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황간의 젊은이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만난 김옥근관장님, 내일 시간이 되면 같이 복숭아밭에 가 전지를 좀 해보자 그런다.
고마운 일이다.
내가 복숭아 농사를 하게 되었다 전하고 언제 시간되면 나무상태가 어떤지 함 봐 달라는 이야기를 오래전에 했었다.
근데 그 얘기를 잊지않고 먼저 가보자는 제안을 해 준 것이었다.
하여 오늘 관장님과 같이 복숭아밭을 찾았다. 근데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오늘 날씨가 겁나 춥다^^;;
추위를 무릅쓰고 하여간 얼마간의 전지를 했고, 전지의 기초에 대한 사사를 받았다.
나뭇가지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도록 잘라주어야 한다.
당장 겹치지 않더라도 열매를 달고 바람에 흔들릴 경우 가지와 가지가 닿을 경우 열매가 부실해 질 가능성이 높다.
전지 할때는 느슨하게 하지 말고 최대한 끝 부분을 잘라주어야 한다.
위로 혹은 아래로 자라는 가지를 잘라 주어야 한다.
벌어지는 가지 끝('V'자로 표현하자면 아랫부분)부분에 돋는 눈이나 가지는 제거하는 게 좋다.
위에서 보았을 때 나뭇가지가 겹치는 부분이 없도록 적절히 가지를 골라주는 것, 이게 전지의 기본 메뉴얼이 아닌가 싶다.
열매를 달 때는 가급적 얇은 가지에 달아야 한다.
굵은 가지에는 열매를 달지 말아야 한다.
한뼘 이상의 가지에 두 개의 열매를 달 수 있다.
아직은 눈이 움직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깨여 있음을 느낄 수 없는 메마른 상태 그대로다.
전지 가위로 두꺼운 가지를 자를 때는 가지를 살짝 밀면서 자르는게 효율적이라는 것도 배웠다.
가위질 자체가 만만한 게 아니었고, 전지의 기본적인 매카니즘을 알고 있어도 도장지와 실과지가 무성하게 엮인 곳을 대하니
선뜻 가위가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어 동작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자꾸 부딧쳐 스스로 터득하는 게 최선일 터.....
지금까지 들어본 이야기를 종합해 보건데,
오늘 내게 첫 사사를 해 준 관장님도,
내 친구 안광도도,
그리고 우리 구름마을 이장님도,
복숭아 농사를 시작한 시점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 그래 보인다.
그런데 관장님은 스스로 전지를 하면서 농사를 짖고 있고,
안광도는 아직 직접 전지를 하지 않고 전문가를 사서 전지하고 있다고 했다.
복숭아 농사를 전업농으로 하고 있는 건 관장님이 아니라 사실 안광도라는 생각임에도 둘의 농사방식은 이렇게 다르다.
안광도가 아직 전지를 직접하지 않고 전문가를 쓰는 이유는, 전지를 어찌하느냐에 따라 한해 농사의 성패가 달라진다는
전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할 바에는 전문가를 쓰는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인데....
반면 우리 이장님의 경우 배우면 직접해야 하니까 아예 배우지 않는다는 '게으른 농사꾼'의 철칙에 따른 무관심(?)인 것 같다.
배우면 해야 하고 그럼 골치아프다 는 이장님의 사고는 할수만 있다면 '게으른 농사꾼'이 되고 싶은(?) 내 목표와 일치하지만
그래서 배우지 않는다는 결론은 나와 반대다. 난 일단 배우고 익힌 다음에 할수만 있다면 게으른 농사꾼이 되고 싶은 것이다^^''
방법이 있다면 말이다.
성과에 대한 기대를 비우면 간단한 문제라고들 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게으른 농사꾼의 길은 성과에 대하여도 비우지 않고 갈 수 있는 길,
바로 그 길이 있다면 이라는 전제인 것인데, 이게 도둑놈 심보와 바슷한 것일게다.
그런 면에서 성과에 대한 기대를 비우고 아예 배우지 않는 우리 이장님은 나름 정상적인 사고라 할 수 있을테고
문제는 나, 게으르면서도 성과에 대한 보상은 포기할 수 없다는 도둑놈심보를 버리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게다^^''
ㅎㅎㅎ 내가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일까??
우좌지간에.....
내 주변에서 복숭아농사를 짓고 있는 세 사람의 각기 다른 농사에 관한 철학이 이런 모습인데,
난 관장님의 방식을 우선 따르고 싶다.
근데 하필 골라잡은 날이 너무 추웠다.
겁나 추웠고, 특히나 손이 너무 시렸다^^
이런 날은 그저 따뜻한 아랫목에 배깔고 누워 만화삼매경에 빠져주는게 인생에 대한 예의인데.....ㅠㅠㅠㅠㅠ
일단 나무는 좋아서 열심히만 하면 좋은 농사가 될 것 같다고 하니 기분은 좋다^^
그래 해보는거야. 그럼 되지 뭐, 안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