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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槐堂先生文集解義(괴당선생문집해의)』와 내 마음의 焚書(분서)
인터넷 경매에 나온 것을 밀양까지 가서 구한 괴당선조의 문집을 해석한 것이 이 책이다. 이 괴당선생문집해의는 참으로 가슴 아픈 서책이다. 괴당선조의 종손이던 재종형 대성공이 유서가 번역되어 나오자 사는 곳인 온 양평시내를 다니며 자랑을 하였다. 전해지는 서책은 더러 있어도 그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 자랑이 자연스럽단다. 그러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토로한다. 괴당선조의 문집이 아직 해의가 되지 않았다며 나에게 이것을 하게 한다. 문집이니 유서의 분량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나는 차일피일 공부를 더한다는 명분으로 지냈다. 엄두도 자신도 없어 그렇다. 그러나 그 와중에 종손은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나는 갑자기 바빠졌다. 그해 여름을 꼼짝도 하지 않고 문집해석에 매달렸다. 온 정성을 다하였다. 실로 장구한 여정이었다. 후손이 아니라면 절대 기울이지 못할 마음임이 분명하리라 자부한다. 그리고 완성을 하고나니 예의 출판을 거절당했다. 고향에 사는 중씨는 이미 자신이 없다. 은암공파 청년회장을 통해서 원고를 통째로 보냈다. 책을 만들어 기부를 해도 불온서적인양 그냥 보는 것도 금기시 되는 판에 문중명의의 출판이란 택도 없는 일이란 것이 현실인 것을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도 없다. 나는 이 책을 우선 20권을 제본하여 마음이 통하는 종친에게 먼저 보였다. 그런 다음 오탈자를 정리하고 마음을 더하여 다시 20권을 내어 놓았다. 관심 있는 종친들은 문중의 눈치를 보며 몰래 이미 통독한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복사도 제법 하였다. 저명학자가 한 것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는 말은 분명 진심일 것이다. 저명학자가 풀이한 책은 감흥이 없다. 이곳에는 진한 감동이 함께 한다. 책을 본 어떤 이는 다섯 번 눈물이 나더라하고, 또 다른 사람은 세 번을 울었다고 했다. 나는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말았다. 내 가슴속에는 아직도 그 책이 진정 불살라 타고 있음이다. 귀 기울여 보라. 아직도 소지하듯 타고 있을 분명한 소리가 들릴 것이다.
○ 독축과 독촉
그해 음력 10월의 산수대는 매우 추웠다. 차량에 있는 온도계로 확인을 하니 영하 8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탓도 있겠지만 준비가 부실하였다. 꽁꽁 언 땅바닥에 엎드려 독축을 하자니 손가락은 물론 입마저 얼 지경이었다. 그러나 실망이야 시켜서 되겠는가? 아랫배에 힘을 주고, 턱을 적당히 내밀고, 고개를 든다. 목청을 가다듬어 큰 소리로 자신 있게 읽는다. 끊을 데를 확인하여 끊어 주고 길게 빼는 부분도 그리한다. 박수칠 일은 아니지만 독축을 끝내니 모두 잘했다는 안색들이다. 놀라는 분위기다. 하도 추워서 퇴주를 몇 잔 들이켜 열을 내니 견딜만하다. 이윽고 햇살이 비치니 살만해 졌다. 그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산수대 축문은 한번 읽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다음 14대 조모인 창녕성씨 이하 산소는 도합 다섯 번을 독축해야 한다. 그런데 이 다섯 번 독축 내내 독촉이 이어진다. “謹以(근이)는 부사니까 띄어 읽어야 한다.”처음에는 점잖은 어조다.
“어허! 근이는 부사라 안케? 띄라니까?“밤새 연습도 안하고, 물어보지도 않았으니 당연지사 헤매야 하고 망신을 당해야 했다. 이것이 사람의 상식이고 법도다. 그러나 목청도 장단도 좋았다.
그런데 나는 이 와중에도 속으로 ‘아닌데’, ‘아닌데’를 반복하였다. 근이라는 단어는 없다. 부사도 아니다. 부사가 아니니 부사어는 당연지사 아니다. 아버지 가방이다. 내 축문을 배움에 그 뜻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확인을 한 바가 있다. 거기서 띌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꾸 저토록 성화이니 띄어 버리고 그 시비에서 벗어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여 그리하기로 한다. 하지만 근이의 以(이)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齒)나 이(虱)면 잘 띄어진다. 그러나 以(이)는 상성이니 올려 읽어야 하니 잘 안 끊어진다. 語氣(어기)가 쉬었다가 문장을 다시 시작하는 부분에 있으니 더하다. 그러니 나 또한 아예 히스테리 수준이 된다. 몇 해 전 나는 묘사를 주관하는 집례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 근이를 어찌 하는가 싶어 다른 소문중에서 참여한 분에게 독축을 하도록 해보았다. 그런데 띄기가 아주 쉬웠다. 바로 윗 문장에 붙여 근이로 종결사로 삼으니 이것은 이(齒)나 이(虱)와 같이 딱 끊어진다. 얼마나 띄기가 쉽지 않고, 성화가 심하였으면 기상천외한 이러한 방법으로 독축을 한다는 말인가? 무지는 역사도 바꾼다. 참으로 애절하였다. 그 해 축관을 한 인연으로 나는 이후 매년 축문을 준비하였다. 큰 창호지에 인쇄를 해서 보기는 좋다. 어떤 이는 정성이 부족하다고 폄하하는데 실제 작업을 해보면 보통 성의로는 어렵다.
나는 이 근이를 띄어 읽지도 않지만 띄어서 쓰지도 않는다. 본래 고문이든 현대 중국어든지 한문에는 띄어쓰기가 없다. 표점이라면 몰라도 띄어서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외는 간혹 보인다. 황제나 임금 그리고 세자 등을 지칭하는 글자 앞을 비워두는 것은 있다. 이런 것을 일러 擡頭法(대두법)이라 하였다. 그리고 축문을 씀에 顯(현)자를 앞에다 내어 쓰는 방식을 택하니 顯자 앞 글자에서 띄어 쓴 것처럼 되었다. 즉 전치사 于에서 줄을 바꾸니 그리 보인다는 말이다. 내가 축문을 내어 놓으면 예의 검토를 하는데 항상 띄어 쓰라 한다. 나는 매년 붙여 쓰기를 하고, 검토는 빠짐없이 띄라 한다. 그곳에서 내 의견에 동조하는 이 찾기는 힘들다. 이것은 아직도 계속되는 현상이니 참으로 질기고도 길다. 이제 논란은 잠재워야 하겠다. 근이의 어원을 찾는 장구한 여행이다.
○ 고성이씨 종보 편집위원이 되어
우리 고성이씨 대종회에서는 1975년 10월 宗報(종보)를 창간하여, 처음 肉筆(육필)로 오직 정성으로 제작하였지만 2년이 지나자 활자로 간행되었다. 1989년 9월에는 정기간행물로 등록하였으며, 1996년부터 책으로 나와 현재 통권 136호에 이르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고성이씨 종보를 접해본 나로서는 실로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 수준과 정성에 있어서다. 특히 편집주간의 면면을 보면 崇祖德目(숭조덕목)뿐 아니라 깊은 학식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현재 전·현직 고성이씨 대종회장이 공히 편집주간을 거친 점은 뒤에 가는 사람들에게 시사 하는바 매우 크다. 어느 해인가 각 파별로 종보 편집위원을 위촉한다는 사실을 접하였다. 마음속으로 참으로 의미 있는 자취라고 여겨 추천을 부탁하였지만 미천한 나를 위한 자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은암공파를 대표해서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종친은 이미 타계하고 말았다. 해서 올 을미년은 또 다른 편집위원을 필요하였다. 인터넷 홈페이지로 종보를 대신한다고 해서 작년에는 발행되지 않다가 대종회장이 바뀌자 續刊(속간)을 하고자 편집위원장을 선임하고, 이미 두 차례 서울에서 편집회의가 있었다. 여기에 불초 내가 참석하게 되었다. 보람 있고 영광된 자리가 분명하다. 사진으로 익힌 제현들과 함께 뜻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편집위원으로 참석하게 된 경위가 하도 崎嶇(기구)하여 그 사정을 불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은암공파 대종회에서 30세 성룡 종친을 편집위원으로 삼았다. 이른바 임명을 하여 소임을 준 것이다. 그런데 分付(분부) 받은 이가 서울은 멀리 있고, 자기는 뜻이 없으니 나더러 대신가라는 전갈을 해 왔다. 그래서 나는 문중에서 추천도 임명도 하지 않은 자리를 마음가는대로 참예할 수 없다고 한다. 대신 가는 것은 불손하게 비칠 수도 있다.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함부로이 결정할 수도 없는 것이 이치다. 더구나 종친이 먹기 싫다고 내어 놓은 음식을 배고프다고 불문곡직 먹는 것과 다름없노라고 나는 가차 없이 거절하였다. 그러고는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성이씨 대종회 사무국장이 기별이 와서 종보 편집회의에 참석하라 한다. 상심한 내 심정을 구구하게 설명할 수도 없을 거니와 그리 한다고 대종회에서 이해하여 달라질 것도 없다. 고성이씨 열 개 파문 중에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인 우리 은암공파만 더욱 측은해질 것이 자명하다. 자식에게 으쓱하며 자랑해야할 자리이건만 그곳에 가는 곡절이 이토록 나에게는 서럽다.
2. 한문문법에 대한 개괄적 이해
◇ 세계 언어의 문법적 대별
의미만 전달되고 이해되면 족하지 문법적인 기능을 알아서 뭐하나 하는 의구심이 있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IT산업의 발달에 기인하여 언어의 훼손이 매우 심각함은 이미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될 정도이다. 그러나 언어라는 것은 언제나 미래 사람들의 몫이다. 먼저 가는 사람이 안타까우면 바른 사용법을 알려 주면 그만일 것이다. 수백 년이 흘러 지금의 우리와 대화한다면 아마 통역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세종대왕이 작금에 젊은이들이 하는 말을 통역 없이 이해할 수 있을까 심히 의심스럽다. 그러나 문법적인 체계라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언어의 사용원리와 골간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을 분명하게 하고 꾸미고 수식하고 있으니 간단하게 치부할 일이 아니다. 말이라는 것은 문법적 바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아무리 훼손된다고 해도 이 틀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괴상한 문장이라도 문법적으로 도해를 하면 구조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어형과 문법에 관한 이해가 이토록 필요한 것이다. 〇 孤立語(고립어)로 분류되는 중국말 영어와 이와 유사한 라틴어 등은 이른바 屈折語(굴절어)라고 한다. 이 말의 특징은 어형의 변화가 심하다. 형용사나 동사에 ly가 붙어 부사가 되거나, ‘노래하다‘의 뜻을 가지는 영어 단어는 Song인데 이것이 시제에 따라 Sang와 Sung 등으로 어형 자체가 변하는 범주의 언어를 말한다. 어형의 변화가 심하여 익히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말이 속한 분류는 膠着語(교착어)라 한다.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 또는 어간에 문법적인 기능을 가진 요소가 차례로 결합함으로써 문장 속에서의 문법적인 역할이나 관계의 차이를 나타내는 언어를 뜻한다. 체언에 격조사가 붙어 어형이 바뀌는 것을 曲用(곡용)이라 하는데 活用(활용: 용언의 어간+어미)과 더불어 국어 문법의 근간이 된다. 한자는 孤立語(고립어)로 분류된다. 한문글자 자체가 모양을 달리하여 품사를 다르게 한다거나 어근과 어미가 있어 글자의 변형으로 다른 뜻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한자는 그대로 고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교착어와 굴절어는 어형과 어미의 변화를 화려하게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배우기가 힘들고 사용에 있어 자주 혼란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한문은 글자 숫자가 많아서 그렇지 익히고 나면 사용에 다른 언어들과 비교해서 비교적 용이한 특징을 가진다. 〇 글자의 위치가 문법적 구실을 하는 한문 고립어인 한문의 문법적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글자의 위치가 문법적인 기능을 나타낸다. 명사인 한 단어가 서술어 앞에 놓이면 문법적 성분은 곧 주어가 된다. 같은 글자가 서술어 뒤에 놓이면 목적어나 보어가 된다는 점이다. 서술어로 주로 쓰이는 동사 또한 같은 동사 앞에 놓이면 부사어가 된다. 명사 또한 서술어 앞에서 전치사가 없이 즉 전치사의 목적어가 아닐 경우에는 부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한문문법에는 冠形詞(관형사)가 없다. 이것은 우리말과 달리 活用(활용)이 없는 한문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매우 어려운 부분이고 아직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한자가 위치하는 곳에 따라 문법적인 기능을 달라한다는 것은 한문만이 가지는 두드러진 특징이라 하겠다. 〇 문장의 성분과 품사에 대한 이해 단어를 그 機能(기능)과 形態(형태) 그리고 位置(위치)와 의미에 따라 분류한 것을 품사라고 한다. 국어에서는 명사와 형용사 등 9개 품사로 분류를 한다. 한국에 있어서 한문 품사는 통일되어 있지 않다. 학자들마다 저마다의 타당성을 주장하며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정리되어 통용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그리 강하게 느끼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成分(성분)이라는 것은 우리가 주의 깊게 보면 익히 알고 쉽게 이해하고 있다. 주어가 어떻고 서술어가 무엇이니 목적어는 무엇이다라고 알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정리하자면 문장을 그 직책으로 보아 몇 조각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 국어에서는 여격부사어로 보는 것을 영문법에는 간접목적어라 하고, 한문에서는 客語(객어)라고 하여 별도의 성분으로 치는 것이 이채롭다.이러한 골격위에 문법적인 소양을 바탕으로 말이 변화하고 혼용되는 것은 훼손이 아니라 언어의 진화라고 보면 되겠다. ◇ 한문단어(복합어) 구성의 특성 서구의 문물이나 철학이 동양으로 소개되면서 새로운 한문 단어가 많이 생겨났다. 중국에서 중국어로 원음에 가까이 음역된 것을 우리가 그대로 쓰면서 우리식으로 한자 발음을 하니 그 유래를 모르거나 고매한 해석을 통해야만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있다. 幾何學(기하학)의 기하라는 말도 그 중에 하나다. 이것을 뜻으로만 새기자면 ‘몇어찌’가 되는데 양주동 선생이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들어간 중학교 때의 감회를 적은 글은 이러한 고민을 아주 잘 표상하고 있다. 나라 이름을 가지고 보면 미국이나 영국, 독일과 불란서 그리고 애급(埃及:이집트)과 이태리까지 모두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말이다. 미국의 영문 명칭은 우리 시각으로 보면 美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美의 중국발음이 메이(mei)인데 아메리카라고 할 때 메의 음역이 국가명이 되었다. 영국의 英은 잉글랜드의 잉이 중국발음으로 英(ing)이란 말이다. 사전 지식이 없으면 절대 유추할 수 없는 그런 부분이다. 그리고 수상이나 총리 등 대통령을 비롯한 말은 죄다 일본식 한자어이다. 우리가 불편 없이 친근하게 사용되고 있는 이러한 단어도 물론 그 어원을 따라가면 번역을 할 때 한자 이외 달리 표현할 수 없었던 일본어의 한계가 있다. 일본학자들은 한문을 사용하지만 그리 밝지는 못하다. 일본식 한자를 고집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도 부화뇌동하고 있으니 우리 고유언어의 오용이 시작되었다.근이를 부사라고 띄라고 하면 그것이 하나의 단어란 말이 아닌가? 과연 근이는 단어의 범주에 속할까? 우선 한문단어의 구조적 특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 主述(주술: 주어+서술어) 구조를 가진 단어 天高(천고)나 月出(월출) 등과 같이 ‘주어+서술어’ 형태의 구조를 말한다. 주로 술어가 목적어나 보어가 필요하지 않는 自動詞(자동사)인 경우가 대부분 이러하다. ○ 서술어+주어의 구조를 가지는 특수한 단어 통상적으로 주어와 술어의 관계에서는 대부분이 주술구조이다. 그러나 서술어인 동사가 앞에 오는 단어도 있다. 있고 없음을 나타내는 존재동사 有(유)와 無(무), 그리고 많고 적음을 의미를 가지는 多(다)와 少(소), 그리고 難(난)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無名(무명), 難解(난해), 多才多能(다재다능) 등의 단어는 곧 뒤에 주어가 오는 특수한 경우이다. ○ 術目(술목: 서술어+목적어) 구조 用言(용언), 즉 동사 또는 형용사가 목적어를 가지는 구조이다. 한문의 특성상 행위의 완성 등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단어가 이 구조를 가진다. 여기서 목적어라 함은 통상 補語(보어)나 客語(객어)와 모두를 지칭하는 것으로 한다. 歸家(귀가)나 下馬(하마)와 같은 단어인데 별도로 구분을 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중국문법에서는 통칭하여 賓語(빈어)라고도 불리는데 역할을 같다. 이 술목구조를 오용하는 경우는 많이 본다. 湯備室(탕비실)이라는 곳이 있다. 관공서 등에서 茶(차)를 준비하는 곳을 일러 말하는데 일본식 조어(造語)로 틀린 표현이다. 굳이 하자면 비탕실(備湯室이)로 하여야 술목구조에 알맞다. 탕이 주체가 되어 준비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탕을 준비한다고 해야 한다. 중국어 조어는 음역임을 감안하여 살펴야 하고, 일본어는 아무거나 주술구조로 표현하는 특징이 있으니 주의하여야 한다. ○ 副詞(부사)+用言(용언)의 형식 부사뿐만 아니라 동사나 형용사 앞에서 부사적인 용법으로 사용되는 동사와 명사 또는 대명사를 포함하는 형식이다. 再會(재회), 急行(급행)이라고 하면 ‘부사+동사’의 형식이다. 여기에 운집(雲集)이라고 할 때면 雲(운)은 구름의 뜻으로 명사임이 틀림없지만 ‘구름처럼’이라는 뜻으로 부사적으로 사용되는 좋은 예가 되겠다. 이 형식에 있어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30대 중반의 회사직원에게 “6.25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물어보았다. 뭐로 배웠고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느냐고 하였다. 그러한 즉 대답이 고심 없이 “북침이다.”라고 한다. 그 이유를 물으니 그럴싸하다. “북한이 침략하였으니 북침이 맞다.”라고 한다. 일본식인가 주술구조로 이해한 것이다.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것을 어찌 보면 정반대로 북침이라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南侵(남침)은 위 구조와 같다. 주술구조로 보면 행위의 주체마저 바뀐다. 여기서 南은 ‘남으로’의 뜻을 가지는 부사이고 성분으로는 부사어이다. 구체적으로는 方向副詞(방향부사)로 분류된다. 北進統一(북진통일)은 지금은 퇴색되었지만 한 때는 국시와 다름이 없었다. 이것을 북한이 통일하는 것으로 해석해서야 되겠는가? 이 역시 주술구조가 아닌 北 또한 방향부사로 보아야 한다. 과반수를 훨씬 상회하는 학생들이 6.25사변을 북침이라고 알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참교육을 한다고 설립된 전교조의 편향되고 종북적인 이념교육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이런 것을 모르는 전교조의 한계이다. 바로 한문 단어의 몰이해가 본질이고 바탕이다. 복합어의 이해에 이러한 주의가 있어야 되겠지만 한문문장의 해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莊公八年(장공8년)에 있는 문장이 이 구조의 타당한 예가 되겠다. 豕人立而啼(시인립이체: 돼지가 사람처럼 운다.)가 그것이다. 전치사 없이 동사 앞에 명사가 위치하는 이 경우에 人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轉成(전성)되어 ‘사람처럼’이라는 부사가 된다는 뜻이다. ○ 修飾(수식: 관형어+체언)구조 수식의 의미는 형용사 또는 동사가 체언(體言) 앞에서 꾸며주는 역할을 하는 단어를 말한다. 白雲(백운)이나 流水(유수)와 같은 형식이다. 한문이나 영문법에는 관형사가 없다. 본래 국어문법에서는 관형어 중에서 활용하는 것은 동사나 형용사로 분류하고, 활용하지 않는 것만 冠形詞(관형사)로 하였다. 한문문법에 관형사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문에는 活用(활용)이 없어서 그렇다. 고립어로 활용이 없는 한문에서 활용의 유무를 따져 관형사로 분류할 실익은 자연히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한문문법에서도 관형어는 있다. 영문법에서 수식어라고 하는 이것은 국문법 그리고 한문문법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특히 한글로 해석을 할 때에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참고로 활용은 동사나 형용사가 형태를 바꾸는 것을 말하고, 曲用(곡용)이란 명사가 일으키는 단어형의 교체를 의미한다. ○ 派生語(파생어) 형태 단어의 구성이 어떤 글자에 품사에 이르지 못하는 접두사와 접미사가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接頭辭(접두사)+語根(어근)의 형식에는 有衆(유중), 所望(소망), 而立(이립), 舍弟(사제) 등이 있다.語根(어근)+接尾辭(접미사) 형식의 단어로는 吾等(오등), 菓子(과자), 忽焉(홀언), 所以(소이), 得以(득이) 등등의 많은 단어가 여기에 속한다. ○ 기타 단어의 분류 日·月·星·辰(일월성신)처럼 한자 하나로 단어를 이루는 것을 單詞(단사)라 하고, 단사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한 문장을 구성할 수 있다. 같은 글자를 중첩해서 만들어진 것을 疊語(첩어)라고 하였다. 단사이면서 두 가지의 뜻을 겸한 것은 兼詞(겸사)라고 했다. 成句語(성구어)는 하나의 句(구)가 한 단어로 된 것인데 이를 흔히 故事成語(고사성어)라 한다. 지명이나 인명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도 있다. 不惑(불혹)과 같은 것은 관용어라 하는데 본래의 의미가 후세에 전성되어 다른 뜻으로 차용되는 것을 일러 말하였다. 불혹이란 본시 의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나이 40을 의미한다. ○ 그렇다면 ‘謹以’는 어디에 속할까? 수 만자를 헤아리는 한자를 수 천 년에 걸쳐 수천만 명도 더 넘는 사람들이 조합하여 복합어를 만들었다면 그 숫자는 형용하기 불가할 만큼 많다. 그 형식에 있어서도 매양 같다. 위와 같은 분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오용을 막기 위한 보편타당한 분류를 예로 든 것이다. 그렇다면 ‘謹以’는 위의 분류상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정답부터 미리 말한다면 위의 어느 형식에도 들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근이는 한문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문문장의 일부를 무지한 사람들이 따로 떼어 마치 한 단어인양 쓰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러니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는 이른바 족보도 어원도 모르는 그러한 존재인 것이다. 아마 朱子(주자) 선생이 처음 축문을 지을 때 이렇게 어원도 족보도 모르고 쓴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통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