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은 집시 최후의 공주였다고나 할까요. 시집와서도 한동안 왈은 같이 따라온 시종들에 둘러싸여서 살았었대요. 사랑하는 부인이었지만 굴라치 역시도 여전히 왈을 노바라의 공주로 깍듯이 예우했었다고 왈이 말해 주었지요. 일개 롬바로에 불과한 굴라치로서는 집시 세계의 왕이라고도 일컬어지던 노바라 대족장의 딸인 왈을 함부로 생각하지 못했었나 봐요. 굴라치가 죽고 나서도 까삐딴이 후계자로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꿈파니아의 집시들 모두 왈을 존경하고 따랐었지요. 왈은 로마 꿈파니아의 족장이었던 굴라치의 부인이기도 했지만, 멀리까지 알려져 있는 유명한 점술사이기도 했으니까요. 집시 세계에서 점술사의 위치는 옛날엔 족장에 비길 만큼이나 권위를 인정받았던 적도 있었지요.”
“어쨌든 왈이 멀리 이곳까지 온 것을 보면 굴라치를 아주 사랑하셨던가봐.”
리베라가 왈의 결혼에 관한 얘기를 들려 주고 있었을 때 코레오가 말했다.
“왈이 굴라치를 처음 만난 것은 헝가리에서 불가리아로 가기 위하여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산맥을 넘던 때라고 해요. 불가리아나 그리스는 다 노바라 부족의 이동 경로여서 왈의 친척들을 비롯한 많은 노바라 집시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왕래가 잦았다고 했어요.
그 때도 불가리아에 있었던 친척집에 가기 위하여 왈과 대족장의 부인을 실은 캐러밴들이 말을 탄 노바라 무사들의 호위 속에 트란실바니아를 넘고 있었는데, 날씨가 너무 안 좋아 일행의 간격이 좀 벌어진 틈을 타고 산속에 떨어져 살고 있던 일부 칼데라시들의 공격을 받았었데요. 아마 그들은 노바라 대족장의 가족인줄 모르고 그냥 부유한 집시들인 줄만 알았었나 보래요.
자신들이 사로잡은 것이 노바라 대족장의 가족인 것은 뒤늦게 안 집시들은 놀라서 즉시 용서를 구하고는 일행을 칼데라시 족장이 살고 있는 본부 꿈파니아로 모시고 갔었대요.
거기서 칼데라시 족장의 친척이자 로마 꿈파니아 롬바로의 아들인 굴라치를 만나게 된 거죠. 굴라치는 그 때 마침 부모의 고향인 동유럽을 돌고 있었는데 칼데라시 족장의 꿈파니아에 머물고 있다가 우연히 왈을 만나게 된 것이죠. 노바라 대족장의 딸인 아름다운 왈을 만나게 된 것은 굴라치에게는 일생일대의 행운이었죠.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거기서 서로 사랑을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노바라는 그 당시 일대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갖고 있어서 노바라 대족장은 집시의 왕이라 불리고 있었고 왈은 공주나 같은 신분이었죠. 당시에 노바라는 그 일대의 다른 부족들보다 몇 배나 많은, 캐러밴이 무려 200여대에 이르는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으니까요.
집시 세계에서 부와 힘을 나타내는 데는 말이나 황금, 가축의 숫자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기준이 되었던 것은 집시 캐러밴의 숫자였다고 해요.
보통 캐러밴 한대는 한 대가족을 의미했지만, 캐러밴 없이 텐트만 가지고 꿈파니아를 따라 다니는 가난한 집시들도 많았기 때문에 보통 캐러밴 하나에 성인 남자 집시 10명으로 쳤었지요. 따라서 캐러밴 200대는 성인 남자 2000여명, 남녀노소를 따지면 5000여명을 상회하는 어마어마한 세력이었지요.
물론 부족 백성의 숫자로만 보면 칼데라시처럼 더 많은 백성을 거느린 부족도 있었지만 당시에 그만한 세력을 한 사람의 통솔 하에 두었던 것은 유럽의 모든 집시 세계를 통틀어서 노바라 대족장뿐이었지요.
노바라를 이루는 한 비카 (vica; '씨족 또는 가문'을 뜻하는 집시어) 였던 왈의 가문은 노바라의 위세를 광범위한 지역에 떨치며 최초로 나트시아 (natsia; '국가'라는 의미의 집시어) 라고 불릴 만한 광범위한 지역의 집시를 통합한 부족이었지요.
그래서 스스로를 다른 족장들과 구별하여 대족장이라고 부르고 족장의 지위를 세습하기 시작했지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왈의 가문은 집시 세계 최초의 왕족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죠.
원래 그 때까지는 집시 사회에서는 족장의 지위는 종신이었을 뿐, 승계할 수가 없었고 왕을 호칭할 만한 세력도 존재하지 않았었다고 해요.”
“노바라 부족 밑의 일부 비카들은 교역을 위하여 북쪽의 폴란드를 비롯해서 멀리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 발틱해(海) 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서 말을 사고팔기도 하고 약초 등을 거래하며 사람들을 치료해주기도 했고, 또 다른 비카들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여 스페인까지 이르며 구리나 쇠로 생활용품이나 농기구등을 주조하기도, 금은 세공품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또한 점술사로서 사람들의 행운과 건강을 돌봐 주기도 하면서 현지 갓죠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었지요.
노바라는 경제적으로도 집시들 중에서 가장 성공해서 아주 부유했었다고 해요. 노바라는 유럽의 넓은 지역을 이동하고 있는 각 비카들이나 꿈파니아들을 연결하여 갓죠들과의 말장사 등 교역권을 쥐고 있었는데, 항상 수천 마리의 말을 보유하고 또 매년 그만한 숫자의 말을 거래하고 있었지요. 당시에 집시는 물론이고 갓죠들도 좋은 말을 구하기 위해서는 노바라와의 거래가 필수적이었다고 할 만큼이요.
그리고 노바라는 어느 곳이든 한 군데에 오래 정주하지 않고 루트를 따라서 이동하던, 전통적인 유랑집시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한 부족이었죠. 말하자면 집시의 귀족이라고나 할까! 집시사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부족 중의 하나였지요.”
“집시의 공주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왈의 사랑을 얻은 굴라치는 내친김에 용기를 내어 로마로 귀환하기 전 일부러 헝가리에까지 찾아가서 노바라 대족장을 찾아뵈었지요.
친척인 칼데라시 족장의 추천 서신까지 가지고요. 칼데라시 족장의 입장에서도 그 일대의 가장 강력한 세력인 노바라 대족장과 혼인을 맺는 것에 적극적이었을 테니까요.
다행히도 로마와 헝가리를 몇 번이나 오간 굴라치의 구애는 성공을 거두어 노바라 대족장은 부족 내의 일부 반대를 무릅쓰고 노바라 공주를 칼데라시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러서 집시 세계에서 처음 보는 성대한 결혼행렬이 헝가리를 떠나 로마로 향하게 되었대요.”
“아, 그렇게 해서 왈이 이곳까지 오게 된 거로군.”
코레오는 유럽을 넘나들던 노바라 부족의 웅장한 스케일에 감탄하면서 말했다.
‘애야 내가 시집오는 행렬은 정말 근사했었단다’라고 왈은 그 때 일을 말할 때면 늘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는 그 때 모습이 손에 잡히듯이 생생하게 말씀하시곤 했었지요.
굴라치는 헝가리에서부터 함께 출발해서 왈을 시집인 로마까지 데려오기 위해서 꼬박 보름이 걸렸대요.
오는 도중 내내 낮이면 캐러밴으로 이동하고 밤이면 모닥불을 피워 축제를 벌이곤 하면서요.
‘그 때 이태리 국경을 넘어오면서 돌로미티 (Dolomiti; 이태리 동북부의 베네치아 북방에 위치한 오스트리아 또는 슬로베니아로 향하는 길목에 놓여 있는 아름답고도 험준한 산맥) 산을 넘던 일은 내 평생에 잊을 수가 없어. 그렇게 고요하고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그리고 행복한 아침은 내 평생에 없었으니까’하고 왈은 미소를 지으시며 늘 꿈꾸듯이 말하고는 했어요.
“캐러밴의 기분 좋은 흔들림에 나는 잠이 깨었었어. 아직 출발하기엔 이른 새벽인 것 같았는데 은은히 들리는 말방울소리가 어찌된 영문인가, 하고 캐러밴 장식 창문의 커튼을 살며시 열고 다이아몬드 형태의 유리 쪽문으로 내다보았을 때 너무나 아름다운 바깥 광경에 나는 그만 숨이 막힐 것만 같았었지.
마차는 로마로 향하는 먼 길을 재촉하기 위하여 새벽 일찍부터 길을 가고 있었던 거였어. 벌써 여러 날이나 행군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어서 길 인도꾼들의 마음이 급해졌었던 모양이야.
깊은 산속을 지나고 있었는데 발아래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골짜기들과 병풍처럼 둘러선 봉우리들로 너무나도 아름다웠어 내 평생에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아마 처음이었을 거야. 딸랑딸랑 방울을 울리며 가고 있는, 안개에 촉촉이 젖은 말들의 긴 속눈썹마다 동녘에 터오는 여린 햇살이 맺혀 있었어.”
“…….”
“산에서 내려와서 긴 행렬이 인가가 늘어선 마을을 지나기 시작했었는데 그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이 장관을 보려고 몰려나와서 연도에 장사진을 이루곤 했었지.
각종 문양과 조각들로 장식된 8대의 캐러밴이 줄지어 가고 있었는데 한가운데를 가는 혼례용 캐러밴에는 나와 여자 몸종, 그리고 내가 소녀 때부터 켜던 바이올린과 커다란 하프도 한대 싣고 있었지. 그리고 나머지 앞뒤의 캐러밴들은 나의 결혼행렬을 따라온 시종들과 호위대, 그리고 그 가족들이 타고 있었던 거야.
그뿐이었나! 캐러밴과 캐러밴 사이사이로 금은보화 등 여러 가지 혼례물을 가득가득 실은 3대의 짐수레와 여러 가지 재주로 나를 어릴 때부터 즐겁게 해주던 한 쌍의 곰과 그 곰들을 부리는 우루사리 (urusari; '곰 사육사, 곰 조련사'를 뜻하는 집시어) 가 같이 타고 있는 또 한대의 짐수레가 가고 있었지.
그리고 긴 행렬의 앞뒤와 그 사이사이를 호위하는 집시들이 말을 타고 행군하고 있었지. 8대의 캐러밴과 4대의 짐수레를 끄는 말들, 행렬의 앞뒤와 사이사이를 가는 호위대들이 탄 말 등 무쇠같이 튼튼하고 바람처럼 날랜 트란실바니아의 준마만 40여 마리나 되었었지.
그 뒤를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이 긴 줄을 지어서 따르고 있었어.
내가 화려하게 장식된 혼례용 캐러밴의 길고 좁게 난 유리창에 눈을 붙이고 살며시 밖을 내다볼 때마다 연도에 구름처럼 몰려든 마을 사람들이 발뒤꿈치를 올려 까치발을 하곤 했었지. 그 때는 정말 장관이었어! 아마 그 뒤론 집시들의 그런 긴 행렬이 이어지는 광경은 다시 보기 힘들었을 거야, 라고 말씀하시곤 했었지요.”
정말 대단했었겠군. 그 때 일을 머리 속에서 상상하니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 정말 보기 드문 장관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때 연도에 몰려들었던 구경꾼들은 그 때의 대장관이 노바라 대족장 공주의 결혼행렬 이라는 것도 모르고 궁금해 했었겠지?
8 대의 캐러밴이 이동하는데 그렇게 장관을 연출했는데 5000명이 넘는 집시가 200여대의 캐러밴과 수많은 짐수레들, 그리고 수천 마리의 말과 함께 이동하는 장면은 정말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라서 정신이 아찔해지는데.”
코레오는 이미 리베라의 얘기에 흠뻑 빠져들어 있었다.
“후후. 그런 일은 아마 한번도 없었을 거예요.”
“아니, 왜?”
“집시는 좀처럼 부족이 한꺼번에 다 이동하는 법이 없어요. 같은 꿈파니아라고 하지만 모두 다 한꺼번에 모여서 사는 것이 아니고 대족장이 머무는 본영 꿈파니아를 가운데로 두고 그 주위에 수십 개의 작은 꿈파니아로 다시 나눠져 있지요.
큰 것은 수백 명, 작은 것은 불과 일 이십 명의 한 대가족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이동할 때는 젊고 강한 무사들이 많은 선발대 꿈파니아들이 쫙 퍼져서 앞장서서 이동하면 그 뒤를 다시 좀더 큰 규모의 여러 꿈파니아들이 나가고 다음에 대족장이 있는 본영 꿈파니아가, 그리고 그 뒤로 많은 다른 꿈파니아들이 다시 뒤를 에워싸며 부채살처럼 퍼져서 가다가 머물며 다시 서서히 이동하지요. 대개 자신의 세력 크기 여하에 따라서 정해진 이동범위가 있는데 노바라나 칼데라시들이 아닌 작은 부족들은 몇 년 그리고 노바라 같은 강력한 부족은 자기 세력 영역을 한 바퀴 돌기 위해서는 수십 년 이상이 걸리기도 하지요.
그리스에서부터 북쪽으로는 발틱해에 이르기까지 본대에서 떨어져 나간 일부 비카들은 동쪽으로 흑해 연안이나 우크라이나 깊숙이까지, 그리고 서쪽으로는 이태리 북부와 프랑스 남부를 가로질러서 스페인까지 주유하지요. 어떤 비카는 바다건너
영국까지 다녀오기도 한다고 왈이 말해주었어요.
말과 집시의 정교한 수공품들을 필요로 하는 모든 곳이 집시들의 활동무대였지요.
그렇게 광활한 지역을 이동하다가 꿈파니아들끼리 서로 길을 잃거나 또는 위험을 알리거나 해야 할 필요성도 많았었대요. 그래서 집시들은 파트린 (Patrin; 원래의 뜻은 '나뭇잎'이나 '앞에 가는 집시가 뒤에 따라오는 일행이나 다른 집시에게 길을 알리기 위한 길 표시'의 의미로도 쓰임) 으로 수시로 서로 긴밀히 연락을 유지하면서 이동하고는 했었대요.”
코레오는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하며 겪었던 군대의 이동을 떠올리자 리베라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일개 사단 병력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일은 전시라면 혹시 모를까 좀처럼 있기 힘든 일이었다. 크게는 해마다 연대와 연대가 근무지를 서로 바꾸고 또 연대내 에서는 대대, 중대, 소대별로 서로 이동하고 또는 때때로 전입이나 전출을 통하여 서로 간에 구성원을 바꾸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파트린이 서로간의 연락을 맡는 군대에서의 통신이나 암호와도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 틀림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집시들 나름대로 그들만의 일사불란한 조직체계가 있었음을 머리 속에 그릴 수가 있었다.
“모두가 옛날이에요. 이제 집시들에게는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거예요.
못 돌아다니게 정주시킨다며 갓죠들이 집시의 말은 물론, 캐러밴의 수레바퀴까지 다 수탈해 가버렸으니까요.
바퀴 빠진 캐러밴들과 짐수레들은 이미 흙 속에 묻혀서 전부 썩어 버렸을 거예요.
정교한 마구를 입은 채 말발굽을 울리며 달리던 집시의 말들도, 아름다운 문양의 장식들을 뽐내며 집시들을 싣고 이동하던 집시 캐러밴도 이 세상에서 다시는 볼 수 없겠지요.”
한탄하듯 나직이 말하는 리베라의 얼굴에는 아름다웠던 옛날에 대한 슬픔 어린 향수가 배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