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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회 70회 '방태산'(주억봉) 산행기 >
◈ 산행일/집결 : 2007년 10월 21일(일) / 2호선 잠실역 3번출구 (07시)
◈ 산행코스 : 개인산장-개인약수터-1415봉-주억봉-적가리골-지당골-휴양림-이폭포·저폭포-방동약수터-주차장-홍천-뒤풀이장소
◈ 참석자 : 10명 (세환, 종화, 창수, 형채, 재웅, 윤환, 전작, 근호, 양기, 천옥)
◈ 동반시 :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 뒤풀이 : '양염돼지고기'구이에 소·맥주 / 홍천 “대가 화로구이집”
어제밤엔 아침 06시에 모닝콜을 해 놓고 일찍 잠이 들었다. 저녁에 술을 한잔 했기에 마나님(행복씨)께는 부탁을 하였지만, 혹시나 늦잠을 잘까 봐서였다. 요즘들어 벌써 나이 들어서 인건지? 밤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아 TV.와 씨름하다 새벽녘에 잠이 들어 늦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06시 정각에 일어나 배낭을 챙기고 아침을 먹고 나서니 6시 반이다. 어제 밤엔 오늘 산행을 위해 그런대로 충분한 수면을 취한 것 같다. 상쾌한 기분이 오늘은 즐거운 산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전철을 타고서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문형이와 임 수석으로부터 연락이 와 있었다. 문형인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 산행에 참석이 어렵다고 문자연락이 왔었고, 임 수석에겐 전화로 확인 해 보니 감기 몸살을 앓고 있단다. 두 산우 모두 어제까진 꼭 참석하겠다고 했었는데, 아쉬운 일이다.
잠실역에 도착하니 우리의 애마(노란색 소형버스)가 대기 중이다. 전 산우와 한 총장이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였지만, 10명의 산우들이 한 달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예정된 시간보다 약 20분 늦게 출발하였다.
오늘 산행은 '방태산'(주억봉, 1,443 m)으로 강원도 인제군과 홍천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잠실에서 하남톨게이트를 빠져 나가면서 우리의 호프 류해수 기사님은 약 30여 분을 소모해 버렸다. 오늘도 역시나 귀에다 레시바를 꼽고 네비게이션이 가르키는 대로 가는 옹고집 때문이다. 본인에게는 짧을지 몰라도 우리들 모두에겐 5시간의 소중한 시간인데...
가는 도중 김 전회장님 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난 금요일 동반시의 선정과 산행안내 관계로 전화를 하였는데, 확인 점검차 전화를 한 모양이다. 오늘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선약(결혼식 참석)이 있단다. 정남인 들머리를 꼭 개인약수 쪽으로 가라 이른다. 항상 느끼는 바 이지만, 김 전회장의 시산회 사랑은 감히 누구도 흉내내지 못 할 것이다.
지난 주 몇 일동안 잠시 시간을 내어 정남의 블로그에 들어 가 그동안 등반한 산들과 동반시, 참석자 등을 정리하여 보았다. 김 전회장이 올려놓은 많은 글들을 접해 보면서 그의 문필력의 유려함에 난, 새삼 놀랐다. 간혹, 이경식 총장, (형채 산우 및 기 회장님의 산행기 글도 볼 수 있었는데, 모든 산우들의 글 솜씨가 내가 쓴 산행기 보다도 훨씬 맛깔스럽고 재미있게 잘 작성한 글 이였기에 내가 산행기를 쓰는 자체가 부끄럽기만 하다.
그래서 김 전회장도 공언한 바 있지만, 내 생각도 산우들 전체가 돌아가면서 쓰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최근에 김 전회장은 사업상 중요한 문제가 있는지? 그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였었는데, 이 총장과 더불어 자주 참석하지를 못하니 안타까움과 궁굼한 마음이 앞선다.
양평을 빠져나와 홍천 쪽으로 가다 잠시 휴게소에 들러 아침식사를 하고 들머리인 개인산장을 향하였다. 홍천읍에 다달으니 길가에 화로구이 음식점들이 즐비하니 있다. 기 회장님은 오늘 산행 후 뒤풀이는 이곳 홍천에서 특산음식인 화로구이(돼지고기) 음식을 시식하자고 한다.
산우들에게 준비한 동반시를 나눠 주고 동반시(“내가 사랑하는 사람”)를 한 구절 한 구절 읽어 보았다. 정남이가 왜 이 시를 동반시로 선정하였는지 궁금하기도 하였고, 그의 빈자리가 허전하기만 하다. 내린천을 끼고 산 계곡을 넘어설 땐 꼬부랑 길을 몇 번 돌고 도니 현기증이 난다.
인제군에 들어서니 도로 주변엔 군부대 시설이 많고 산비탈엔 고냉지 채소밭이 여기저기 보인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라는 군에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에서 전반기 교육을 마치고 이 지역(3군단)에 배치되면 고생됨을 한풀이라도 하듯 푸념했다던 속어가 문득 생각이 난다.
육사를 나와 이 곳(137공병대대)에서 초임장교 시절을 보낸 최(근호) 산우는 30여년이 지난 추억이지만, 한겨울에 영하 25도의 기온에 눈이 많이 오면 도로 제설작업을 하여 고생했던 이야기와 6.25때 아군 1개 군단이 북한군 1개 중대에게 참패를 당했다는 한이 서린 지역이라고 하며 실감나게 이야길 한다.
우리의 애마는 어느 덧 좁은 소로를 타고 산 비탈을 올라 개인산장이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조용한 산골에 등반객들과 약수를 자시러 오신 손님들의 숙박을 위해 아담하게 지어 놓은 산장. 최근에 시설한 자그마한 펜션같은 집도 보인다. 사실 어제는 방태산 산행 경험이 많은 정남이가 참석을 하지 못 한다고 해서 이곳에 등반 경험이 있는 분당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 방태산에 대해 문의를 하였었다.
지도상에도 볼 수 있지만 북쪽으로는 점봉산과 그 뒷쪽에 설악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개인산이 접하고 있다. 주봉인 '주억봉(主億峯)'은 태산준령이 첩첩이 쌓여 있는 곳의 가장 높은 봉우리라 하여 주억봉 이라고 하고 멀리서 보기에 형상이 주걱을 닮은 모양이라고 해 '주걱봉' 이라고도 한단다. 주억봉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개인산의 개인약수와 내린천이, 그리고 북쪽으로는 적가리 골과 방동약수, 방대천이 자리잡고 있어 여름철 산행에 좋은 산이지만, 가을철에는 단풍도 구경하고 약수도 자실겸 누구나 한번쯤 찾아 가 볼 만한 산이라고 한다.
사방이 긴 능선과 깊은 골짜기를 뻗고 있는 풍광이 뛰어나 ‘정감록’이라는 책에도 이 산의 오묘한 산세에 대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듯이 이곳은 삼재불입(三災不入)의 복지인 3둔 5가리중의 한 곳이라고 한다. 전쟁과 기근, 전염병을 피하고 싶은 우리 인간의 욕망에 부응하는 곳이라고 한다. 교통이 불편한 관계로 아직도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계곡을 간직하고 있으며, 아침가리골의 짙푸른 물은 암반 위를 구슬처럼 굴러 떨어지고, 적가리골은 펼쳐진 부채 같은 독특한 땅 모양을 가지고 있단다.
방태산은 주억봉(1,443m)과 구룡덕봉(1,338m)을 근원지로 하고 있으며, 또한 이 곳에는 자연 휴양림이 잘 조성되어 있고, 골짜기로 흐르는 계곡수는 수량이 풍부하며 특히 마당바위와 2단폭포는 절경이라고 한다. 피나무, 박달, 소나무, 참나무류 등 수종이 다양하여 계절에 따른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뿐만 아니라 열목어, 메기, 등의 물고기와 멧돼지, 토끼, 꿩, 노루, 다람쥐 등의 많은 야생동물도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방태산은 워낙 오지에 있고 또한 산행 시간이 10시간 가까이 소요되므로 느긋한 산행을 위해서는 이틀정도의 충분한 시간을 내어 야영장비를 준비하고 산중에서 1박을 하는 계획으로 산행에 임하는 것이 좋다고 이른다. 방태산의 산행은 주로 두 깃점으로, 그중 하나는 인제군 기린면의 방동리 대골(매표소)과 다른 하나는 상남면 미산리 대개인동이다. 그 외 깃대봉, 주억봉, 구룡덕봉 및 가칠봉을 잇는 10시간 이상의 장시간을 요하는 종주 산행을 할 경우, 인제군 기린면 용포 및 기린면 방동리 오류동과 양양군 갈천리 왕승골을 들머리로 하여 오른다고 하나 이 산행은 무박 1일 계획으로 산행은 아침에 일찍 출발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산 계곡이라 쌀쌀한 기온에 배낭에서 잠바를 꺼내 입고, 잠시 산행 안내지도를 보며 오늘 산행을 할 코스를 점검하고 11시 정각에 김 전회장이 가르쳐 준대로 개인약수터를 향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다. 들머리 초입에 개인약수터 까지는 1.5Km(30분) 라는 이정표가 표시되어 있다.
암석으로 다져 놓은 등산로를 따라 약 20여분 오르니 이제까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약수를 드시고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 원장이 자꾸만 뒤로 처진다. 벌써 땀이 차는지 겉 옷을 벗어서 배낭에 넣으면서 천천히 따라 갈 테니 신경쓰지 말라고 말한다.
차 안에서 미리 추어탕은 전 산우에게 맡겼는데, 배낭 안에 또 맛있는 음식이 들어 있는지 배낭 속이 두둑하게 보인다. 무거운 것이 있으면 나에게 맡기라고 하니, 예전부터 가지고 다녔던 큼지막한 사진기를 끄집어내어 허리에 차면서 요즘 운동을 하지 못해 괴롭다고 말한다.
너무 떨어지면 내중 지칠 것만 같아 앞서간 산우들께 잠시 휴식을 요청하고 위 대장이 단골로 가지고 온 삶은 낙지 안주에다 막걸리를 한 잔 하기로 하였다. 위 대장은 집이 가락시장 옆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 산행때 마다 낙지를 제공하여 왔다.
여름철 산행 시에는 막걸리를 사전에 냉장고에 넣어 살얼음이 낀 막걸리도 함께 준비하여 왔었다. 막걸리를 한 잔씩 하면서 맛있는 안주를 준비하여 주신 어부인께 늦게나마 모두들 마음 속으로나마 고마움을 표했다. 감사히 맛나게 잘 먹고, 앞으로도 계속 부탁 드리나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천천히 오르니 약수터가 보인다. 여기가 바로 개인산(開仁山)에 소재하고 있는 약수라 하여서 개인약수(開仁藥水)터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여느 약수터와는 달리 해발 1,080m의 남한 최고 고지대에 위치하여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맛을 간직하고 있으며, 탄산수로 철분, 칼슘, 불소, 나트륨 등 우리 인체에 유익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1891년에 함경북도 포수 지덕삼이라는 사람이 발견하였다는 이 약수터는 주변에 1백년 이상 묵은 잣나무, 가문비나무, 전나무, 소나무 등의 노목들이 우거져 있어 지상으로 용출하는 약수만 보아도 가슴속을 시원하게 하였다. 옛 부터 약수를 마시기 전에 나쁜 일을 하고 먹으면 물이 흐려진다는 설화도 담겨져 있다는데, 우리 산우들이 마셨는데도 깨끗한 걸 봐서 우리 시산회 친구들은 착한 사람들 임에는 틀림이 없는가 보다.
약수에는 특히 철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위장병, 당뇨병 등의 치료에 특효가 있다고 전해져 많은 관광객들과 요양 환자들이 끈임없이 찾고 있다고 한다. 입안이 싸아하여 마시기 힘든 사이다같은 약수를 다들 한 두 바가지씩 마시고 가지고 온 물통의 물을 비우고 약수를 넣었다. 약수가 나오는 조그만 샘 밑바닥에서는 계속적으로 물방울이 솟는다.
옆에 계곡이 있긴 하지만, 산 중턱에 물이 솟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주변의 돌은 붉은색으로 물이 들여져 있는데, 물 색깔은 아주 투명하고 맑기만 하다. 지난번에 금강산 ‘구룡연’과 ‘만장대’에 가서도 느낀 바가 있었지만, 신비로운 자연과 만물의 이치를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약수를 마시러 온 사람들에게 주억봉으로 가는 길을 물으니 잘은 모르겠으나 오른편으로 오르면 끝없는 산길이 계속되고, 왼편으로 오르면 10여분 후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고 한다. 정남이가 일러 준 코스하고는 달랐으나 일단 능선길을 찾아야 하겠기에 왼쪽길로 결정하고 나 원장을 앞세우고 올랐다. 하지만, 조금 오르자 등산로가 없어 바위로 형성된 계곡을 헤매야만 했고, 한참을 그렇게 오르다가 산죽밭으로 형성되어 있는 등산로를 찾았다.
깊은 산중에 봄철 산나물을 채취하러 온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인듯 경사도 70도가 넘을 듯한 급경사의 등산로가 능선을 향해 나 있었다. 약수터 아래에서는 그렇게나 땀을 흘리며 힘들어 했던 나 원장이 맨 앞에 첨병으로 세워 놨더니만 뒤 따르기가 힘들 정도로 잘 올라간다. 앞으로 위 대장은 나 원장을 포함하여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산우들을 항상 앞세워 올라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김 전회장도 지난번에 이야기 했었지만, 산행에 있어서 팀웍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등반할 땐 팀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본인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등반인이 가져야 할 자세중의 하나이나 개인사정으로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경우, 일행 중 등반경험이 많거나 산행을 잘 하는 사람이 후미에서 뒤처진 사람을 돌봐 주고 페이스를 조절하여야 한다. 다함께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마음에서 다른 단체운동도 그렇지만 팀웍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능선길을 오르자 멀리 좌측편에 주봉인 듯한 봉우리가 몇개 보이나 구름이 끼여 어느 봉우리가 주억봉인지 알 수 가 없었다. 날씨가 맑은 날 북쪽에 대청봉이 보인다고 했는데, 운무가 끼여 볼 수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약 10여 분 동안 부드러운 능선길을 따라가니 정상인 듯한 육중한 능선과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오니 더욱 마음이 설레인다.
해발 1,400m대의 능선에 철로 봐선 한창 단풍이 절정을 이뤄야 할 시기이나 올 가을은 단풍이 들기도 전에 추위가 와 나뭇잎이 시들어져 말라있다. 벌써 오후 1시가 넘어 당초 산행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 더 초과된 것 같다. 하지만 장쾌한 방태산 능선의 서막일까! 이제부터는 힘들기보다는 걸을수록 힘이 솟아오른다. 산봉우리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기 보다는 차갑기만 하여 부지런히 약 10여분을 더 가니 깎아지른 듯한 돌무더기의 봉우리가 있고, 구름이 조금 걷히면서 멀리 능선을 따라 높은 봉우리도 보인다.
북쪽으로는 삼림이 욱어진 깊고 깊은 골짜기의 연속이고, 동편으론 원시림이 우거져 있어 아마도 방태산휴양림으로 조성된 곳인 듯 싶다. 이정표도 없는 산봉우리 정상의 좁은 길목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지나가는 등반객에게 ‘여기가 주억봉이냐?’고 물으니 여긴 1,415봉 이라고 하며, 주억봉은 조금 더 가야만 나온다고 한다.
앞서가던 박 산우가 실 같은 줄기에 한 송이의 파란 꽃을 가리키며 산부추란꽃이며 씨앗이라도 채취 할 셈으로 주위를 살핀다. 주변이 고산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나무들로 군락을 이룬 아늑한 능선의 너른 공간에 앞서 온 등반팀들이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곳은 넓고 편안하게 보였으나 방금 전에 자리를 펴고 식사를 하고 있어 자리를 비워줄 때 까지 기다리기엔 시간도 많이 지났고 배도 고파서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10명이 앉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았으나 넓은 공간은 없었기에 좁은 평지에 음식을 펼치고 그냥 둘러서서 먹기로 하였다.
오늘의 점심 특별메뉴는 나 원장이 가져 온 추어탕 외에 그렇게 풍족하질 못했기에 가지고 온 막걸리를 다 비우지 못하고 기 회장님이 70회 등반 기념으로 특별히 가지고 온 양주(발렌타인 17년산)도 선뜻 마시고 싶은 산우들이 없어 반 강제적으로 나눠 마셔야만 했다. 모두가 산행에 지쳐서 였을까 아니면 뒤풀이 때 맛있는 것을 자시려고 사전 대비차원 이였을까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구름이 낀 능선길을 약 10분을 더 오르니 방태산 주능선 최고봉인 주억봉에 도착하였다. 정상의 넓은 공터에는 삼각점과 주위 전망을 위한 간이의자도 하나 있었다. 방태산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잠시 주변의 전망을 즐기려 했으나 구름도 앞을 막고 바람도 너무나 세차게 불어 그냥 하산하기로 하였다.
날씨가 좋은 날엔 이 곳 주억봉에서 북쪽을 향해 보면, 가리봉, 점봉산, 설악산(대청봉) 서북능의 전망이 가장 으뜸이고, 동쪽으로는 구룡덕봉, 가칠봉, 갈전곡봉을 거쳐 백두대간 주능선과 만나는 능선도 조망이 일품이며, 남쪽의 개인산과 침석봉은 아담한 느낌과 정겨운 감회를 불러일으킨다고 했었는데, 날씨가 따라 주지를 않아 이번엔 볼 수 없어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하산코스는 방태산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는 적가리골로 산 능선의 내려가는 길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탐방로(삼거리) 시작점 까지는 4.2km, 구룡덕봉 까지는 1.0km이다. 구룡덕봉 방향의 주능선을 따라 약 10여분 남짓 내려가니 북쪽 적가리골로 가는 등산로가 나타난다. 어느 산악회인지 안내 리본들을 나뭇가지에 달아 놓아 펄럭이고 있었기에 쉽게 그 초입을 찾을 수가 있었다.
적가리골로 내려서는 능선길은 경사는 급하여 일부 구간은 밧줄에 의지해 내려가야만 했고, 어제 온 빗물이 아직 마르지를 않아 미끄럽기만 하다. 낙엽이 쌓여있어 바닥이 푹신한 곳도 있어서 겨울철에 눈이 쌓이면 미끄럼을 타며 내려가는 구간으로 최적일 듯 싶다. 내려오는 도중 좌우측엔 오래된 자작나무가 있어 형채는 혹시나 상황버섯이라도 하나 건져 볼까 싶어 한동안 숲을 헤매기도 하였었다.
그런 원시림의 숲속의 길을 약 50여분 내려오니 적가리골의 지계곡이 되는 지당골을 만날 수 있었다. 지당골은 그저 평범한 지류에 불과하였으나 주변에 단풍나무 잎이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나 원장은 후미에서 멋진 그림을 사진에 담느라고 자꾸만 처진다. 다시 약 20여분 내려오니 계곡 물이 한 번 더 합수하면서 수량만 약간 불었을 뿐, 설악산을 뺨친다고 하는 적가리골이 과연 이어질지 의문이 앞선다.
휴양림 입구로 들어서는 길을 따라 내려오니 다리가 하나 있었고, 물이 흐르는 다리 뒤편에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어 그 곳을 배경으로 단체사진과 개인별로 기념사진을 찍고 조금 더 내려오니 적가리골이 시작된다는 곳으로 구룡덕봉 방향의 계곡과 합수됨으로서 수량이 제법 많이 흐르고 넓은 반석과 높이는 낮으나 폭이 큰 폭포가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구경도 할 겸, 휴식도 취할 요량으로 폭포 쪽으로 내려갔다.
바로 이곳이 지도상에 표기되어 있고, 말로만 들어 왔던 이폭포, 저폭포로 적가리골의 절정을 이루는 곳인 것 같았다. 수십 m의 굉음을 흘리면서 쏟아지는 폭포가 이폭포이고, 그 물을 받아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십수 m 넓게 퍼져서 쏟아지는 폭포가 저폭포라고 한다. 사진작가들 인지는 몰라도 석양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할 심사인지 폭포 앞에 좌대를 설치해 놓고 한참 동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사진사 이재웅 산우와 한천옥과 함께 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앞서간 산우들이 기다릴 것만 같아 걸음을 재촉하여 하산을 서둘렀다. 이폭포, 저폭포를 뒤로하고 넓은 마당바위 아래 끝없는 소(沼)와 작은 폭포들이 즐비하여 예사로운 계곡이 아니었기에, 이와 같은 계곡이 지도상에 표시된 대로 방동리까지 약 8km 까지 지속된다면 정말 설악과도 비교 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여름철에 꼭 다시한 번 와 확인해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5시 40분이다.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40여분이 더 소요된 셈이다. 점심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약 6시간의 산행으로 한라산, 설악산을 제외하고 다른 등반 때와는 달리 장시간의 산행이었다. 모처럼 긴 산행의 피곤한 몸을 애마(소형버스)에 의지하고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면서, 매표소와 방동리를 지나 최(근호) 산우가 초임장교 시절에 근무하였던 137공병대대, 3군단사령부 앞을 지날 땐, 옛 추억이 그리웠던지 최 산우는 그 시절 (보급장교)에 재미있었던 일과 짤릴 뻔 했던 아찔했던 지나간 추억들을 실감나게 들려준다.
뒤풀이 장소는 기사양반이 홍천에 유명한 집을 사전에 전화예약을 해 놨다고 하면서 찾아 갔으나 네비게이션이 잘못 가르켜줬는지? 찾지를 못하고, 결국은 오전에 방태산을 가면서 점 찍어 놓았던 홍천 “대가 화로구이집”을 찾아 양념돼지고기 안주에다 소,맥으로 맛있게 먹었다.
오늘의 동반시('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는 정상에서 바람이 많이 불어 읊지 못하고 오늘 산행에 가장 고생을 한 나 원장이 본인이 읊겠다고 선뜻 나서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러한 사람이다’라고 안과 병원장 답게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대목에선 목청을 한 껏 돋우며 차분하면서도 낭낭하게 읊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 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랑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 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마지막 구절인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라는 구절은 정호승 님의 시에서 만이 접할 수 있는 사랑의 아름다운 멋을 표현한 것 같아서 지금까지 머리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
시 낭송 후 잠시 협의가 있었는데, 나는 우리 시산회가 70회에 걸쳐 등반하는 동안 김 전회장이 블로그에 올려 놓은 글을 읽어보고 정리한 등반 현황<(서울근교 산행 : 36회)-북한산 12, 도봉산 7, 관악산 5, 청계산 4, 수락산 3, 삼성산 2, 검단산 2, 아차․용마산 1회, (원거리 산행; 34회)-설악산 3, 오대산 3, 월악산 등 28개 산 각 1회>과 동반시를 설명하였고, 금후 등반시 경비 거출방안(당분간, 장거리산행시 2만냥, 서울인근 1만냥) 및 차기 산행계획(포천, 명성산)을 협의하고 서울로 향하였다.
피곤하기만 한 몸을 차에 싣고서 알딸딸한 기분에 모처럼 산우들의 노래도 생음악으로 조용히 들으니 팔팔했던 학창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기 회장님은 생음악도 운치가 있어 좋으나 반주가 없어서 조금은 서운하니 12월 19일(대통령선거날) 우리 시산회 송년회를 갖자고 제의를 한다.
우리나이에 친구들의 만남은 중년에 즐거움 그 자체이니 반대할 사람이 그 누가 있겠는가? 모두들 그날만큼은 바쁘시더라도 시간을 비워두길 바라며, 최근에 이 총장님과 김 전회장님이 개인사정으로 산행을 함께 하질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모두가 가정사나 주변에 처해있는 사정의 어려움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두 친구들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는 못 하겠지만, 아무쪼록 하루빨리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되어 자유스러운 기분으로 함께 동참하시길 기원하면서 산행기를 맺는다. 산우들의 건강과 함께 행복한 삶을 기대하면서...
2007년 10월 22일(월) 김종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