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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辨問曰:罪業妄念任他,自專稱念,必許可往生者,人皆住惡見,不恐惡業,好作衆罪、起妄念,還可墮惡趣也。然一往先以制惡息妄爲安心之面,可令恐粗强罪,如何?
영변이 묻기를:
죄업과 망념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자기가 오로지 칭념만 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모두 악견(惡見)에 머물러 악업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죄업을 짓고 망념을 일으키는 걸 좋아하여 다시 악취에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선 먼저 악을 제지하고 망념을 멈추는 것을 안심의 측면으로 삼아 거칠고 강한 죄업을 두려워하도록 하는 것은 어떠한가?
1. 明諸佛通誡
上人答曰:“諸惡莫作,衆善奉行”,諸佛通誡也。然造罪凡夫念佛往生之義,全非云好造惡業、起妄念。今恐惡趣之苦果、願淨土之快樂者,專制斷三業罪,可奉行三業善;雖知此道理,愚癡凡夫更難制止妄念惡業,此事歎而有餘,可恐可恐!
상인께서 답하기를: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일체 선을 받들어 행하라.”는 제불의 통계(通誡)이다. 그러나 죄업을 짓는 범부가 염불하여 왕생한다는 뜻이, 악업 짓고 망념 일으키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 악취의 괴로운 과보를 두려워하여 정토의 쾌락을 원하는 이는 전적으로 삼업의 죄업을 제지하여 끊고, 삼업의 선업을 받들어 실천할 수 있다. 비록 이러한 도리를 알고 있어도, 어리석은 범부는 망념과 악업을 제지하기 어려우므로, 이 일은 탄식하고도 남음이 있으니 두렵고 두렵도다!
2. 明彌陀別願
爰彌陀本願,爲救如此之凡愚,以易行易修之名號,令點犯罪咎;得此意之輩,何寄事於他力本願,好造大罪哉?縱使煩惱強盛、不禁淫酒肉辛、不止貪愛瞋憎者,雖似好造惡,只是本性之所致也,依憑本願,今更非許作之。
그리하여 아미타불의 본원은 이러한 어리석은 범부를 구제하기 위해 행하기 쉽고 닦기 쉬운 명호로써 죄과에 대해 속죄할 수 있게 한 것이니, 이 뜻을 아는 자들이 어찌 타력본원을 구실로 삼아 큰 죄를 짓기 좋아하겠는가? 설사 번뇌가 치성해서 음행, 음주, 육식, 오신채를 금하지 않고, 탐욕과 애착, 성냄과 미워함을 그치지 못하는 자가 있어 악업 짓기를 즐기는 것 같아도, 이는 단지 본성의 소치이니, 본원에 의지한다고 해서 지금 이런 악업을 지어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3. 明捨自歸他
然則於粗强罪者,聖道、淨土共恐,後世之人何不禁之?至細隱罪者,云聖道,云淨土,誰制止之?
그렇다면 거칠고 강한 죄업은 성도문과 정토문 모두 두려워하거늘, 후세의 사람들이 어찌 이를 금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미세하고 은밀한 죄업에 대해서는 성도문이든 정토문이든 어느 누가 이를 제지할 수 있단 말인가?
凡於造惡,有輕、次、重三品,五逆重罪,造此之者稀;在家十惡之中,殺盜二罪,適雖有禁之,自餘八罪盛犯之。於出家罪者,有持戒人者,可有破戒;無持戒法之人者,依何有毀犯?於無戒之僧尼者,與在家無差別;縱僅雖禁淫酒肉辛,只是一旦制禁也,不止念者不可謂戒行具足。然但虛受信施,不淨說法等之自餘眾罪,不可稱計。所禁之罪,僅一二也;所犯之惡,數過塵沙。
무릇 악업을 짓는 데 경(輕), 차(次), 중(重) 삼품이 있는데, 오역중죄를 지은 이는 드물다. 재가자는 십악 가운데 살생과 투도 두 가지 죄는 다들 금하고 있지만, 나머지 여덟 가지 죄는 많이들 범하고 있다. 출가자의 죄는, 계율을 지닌 자가 있으면 파계도 있을 수 있겠으나, 지계법이 없는 사람이 무엇에 의거하여 훼범(毀犯)이 있겠는가? 계가 없는 비구, 비구니는 재가자와 다를 게 없다. 설사 음행, 음주, 육식, 오신채를 금하더라도 잠시 억누르며 금하는 것일 뿐, 생각을 멈추지 않으면 계행을 구족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헛되이 신도들의 보시를 받고 부정설법하는 등의 나머지 죄업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금한 죄는 겨우 한두 가지뿐이고, 범한 악은 그 수가 먼지나 모래의 수를 뛰어넘는다.
如此造罪之輩,以自力爭,可得解脫哉? 是故憑他力本願滅罪增上緣之功用,以念念稱名,隨犯隨懺也。
이처럼 죄업을 짓는 자들이 자력에 의지해서 해탈할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타력본원의 멸죄증상연(滅罪增上緣)의 작용에 의지하여 일념 일념의 칭명으로 (죄를) 범하자마자 바로 참회하게 된다.
4. 明捨聖歸淨
但至云誡惡見可爲安心面者,言“犯罪之人,不得解脫”者,是聖道門之安心也;言“雖造惡業,稱名號得往生”者,是淨土門之安心也。所以捨聖道、歸淨土,濫觴難制罪障之故也;若夫可制伏罪業、可息妄念者,戒定慧三學,何法不修行之?故知,成此見解之人者,永不可信他力本願者也。努力可思之!
그러나 악견惡見을 경계하는 것을 안심의 측면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죄를 범한 사람은 해탈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도문의 안심이고, “비록 악업을 지었어도 명호를 부르면 왕생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토문의 안심이다. 따라서 성도를 버리고 정토로 회귀하게 된 근원이 바로 죄업의 장애를 억제하기 어렵기 때문인데, 만약 죄업을 조복할 수 있고 망념을 멈출 수 있다면 계정혜 삼학 가운데 어느 법인들 닦을 수 없겠는가? 따라서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은 영원히 타력본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력하여 생각할지어다!
첫댓글
“비록 악업을 지었어도
명호를 부르면 왕생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토문의 안심이다
오늘도 이 생사죄악범부
귀중한 안심정토법문의 가르침
칭념필생 명심하여 일향전념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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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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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
중생의 입장이 아닌 중생제도를 해야하는 부처가 된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악인을 먼저 제도함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정토문을 알기 이전부터 만약 내가 부처가 된다면 어떤 중생을 먼저 제도할지에 대해 고민해 본적이 있는데 결론은 악한 중생이었습니다.
집안 청소를 예를 들어도 가장 더럽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것 부터 치워버려야 청결을 유지할 수 있듯이 사바 중생들도 우선 악인을 먼저 제도해야 남아있는 중생들이 그나마 덜 고통스러울테고 제도되는 악인의 입장에서도 쉽게 제도가 되지 않으면 그 죗값을 치르느라 오랜세월을 고통에서 허덕여야 하며 여전히 그 악한 본성은 쉽게 나아지기 어렵기에 결국은 주고 받는 인과속에서 선한이에게 까지 악업의 과보를 심게될 확률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악인을 보면 더욱 더 염불회향을 해 주고 있습니다.
법문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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