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형의 닮음 조건/이상은
오늘 오후 중학교 2학년 과정 수업이었다.
나는 삼각형의 닮음 조건에 대해 강의하고 있었다.
“두 삼각형이 닮았다는 것은 세 대응각의 크기가 각각 같고, 세 대응변의 길이가 비례하는 것이다.”
닮음의 정의에 관해 설명하고 이어서 두 삼각형의 닮음의 조건에 설명하고 있었다.
화이트보드에 삼각형 두 개를 그리고 각 꼭짓점과 변에 이름을 붙였다.
“두 삼각형의 세 쌍의 대응하는 변(Side)의 길이의 비가 같을 때, 즉 a:a'=b:b'=c:c' 일 때 SSS 닮음이라 하고 두 쌍의 대응하는 변의 길이의 비가 같고 그 끼인 각(Angle)의 크기가 같을 때, 즉 a:a'=c:c', ∠B=∠B' 일 때 SAS 닮음이라 한다….”
그런데 여학생 J가 강의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한 손으로 턱을 고인 채 공책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설명이 끝난 후 나는 J 옆에 다가가 공책을 슬그머니 내려다보았다. 공책에는 여러 종류의 삼각형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굵고 노란색의 변을 가진 피자 조각을 닮은 삼각형, 가늘고 검은 선으로 그려진 뾰족하고 눈 코 입이 그려진 사람 얼굴 모양을 한 삼각형, 해바라기 꽃잎으로 그려진 작은 여러 개의 삼각형…. 내가 공책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J는 공책을 슬그머니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그리고 내 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세상의 모든 세모를 변과 각으로만 보는 것은 너무 재미없어요. 실제로 삼각형을 만나기도 쉽지 않아요. 내가 만난 세모는 점심으로 먹은 샌드위치 투명한 삼각자 턱이 뾰족한 친구 얼굴 노란 해바라기 꽃잎 이런 것들이에요. 삼각형이라고 하면 샌드위치의 맛은 사라지고 내 친구의 미소도 없어지고 꽃잎의 색깔도 지워져요.”
말을 서둘러 끝낸 J는 겸연쩍게 나를 향해 피식 웃었다.
평소에도 J는 가끔 또래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말들을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딴전을 피우거나 엉뚱한 대답을 한다.
“음…. 지금은 닮음 조건 공부해야 한다.”
나는 J를 보며 웃었다.
J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조셉 코쿠스라는 작가의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라는 작품을 떠 올렸다. 조셉 코쿠스는 실제 의자와 의자 사진 그리고 문자로 쓰진 의자의 사전적 정의를 같은 공간에 전시했다. 또 세 개 중 어느 것이 진짜냐는 질문을 던졌다.
인간의 인식은 지각하거나 상상하거나 사유한다. 실제 의자는 지각의 대상이고 사진 이미지는 인간의 상상을 대변하고 문자는 인간의 사유를 통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조셉 코쿠스에게 세 개 중에 진짜 의자가 어느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다면 문자로 쓰인 의자를 골랐을 것이다. 그는 개념 미술가였으니까. 실제 의자는 그리 영원히 존재하지 못하고 풍화할 것이고 사진 속 의자는 실존하지 않거나 모든 의자를 가리킬 수 없다. 하지만 개념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고 세상의 모든 의자를 가리킬 수 있다. 인간은 개념을 통해 사유하고 보이지 않는 많은 구조물을 만들어 내곤 한다. 그런데 이 거대한 구조를 건축하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는 언어다. 어쩌면 인간은 실제 사물과 많은 상상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개념 즉 언어를 발명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사이에 나도 이면지에다 J처럼 샌드위치, 얼굴, 해바라기를 그려 보았다. 그리고 그림 아래에다 반듯한 삼각형, 길쭉한 삼각형, 여러 개의 삼각형이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다. 그림을 손으로 가리고 이름들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반듯한 삼각형, 길쭉한 삼각형…. 이번에는 이름을 손으로 가리고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내가 붙여준 그림 이름과 내가 그린 그림은 서로를 대변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내가 붙인 이름에는 J가 말한 것처럼 두께도 크기도 색깔도 없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내가 지어준 이름을 들었다면 내가 그린 그림을 결코 상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업 시간이 끝나갈 즈음 나는 삼각형의 닮음 조건 대해 다시 요약해 설명했다. “두 삼각형이 닮았다는 것은 세 대응각의 크기가 각각 같고, 세 대응변의 길이가 비례하는 것이다.” J는 무표정한 얼굴로 강의를 듣고 있었다. 마치 색깔도 없고 일정한 굵기의 수학 문제집의 단정한 삼각형 느낌이 나는 표정이었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빈 강의실에 혼자 남았다. “세상의 모든 세모를 변과 각으로만 보는 것은 너무 재미없어요.” J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인간의 언어와 사유는 사물들의 많은 것들을 가리는 덮개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빈 강의실에 앉아 세상에 실존하는 샌드위치, 얼굴, 꽃잎 같은 세모들과 삼각형의 닮음의 조건에 대해 한동안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