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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흥 병
대경상록아카데미 수필창작반 회원
볼트 와 너트
일반사무직에 종사하다가 정년을 맞이하는 직장인으로서는 퇴직 후 무엇을 어떻게 하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해야만 보람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고민만 하다가 현실에 부딪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퇴직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각종 홍보물을 뒤적이다 “H”대학 학생모집 안내홍보물을 우연히 보는 순간 여기가 내가 퇴직 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학교에 전화를 걸어 이순(耳順)이 된 나이에도 입학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면접을 통해 합격여부를 결정 된다는 것이다.
일정 서류를 제출한 후 지정된 날짜에 면접을 보고 자동차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2월말 퇴직을 하고 3월 2일 부터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이제 직장인에서 학생신분으로 돌아간 것이다. “H" 대학은 지역산업 활동에 필요한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고 근로자 경쟁력을 개발해 주는 공공직업훈련기관이다. 모든 학생들에게 훈련수당을 지원해주고 중식과 통학차량 뿐만 아니라 희망하는 학생에겐 기숙사까지도 제공해 주고 있으며 산업 활동에 필요한 기능인 양성을 위해 컴퓨터응용기계과, 자동화시스템과, 전자제어과, 스마트전자과, 자동차학과등 5개 학과가 개설되어 매년 입학생을 맞이하고 있다.
약10개월간의 수료가 끝나면 전체 학생 중 8~90%는 취업을 통해 자기 꿈을 키워가고 있기도 하는 이곳에 은퇴자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준 학교 측에 감사를 드리고 당분간 삼식(三食)이 생활을 면할 수 있어서 기쁨이 배가되는 기분이다. 자동차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승용차는 21세기 들어 눈부신 과학발전과 더불어 경제적 가치와 문화적 활동에서 필수불가결한 도구이지만 그저 교통수단으로만 여겨져 왔기 때문에 비상시 응급처치요령과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다.
지구촌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자동차는 3만여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러 가지 과학 분야의 첨단기술이 응집되어있는 눈부신 기술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자동차는 각종 융합기술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이해해야하는 공학이므로 그저 쉽게만 여겨져졌던 것이 배울수록 어려움의 연속이다. 매일 기름때 묻은 장갑을 끼고 타이어를 탈. 부착하고 각종 부품의 기능과 명칭을 숙지해야하고 반복되는 분해와 조립 그리고 전기전자시스템의 이해를 위한 납땜질은 물론 자동차 미관과 광택을 위해서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하는 도장(塗裝)과 조색(調色)작업, 차체안정을 위한 용접(鎔接)도 하고 때로는 선반(旋盤)이나 밀링실습도 하였다.
함께 수업을 받는 구성원을 보면 고등학생(19세)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2~30대), 창업을 준비하는 중. 장년(4~50대)등 다양한 연령층을 이루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최고령인 나로서는 항상 큰삼촌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학생들을 포함한 다양한 연령층과 함께 하루8시간을 보내야하는 과정 속에서 세대 간의 갈등과 익숙지 않은 학습 분위기 때문에 스트레스 게이지가 상사점에 도달하여 감내하기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끝까지 가보자고 조력을 해준 40대의 친구가 있었기에 지낼 수 있었으며, 하루 수업을 마친 후 소주한잔으로 스트레스를 풀며 또 다른 세상의 이치를 느끼며 지내왔다.
수업도중 가장 창피했던 순간은 3월 첫째 주에 자동차 공구의 명칭과 용도에 대하여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공구를 분류해 보면 수공구, 에어공구, 전동공구, 유압공구, 특수 공구 등이 있다. 그중 수공구를 정리 정돈하면서 “ 볼트 와 너트”라는 것이 있었다. 흔히 나사(螺絲)라고만 알고 있었던 터라 너트가 어떤 것이냐며 질문을 하였더니 교수님께서 다소 실망스런 눈빛으로 어찌 볼트와 너트도 모르냐면서 그 기능에 대하여 말씀해 주는 순간 옆에 있는 학생들조차 다소 무시하는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 순간 공개적으로 괜한 질문 한 것에 대하여 창피하고 자괴감에 사로잡혔든 것이 잊히지 않는다. 입학할 당시에는 지금까지의 생활은 잊고 즐겁게 지내다 가리라는 방하착(放下着)을 결심 하였건만 순간순간 초심을 잃을 때가 있다.
볼트와 너트는 어떠한 매체를 고정시켜주는 중요한 부품으로 서로가 조합을 이루어져야만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으며 잘못 하거나 대충 연결해 놓으면 바로 고장으로 이어져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이 부품은 자연의 이치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어 삼라만상이 창조되는 대자연의 섭리를 잘 알려주는 듯하다. 하나의 기술이 보편적인 가치를 이루고 기술이 경쟁력인 사회를 보면서 약 10개월간의 인고(忍苦) 끝에 자동차정비기능사 국가기술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고 새로운 경험과 도전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낀다.
오우가(五友歌)
다섯 명의 친구가 있다. 친구와의 만남은 소중해야하고 아름다운 인연으로 이어져야한다. 만남과 인연으로 맺어진 5명의 절친(切親)은 신문, 스마트폰, 세트 드럼 그리고 산과 술이다. 이들 친구 중 4명은 오래전부터 만나 인연을 쌓아 오고 있지만 스마트폰은 최근에 알고 지내는 친구이다.
이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일선에서 퇴직한 후 적적한 일상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길동무를 찾다가 나만의 방식으로 평생 함께 할 친구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절친(切親)의 조건은 매일 만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꼭 만나야 된다는 것이다. 조건에는 조건이 성취되면 당연히 효력이 발생하는 것과 반대로 조건이 성취되면 해제되는 것이 있지만 해제조건을 부여하지 않는 일방적인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도 항상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내 삶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준데 대하여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오늘도 조건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욱 고마운 것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내 마음 되로 고집을 피워도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으므로 언제나 이 친구들을 신나게 부른다.
첫째, 신문이다.
이른 아침 현관문을 열면 일주일에 여섯 번은 그 자리에 놓여 있다. 누군가가 신문을 잘 차려진 밥상 이라했다. 32첩 반상(飯床)에 수저만 들고 맛있게 먹으면 된다. 요즘은 더욱 맛있게 먹고 있으며 하나하나 챙겨보는 정독(精讀)하는 버릇 까지 생겼다. 이 버릇은 시간과 비례하는가 보다. 또 신문을 보는 방식이 예전에는 첫 장 부터 봐왔으나 시시콜콜한 정치적인 내용은 식상한 측면 때문에 뒷장부터 앞장을 넘겨 가며 보면서 칼럼이나 시평(時評)등의 찬거리에 양념을 가미해 가며 친분을 쌓아간다.
둘째, 스마트폰이다.
5명의 친구 중 내 손안에 놀고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다. 이 친구를 모두가 좋아 하는 것은 문명의 이기(利己)가 주는 달콤함과 끊임없이 시선을 사로 잡아주는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상을 바꿀 발명품중 하나라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잠자는 시간외에 잠시라도 내 곁에 없으면 조금은 불안해진다. 사업이나 비즈니스 때문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늘 같이 다니곤 한다. 그러나 좀 더 친숙해 지기 위하여 오늘도 새로운 기능을 배우고 기법을 알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말 이 친구 덕분에 세상을 스마트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느껴 보지만 나는 스마트 한가 친구에게 물어보면 대답은 없다.
셋째, 세트 드럼이다.
두두 두두 두둥 짱~ 이 소리는 드럼 연습할 때 나만의 마지막 손목풀이 하는 짓이다. 드럼과의 인연은 D문화복지센터에 근무할 당시 토요일에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두드리면 스트레스도 풀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배우게 되었다. 초보인 나로서는 초, 중등학생과 함께 연습용 패드에 스틱을 잡고 똑딱똑딱 강사의 지도하에 리듬을 배웠고 일과 후 시간이 나면 음악실에 설치된 세트 드럼 박스에 앉아 연습을 한 결과 리듬과 기법을 익히게 되었으며 연습 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이제 제법이라는 흔히 좋으라고 하는 소리에 솜씨가 좀 늘었나 의심하면서 욕심을 내어본다면 아들 결혼식장에서 드럼으로 결혼 축하 연주를 멋지게 해 주는 것이다. 오늘도 한곡의 악보만 보면대(譜面臺) 위에 놓고 신나게 이 친구와 놀고 있다.
넷째, 산(山)이다.
언제나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세월이 지나도 한결 같은 모습이지만 사철 옷을 갈아입을 줄 아는 멋쟁이 친구이다. 어떤 풍파를 만나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무례를 해도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모습이 우리의 어머니와도 같으며 산림(山林)이 주는 공익적 기능은 그 무엇으로도 나타낼 수 없기에 사람과 산이 어우러져 살아가는가 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명산(名山)이라는 곳을 한두 번은 찾아보았을 것이다. 산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그곳으로 옮겨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기운을 받아 내일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리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頂上)은 힘들고 고통을 견딘 자에게만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모두에게 도전과 힐링을 제공 해주는 친구이나 요즘은 일주일에 한번정도 만나고 있어 당초 조건이 벗어나고 있다.
다섯째, 술이다.
술은 인간과 더불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인간과 같이 존재 하면서 우리의 삶을 부드럽게 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최고의 음식이며 보약인 것이다. 여러 종류의 술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찹쌀로 빗은 동동주를 제일 좋아한다. 동동주를 만들기 전에 술독 안의 첫물인 청주(淸酒)는 그야말로 천하명주이다. 그러나 요즘은 만나기가 어렵다. 전통 민속주를 제조하는 집안에 주문을 해야만 맛 볼 수 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무더운 여름철엔 시원한 맥주가 대신해 주고 있지만 찹쌀동동주가 늘 그립다.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고 했다. 오래된 친구와 새 옷을 다 갖추었으니 무엇보다 행복하다. 건강과 삶의 가치를 지켜주는 5명의 절친과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다.
벽화를 품은 마비정(馬飛亭)
화원 본리세거지를 지나 소담스런 길을 가다보면 산과 산이 마주하고 있는 골짜기에 정겨운 마을 풍경이 들어온다. 동네어귀의 다락 논 이며 구부러진 들길이나 좁고 좁은 비탈진 골목길로 보아 모든 것을 장성(將盛)한 남자들의 등짐이나 소질메에 의존해 옮긴 듯 한 이곳이 마비정 마을이다.
마비정이란 유래는 천리마 비무(飛騖)라는 수말과 백희(白熙)라는 아름다운 암말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 수말이 암말의 먹이인 약초를 구하러간 사이 잘 달리기로 유명한 비무를 전쟁터로 보내야겠다는 어느 장수(將帥)의 이야기를 들은 암말이 수말을 대신하여 죽음을 당한 암말 백희를 그리워하는 비무를 기리기 위하여 지어진 정자이다.
마을입구에는 최근 다져진 주차장이 있다. 골목길로 접어들면 벽화 속 문지기 장승이 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벽화를 그린 작가는 2012년 5월부터 3개월간의 작업 끝에 마을 담장전체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오래전 정겨운 고향 풍경을 스무 세 곳에 담아내고 있다. 담장 속에 그려진 5~60여 년 전 어렵고 배고픈 시절을 보다보면 세 갈레길 모퉁이에 하늘을 향해 올곧게 서있는 연리목(連理木)을 만나게 된다. 연리목은 각각 다른 뿌리에서 난 줄기나 가지가 접합해서 서로 수액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른바 사랑나무이다.
이 사랑나무는 느티나무와 돌배나무가 만나서 1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함께하며 햇볕과 바람에 따라 서로 부대끼면서 하나인 듯 둘이 된 것이 마치 천리마 비무와 암말 백희가 느티나무와 돌배나무로 환생한 듯하다. 큰 돌 작은 돌로 쌓여진 축대 속 좁디좁은 공간에 서로의 아픔을 나누어가며 살아생전 못다 한 사랑을 나누는 모습에서 연민의 정을 느낀다. 마침 초가을이라 돌배나무 가지에는 작은 배 들이 주저리 달려있어 사랑의 결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연리목 앞에서 기도를 하면 부부간의 애정이 더욱 깊어지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여기고 있는 곳이다.
아래채 벽 담장 길을 오르다보면 60년대 초 국민학교 시절의 점심시간 바로 전에 난로위에 도시락을 수북하게 쌓아놓고 데우는 모습에서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고, 사랑고백 포토 존에서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남겨 애정을 담은 손 편지와 함께 1년 뒤에 도착한다는 느림보 우체통에 넣어 본다. 느림의 미학을 느껴보며 느릿느릿 걷다보면 연리목과 함께 천리마 비무와 백희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살아온 나무들이 있다. 100년 정도 된 살구나무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옻나무들이다.
이들을 뒤로하고 오르다 보면 천리마가 다니던 길목 가장자리에 새롭게 잘 지어진 쉼터를 만날 수 있다. 마비정(馬飛亭)이다. 어느 장수의 이야기 때문에 백희의 죽음을 맞은 잘못을 빌었던 곳을 기리기 위하여 정자를 지었다고 하나 지금은 나그네들의 쉼터가 되어 있어 편안함보다 가슴이 저려오는 기분이 든다.
벽화를 통해 어릴 적 소박한 삶의 모습과 전설을 품어 보고 어린소녀의 구두 이야기는 옛것을 연구하여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온고이지신.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의 뜻을 잘 전해주고 있기에 많은 이들이 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첫댓글 좋은 글들을 올려 주어서 감사합니다.
우리 부르스박님의 의젓한 모습을 보니 기쁨이 넘침니다. 글을 꼼꼼히 읽어보니 금후 대 문장가로 명성을 떨치시리라 사료됩니다. 감동을 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