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磻溪公(廷鳴) 遺作《반계공(정명) 유작》
반계공 휘 정명(廷鳴․1589~1640)의 자는 서겸(敍謙)이며, 호는 반계 또 다른 호는 성우(醒愚)이다. 그는 1589년(己丑) 안항공(顔巷公) 3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글재주가 남달라 향시에 무려 13번 합격하고도 광해군(光海君)의 폭정과 패륜이 역겨워 출사하지 않았다.
병자호란 때는 형 청금공과 의병을 인솔하고 북상하였으나 왕의 항복소식을 듣고 귀향해 장천재(長川齋)에서 경서를 읽으며 여생을 지냈다. (지장록 p.193, 194, 1145 유고집)
■ 太古松韻 (태고송운)
三皇雨露無爲化 삼황의 조화따라 비와 이슬로 저절로 자라
順木之天歲千年 순한 나무가 천부적으로 천년의 나이를 누렸다
勝賞別有登臨處 명승지를 돌며 구경하기 위해 오르는 곳에
太古春光第一嶺 태고의 봄빛 띄우며 제일의 잿마루에 서 있다
■ 惺愚堂題韻 (성우당제운, 지장록 p. 1145)
「愚我非天我自愚命之謂性奚徒聖陋巷瓢傳萬古機濂溪圖掛千秋鏡繼往開來幾代賢三省四勿斯文政愚而醒則復其初吾亦今春沂水味」
〈해설〉내가 어리석은 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어리석음이다. 하늘의 명을 성(性)이라함은 어찌 성인뿐이리. 누항의 단표로 전하는 것은 만고의 기동(機動)이요 주렴계(周濂溪)의 태극도(太極圖)는 천추의 거울이네.
성현을 계승하여 후손에게 그 가르침을 전하여 몇 대나 어질었나. 매일 세 번 반성하고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 말며 움직이지 말라는 사문은 유교를 바로 세움이네. 어리석었다가 깨어나면 그 처음으로 돌아감이니 나도 또한 올봄에는 기수에 가서 읊으리라.
■ 傷感詩 (상감시, 지장록 p.194)
求道斯有道 도를 구함에 여기에 도가 있으니
由吾豈由人 내가 행하는 것이지 누가 행하리오
孔門追莫及 공자문하에 쫓아간들 미치기 어려우니
何處質吾眞 어디다 나의 진실을 물어보리
學到幾層位 학문이 몇 층으로 올라가야
金聲玉又振 금성옥진 하여 보리
皇天不純命 하늘의 명령이 순수하지 못하여
竄我窮海濱 나를 궁해의 물가로 쫓아냈네
絶無師友助 끊어져 스승과 벗의 도움 없으니
性善爲誰陳 성품이 착하다는 걸 누굴 위해 베풀까
草慮英雄老 초려에 영웅이 늙어가니
枕席涕淚頻 베개자리에 눈물만 자주 흘리네
空臥磻溪上 속절없이 반계상에 누어있으니
文王或可親 문왕이나 혹시 가히 친하게 될런지
■ 憂國詩律 (우국시율, 지장록 p.193)
「廢母科場焚私藁憤惋而歸見鄭相公(芝衍)出吟一律示志」
* 鄭芝衍(정지연) : 조선전기 대사간, 대사헌, 우의정을 역임한 문신(게재자)
昊天罔極綱常變 호천망극한 강상이 변하니
涕淚縱橫憤慨衷 눈물이 종횡으로 흘러내려 분한 마음이네
三捷文章千里外 세 번 장원한 문장이 천리 밖이요
十年翰墨八人中 십년 동안 공부는 팔인 중이네
一般忠節終誰託 일반의 충절을 마침내 누구에게 의탁할고
惟有知心鄭相公 오직 내 마음 알아주는 이는 정상공 뿐이네
敗倫亂賊能容罪 인륜을 어지럽힌 도적의 죄를 능히 용서하니
憂國丹忱幾積忡 나라걱정 붉은 정성과 근심 몇 겹이나 쌓였을고
更復何時慈殿位 어느 때 자전의 자리 되돌아올까?
湖南臣子恨無窮 호남의 신하 한은 끝이 없도다
■ 偶吟* (우음, 유고집)
天之理爲人之性 하늘의 이치가 사람의 성품이니
涵養天理其率性 천리를 함양함이 타고난 성품이네
昔非不足豈今餘 옛날에도 부족치 않았지만 지금이라고 어찌 남겠는가
堯舜以傳惟是性 요순이 전한 것은 오직 이 천성이네
* 얼른 떠오르는 생각을 시가로 읊음(게재자)
(144-034일차 연재에서 계속)
첫댓글 (144-033일차 연재)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圓山 위정철 저)
33일차에서는 '반계공(정명) 유작' 이 밴드에 게재됩니다.
'반계공(정명)의 유작'에서 '세상의 이치와 절제의 미학'을 배우고 갑니다.
※ 주) 읽는이의 편의를 위하여 게재자가 일부 제목에 음을 달았습니다
[본문내용- 선조님들의 유작 등 계속]/ 무곡
어려서부터 남다른 글재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현실정치(광해군 시절)와는 타협이 불가해 출사하지 않고 재야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특히 병자호란때는 형님인 청금공과 같이 의병활동을 한 것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무곡
인조는 왕이 될 생각이 없다가 서인들에 의해, 자다가 갑자기 왕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광해군과의 악연이 얽히고 설켜 복수의 칼날을 계속 갈고 있었다는 설도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즉, 광해군의 어머니인 공빈과 정원군(인조의 아버지)의 어머니인 인빈은 선조를 두고 지독한 연적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중에 임진왜란으로 인해 선택의 여지없이 후궁 출신인 광해군이 왕이 되었지만, 선조의 적자이면서 늦둥이인 영창대군이 왕권을 위협한다고 하여 당시의 집권당인 북인들이 죽여버리자 그 덤터기는 모두 광해군에게 쏟아지게 됩니다, 거기다가 영창대군의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유폐 시키는 행위가 성리학이 지배하는 조선에서는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고, 결국은 서인들이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인해 왕권을 탈취당하게 되죠. 또한 인조의 동생인 능창군이 역모에 걸려 죽임을 당하고 이로 인해 화병으로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도 40세로 요절하게 되죠.
이런 저런 사유로 인조는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에 대하여 광해군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컸던것으로 사료됩니다. ('조선 왕들은 왜' 에서 편집)/ 무곡
게재하신 반계선생 몇 편의 글을 수차례 정독했습니다. 치국이나 평천하보다 수신과 제가에 몰두한 유학자로서의 면면이 돋보입니다. 시풍이 담백, 사실, 묘사적이네요. 특히 태고송 한시는 걸작이네요./ 벽천
무곡 위상환 님
벌써 33/144일차로 노고가 크십니다. 무곡(상환) 장학회 이사님께서 밴드에 올린 글에 대해 야운(이환)위원의 수고로 원산 위정철 카페에 본문과 댓글 모두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탑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고가 후손들에게 씨족문화 창달의 디딤돌이 되리라 사료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위씨지성사의 체계를 세운 천년세고가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벽천
무곡 위상환 님
다암(휘 영복)공께서 가산을 탕진해가며 존재선생을 출판으로 부활시켰다면, 원산 위정철카페가 현대판 다암공에 견줄만합니다. 왜냐하면 존재집 국역본과 씨족저서 수십권을 탑재해 전산화한 공로입니다. 이를 위해 애쓴 씨족문화연구소 연구위원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꾸벅.../ 벽천
이번 반계공(정명) 유작을 밴드에 게재하는 것이 33회차 입니다만,
종친님 및 독자분께서는 1회차의 '불가상서' 충렬공 위계정님(1038년)으로부터 반계공(1640년)까지의 세월을 얼추 계산해봐도 600여 년의 세월을 헤쳐온 것으로 보입니다.
약 두달반 정도의 물리적인 기간에 600여년에 해당되는 기간동안 파란만장하게 살다가신 선조님들과 마음의 대화를 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의 여정이 더욱 궁금하고 많이 기대됩니다./ 무곡
무곡 위상환 님
저서명이 '천년세고',
멋집니다. 향후 출중한 후손들이 "천사백년 위씨지성사'란 책명으로 진보하길 바랍니다/ 벽천
선조들의 글을 모은 소중한 문집류의 책은 원본에 지장이 없는 한, 번역상 오류 수정, 증보, 보완의 과정을 거치면 더욱 값진 보물로 자리매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무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