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박지연
그 곱던 단풍잎들이 속절없이 바람에 지고 있다.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 끝자락에 비가 오락가락했던 어느 날 길바닥에 아무렇게 뒹구는 낙엽을 밟으며 성한 사람도 마음이 한없이 쓸쓸해지는 발걸음은 저마다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하는 계절이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서 세 들어 살던 60대 독거노인이 집이 팔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유서와 수고할 경찰에게 남긴 국밥 값, 10여만 원, 장례비 100여만 원, 전기료 수도요금 고지서와 이에 해당하는 금액을 남겼다. 모든 돈을 빳빳한 신권으로 챙겨 놓고 이 세상을 달리했다는 뉴스에 우리 마음도 울컥해졌다.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자기를 위해 고생할 경찰들에게 국밥이라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씨가 역력해 더욱 우리의 마음 구석이 더욱 시렸다.
가난한 시절 국밥 한 그릇이면 허기진 온몸을 따뜻하게 녹여주던 국밥이 이제 어느 상가(喪家)에서나 전문점에서 주문하여 문상객들에게 대접하는 식사가 되었다.
깊어가는 초겨울, 요즈음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기에 ‘나는 무엇을 위해, 왜 사느냐?’이라는 질문을 스스로 할 때 이 노인도 희망은 보이지 않고 살기 위해 다시 집을 구해야 하고 외로워 지친 그에게 감당해야 할 절차가 너무 버거워 그나마 자신의 시신을 맡길 분에게 국밥이라도 대접할 수 있을 때 떠난 것은 아닌지, 이 독거노인이 남긴 국밥 한 그릇의 의미가 마음을 자꾸 저리게 한다.
노인들에게 엄습하는 3이고는 빈곤, 질병, 고독이다. 노인층에도 빈곤의 불평등은 더욱 심하다. 절대 빈곤은 7.6%에서 상대 빈곤은 49.2%이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12.4%에 비하면 3배나 높다. 고령사회에 진입한 현재 독거노인이 135만 명이라지만 이 중 가족과 이웃을 단절하고 사는 노인이 46%나 되어 심각하다. 지금처럼 명절이 다가오면 그들의 외로움은 극에 달한다. 이들은 아무리 의료 혜택이 잘 된 한국 사회라 할지라도 병들면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해 그대로 병사하고 마는 사각지대에 놓였다. 얼마를 지나서야 이웃이 발견하는 일이 허다하다.
홀로 사는 노인은 TV가 유일한 친구일 뿐 온종일 말 한마디 주고받을 사람이 없어 입이 메말라 간다. 이는 죽음과 같다. 어디 가나 늙었다고 무시하고 무관심으로 상대해 주지 않는 소외감을 견디는 아픔이 오죽했겠는가. 고립된 공간에서 돈도 가족도 없는 노인들은 날마다 절망하다 죽어간다. 올해도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수가 부지기수(不知其數)다.
어느 노인이 쓴 시 구절에 이런 게 있었다. ‘인정머리 없는 젊은이/ 자네도 곧 늙을 걸세.’ 또 85세 독거노인의 시, 늘 신앙 시를 쓰며 버티시는 분도 있다. 칠십 고개에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노인. 이러한 울부짖음이 곳곳에서 우리를 아프게 한다. 서울에서 매일 노인으로 편입하는 사람이 200명씩 늘어난다.
아직 일할 수 있는 능력이지만 너무 일찍 직업단절을 억지로 시켜 그 능력이 사장됨도 국가적 손실이지만 노인의 대열에서 갈 곳 없이 방황하다 병에 걸리고 좌절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칸트가 인간학을 썼을 때 74세였고 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 성당처럼 수많은 사람이 고령에서 명작과 명곡을 남긴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한강의 기적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1년생이 65세가 되는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되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저고용과 저출산의 딜레마(Dilemma)에 빠진 고민을 해결해야 한다. 우리에겐 젊은이도 노인도 자원으로 고용되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국가의 이상은 복지를 통해 소득재분배의 기능까지 바라보는 게 시대적 욕구이지만 사회는 이대로 따르지 못해 불행한 삶을 지속하는 사람이 많다.
일본은 9월 15일을 ‘경로의 날’로 법정 공휴일로 정하고 오랫동안 사회에 공헌한 노인을 경애하고 장수를 바라는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도 고령 인구의 증가로 고독사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재정 부채는 그리스보다 많은 200%가 넘는다. 일본의 국채는 미국과 달리 90%가 국민이 가지고 있다. 돈을 은행에 맡겨도 저금리에 차라리 집에 보관하는 장롱예금을 선호해 집에 돈을 감추어 둔다. 일본 사람들은 20년 동안 불황기에 놀란 탓인지 어렵게 번 돈을 잘 쓰지 않고 기부도 하지 않은 채 은행에서 찾아 집에 보관하다 그대로 고독사하고 만다.
서랍장이나 쓰레기를 치우는 과정에서 발견한 돈은 지난해만 해도 177억 엔에 달한다. 해마다 고독사가 늘면서 버려진 돈도 늘어나 일본은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의 주인을 찾지 못해 애태운다. 얼마 전에도 거금 2000만 엔 우리 돈으로 2억 원이 넘는 돈이 버려진 폐기물에서 발견했다. 놀라운 일은 이런 일은 흔하다는 것이다.
우리와 일본인의 국민성이 판이함을 발견한다. 사망하기 전에 대비해 미리미리 상속하고 기부하며 나누다 가야 한다는 새삼스러운 교훈을 얻는다.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었지만, 우리의 법은 60년대 노인을 중심으로 한 법이 태반이다. 국가 차원에서 노인 자살 방지대책도 나와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나 닥친다. 사는 모습 못지않게 고운 마무리를 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사는 동안 행복하게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다가 수를 다하여 아름답게 여행을 떠나듯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세상과 이별하는 것이 우리 보통 사람들이 잘 죽는 일(well dying)이라고 소망하지만 어디 죽음의 길을 누가 알겠는가. 다만 느닷없이 아무도 모르게 내가 살아온 세상을 홀로 훌쩍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천재지변에서 희생되는 열악한 환경도 막아야 하지만 우리 사회가 고독사만은 막아야 한다. 국밥 한 그릇을 남기고 떠난 그 고독사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며 오래오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