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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글을 읽기 전에 앞에 올린 족보의 선택기준, 생활실무(희년법과 상속법)와 법리 해석에 대한 내용을 먼저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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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희년법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Daum 카페
*** 경제 실무인 성경 희년법의 경제적 해석은 3500년, 누가복음 족보를 희년법으로 풀어보는 것은 2000년만의 처음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광야의 백성들은 땅이 없는 종살이를 430년 간 하고서도 땅과 희년은 60만 대군 중에 두 명 외에 모두 거부합니다. 사람들이 보는 땅과 희년은 지금도 그러합니다.
희년법을 지키고 있는 누가복음 족보
만일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레 25:25) 무를 힘이 없으면 ...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지니(레 25:28)
...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으면 그의 기업은 딸에게 돌릴지니라(민 27:8)
... 그 여인의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이요(신 25:6)
예수 그리스도는 육적으로 다윗의 후손이며, 다윗의 기업이 있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족보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예수 그리스도가 30세가 되어 베들레헴 기업의 주인이 되는 때를 기점으로 기록을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 룻과 보아스의 자손인 헬리가 아들이 없으므로, 그의 베들레헴 기업은 희년법과 상속법을 따라서 그의 딸 마리아와 사위 요셉에게 상속되었습니다(민 27:7, 36:3,4). 누가복음 족보는 이 베들레헴 기업을 예수 그리스도가 육적인 아버지로부터 이어받는 계보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눅 3:23). 이 족보의 끝(머리)은 베들레헴 땅을 지은 생산자요, 소유자며, 희년법과 상속법을 제정하신 계보의 시조를 알려주고 있습니다(눅 3:38)
희년법은 한 가계의 구성원들에게 생존권이 걸린 기업을 영원히 그 가계에 존속시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다가 가정에서 가계의 사정이 어려우면(가난하여지면) 그 기업을 팔아서(저당을 잡혀서) 자금을 융통하는 금융거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팔린 기업은 형제나 친족이 값을 대신 치러 무르기를 해주어야 합니다. 아니면 토지 자신이 생산물을 내어 그 값을 대신 치러주고 사람이 진 빚을 소멸시켜 줍니다(레 25:28).
이것이 바로 속량입니다. 그러므로 희년법이 하게 되는 기업 무르기의 속량은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땅이 먼저 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창조질서이고 시장원리이며, 십자가의 구원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희년법을 지키며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하셨습니다. 이것이 속량의 의미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담아놓은 레위기 희년법입니다. 우문이고 소설 같은 말이 되겠지만, 땅은 팔고 사되, 반드시 팔고 사지 말아야 시장경제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법은 구약은 시한부 사글세이었고(레 25:15,16), 신약에서는 포도원 비유에서 소개한 지대시장제 하나뿐입니다(마 21:41).
사람이 살다가 보면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을 수가 있습니다. 이때는 가계에 남아있는 기업의 상속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기업의 상속은 아들과 남성 중심으로 되어있어서 그 가계에 남아있는 딸들의 생존권은 위협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자가 아들이 없으면 기업을 딸들에게도 상속할 수 있게 하여 생존권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딸들은 결혼하게 되면 지파가 다른 남성들의 계보를 따라 상속권이 다른 지파에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업을 자기 지파, 자기 가족에만 영구로 존속시키려는 희년법의 근본 취지에 어긋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 소속 지파에게만 결혼을 허용하는 조건이 붙게 됩니다. 이것이 민수기의 기업 상속법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부부 가정에서 남편이 아들도 없이 죽었을 경우, 남은 아내는 후사가 없으면 혈통이 끊어지고, 생업이 어려워집니다. 더구나 남편의 기업은 시가 쪽 형제들이 상속하게 되어, 한 가계는 혈통과 기업이 모두 끊어지고 멸문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 남은 자의 생존권을 지켜주고, 죽은 자의 가계를 복원시키는 방법이 신명기에서 정한 계대결혼제도입니다. 이것도 끊어지는 혈통과 기업을 형제가 대신 이어주는 속량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계대결혼제도와 희년법이 정한 기업 무르기는 모두 대신하여 값을 치르는 속량의 원리와 방법이 들어있습니다. 여성 상속법의 경우도 끊어지는 기업을 딸이 대신 이어주는 의미에서 보면 속량의 한 수단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가계와 기업에서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를 대신하여 해결하여 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속량(贖良, redemption)입니다. 그런데 이 속량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십자가에서 희생이 되어서 죄값을 모두 치러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과 원리와 방법이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속량이란 빚을 없애거나 죽음을 면하는 방법에서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는 경우, 사용하는 필수적인 수단입니다. 속량은 문제가 생겼으나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을 경우, 마지막 수단으로 대속자를 세우는 처방이므로 문제 해결의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설명한 희년법, 기업 상속법, 계대결혼법을 따라 혈통을 잇고 기업을 이어온 가계를 빌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희년법과 민수기 상속법, 그리고 신명기 계대결혼법은 구약시대에 가계와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 수단이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그 법을 따라 이 땅에 와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표이기도 했습니다. 누가복음 족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속량 제도로 가계와 기업을 이어온 자들의 기록입니다. 누가복음 족보는 구원의 유일 수단인 속량의 방법으로 희년법을 지키고, 가계와 기업을 이어서 하나님의 구속사에 쓰임을 받은 자들의 계보입니다.
누가복음 족보는 희년법으로 씨와 땅을 이어가는 계보
필자는 성경의 족보에 대한 글을 쓰면서 처음부터 “성경의 족보, 씨와 땅을 이어가는 하나님의 구속사”라고 소제목을 붙여가며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창 1:1). 땅을 먼저 지으시고, 그 땅을 통해 생명을 지으셨습니다. 땅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천지창조 3일째에 씨(히, 제라)를 가진 열매를 내기 시작했습니다(창 1:11,12). 씨가 있어서 생명체는 생명을 잇고, 역사를 이어갑니다. 모든 생명은 씨(혈통, 유전인자)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씨는 땅이 있어야 싹을 틔우고, 자라며, 다시 열매를 내어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땅은 씨가 없으면 생명을 내지 못하며, 생명을 잇고 자라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가진 씨와 그 생명이 자라고 결실하게 하는 땅은 필수적 존재이며, 필연적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다음 사람을 흙을 재료로 직접 창조하십니다(창 2:7).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땅과 땅에 있는 뭇 생명과 천지 만물을 다스리게 십니다(창 1:28). 사람은 그렇게 땅과 천지 만물을 다스리는 대가로 땅이 내는 온갖 식물과 만물을 이용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이렇게 창조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그 피조물인 땅, 땅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의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이런 창조질서에서 필요한 것이 하나님, 땅, 그리고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땅, 사람이 시간 흐름에서 바른 관계를 이어가며, 풍성한 삶을 살아갈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레위기 제사법과 레위기 희년법입니다. 곧 사람이 생명인 씨와 그 생명을 부양해 주는 땅을 이어야 하는데 이것이 중도에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씨를 가진 가계의 혈통과 그 씨를 부양할 기업이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주는 제도가 레위기 희년법이고(레위기 25:1~28), 민수기 기업 상속법이며(민 27:1~11, 36장), 신명기 계대결혼법(신 25:5~10, 21:15~16)입니다.
이 법을 보면 형제 중에 만약 아우가 가난하여 기업을 팔았으면(저당 잡혔으면), 두 몫의 기업을 상속받은 장남이 값을 치르고 팔린 기업은 되찾아주어야 합니다(레 25:25), 또 아우는 형이 결혼하였어도 아들도 없이 죽었으면, 형수에게 씨를 빌려주어 그 대(씨)를 잇게 하고 가계와 기업을 다시 회복시켜 줍니다. 또 아버지가 아들이 없이 죽었으면, 남아있는 딸들이 아버지의 기업을 이으며, 생업을 해결하고 같은 지파의 남성과 결혼하여 여성 계보를 이어갑니다.
이렇게 끊어진(또는 끊어질) 혈통과 기업을 이어주는 제도가 바로 속량(贖良)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피 흘려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는 십자가 구원도 바로 이 속량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십니다(요 19:30). 이렇게 속량의 원리로 문제를 해결한 제도가 레위기 희년법, 민수기 상속법, 신명기 계대결혼법입니다. 이 제도를 따라 씨와 땅, 가계와 기업을 이어온 자의 이름을 기록한 계보가 누가복음 족보입니다. 이러한 희년법과 그 관련된 제도를 따라서 가계와 기업을 이어온 누가복음 족보를 정리하여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희년법과 누가복음 족보
위 그림을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계와 기업은 희년법에 담겨있는 속량의 원리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과 세상을 살려내는 구원방식이고, 생활의 적용원리입니다. 그리고 시장원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속량의 방식으로 세상을 인도하는 역사가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족보는 이런 구속사에서 쓰임을 받은 자의 이름을 올린 계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속량의 역사와 계보를 충실하게 담아놓은 누가복음 족보의 가계를 택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장소는 누가복음 족보의 계보자들이 지켜온 베들레헴을 택하여 탄생하십니다.
여기서 누가복음 족보가 말하는 혈통과 기업을 택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셨다는 말은 그 계보가 이어온 육의 혈통을 직접 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남자의 혈통을 잇지 않고,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 잉태로 태어나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성육신의 실체이며(요 1:14),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빌 2:6). 그래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서 새로운 세상, 신약시대가 열립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하여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누가복음 족보는 하나님이 인도해 오신 구약시대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앞으로 이어가야 할 신약시대를 중간에서 연결하는 가교(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가복음 족보가 소개하는 계보를 따라서, 육적인 아버지 요셉의 기업을 따라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헤롯 부자의 유아 살해 위협으로 북쪽 나사렛에서 자라났고, 생활은 거기서 목수업을 하는 요셉과 함께 약 30년을 살았습니다(마 2:19~23, 눅 2:39~52). 예수 그리스도는 30세가 되어서야 세례와 시험을 받고, 공생애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사렛 회당에서 30회 희년을 맞은 그해 7월 10일, 희년을 선포하게 됩니다(눅 4:18,19).
이 희년 선포에는 다윗 왕가에 속하는 베들레헴 기업의 소유권과 상속권이 포함됩니다(눅 2:4). 이 희년 선포는 지구촌은 물론, 우주가 모두 상속자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알리는 선언적 의미가 담겨있습니다(마 21:38, 히 1:2).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지구촌 모든 인류는 이 희년 선포를 따라서 각자 자기 기업을 가질 수 있으며,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회복하게 됩니다(레 25:10,23). 나사렛 회당 사람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그분을 기업의 상속자로, 기업의 주인으로 인정하였으면, 그 때가 바로 희년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와 빚, 그리고 모든 기업까지 십자가의 값 치르기로 희생할 준비를 해두었기 때문입니다.
희년법과 누가복음 족보는 3수구조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누가복음 족보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구속사에서 그 역사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이에 동반되어 있는 가계와 기업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족보는 족보의 주인이신 하나님, 그리고 족보의 구성자인 사람, 그리고 사람의 생존에 필수재인 기업, 이렇게 3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족보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생명을 가진 씨, 그리고 씨를 지켜주고 부양하는 땅, 이 셋으로 구성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의 창조질서를 보아도 세계는 하나님, 땅, 사람으로 3가지 요소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면서 먼저 하늘과 땅을 지었습니다(창 1:1). 그리고 땅에 명령하여 씨 가진 열매를 내게 했습니다(창 1:11). 그다음 하나님은 땅의 흙을 재료로 사람을 지어 생명의 대표자로 삼고, 자신의 소유물인 땅과 모든 생명을 관리하도록 맡겼습니다. 사람은 맡겨주신 땅과 생명을 관리하며(다스리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받습니다(창 1:26~28).
여기서 세계는 창조주 하나님(天), 땅(地), 그리고 씨(人), 天地人의 삼수관계(또는 삼수구조)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성경도 하나님과 땅, 그리고 사람으로 삼수구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늘(天)은 하나님 자신이며, 하나님 자신의 처소입니다. 여기서 하늘은 자연계의 하늘(sky)이 아니고, 천상계의 천국(Heaven)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라고 했을 때 그 보좌가 하늘입니다(사 66:1, 행 7:44~50). 성경에서 하나님과 천국은 그 자체를 “하늘”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눅 15:18, 마 21:25).
땅은 물질계에서 천지 만물을 대표합니다. 땅은 생명을 내고 있고, 생명을 부양합니다. 여기서 땅과 분리할 수 있는 생명과 물질은 시간의 한계를 가진 유형물이지만, 땅은 유형체이지만, 그 형체를 특정할 수 없는 복합 물질입니다. 땅은 존재의 기한이 없는 영구적 존재물입니다. 물론 땅도 마지막 때에는 없어지고 새 예루살렘으로 대체되어 처음 땅이 사라질 것입니다(계 21:1). 과학에서도 지구는 50억 년이 지나면 소멸할 수 있는 행성으로 봅니다. 그러나 50억 년의 기간은 시한부로 살아가는 사람에 비하면 무기한 존재하는 영구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땅이 내는 모든 생명체나 땅에 종속된 물질들은 모두 단속적이고, 한시적 존재물입니다. 그러나 땅은 이것들과 달리 존재의 영속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생명체나 일반 물질과는 확연하게 구별되고 있습니다. 땅은 자신과 분리할 수 있는 물질과 생명체를 낼 수 있고,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땅과 분리할 수 있는 물질과 생명체는 땅을 내거나(만들거나)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땅과 땅이 가진 물질이나 생명체는 근본 속성이 다릅니다.
그다음 사람은 생명체의 대표입니다. 땅이 영속성을 가졌다고 하더라 그 땅에 생명체가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땅에게 생명체를 내고 이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어서 이 땅에 생명체가 생겨났습니다(창 1:24, 25).
그런데 하나님이 생명체는 땅에게 명령하여 짓게 하시지만,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땅의 흙을 재료로 사용하여 직접 창조하셨습니다(창 2:7).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과 만물, 그리고 모든 생명체를 관리하고 다스리게 했습니다(창 1:26,27,28). 그 대가로 사람은 땅이 내는 식물을 먹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창 1:29,30). 그러므로 땅과 사람은 창조질서에서 하나님께 부여받은 속성과 격(level)이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창조질서는 하나님이 계신 하늘, 만물을 소유하고 생명체를 부양하는 땅, 그리고 그 땅을 관리하는 사람, 이렇게 삼수구조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창조질서의 3수구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원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우리 죄를 대신하여 값을 치르게 합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마 20:28, 롬 3:24).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치른 십자가의 희생과 그 혜택은 사람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피조 세계 전체, 곧 모든 생명체와 만물을 가지고 있는 땅에도 미칩니다(엡 4:6). 희년법에서 십자가의 원리인 무르기는 사람(몸)도 대상이고, 땅도 구체적 대상입니다. 이러한 무르기가 완성되어 몸과 땅이 자유할 때, 그때가 희년입니다(레 25:10,28,54).
로마서 8장을 보면 천지 만물인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롬 8:19,39). 이것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십자가의 보혈로 죄가 사해지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때는 피조물들도 함께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안에서 그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고,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 통일되게 하십니다(엡 1:7~10). 하나님은 만유의 아버지이시고, 만유를 통일하시며, 만유 위에 계십니다(엡 5:6).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아들로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영광의 본체로서 세계를 짓고, 만물을 붙들며, 죄를 정결하게 하십니다(히 1:1~3).
이처럼 창조질서, 구원원리, 누가복음 족보가 모두 하나님, 땅,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창조주로부터 지음을 받은 “땅”, 그 땅에서 낸 생명의 씨를 대표하고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3개의 개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필자는 이런 관계를 성경의 3수구조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세상 만물도 그렇게 3수구조로 구성되고,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특히 누가복음 족보는 하늘, 땅, 사람이 서로 유기적 관련이 있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요약 표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성경의 3수구조
| ⬋ | 하나님 (天) | ⬊ |
| 땅(地) | ⬌ | 사람(人) |
성경의 하늘, 땅, 사람의 3수구조 다시 한번
창조질서와 누가복음 족보를 구성하는 하늘(天), 땅(地), 사람(人)의 3수구조는 현실적 경제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의사결정의 주체로도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격체(神格體)를 가진 실체, 땅은 지격체(地格體)를 가진 개체, 사람은 人格體를 가진 실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사결정의 주체로서 3수구조는 자칫하면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피조물인 땅이나 사람과 격(level)을 같이 한다는 오해입니다. 특히 생명도 없고, 의사결정 능력도 없는 물질에 불과한 땅에 대하여 하나님처럼 또는 사람처럼 의사결정의 주체로 보는 것은 불경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3수구조는 하나님과 땅, 땅과 사람이 그 위상에서 동격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의 구성이나 세상의 구성 요건으로 3개의 요소가 서로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 나라를 말할 때, 국가의 3요소는 주권, 영토 국민입니다. 필자가 말하는 성경의 3수구조는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사회활동에서 법률 행위를 할 때, 법률의 주체를 자연인(自然人)과 법인(法人)을 나누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시면 됩니다. 자연인은 사람 그 자체이므로 숨도 쉬고, 활동도 하고, 자기 생각을 펼 수 있는 의사결정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인은 법에 의해 인격이 부여된 단체를 말합니다. 법인 자체로는 의사결정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법인은 대리자를 세워서 법률 행위를 하게 됩니다. 법인은 자연인이 만든 인간의 피조체이고 종속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이런 피조체를 피조체의 주인인 사람과 동일시하거나 대등하게 보고 법률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땅도 그런 원리입니다.
이것은 회계(학)나 경영(학)에서 그 대상인 기업(企業)에 대하여 기업을 가계와 분리하여 하나의 경제적 실체로 간주하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企業)은 성경이 말하는 가족별로 분배한 땅을 뜻하는 기업(基業)과는 다른 용어입니다. 경제학에서는 기업(企業)을 생산 주체라고 하고, 가계를 소비 주체라고 합니다.
땅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종속물이며, 의사결정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땅은 경제적으로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는 물체입니다(레 25:4~7,19). 땅은 하나님께 부여받은 범위 내에서 식물과 동물 등을 내고 있고, 그 생명체를 부양하고 있습니다(레 25:7). 그리고 땅은 사람과 생명체가 필요한 온갖 물질(공기, 햇볕, 천연 에너지 등)을 갖고 있거나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명체와 사람에게 필요한 기초 자원을 가지고 있거나 생산을 하는 데에는 사람보다 훨씬 더 월등한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희년법에서 사람이 땅을 잡혀서 빌린 부채를 어떻게 갚을 수 있는지 무르기 방식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가정 형편이 궁하여 땅을 잡히고 돈은 빌려 쓰면. 그 빚은 내가 벌어서 갚아야 합니다. 아니면 형제나 친족이 그 빚을 대신하여 갚아줍니다. 이것이 무르기입니다. 그런데 내가 갚을 형편이 안되거나 형제나 친족이 무르기(代贖)를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런 경우 땅을 잡히고 시간이 지나가면 빌린 부채에서 원리금이 자동으로 갚아져 나갑니다(레 25:28). 그래서 희년이 도래하면 부채의 원리금이 소멸하여 그 땅이 내게로 다시 돌아옵니다(레 25:10).
이것은 땅이 독자적인 생산활동을 하여서 내가 잡혀서 빌린 빚을 대신 갚아준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땅이 가진 독자적인 생산활동이라는 뜻입니다. 땅이 우리가 빌린 돈을 갚아주고 있으므로, 땅이 사람이 해야 하는 대속자(代贖者)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땅의 이런 독자적인 생산활동을 따라서 땅을 쉬게 하는 안식년과 희년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쉬는 안식년과 희년에도 땅이 스스로 내는 산물이 있어서(레 25:5~7) 사람들이 안전하게 거할 것이라고 합니다(레 25:19).
물론, 건물이나 자동차, 특허권 등을 시한부를 빌려줘도 토지 사용권을 잡힌 거래와 비슷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건물, 자동차, 특허권은 사람이 생산한 물질이고, 투자에 대한 대가물입니다.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개체가 소멸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땅과 인공물은 부채를 갚아도 갚는 성격이 근본에서 다릅니다. 이런 인공 물질은 원금이 부채를 갚아나가기는 하지만, 땅은 자신의 몸체를 소비하지 않고 독자적인 생산활동을 하여서 사람이 잡혀놓은 부채를 대신 갚아줍니다. 이것은 건물과 자동차와는 달리 땅만이 가지는 물리적 특성이고, 땅만이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물질적 시혜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땅이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여러 각도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땅은 사람보다 먼저 있고 오래 있으며, 땅 자신이 식물을 내어 사람을 부양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씨 뿌리는 비유에서 땅이 스스로 열매를 내는 성질을 예로 들어 복음이 결실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마 13:1~30, 막 4:26~29). 사람이 죄를 범하면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 반응합니다(창 3:17,18).
구속사에서도 땅은 자신이 위치가 있어야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민 14:37,38)
선민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땅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시조이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땅을 제시하면서 구원을 시작하십니다(창 12:1). 이스라엘 민족에게 400년 종살이는 자기 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도 땅에 대한 호평과 악평이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갈랐습니다(민 14:36~38). 이스라엘 민족은 땅의 안식과 희년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서 고통을 받습니다(레 25:3~10, 레 26:34, 대하 36:21, 렘 25:12,13).
그러므로 사람은 성경이 말하는 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땅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사람과 분리하여 독립된 개체로 인정을 해주어야 합니다. 법인이 사람과 분리될 수 있는 개체가 아니지만, 독립된 실체로 인정을 해야, 개인과 단체로 얽혀있는 복잡한 사회에서 법률 행위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땅도 그렇게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 인정해야, 성경 전체에서 전개되고 있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성경 말씀을 따라 땅을 다스리는 관리자의 삶을 살아서 주신 복을 마음껏 누릴 수가 있습니다.
특히 성경을 부분적으로만 보거나 특정 사조에 매여서(같혀서) 편협하게 보지 않고, 성경을 성경답게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성경을 보면서도 땅과 희년을 넣어서 이해하면, 땅과 희년이 없는 기존의 연구물을 수십 편 읽는 것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땅은 3수구조로 된 성경의 필수 요소의 하나이므로, 땅과 희년법이 들어있지 않은 성경 연구물은 경우에 따라서 오히려 성경의 내용을 오해하게 하거나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룻기 4:3에서 이미 팔린 땅을 무르려고 하고 있는데, 그 “땅을 팔려고 한다(또는 팔려고 내어놓았다)”라고 전혀 반대의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원문 대로 번역을 한다고 자부심을 가지는 킹 제임스 성경마저 "무른다"는 단어는 "다시 사다"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업 무르기 무엇인지, "무르기(贖良)"라는 용어는 뜻도 모르게 해놓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아주 중요한 단어 "속량"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에서도 예수님은 사람들 간에 진 “빚(빚 진 자)”을 없애주는 희년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마 6:12, 눅 11:4). 물론 죄를 없애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주기도의 번역은 "빚"이라는 단어가 “죄(개역 성경)”로 되어있고, 실제로 지금의 주기도문은 “빚”이라는 단어 대신 “잘못”이라는 매우 이상한 용어를 넣어두고 있습니다(마 6:12, 눅 11:4에서 인용된 주기도문). 주기도에 들어가야 할 ‘물질 문제(빚)’가 ‘정신 문제(죄와 잘못)로’ 바뀌어서 축소, 변질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모두 땅과 희년을 생각하지 못한 데서 나온 큰 실수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늘, 땅 사람이라는 성경의 3수구조를, 하나님과 사람만 다루는 2수구조로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땅이 없는 성경 풀이는 땅이 필요 없는 신앙 공동체에서는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활 공동체는 땅이 생존에 필수재이기 대문에 땅이 들어가야만, 얽히고설킨 생활경제의 제반 문제를 풀어내는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성경의 족보나 전체 구성에서 땅이 하나의 필수 요소로 들어가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레위기 희년법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고, 누가복음 족보에 들어있는 수수께끼가 풀릴 수 있으며, 그 족보 안에 담긴 구속사의 깊고 오묘한 섭리와 하나님의 경륜을 깊이 깨달아 알게 될 것으로 봅니다.
*** 먼저 올린 글 읽지 못하신 분들은 아래 주소로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족보 선택의 요건과 희년법의 법리적 해석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