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마을 (웃상삼) 입구에서 대가면소재지까지
(관련 사진)
집에서 통학할 때 이 정려각(열여각이라고 불렀다) 앞을 지나갈 때 대낮에도 혼자라면 등골이 오싹하였으며, 자갈길을 걸을 때 항상 누군가가 뒤따라보는듯했다. 비가 오거나 늦은 밤에 지나칠 때는 정말 무서움에 떨었다. 아마 이 앞을 통과할 때는 항상 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사람 이름을 불러댔다.
이 열려각으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었다. 본인은 정려각에 대한 자료를 이 기회를 통하여 상세히 찾아 보았다.
수성라씨 열여 정려각(壽城羅氏 烈女 旌閭閣)
아래상삼과 못안상삼 중간 지점에 위치한 수성라씨 열여 정려각은 아래상삼 마을에 성산인(星山人) 화당(花堂) 배규(裵規)와 두 아들 한(閑), 윤(閏)의 3부자가 문과를 거쳐 대사성(大司成)을 거친 집안으로 배윤은 세종 때 대사동(大司諌), 홍문관 직제학을 지낸 대가(大家)였고, 세조 때 운명(殞命)을 당한 김종서는 배윤의 사위였다.
뒷날 배윤이 병사하고 부인 수성라씨는 몸소 머리를 깎고 3년 시묘살이를 선남 오도마을 묘소에서 끝내고 지아비를 뒤따랐다. 정려각에는 아들 설송(雪松) 배성겸(裵聲謙)의 효행비가 함께 있다. 아래상삼 모원재(慕遠齋)는 배윤, 아들 설송 배성겸, 삼헌(三軒) 배석의(裵錫義)를 추모하는 재실이 있다. 그리고 정려각은 1994년 훼손으로 중수(重修)하였다.(출처 : 성주마을지, 1998년 발행)
사진 촬영일 : 흑백 사진(대가면 기관단체) : 1960년 후반
칼라 사진 : 1차 2022년 10. 2, 2차 : 2023. 3. 4
제 2편으로 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