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견회 4월행사보고
<서오릉 탐방기>
보견회 4월 행사가 지난 4월5일 고양시의 서오릉에서 있었다.
매달 한번씩 정기적으로 문화유적지를 찾아 다니는 보견회 행사는 이제 회원들이 한달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이벤트로 자리잡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금년엔
여지없이 꼭맞는 것 같다. 때아닌 눈이 4월에 오다니-- 그러나 식목일이자 한식날인 5일은 다행히 날
씨가 포근해지고 마치 봄맞이 하러 잔디 깔린 능으로 소풍가는 기분이었다.
해외간 두친구와 업무 때문에 빠진 두 회원을 뺀 나머지 회원 전원이 참석하고 비회원 세명도 참가하여
모두 16명 참가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아침 11시에 녹번역에 모여 서오릉가는 버스를 탔다.
역촌동에 처음으로 집을 사서 살던 옛기억이 새롭다. 그 동네를 지나간다. 서부병원을 지나고--
예전엔 아스팔트가 안된 질퍽거리던 신사동이었는데-- 그 신사동을 지나, 갈현동을 지나--30여분 달
려 서오릉 입구에 도착했다. 서오릉탐방에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점심을 먼저 먹고
1시부터 관람키로 스케쥴을 잡았다. 그래서 해설사도 1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서오릉 부근의 식당들의 공통된 메뉴는 돼지갈비였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법이다.
돼지갈비로 통일했다. 소주8병이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대낮부터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얼굴엔 전혀 술마신 폿대가 없다. 이날 식사는 김원주 회원이 풀 스폰서 했다.
감사감사--
1시정각에 입장하니 여자 해설사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능을 답사하기 전에 개략적인 능과 원
그리고 묘에 대한 설명이 있고 5기의 陵과 2기의 園 그리고 장희빈 墓에 대한 해설을 듣고
明陵을 시작으로 산책을 하였다. 잔디에 앉아 김민효총장이 준비해온 과일을 해설사와 같이
먹으면서 봄야유회 기분을 만끽하였다. 단체사진도 남기고--
장희빈묘에서 해설사와 헤어지고 산책코스를 따라 걷기를 각자 실력대로 하였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매일 산책코스를 도는 분도 많다고 한다. 해설사 설명대로 조선왕릉 중
최고의 명당인 것 같다. 필자에겐 35년만에 찾은 서오릉이다. 느낌이 너무 좋았다.
아래 해설사 설명에 덧붙여 서오릉 설명을 사진과 함께 게시한다. 참가한 동문들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리고 5월(3일)에는 수원성으로 안내할까 한다.오상평동문이 신규회원으로 가입했다.
쌍수로 환영합니다. 아울러 회원가입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저나 김민효님께 연락주시
면 됩니다.
<참가>강순중/고초근/김능태/김문헌/김민효/김수철/김원주/박정륭/박준천/서강조/
오상평/이이춘/최상탁/최문택/문의용/유호길 : 16명
<비용정산>전월이월금 1,376,961원
가입비입금 50,000원 (오상평)
참가회원회비 320,000원(16명)
결산이자 2,877원
비용 -49,200원(커피,차,과일)
현재잔고 1,700,638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의 왕릉
조선왕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6월30일 '세계문화유산'
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왕릉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을 같이 한
공간으로 600여년 전의 제례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세계 유일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조선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기인데 그 중 陵(왕과 왕비의 무덤)이 42기,園(세자와 세자비,왕의 사친)이
13기,墓(그외 왕족의 무덤)가 64기이다. 42기의 陵 가운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태조 원비 신의왕후
의 능)후릉(정종과 정인왕후의 능)을 제외한 40기가 남한에 있으며 북한 2기는 제외하고 세계문화유
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40기중 강원도 영월(단종 릉)1기와 서울 7기를 제외하면 32기가 경기도에 분포
되어 있다. 원래 릉은 10리밖 100리 안에 두기 때문이다.
조선왕릉의 주요 상설(象設)
조선왕릉에는 각 공간적 성격에 부합하는 건축물과 조형물이 왕릉의 조경과 조화를 이루며 조성되어
있다. 왕릉의 들어가면서 크게 세공간으로 구분된다.
먼저 진입공간으로 능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곳으로 재실(齋室)이 있는데 왕릉을 관리
하던 능참봉이 상주하였다. 속세와 성역의 경계역할을 하는 금천교(禁川橋)까지가 진입공간이다.
금천교를 건너면 홍살문(紅箭門)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능이 있는 곳까지 공간을 제향공간이라 한다.
홍살문은 홍문(紅門) 또는 홍전문(紅箭門)이라고도 한다. 붉은 칠을 한 두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살을 박았다. 신성한 구역임을 뜻한다. 홍살문 옆에는 전돌이 깔려 있는데 멀리서 4배를 드리는 배위
(拜位)가 있다.어전에서는 신하들이 왕을 똑바로 보고는 절을 하지 못하고 곡배를 하는데 반해 여기서
는 왕릉을 보면서 직배한다.
정자각까지 가는 길을 참도(參道)라고 하는데 박석을 깔아 놓았으며 왼쪽의 약간 높고 넓은 길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신도(神道)라 하고 오른쪽 길은 어도(御道)로 임금이 다니는 길이다.
참도 왼쪽에는 수라간이 오른쪽에는 수복방이 위치한다.
정자각(丁字閣)은 제향을 올리는 丁字 모양으로 지은 집이다.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
신다. 정자각 오르는 계단길은 우측에는 2개가 좌측에는 한개가 있다. 우측 계단은 신계(神階)와 어계
(御階)가 있는데 신계는 축문을 태우는 길이다.정자각으로 드는 다리는 두개의 돌로 된 다리인데 더
넓은 돌다리가 신교(神橋)인데 술을 드신후 안전하게 들 수 있도록 배려한 설계이다.
정자각 우측 옆쪽에 비각(碑閣)이 있는데 비석이나 신도비를 세워둔 곳이다.
능침공간(陵寢空間)은 왕이 잠들어 있는 능침(능상)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곡장 능침 앞 혼유석 장명
등 문,무인석과 망주석, 석물을 모두 포함되어 있는 무덤공간이다.
능침(陵寢)은 능 주인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능상(陵上)이라고도 한다.
문인석과 무인석이 장명등 좌우에 있으며 문인석은 두손으로 홀을 쥐고 있고, 무인석은 문인석 아래
에서 왕을 호위하는데 두손에는 장검을 짚고 위엄있게 서 있다.
능침은 지대석,난간석과 병풍석으로 둘러쳐저 있고 보통 상석이라 불리는 혼유석이 능침 앞에 자리한
다. 병풍석에는 12지상이 새겨져 있다. 능침 좌우에는 석양과 석호 등 석물이 위치하며 능침 둘레를 담
장이 쳐저 있다. 이를 곡장(曲墻)이라 한다. 예전에는 석물의 크기가 위엄과 권위의 상징으로 실물보
다 훨씬 컸으나 숙종 때부터 왕명으로 실물크기로 축소되었다. 또한 부장품도 대폭 축소되었다.
그러나 고종 때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왕권 강화책으로 다시 석물을 크게 조성 철종의 능부터는 다시
커지게 되엇다.
서오릉(西五陵)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에 위치하며 56만여평에 이르는 명당에 다섯 왕릉이 모여 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쪽에 있는 5개의 능이라 하여 서오릉이란 부른다. 동구릉,서삼릉이 모두 같은 의
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서오릉은 풍수적(風水的)인 길지(吉地)에 왕실의 족분(族墳)을 이룬 것인데, 경
릉(敬陵)·창릉(昌陵)·익릉(翼陵)·명릉(明陵)·홍릉(弘陵)의 5능을 일컫는다. 이곳에는 5능 외에 2원(園)
과 1묘(墓)가 있는데,명종(明宗)의 첫째 아들 순회세자(順懷世子)의 순창원(順昌園)과 사도세자의 생
모 영빈이씨의 무덤인 수경원(綏慶園)이 경내에 위치한다. 그리고 최근 숙종(肅宗)의 후궁 장희빈(張
禧嬪)의 대빈묘(大嬪墓)도 경내에 옮겨 놓았다.
(1) 경릉(敬陵):세조(世祖)의 세자(의경세자) 장(璋:德宗)과 그 비(妃)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 韓氏)
의 능이다. 능제(陵制)는 좌측이 왕, 우측이 비의 동원이강식(同原異岡式)으로 왕우비좌(王右妃左)의
일반 상례와 반대되고 있다. 왕과 왕비자리가 반대로 된 유일한 능이다. 이는 왕비가 생전에 덕종의
추존에 따라 왕비로 책봉되었기에 능제도 왕릉 형식을 갖추었으나, 왕은 당초 세자로 돌아갔으므로
세자묘대로 두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서오릉 가운데 가장 먼저 조성된 능이며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
가 19세의 나이로 단명했는데 그의 둘째아들인 성종이 덕종(德宗)으로 추존하고 쌍릉으로 되었으며
세조가 친히 명당인 이곳을 답사하고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풍수지리적으로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고 한다.
(2) 창릉(昌陵):덕종의 아우인 예종(睿宗)과 그 계비(繼妃)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 韓氏)의 능이다.
왕릉·왕비릉이 동원이강식을 이루고 있고, 그 석물(石物) 배치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전통
적인 예에 따르고 있으며, 석물의 양식상 특이한 것이 있다면 고석(鼓石)의 무늬와 석난간 대석주 주
두양식(石欄干 大石柱 柱頭樣式)이다.
(3) 익릉(翼陵):숙종왕비(肅宗王妃)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 金氏)의 능이다. 능제(陵制)는 기본적
으로《국조오례의》의 제도를 따르면서 부분적으로는 임진왜란 이후의 양식을 좇고 있다.
능표(陵表)는 송시열(宋時烈)이 찬(撰)했고 심익현(沈益顯)이 글씨를 썼다.정자각이 다른 릉에 비해
기둥이 더 늘었고 우람하다.익랑이 달려 있어서 익릉이라고 부른다.
(4) 명릉(明陵):숙종(肅宗)과 계비(繼妃)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와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
(仁元王后 金氏)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이 쌍분(雙墳)으로 조영(造營)되고 인원왕후 능이
우측에 있어 좌측이 숙종의 능과 동원이강의 배치로 된 형식이다. 명릉은 조선의 능제상(陵制上)에
한 시기를 이루었으니 즉 그 제도는 《속오례의 산릉의(續五禮儀山陵儀)》의 골자가 되었고 조선 후기
치장(治葬)의 근간이 된《상례보편 산릉의(喪禮補編山陵儀)》의 기초를 이루었다.
지금은 도로가 관통되어 서오릉 중에 명릉만이 분할되어 있다.
(5) 홍릉(弘陵):영조 원비(英祖元妃)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의 능이다. 영조는 왕후의 택조(宅
兆)를 정하면서 장차 함께 묻히고자 허석(虛石)의 제도를 쓰고 능상석물(陵上石物)은 쌍릉(雙陵)을
예상하여 배치하여 놓고 있다. 영조의 능이 동구릉(東九陵)에 자리잡게 되자 홍릉은 우허릉(右虛陵)으
로 우측이 빈 채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 능은 능상설(陵象設)의 제도와 양식은 기본적으로 명릉(明陵)
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 장명등(長明燈)·석망주(石望柱) 등에 독특한 양식의 변화를 보이고 있고, 난
간석주 주두양식(欄干石柱柱頭樣式)이 특이한 것으로 《속오례의(續五禮儀)와《국조상례보편(國朝喪
禮補編)의 제도가 잘 반영되고 있다.
(6)순창원(順昌園):규모가 왕릉보다 작고 석물도 적다. 순창원은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무덤이
다.순회세자는 명종의 유일한 핏줄로 7세에 세자로 책봉되어 11세에 윤옥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2년후
갑작스런 병으로 13세에 세상을 떠나 이렇다할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다. 임진왜란 직전에 공희빈 윤씨
가 죽어 가묘를 쓰고 선조가 피란을 갔다온 후 가묘를 파보니 윤씨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빈관이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7)수경원(綏慶園):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생모인 영빈 이씨(暎嬪李氏)의 묘이다.
서오릉(西五陵) 내 명릉(明陵)과 익릉(翼陵)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내에 있었으나 1968년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1899년(고 종 36)에 정자각과 비각을 새로 신축하고 비석도 새로 세웠는데 정자각과 비각은 연세대학교 내에 그 대로 남아 있어 비각과 비석이 서로 떨어져 있다. 영빈 이씨(?~1764)는 영조의 후궁 가운데 가장 총애 를 받은 후궁으로 세상을 떠나자 영조는 후궁 가운데 으뜸의 격식으로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명하 였다.
(8)장희빈 대빈묘(大嬪墓): 장희빈(張禧嬪)은 숙종의 빈(嬪)으로, 제20대 왕 경종(景宗)의 어머니이
다.본명은 옥정(玉貞)으로 전하는데 사실여부는 불확실하다.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이다. 1701년(숙종 36년) 인현왕후의 죽음을 기원하는 저주굿을 한 혐
의로 숙종에게 자진을 명 받고 43세때 사망하였다.그녀의 무덤은 경기도 광주 옥포에서 이장하여 이곳
서오릉 경내에 대빈묘로 1960년대에 옮겨졌다. 朝鮮國王 玉山府大婦張氏之墓란 비석이 서 있다.
점심부터 먼저 먹고 탐방스케쥴을 잡았다.
서오릉 주변식당은 돼지갈비 일색이다.
잘묵고 잘살자 건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오후 1시정각에 문화해설사를 만났다.
먼저 길을 건너 명릉부터 --
오늘 탐방순서를 설명하고 있다.
명릉의 정자각과 참도
왕능에는 소나무와 오리나무가 많다. 그 이유는?
소나무는 피톤치드가 많고 독기가 있어 벌레들이 적고 오이나무는 수성이라
물을 많이 흡수,홍수,장마철에 도움이 된다고--
홍살문을 넘어서면 묘역에 들므로 신성시된다.
전돌이 깔려있고 무덤의 왕에게 4배를 드리는 곳으로 배위라 한다.
정자각으로 오르는 계단에도 신계와 어계가 따로 있다.
정자각 안의 제수진설도
신교가 넓다.
신계를 따라 이곳에서 축문을 태운다.
비각
명릉의 전경
홀대를 들고 서 있는 문인석과 망주석
문인석 바깥에 검을 든 무인석이 서 있다.
장명등
망주석과 혼유석의 상계,문인석과 석마의 중계,무인석과 석마의 하계로 구분된다.
검버섯이 많은 문인석/들고 있는 것이 홀대이다.
명릉/숙종능과 인현왕후능
곡장과 석양
윗쪽에 보이는 숙종의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까지 명능에 포함된다.
양지바른 잔디에 앉아 해설사의 설명을 듣다.
과일을 먹으며 휴식타임
정자각 뒤로 왕릉이 보이는 풍경이 한폭의 그림이다.
전원이 다 모여 출석을 부르니 한사람이 오바- 아, 해설사가 끼였군요.
산책길중 소나무길을 택했다.
능 다음으로 원(순창원)을 구경했다.
순창원 홍살문과 안내판
다른 능이나 원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으나 먼저 본 명릉은 자세하게 관찰하도록 개방했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덕종으로 추존)의 경릉 안내판
덕종의 경릉 상설도
경릉의 전경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경릉
장희빈묘인 대빈묘 안내판
대빈묘 전경
대빈묘에는 朝鮮國王 玉山府大婦張氏之墓 라고 쓴 비석이 있고
곡장 앞으로 망주석,장명등과 문인석이 서 있다.
1969년 이곳으로 옮겨온 대빈묘 윗쪽에 바위를 뜷고 나온 소나무가 장희빈의 한으로 표현,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타고나서 유명해졌단다.
대빈묘에서 해설사가 장희빈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
홍릉 정자각과 참도
홍살문 앞 안내판에서
산책길 소나무길을 걷다.
산책길
산책길 구분도/소나무로의 산책 소요시간은 30여분
익릉 옆을 지나오다.
익릉으로부터 거꾸로 산책길을 가도 된다.
익릉 전경
익릉에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단체관람인듯
익릉은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 김씨의 능이다.
익릉의 전체모습
산책길에는 삼림이 우거져 있다.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장조로 추존)의 생모 영빈이씨의 묘인 수경원 안내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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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엉성하게 익힌 역사 공부를 새로이 실제 방문 답사 탐방하고 즐기는 맛 누가 알리오? 우리 회장님 최고-여 김민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