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안순희
연두빛 새싹일 때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중고등학교까지 꼬박 12년을 배워야 대학에서 자신이 원하는 전문 지식을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과정을 마치면 공부는 끝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기필코 대학에 가 보겠다는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공부를 다하면 세상을 위해 크게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는 막연한 참 미련한 환상에 붇들려 현실이 늘 절망스럽고 우울했던 그런 때가 있었다. 나이 60 이넘어 그 바라던 기회가 와서 드디어 중학생이 되던 날 나는 10대 소녀인 양 설렜다. 입학식장에 모인 다양한 연령대의 신입생들을 보면서 우리 또래들이 겪어온 시대적 아픔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한편 크게 위로가 되었다.
모심다, 콩밭 매다, 오후 4시가 되어 책가방 매고 길을 나서면 길가의 풀꽃들도 덩달아 술렁이는 듯 신나고 행복했다. 꿈처럼 지나가버린 중고등학교 4년은 내 이름을 확인받았고 나를 위해 열정을 쏟을 수 있었던 내 인생 최고의 시기였다. 이미 일선에서 은퇴할 나이에 세상의 어떤 목적을 이루려는 부담이 없었기에 오롯이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만이 공부가 아님도 깨닫게 되었다.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이치도 보이기 시작했다. 무가치 한 것 같았던 내 삶의 흔적들이 강가의 조약돌처럼 반짝거렸다 .파도에 씻기고 닳아 예쁘게 빛나는 작은 조약돌들, 스쳐간 많은 날들이 그와 같이 빛나고 있었다.
공부는 학교라는 틀 안에서 정한 과정들을 거쳐야만 되는 줄 알았기에 만학도란 이름이 자랑스러웠다. 서둘러 출발해도 지각하는 날이 더 많았다. 책상 앞에 앉으면 지쳐서 꾸벅거리기도 했다. 들으면서 잊어버리는 기억력으로 하나라도 더 담아오려고 불빛아래 눈 비비던 그 4년은 눈물나는 추억이다. 무엇이 남았는지 묻는다면 중고등학교 과정이 어떤것인지 무엇을 가르치는지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고등수학 함수와 미적분도 배우고 과학시간 수많은 천채에 대한 공부를 할 때는 흔히 듣던 삼천대천 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세계사에서 만났던 중세 유럽의 이야기는 본듯이 선연했다. 꿈에 그리던 문학시간엔 이청준의 <눈길>을 읽으며 펑펑 울었던 기억은 지금도 여운이 남아있다. 제주도 수학여행길엔 어린 학생들이 저마다 만든 할아버지 할머니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기행문으로 <가면놀이>라는 시를 써서 으뜸상을 타 보기도 했다. 되돌아 보니 남아있는 것들이 꽤나 많은것 같다. "살기도 바쁜데 웬 공부냐"며 나이먹은 여자가 망령 났다는 주위의 비난을 감당하며 이룬 보람이기에 더욱 뿌듯하다.
늘 목말랐던 배움에 대한 갈망이 아직 남아 있어 학교 가던 길을 되짚어 영산강 하구둑을 건넌다.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 일상의 글쓰기 반, 그곳에 가면 내 청춘과 만날 수 있어 아름답고 내 꿈을 갈무리할 수 있어 행복하다. 재 때에 배우지 못해 몰랐던 것들을 알아 가는 기쁨이 커서, 듣고 금방 잊어버리는 답답함과 부끄러움에 비할 바가 아니기에 낯뜨거운 경우들을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다. 젊을때는 한 생이 긴 줄 알았기에 이 다음을 기약했었다. 그렇게 미루어 둔 꿈이 너무 많아 남은 시간이 짧을 것 같아 안타깝다. 내게 시간이 허락된다면 우리 농촌의 변천사와 함께했던 어느 농부의 인생 이야기를 꼭 글로 남기고 싶다. 아프고 또 기뻤던 순간들을 묻어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 무모한 꿈을 꾼다. 어쪄면 내 생의 마지막 꿈일 수 있는 그 일을 이루려면 아마 내 늦은 공부는 계속 될 것이다.
꼭 배우고 싶었던 국어 문법 맞춤법 등은 언제 배워 보기는 한 건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렇듯 직접 내가 쓰려고 드니 가물거릴 뿐 활용 할 수 없는 책 속에 갇힌 지식이었다.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또 공부를 해야겠기에 찾은 글쓰기 교실, 처음 올린 내 글은 고친 흔적 때문에 알아볼 수가 없었다. 순간 당황스럽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편 길이 보였다. 여기서 끝장을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교수님은 칼같이 호된 말씀도 하시지만 정말 큰 사랑으로 이끌어 주셨다. 글쓰기 반에까지 와서 기초를 몰라 헤매는 시골 할머니가 딱하면서 안스러워 보였던지 일일이 고쳐 주고 격려해 주었다. "내가 전문가인데 안순희씨는 글 쓰는 감각이 있으니 열심히 쓰세요" 라고 하신 말씀에 나는 또 철없는 아이가 되었다. 평교원에 오면 배우려는 열정이 있어 당신도 힘이 난다는 이훈 교수님의 강의 시간은 꾸벅거릴 틈이 없다.
누가 시켜서 했다면 이렇게 공부가 즐겁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공부는 때와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왕 목표가 있는 길이니 열심히 가 보려 한다. 우선은 내 글에 고칠곳이 없을 때까지 써 볼 것이다. 그런다음 이청준 처럼 감동을 주는 글을 단 한 편 이라도 쓸 수 있다면 그래도 내 인생에 작은 흔적 하나는 남지 않을까? 이렇게 턱없는 꿈을 꾸는 내가 한글 사랑의 화신인 교수님을 만난 것은 가장 큰 행운이다. 글쓰기 반에서 만난 아름다운 분들과의 귀한 인연 또한 다시 못 만날 행운이다. 이 모두가 늦은 공부가 맺어준 인연이니 숨 쉬는 동안은 공부를 하고싶다. 끊임없는 열정으로 꿈을 향해 갈 수 있는 그 자채가 그냥 즐거움이다 .이 길의 끝이 어디이든 순간마다 열심히 가 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