)의 허물을 벗을 수는 없다.
이제 우리도 이 通過祭儀(통과제의)를 올려야 한다. 네 번째로 이 다리를 건너간다. 외로움과 고난과, 위태로움, 그리고 칼날 위를 밟고 지나는 긴장이 있다. 이것을 치루어야만 다시 우물물 같은 想像力(상상력)과 생명력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러나 춤을 출 것이다. 작도날 위에 올라선 무당처럼 뛸 것이다. 그리고는 볼 것이다. 神靈(신령)들이 沈黙(침묵)으로 이야기하는 소리들의 重力(중력)도 없이 공기처럼 스쳐가는 그 몸짓들을. 먼 과거와 먼 앞날을 이야기하는 영험한 언어들을 전해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문지방 위에 섰다. 칼날 같은 문지방 위에 섰다.
지은이: 이어령
출 처: 『문학사상』 1976.10
<깃털 >
문득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다. 사랑이 담긴 눈으로 지그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뻗어 등을 토닥이는 순간. 그 사랑이 사실은 당신의 외동딸을 향한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등을 토닥인 다음엔 언제나 반복해 말씀하셨으니까. 엄마를 정말 닮았구나. 눈이 영락없이 똑같다.
외갓집의 부엌 안쪽에는 널찍하고 어둑한 창고 방이 있었는데, 어린 내가 방학 때 내려가면 외할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제일 먼저 그 방으로 가셨다. 찬장 서랍을 열고 유과나 약과를 꺼내 쥐어주며 말씀하셨다. 어서 먹어라. 내가 한입 베어무는 즉시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 기쁨과 할머니의 웃음 사이에 무슨 전선이 연결돼 불이 켜지는 것처럼.
외할머니에게는 자식이 둘뿐이었다. 큰아들이 태어난 뒤 막내딸을 얻기까지 십이 년에 걸쳐 세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늦게 얻은 막내딸의 둘째 아이인 나에게, 외할머니는 처음부터 흰 새의 깃털 같은 머리칼을 가진 분이었다.
그 깃털 같은 머리칼을 동그랗게 틀어올려 은비녀를 꽂은 사람. 반들반들한 주목 지팡이를 짚고 굽은 허리로 천천히 걷는 사람. 대학 1학년 여름방학에 혼자 외가로 내려가 며칠 머물다 올라오던 아침, 발톱을 깎아드리자 할머니는 ‘하나도 안 아프게 깎는다…(네 엄마가) 잘 키웠다’고 중얼거리며 내 머리를 쓸었다. 헤어질 때면 언제나 했던 인삿말을 그날도 하셨다. 아프지 마라. 엄마 말 잘 듣고. 그해 10월 부고를 듣고 외가에 내려간 밤, 먼저 내려와 있던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얼굴 볼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손을 잡고 병풍 뒤로 가 고요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유난히 흰 깃털을 가진 새를 볼 때, 스위치를 켠 것 같이 심장 속 어둑한 방에 불이 들어올 때가 있다.
지은이: 한강
출 처 : 이메일 구독 형식의 무크지(책과 잡지의 성격을 지닌 비정기간행물) ‘보풀’ 3호(2024.10.15.)에 수록. 한강 은 보풀에서 동인으로 활동하며 ‘보풀 사전’ 코 너를 연재하고 있다...... 보풀 3호의 주제는 ‘새’다. 이에 한강 은 이번 호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흰머리를 깃털에 비유해 ‘깃털’이라는 글을 적었다.
(동아일보, 2024, 10.16일자 기사문에서 인용)
< 북향방>
봄부터 북향 방에서 살았다
처음엔 외출할 때마다 놀랐다
이렇게 밝은 날이었구나
겨울까지 익혀왔다
이 방에서 지내는 법을
북향 창 블라인드를 오히려 내리고
책상 위 스탠드만 켠다
차츰 동공이 열리면 눈이 부시다
약간의 광선에도
눈이 내렸는지 알지 못한다
햇빛이 돌아왔는지 끝내
잿빛인 채 저물었는지
어둠에 단어들이 녹지 않게
조금씩 사전을 읽는다
투명한 잉크로 일기를 쓰면 책상에 스며들지 않는다
날씨는 기록하지 않는다
밝은 방에서 사는 일은 어땠던가
기억나지 않고
돌아갈 마음도 없다
북향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빛이 변하지 않는
지은이: 한강
출처 : 문학계간지 『문학과 사회』, 2024 가을호
<최인호로부터 한강에게...“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에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기쁜 일인 동시에 재난이었다. 기사를 쏟아내야 했는데 작가 본인은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기삿거리를 찾아 그의 글과 말을 허겁지겁 뒤지다 이 글 앞에서 멈췄다. 문학계간지 '문학동네' 2013년 겨울호에 실린 '아름다운 것에 대하여 – 최인호 선생님 영전에'.
당대의 작가 최인호는 그해 가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강은 샘터출판사 수습기자 시절인 1993년 그를 '필자 선생님'으로 처음 만났다. 한강은 그를 천진하게 따스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손님이 올 때마다 커피를 타서 날라야 했던 한강의 내색하지도 않은 고단함을 혼자 조용히 알아본 사람, 출판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살겠다는 한강이 대견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서 식사도 거르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 사람.
투병 중에 찾아온 한강과 바닷가를 조금 걷고 나서 최인호는 쇠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에게만 비밀을 알려준다는 듯이.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강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네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인생은 아름다운 거다.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한강은 이어서 썼다. "내가 그걸 영영 알지 못할까 봐, 그게 가장 큰 걱정인 것처럼 그렇게 반복하셨다. (…)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내게도 있었다. 나를 '문썬'이라 부르던, 최인호와 같은 해에 세상과 작별한 회사 선배. 작은 병실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날 몸이 아주 작아진 선배는 말했다. "이런 저녁이면 거리로 나가고 싶다. 저녁 거리를 걷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산다는 건 대단한 무언가 없이도 참 좋은 거였다. 그걸 몰랐다. 문썬, 너는 미리 알아라. 알고 살아라." 선배가 떠나고 한동안은 정성스럽게 살아야겠다고 저녁마다 새로 다짐했지만 어느새 다 잊었다.
삶은 아름답고도 참 좋은 것이라고, 최인호와 나의 선배는 거룩한 유언처럼, 마지막 잔소리처럼 말했다. 그건 그저 태평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었다. 삶을 알알이 맛보고, 낱낱이 알아보고, 끝까지 애쓰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깨달음은 미리 오지 않는다. 영영 알지 못할 것처럼 살다가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아프게 온다.
경북 칠곡 지천면에서 결성된 '수니와 칠공주'는 멤버 평균 나이가 85세인 8인조 래퍼 그룹이다. 할머니가 되고서야 한글을 배운 이들은 삶의 곡절을 시로 쓰고 랩으로 만들어 불렀다. 전성기를 만났는데 멤버 서무석씨가 얼마 전 눈을 감았다. 딸은 "엄마는 천국 같은 1년을 살다 가셨다"고 했다. 남은 멤버들은 빈소에서 랩을 했다. 통곡하는 대신 멋부린 발음으로 랩을 했다. "무석이가, 빠쥐면, 랩이 아니쥐. 무석이가, 빠쥐면, 랩이 아니쥐…" 유족들의 오열이 비트박스처럼 가사 사이사이를 흘렀다.
한강이 잊지 않겠다던, 나는 잊어버린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라는 말이 그날의 빈소를 채웠다. 한스러운 긴 시간을 버텨내고 기어이 찬란해진 당신들의 인생은 아름다웠다. 참 좋았다. 인생이 아름다워지기에 늦은 때란 없는 거였다. 고통과 상실 앞에서 인생은 제가 아름다운 존재임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 역시 빈소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잔인함에서 무엇을 건져내야 할까. 한강의 글이 질문을 던졌다.
지은이 : 최문선, 한국일보 문화부장
출처 : 한국일보 2024. 10. 21
시월의 마지막 주입니다. 새벽이면 추워서 몸을 웅크리게 됩니다.
산에 들에, 아파트 정원에도 황금빛 물결이, 붉은 단풍이 한창입니다.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들, 골목이나 움푹한 곳에 쌓인 낙엽을 보며
계절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시월의 끝날, 오후 2시, 유정독서 모임, 실레마을 김유정문학열차에서 진행됩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이어령교수의 10월의 인사, 노벨문학수상작가 한강의 수필과 시작품,
이들을 지켜보는 신문사 문화부장의 산문을 읽습니다.
또, 김유정 작품으로는 <형>을 함께 읽게 됩니다.
단풍이 화사한 금병산, 옛 김유정역사 옆에 있는 거대한 단풍나무의 화려한 모습을 감상하러
오십시요. 김유정문학열차에서는 금병산과 단아한 김유정역 구 역사와 거대한 단풍나무, 철길가에 피어난
가을꽃들을 모두 보실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김유정작품은 <형>입니다.
*김유정 독서모임: 2024. 10. 31. 14:00~16:00 김유정문학열차
김유정문학열차에서 만나뵙겠습니다.
2024. 10. 30 강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