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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9 일 토요일 태행산
코스 : 장안대학교 – 서거정 묘 – 삼봉산 – 태행산 – 수원예비군 훈련소 (서해안 고속도로)
누구랑 : 하치윤 님과 함께
산행거리 : 약 15 km 산행시간 : 약 6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355719
거리 15.3 km
소요 시간 7h 57m 12s
이동 시간 6h 6m 55s
휴식 시간 1h 50m 17s
평균 속도 2.5 km/h
최고점 319 m
총 획득고도 343 m
난이도 보통
프로로그
산행기를 영화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좀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 뭐, 어짜피 누구 보여주려 쓰는 것이 아니니 내 스스로 의미를 두고자 한다. 산행 중 치윤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다가 지구의 미래모습은 어떠할지, 아니 과연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인지 의견을 나누었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알파고에 이어 알파제로 이야기가 나왔고 이런 빅데이터를 활용한 로봇이 만들어지면 마침내 기계가 기계를 만들고 그 기계가 인간의 생활을 통제하고 마침내 인간과 서로 간섭하려 하다가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기계가 돌아가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인간이 살아가려면 식량이 필요하다. 기계의 에너지원은 지금 당장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전기에너지이지만 원자력이든 플라즈마든 새로운 에너지원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방사능에 노출되면 위험해지지만 기계는 그런 위험에서 벗어날 수도 있기에 인간보다 우위에 놓일 수 있겠다. 관건은 인간이 로봇을 설계할 때 지금 자신의 적이라고 여겨지는 타종교, 타민족 또는 타인을 살상하는 쪽으로 생각한다면 그 기계는 그런 의식을 일반적인 데이터로 받아들여 스스로 인간을 적으로 삼을 수 있겠다. 이는 영국의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이 사전에 쓴 저서에서 언급한 내용이라고 한다.
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 https://www.yna.co.kr/view/AKR20190108044000005?input=1179m
수원역 앞
치윤님이 예전에 미국에서 이런 소재로 만든 영화가 있었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 온 후 검색을 해 보니 마침 The Fortress 라는 영화가 떠 올랐다. 1992년에 방영된 것인데 줄거리는 위에 얘기한 내용 그대로이다. 즉, 기계가 지구를 지배하면서 인간은 한 가정당 한 명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다. 둘 이상의 아기를 가지려면 외계행성으로 이민을 가야 한다. 주인공 존 브레닉( John Brennick )과 두번째 아이를 임신한 아내 캐런은 외계행성으로 가려다 임신사실이 탄로나면서 사막 한 가운데 지하 33층으로 건설된 감옥 Fortress에 수감된다. 개조된 인간들이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경영하는 그 곳은 이제까지 탈출 제로의 완벽한 감옥이다. 전직 특수전투부대 대령이었던 브레닉은 용맹한 정신과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체력 그리고 전우애 등 대부분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이 갖추고 있는 역량을 발휘하여 마침내 캐런과 함께 포트리스로부터 탈불한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외계인의 침공을 온 몸으로 막아낸다는 미국인 우월주의에서 벗어난 일반적인 의문을 던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산행기
수원역에서 9시에 치윤을 만났다. 우리가 들머리로 삼은 장안대학교까지 가는 버스를 알아보고 타는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점심에 라면을 끓이려 치윤이 버너와 코펠을 준비했는데 연료로 쓰는 가스를 못샀다며 역에서 가까운 시장을 다녀오고 또 버스타는 시간까지 약 1시간 정도 소요되어 오전 10시 경 장안대학교 후문에 내려 산행을 시작했다.
장안대학교
솔직히 태행산이라는 산이름도 생소할 뿐 더러 태행지맥처럼 아직 대간을 마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작정하고 지맥을 탄다는 것이 내 자신에게도 낯선 산행이다. 해발고도가 300 미터도 채 안되는 그야말로 동네 야산이다 보니 그런 만큼 부담도 없다. 산악회에서 계획한 산들 면모를 보면 대부분 눈이나 상고대가 피어 있는 겨울산행지인데 근래 들어 눈다운 눈도 안오고 기온도 높아 어짜피 기대할 일도 아니었기에 딱히 갈만한 곳도 없는데 치윤님이 태행지맥을 제안하기에 선뜻 따랐다.
서거정 (徐居正 1420~1488)
산행을 장안대학교 인문대학 뒷편으로 돌계단에서 시작했다. 산이 낮은데다 도심에 가깝다 보니 수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려 산길이 선명하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43번 국도를 만나는데 그 국도에 인접하여 제법 크게 조성된 무덤군이 나타난다. 서거정 조선시대 세종부터 성종까지 6대의 왕 밑에서 승정원 등 고위직 벼슬을 받았던 관료이다.
서거정 초상
사망한 지 500 년이 넘은 무덤인데 주변에 자라난 소나무를 보면 많아야 50년도 안돼 보인다. 제일 위에 담장을 두르고 문인과 무인 석상이 서 있는 것이 사가정(四佳亭) 서거정의 무덤이고 그 아래로 그의 후손들 무덤이 자리잡고 있었다. 무덤 아래에는 제실(齊室)이 지어져 있는데 건물의 상태를 보면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서거정의 묘는 원래 강동구 방이동에 있었는데 1975년 택지개발로 인해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여섯 임금을 섬기면서 수 많은 저서를 남기고 또 많은 제자를 길러 낸 훌륭한 학자인 서거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가 만년에 기거했던 용마산 아래에 그의 이름을 딴 서거정 공원을 조성하고 그의 호를 따서 사가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한다. 또한 이곳을 지나는 7호선 전철역 이름을 그의 사가정역이라 하였다.
서거정 무덤
43번 도로를 지하 터널을 통해 지나고 다시 들머리를 찾아 공장 지대를 지나 산으로 오르기 전 나이 지긋한 여자 한 분이 도로쪽으로 내려가다가 우리의 산행 복장을 보고 가던 길을 되돌아서 말을 붙여 온다. 길 옆에 컨테이너 박스를 가리키며 자신이 이곳에서 옷도 만들고 춤도 가르치는데 나중에 좋은 일 있으면 연락할테니 연락처를 달라고 한다. 억양이 일반적인 서울말씨와 다름을 알아채고 치윤님이 연변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자신의 어머니가 북한사람이라면서 본인도 탈북민이라는 것을 애둘러 말한다. 60이 넘었다는 그는 어쩌면 북에서는 일상화되어 있는 댄스를 가르치는 일로 생업을 삼는가 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도 참 다양하다. 컨테이너 안을 보여주는데 제법 널찍한 공간이 정돈되지 않은채 일반 살림하는 집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서거정 제당
본격적인 태행지맥 산길에 접속하려 낙엽 쌓인 잡목숲을 오르는데 왼쪽으로 길게 철조망이 쳐져 있다. 개인소유의 땅임을 표시하기 위해 무척 길게 철조망을 이어 놓았는데 그 철조망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미관상 좋지 않은데다 밤에 오르내리는 사람이 있다면 다칠 위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능선에 올라 선 이후부터의 산길은 대체로 편안한 흙길이다. 치윤님의 말을 빌자면 지맥길 중에서 최고로 양호한 상태라고 한다. 오르막 내리막 경사가 완만하고 그리 크지 않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길가에 제법 조밀하게 자라고 있어 여름날에는 좋은 그늘을 만들어 줄 것 같다.
삼봉산 제1봉
얼마쯤 가자 육각 정자가 높이 솟아 있다. 쇠로 된 H 빔을 여러 개 단단하게 받치고 그 위에 나무로 된 정자를 지어 놓았다. 제1삼봉산이라 한다. 삼봉산이라면 세 걔의 봉우리가 연이어 붙어 있을 법 한데 주변에는 이렇다 할 봉우리가 안 보인다. 어쩌면 동네사람들이 그저 부르기 쉽게 붙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오랜 가뭄으로 낙엽과 흙에서 먼지가 폴폴 일어난다. 비탈길에는 산악 오토바이를 탄 흔적인듯 산길이 깊이 파여 있다. 그런 길에는 작은 모래알 같은 돌가루에 자칫 미끄러져 넘어질 수도 있겠으나 양손으로 스틱을 짚고 가니 두 다리가 든든하다.
삼봉산 (삼봉산 270.5 m )
오후 1시가 넘었는데도 배가 그리 고프지 않다. 중간에 간식으로 빵과 커피 그리고 과일로 요기를 한 덕분이다.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이 주변에서 제일 높다는 건달산 (328 미터) 봉우리가 희뿌연 미세먼지 너머로 희미하게 보인다. 산행기를 보니 화성시의 건달산악회 이름으로 정상석이 세워져 있던데 혹시 화성의 건달들이 산악회를 만들고 자신들이 즐겨 찾는 이 산의 이름을 산악회 이름으로 쓴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의심해 본다. 함께 걷던 치윤님이 전에 목포쪽 호남정맥을 탈 때 이와 비슷한 사례를 겪어 본의 아니게 일반 산악회의 불순한 의도에 놀아난 꼴이 되어 그 이후에는 산행기를 쓸 때 산이름에 대한 검증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건달산이라는 산이름이 언제부터 무슨 사연으로 그리 불렸는지 궁금해진다.
건달산이 실루엣으로 비쳐진다
해가 구름사이로 숨바꼭질한다. 쉬는 동안 고어텍스 겉옷까지 겹쳐 있었더니 오르막에는 땀이 흥건하게 배일 만큼 날이 포근하다. 양지바른 산길에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한참 올라가니 그 끄트머리에 산객이 소나무 밑에 앉아서 식사중이다. 옆에 있는 소나무에서 떨어진 듯 바닥에는 삼봉산 270.5 미터라는 비닐 표시판이 떨어져 있다. 이 봉우리가 말하자면 제2삼봉산쯤 되는 모양이다. 오늘 산행중 처음으로 조망이 트인다. 우리가 들머리로 삼았던 장안대학이 까마득히 보이고 올라 오면서 왼쪽 옆 나무사이로 따라다니던 건달산이 가까이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방향으로 낮은 산들이 굽이굽이 펼쳐지는데 어느게 태행산인지 구분할 수 없다.
자신이 이 동네 산악회 부회장이라고 소개한 그 산꾼은 태행산까지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한다. 오후 1시 30분쯤 되었으니 점심을 먹기에는 꼭 맞는 시간이다. 한시간 정도 더 가서 점심을 차려 먹으면 중간에 시장할 것 같기에 우리는 그 산꾼 옆에 자리를 폈다. 그 사람은 이미 라면을 끓여서 거의 다 먹은 상태다. 막걸리도 한 병을 비우고 나무에 걸어 놓은 오디오에서는 신나는 팝송이 연이어 흘러나온다. 치윤님은 준비도 꼼꼼하게 잘 해 왔다. 라면에 넣을 손만두에 김치까지 그리고 1회용 숟가락과 나무젓가락을 준비해 왔다. 구름 밖으로 나온 해가 봄기운을 내리 쬔다. 아직 대한 하루 전인데 올겨울 초 반짝 추위가 있고 난 뒤로는 그럴싸한 추위도 없었고 눈도 내리지 않았다. 이대로 봄이 되려나.
삼봉산에서 바라본 지나온길
삼봉산 정상에 있는 소나무
옆집 산꾼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먹는 라면 맛이 일품이다. 이제 62세라는 58년 개띠 산꾼은 내가 건넨 빵과 사과를 받고 믹스커피를 대접한다. 백두대간을 오래 전에 마쳤다는 그는 산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매주 주말마다 이 태행산을 한 바퀴 돈다고 한다. 또래 친구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함산을 피하고 어쩌다 보니 혼산을 즐겨 하게 되었다 한다. 옆에서 치윤님이 한 수 거든다. 늙어서 자리에 누워 병수발을 받느니 이렇게 열심히 산에 다니는 것이 좋지 않겠냐 한다. 주변에는 80 넘은 산꾼도 가끔씩 보인다는 말에 마치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겠다는 듯 감정이 이입된다. 옆지기 산꾼은 자기가 암에 걸리면 수술받지 않고 차라리 이렇게 산에 다니면서 몸에 좋은 것을 찾아 먹으며 살겠다고 한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대화 내용도 변해가는가 보다. 누군들 건강을 자신하랴만 유한한 존재이면서 길면 십수 년 짧으면 수 년 남보다 더 산다고 그게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나. 짧은 세월이라도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고 하루 하루 의미를 찾아가면서 사는 것이 어찌 보면 더 나은 인생이리라.
태행산 ( 294 m)
태행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삼봉산에서 내려서는 짧은 급경사를 제외하고는 또 다시 평이산 오솔길이다. 우리 둘 다 초행길이라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어떤 모습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나온 길의 순탄함에 조금은 지루해진다. 지맥이라 하더라도 한북지맥이나 낙동지맥처럼 빼어난 산군이 펼쳐지는 그런 풍경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곳은 말 그대로 동네산이다. 태행산에 이르기 조금 전에 “오두지맥”으로 갈라지는 헬기장을 지난다. 눈 앞에 새로 만든 나무데크 계단이 나타나고 그 길은 곧 바로 태행산 전망데크로 이어진다. 주변에 나무를 자르고 키작은 영산홍을 심어 시원한 조망을 선사한다. 그러나 영산홍 군락은 바랭이와 방동사니 등 흙에 묻어온 풀로 뒤덮여 있다. 겨울에야 풀이 다 죽어 영산홍이 이길것처럼 보이지만 한 여름 풀이 무성하게 자라면 영산홍은 자칫 질식사할 듯 불안해 보인다.
태행산으로 오르는 나무데크 계단길
태행산에 오르기 전부터 산정으로부터 연달아 ‘야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옛날에는 누구나 산에 오르면 저렇게 소리지르는 것이 유행이었으나 언제부턴가 주변 동물이 놀란다는 명분아래 소리치는 것을 암암리에 금지하고 있는데 누군가 산에 오른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고 가슴을 열었나 보다. 산정상으로 오르는 짧은 구간에는 야자수나무 껍질로 엮어 놓은 매트가 깔려 있다. 이렇게 비탈진 흙길에는 특히 봄철 얼음이 녹을 때는 아주 유용하다.
전망데크에서 야호를 외치던 여인은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였다. 산 아래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신다는데 아주 오랜만에 산에 올라오니 가슴이 탁 트인다며 맘껏 소리를 지르신다. 올해 일흔 넷이라는데 자그마한 키에 쭈그러진 얼굴 주름에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다. 아들 딸 하나씩 두었는데 이제 쇤을 넘긴 아들은 사업한다고 재산을 다 말아먹고 부모에게 사정해서 조금 보태주었지만 아직까지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지키고 있다고 한다. 딸은 학교 선생님인데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논과 비닐 하우스 등 적지 않은 농사채를 갖고 있지만 이제는 힘이 딸려서 대부분 남한테 빌려주고 도지를 받는다고 한다. 손수 만든 떡을 내놓으며 먹어 보라고 한다. 내가 두 개 집어먹고 치윤님이 배가 불러서 못 먹겠다고 하니 남은 떡을 비닐 종이에 싸서 건네준다. 산에서 만나는 소박한 마음이 산객을 즐겁게 한다.
태행산 정상에서 만난 할머니가 마을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전망데크는 약 대여섯 평 정도 되는 꽨 넓은 공간인데 사방이 탁 트여 있어 발안과 화성 일대가 훤히 보인다. 우리가 들머리로 삼았던 장안대학교도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이면 평택의 서해대교도 보인다는데 오늘은 미세먼지가 공기중에 가득하여 가까운 마을만 보인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으로는 산 아래 큰 군부대가 위치하고 산길에는 사격장에서 날아오는 유탄이나 불발탄으로 인해 위험하니 통행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을 적어 놓았다.
산길에 세워진 경고문구
이런 경고 문구가 적혀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금지구역에는 그동안 숱하게 드나들었던 산꾼들로 인해 산길이 뚜력하게 나 있었다. 저 아래 보이는 군부대 (나중에 알고 보니 예비군 훈련장)에서 쏘는 사격장의 유탄이 날아들어 자칫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토요일인데다 휸련이 없는 날이라서 그런지 산길이 조용하다. 시야가 트여 있는 능선 바위에는 빨간 깃발을 단 기둥이 세워져 있다. 아마 훈련중일 때는 이 깃발을 펼쳐서 사람들의 접근을 경계하려는 의도인 듯하다. 이제 날이 점점 저물어 가는 시간이다. 태행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자 길이 갈라진다. 뚜렷한 산길은 직진인데 치윤님이 다운로드한 맵은 이미 우리가 정맥길에서 벗어났슴을 표시하고 있었다. 지맥길은 정상에서 데크계단을 내려가야 하는가 보다. 다시 돌아가는 것이 귀챦은데다 군부대로 향하는 산길을 가 보고 싶었다. 둘이서 합의만 하면 된다.
소나무가 자라는 산길
산길이 닿은 곳은 규모가 꽤 큰 군 훈련장이었다. 깊은 계곡 끝에 사격장이 있고 각종 훈련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훈련장이 없었다면 다랭이논이 층층으로 펼쳐져 있었을 법하다. 한 번 시작된 반목은 서로에게 또 다른 불신을 낳고 상대방의 작은 움직임도 큰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지난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남과 북은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없이 국민들에게는 상대방의 위협만을 강조하여 내부결속을 강화해 왔다. 조금만 긴장이 풀어지면 곧 적군이 쳐들어올 것처럼 선동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군사훈련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훈련시설을 지나치면서 “이런 데다 어린 애들을 데려다 놓으면 잘 놀겠다”고 치윤님이 웃으면서 한 마디 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아이들에게 장난감 총을 쥐어주면 아무런 선입감 없이 하루 종일 놀면서 지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렸을 때 북에서는 유치원때부터 군사훈련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게 얼마나 사실을 포함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구가 남한의 절반 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얼마 안있다가 소위 탁아소에 맡겨지고 부모는 아침 저녁으로만 아이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집에서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밥공장에서 집단으로 밥을 먹고 하루 종일 일한다음 저녁에 퇴근하면서 아이를 탁아소에서 찾아온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공산주의에 관한 교육은 우리에게 도깨비탈을 쓴 붉은색 인간을 그리게 했다. 그리고 북한주민들에게는 남한이 미국을 위시로 한 서방국가들의 착취로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모습으로 비춰졌다고 한다.
훈련장에서 바라본 태행산
늦은감이 있지만, 그리고 그 많은 것이 외부환경의 변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것이라고 하지만 남북이 서로를 이해하고 좀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그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든 여정이 될 것이다. 지금 남한에서도 존재하는 여러가지 갈등의 양상이 앞으로 남북간에는 더 극명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라도 빨리 남북 정권이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고 서로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쳐서 머지않은 날에 서로 왕래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이 이뤄지면 좋겠다.
산너머로 기울기 시작한 해는 빠른 속도로 내려간다. 오후 4시 30분 이제 태행지맥 산길에서 멀어진 간격을 줄여서 이어가야 한다. 해가 지는 일몰시간까지 약 1시간 남짓 남았다. 왼쪽으로 난 임도를 탔으나 그 임도는 금방 다시 예비군 훈련소로 내려갔다. 왼쪽으로 난 아스팔트 포도를 따라 얕은 고개를 넘는다. 고개 양쪽은 아주 높은 절개지다. 태행지맥이 이 도로로 인해 귾어진 것이다. 이어지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여곡절끝에 도로에서 벗어나 급한 경사길을 올라 선행자가 걸어 놓은 표지기(시그널)를 찾았다. ‘무한도전클럽’이라 쓰여진 표지기가 일관성있게 연결되어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잠시 지맥길에서 벗어나 한참 내려가다가 ‘알바’임을 깨닫고 다시 복귀했다. 지맥을 타면서 이렇게 ‘알바’하는 일이 다반사라면서 치윤님이 의젓하게 가르쳐준다. 치윤님은 이미 백두대간을 오래전에 마치고 정맥도 상당히 많이 탔다고 한다. 여우꼬리만큼 남아 있던 햇볓이 쥐꼬리만큼 작아지다가 산숲너머로 떨어지고 나니 날은 금방 어둑해진다. 그리고 우리의 산길도 차소리를 들으며 점점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태행지맥은 39번 국도에 마추치면서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주말 나들이 다녀오는 차들이 전조등을 환하게 비치며 귀소본능에 이끌려 가속패달을 밟는 듯 요란한 소음을 내며 질주한다.
어두워진 산길에서 표지기는 훌륭한 산안내자이다.
서해안고속도로 밑으로 난 작은 터널을 통해 마을로 들어섰다. 하지만 이곳은 마을이 아니라 작은 도시를 연결하는 지방도로였다. 바로 눈 앞으로 지나가는 버스를 놓치고 다음 버스는 어느쪽에서 언제 올 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이다. 주유소에 들러 물을 얻어 마시고 다시 지나가는 차를 세워 타고 가려하였으나 부질없는 짓이다. 점점 인심이 각박해져가는 세상에 이 어두운 시골길에서 등산복차림을 한 두 젊은이를 누가 감히 태워주겠나. 콜택시를 불렀으나 잡히지 않는다. 결국 다행히도 예비군 훈련장으로 복귀하는 사람이 타고 온 택시를 잡아 타고 수원과 병점 중간에 있는 세류역에 내렸다.
39번 국도
오전 9시에 수원역에서 치윤님을 만나고 하루 종일 미세먼지와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걸었던 산행을 약 9시간만에 마치고 목에 낀 먼지를 씻어내려 삼겹살집을 찾았다. 긴 산행이었지만 몸은 그리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이제 시작된 목감기가 조금 더 심해졌다. 보통 산행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흔하지 않은 일이다. 오늘 걸었던 산이 도심에서 멀지 않은 낮은 산이어서 그런건지 두 명의 산객을 만나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산에서 나고 산을 즐기며 살다가 모두 산으로 돌아갈 사람들이다.
첫댓글 사가정은 서거정의 하나의 호였었네요 등산복 차림의 두 젊은이? ㅎ 솥뚜껑이 맛있었던 것 같아요 집 근처에 그런 집 하나 있음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