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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안삼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주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828)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숙명처럼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상상하면서
그들의 비극적 삶을 자주 낭만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슈베르트의 생애는 이러한 예술가의 비극적 삶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슈베르트는 평생동안 가난에 시달리다가 서른 한살이란
너무도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았지만,
살아서는 전혀 인정을 받지못했고
죽은 후에야 비로소 불후의 작곡가로 추대되었다.
슈베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스승은 '내가 그에게 어떤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려고 할 때면
그는 이미 그것을 다 알고 있었다.' 라고 회상한다.
이미 10대 후반부터 수많은 음악을 작곡했고
특히 괴테와 하이네같은 낭만주의 시에 매료되어 있던 그는
아름다운 가곡들을 쏟아낸다.
'그가 만지는 모든것이 노래로 변했다.'고 할 정도로
슈베르트의 작곡량은 엄청난 것이었다.
'아름다운 물레방아간 아가씨'는 그가 겨우 열 일곱살 때 작곡한 것이다.
걸작' 마왕' 은 열 여덟 살때 불과 몇 시간 만에 써 내려간 것이라 한다.
그는 143곡의 가곡을 작곡,
열 아홉이 되던 해에 두 편의 교향곡과 오페라, 미사를 포함하여
모두 179곡의 작품을 작곡한다.
그러나 이런 천재적 음악성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았다.
평생 음악 감독, 전속 지휘자, 연주자와 같은 공식적 직함을 한번도 얻지 못한,
그는 아마 최초로 작곡만을 해서 살아간 작곡가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명곡들은 점심 값도 안되는 돈에 팔렸으며,
그는 방을 빌릴 돈조차 제대로 벌지 못했다.
다행히 슈베르트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친구들이 있어,
그는 종종 친구들의 집에 머물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보통 아침 7시부터 오후1,2까지 작곡을 하고
오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신문을 읽고 당구를 치거나 담소도 하며 보냈으며,
저녁에는 '슈베르트의 친구들' 이란 모임을 만들어
그의 음악을 연주, 함께 춤도 추면서 보냈다.
음악과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창작의 영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 시절 슈베르트는
정말 무수히 많은 음악을 쏟아냈다.
하지만 친구들과 뒤섞여 지내던 방탕한 생활 탓에
슈베르트는 25세의 나이에 성병에 걸려 젊음의 활기를 잃어갔고
자멸적인 고독감에 빠지게 된다.
절망감에 싸여서 자신이 다시는 건강을 회복할 수 없는 사람이며,
허무만이 유일한 희망이요, 사랑이나 우정도 고문일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고통 자체가 자신의 새로운 예술의 원천임을 곧 깨닫는다.
'나의 음악은 나의 재능과 나의 불행의 산물이다.
내가 가장 곤궁하고 괴로울 때 쓴 작품을 세상은 가장 좋아할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말년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에서 잘 드러난다.
음울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이 연가곡집은
바로 작곡가가 살아온 길고 어두운 여정을 상징하는 듯 하다.
그는 죽는 날까지 마지막 걸작들을 써내려가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지만
'미완성 교향곡'이 청중 앞에서 연주되는 것을 한번도 듣지못하고 죽었다.
'미완성 교향곡'은 그가 죽은지 40년이 훨씬 지나서야 연주되었고
그제서야 세상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천재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당시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독창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불과 31년의 생애 동안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양하고 많은 작품들을 남긴 슈베르트는
600곡 이상의 가곡 이외에도 교향곡과 현악4중주곡들,
피아노와 현악기를 위한 실내악곡들, 피아노 소나타, 미사곡, 오페라 등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예술가곡
갈고 다음은 한 편의 시와 그 시에 걸맞은 음악이 만나서 탄생한 노래를
예술가곡(art song, Lied, melodie,canzone)라고 한다.
민요가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서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는 노래라면
예술가곡은 개인적인 서정을 담아 부르는 노래라는 차이가 있으며,
대개 작자미상이고 반주없이 부르던 민요와는 달리
시인과 작곡가의 숨결이 드리워진 반주가 있는 노래란 차이도 있다.
아주 오래 전 직접 시를 짓고 노래가락을 붙이던 중세의 음유시인들은
요즘식으로 하면 싱어 송 라이터의 조상일 것이다.
11세기 프랑스에서 생겨 12-14세기에 활동한
음유시인들의 노래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악기반주를 수반했단 점이다.
자신들이 직접 지은 시에 음률을 붙여 부르던 샹송은
아마도 가장 오래된 예술가곡의 형태일 것이지만,
실제로 예술가곡이란 명칭은 낭만주의 시대에 꽃피워진
독일 리트(Lied, 복수로는Lieder)와 프랑스의 멜로디(melodie)에
붙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술가곡이란 성악장르는 낭만주의적인 음악 토양에서 촉발되었다.
예술가곡이 작곡가들의 표현도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시인들이 봇물처럼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예로부터 훌륭한 시인들의작품은 끊임없이 작곡가들의 영감을 자극해왓고,
작곡가들은 시의 의미와 정감을 어떻게 하면 효과 전달에 고민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괴테(1749~1832), 하이네(1797~1857), 뮐러(1794~1827)등의 시는
시 자체가 가진 탁월한 내용만이 아니라
시에 내재된 음악적인 운율과 리듬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19세기의 낭만주의적인 정신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발로로서
음악을 추구하게 만들었으며 이러한 사적이고 내밀한 정서의 표출이
작곡의 동기가 되었다.
작곡가들은 멀리 떨어진 연인에 대한 동경과 잊혀진 전설,
주변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자연과 초자연적인 힘 , 꿈과 악마적인 이미지,
충족될 수 없는 갈망 등 시인들의 상상력이 출발한 바로 그곳에서
자신들이 음으로 번역할 수 있는 시적인 이미지를 찾아냈다.
예술가곡과 동의어로 인식되는 독일의 18세기까지만 해도
리트는 그저 단순한 민요나 독일 대중노래에 붙여진 이름이었는데,
이것이 한 단계 차원이 높은 예술가곡(Kunstlied)으로 격상된 데에는
'가곡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슈베르트의 주옥같은 가곡이 있었다.
슈베르트 이전의 작곡가들은 리트보다는 오페라,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
규모가 큰 음악에 관심을 가졌을뿐 리트는
그저 아마추어가 심심풀이로 만드는 노랫가락 정도로만 여겼었다.
중세 음유시인으로부터 슈베르트에 이르기까지 리트란
낭만적이고 섬세한 장르가 탄생하는데에는 천년이 넘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불과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요절한 슈베르트가 남긴 가곡은 무려 600곡이 넘는다.
그의 가곡을 예술가곡이라 부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좀처럼 일치시키기 어려운 시, 음악의 합일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
음악과 시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에 완벽하게 용해된
성악 선율을 창조해냈다는 것.
과거로부터 작곡가들이 즐려 사용한 가사 그리기(word painting)의 차원을 넘어
미세한 리듬과 풍부한 화성, 중요한 던어에 대한 다이내믹의 강조,
고음, 저음의 적절한 배합 등으로 성악 선율은 탁월한 시적효과를 자아낸다.
또한 성악내부와 맞물려 그것을 반주하는 피아노는
시적 이미지를 강화하는데 가장 완벽한 표현수단으로 작용한다.
분산화음으로 펼쳐지는 피아노의 아르페지오는
물의 일렁임이나 물레방아가 도는 모습을 연상시키고 낮고 육중하게 화음으로
반주할 경우, 어두움과 탄식, 고통의 이미지를 적절히 부각시키는 수단이 되고있다.
따라서 가사와 감정과 이미지는 가장 낭만주의적인 악기인 피아노를 통해
세밀한 부분에서부터 오케스트라에 필적하는 다양하고 폭 넓은 표현 가능성에 의해
예술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슈베르트의 초기작품
'물레 잦는 그레첸(Gretcben am Spinrade)은 피아노 반주가
그레첸이 돌리는 물레소리를 연상시킴과 동시에
파우스트를 그리워하는 그녀의 초조한 심정을 묘사한 작품으로
시와 음악의 조화가 어떤 것인지를
슈베르트가 직감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예다.
**유절가곡과 통절가곡
가곡은 가사와 음악이어떤 방식으로 결합되는가에 따라 두가지로 구분된다.
몇 개의 연으로 되어있는 시에 음악을 붙일 경우,
시의 모든 연에 동일한 음악을 반복시키는 것을 유절가곡,
시의 각 연마다 새롭게 음악을 붙이는 것을 통절가곡이라 한다.
대개 시 자체가 반복구조를 가지거나 시의 내용이 변한다 해도
운율이 비슷한 경우에는 유적가곡으로 작곡하는 경우가 많으며
민요는 대부분 이 유절가곡의 형태를 취한다.
반면 산문시라든가 대화체의 시같이 일정한 운율을 갖지않는 경우는
통절가곡으로 작곡된다.
즉, 통절가곡은 시 자체가 반복 구조없이 내용의 계속적인 면화를 겪고있을때
적절한 작곡수단이라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외도 중간부에 대조적인 음악을 배치하고 앞의 연과
마지막연에 같은 음악을 배치하는 경우는 변형된 유절가곡으로 부르기도 한다.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 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음악의 반복없이
계속 변화하고 있으므로 통절가곡.
'들장미'를 비롯한 많은 슈베르트의 음악은 유절가곡 또는
변형된 유절가곡의 형태를 취한다.
**연가곡
연가곡(song cycle, Liederkreis)은 기본적으로 한 시인이 일관된 주제를 갖고 쓴
일련의 시들에 곡을 붙인 가곡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An die ferne Geliebte),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Winterreise)나
슈만의 '여인의 사랑과 생애'(Frauenliebe und leben)같은 작품은
한 시인이 쓴 여러개의 시에 곡을 붙인 연가곡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전체내용을 함축하는 제목에서
어떤 특정한 이야기가 순서대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가곡들은 일관된 이야기의 흐름을 가지기보다는
다양한 서정을 함축적으로 그려낸다고 보는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또한 같은 제목으로 된 연가곡이라 해도 한 시인의 노래일 필요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가곡은 제가 사랑이나 죽음과 같은 주제를
어느정도 담고있다 하더라도 실제론 서술적인 연계성은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 경우에도 연가곡으로 분류되고있다.
말러(Gustav Mahler, 1860- 1911)는 보헤미아 태생의 오스트리아 작곡가
볼프 Hugo (Philipp Jakob) Wolf
슈트라우스 Richard Georg Strauss
포레 Gabriel(-Urbain) Fauré
차이코프스키 Nikolay Vasilyevich Chaykovsky
슈베르트가 요절한 시인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는
처음으로 납득할 만한 서술적 연계성을 가지고 있는 연가곡집의 예일 것이다.
이 작품은 청년이 희망 속에서 길을 떠나 겪는 사랑과 연민,
자연의 아름다움을 서술적으로 이어나간다.
그러나 그의 3대 가곡집의 하나로,
연가곡으로 종종 오인되는 '백조의 노래'는 연가곡이라기보단 가곡 모음집이다.
물론 앞부분이 사랑이란 주제로 되어있고
뒤에가서 인생과 회상이란 주제가 이어져
서로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긴 하지만,
마지막 곡과의 연관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만 여러가곡을 모아놓은 형태에 머물고있다.
슈베르트의 뒤를 이러 슈만역시 많은 연가곡을 작곡.
슈만은 아이헨도르프의 시에붙인 두 편의 '리더크라이스'(Liederkreis)와
'시인의 사랑'(Dicbterliebe), '여인의 사랑과 생애'등
노래와 피아노의 완벽한 결합을 추구한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슈만의 가곡은 슈베르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피아노가 단순히 동반자적인 역할을 넘어
독립적으로 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여기서 피아노와 노래의 이중주가실현된다.
슈만은 시의 분위기를 미리 암시하기 위해 전주와 간주를 두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의 말미에 피아노만의 후주를 두어 노래의 여운을 지속시키는 수법을 자
주 보여준다.
슈베르트와 슈만 다음으로 독일 리트의 계보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와 볼프(Hugo Wolf1860~1903)이다.
낭만주의적인 문학작품을 좋아했고 독일의 민요에 관심이 많았던 브람스는
창작의 비중을 성악곡과 실내악곡에 두면서 민요의 서정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데 힘썼다.
브람스의 대표작 '티크의 마겔로네에 의한 로만스
'(Romanzen aus L. Tiecks Magelone)는 나폴리 공주인 마켈로네와
젊은 기사 페터와의 사랑 이야기를 15편의 연가곡으로 구성한 것으로
낭만주의 연가곡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볼프는 피아노 반주에 의한 독일 리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곡가로,
'뫼리케 가곡집'과 '괴테시에 의한 곡집'을 비롯한 7개의 가곡집을 포함하여
300곡 가까이 되는 리트를 작곡했다.
그는 오페라에도 관심을 보였으나 오로지 가곡에서만
자신의 천재성을 과시할 수 있었다.
그의 가곡은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반음계적인 진행과 자유로운 낭송,
끊임없는 조바꿈을 사용하여 한층 후기 낭만주의의 색채를 띠고있으며
피아노의 역할에 더욱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볼프와 같은 해에 태어난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독일 리트를 피아노와 성악의 결합에서 관현악 반주에 의한
예술가곡으로 탈바꿈시킨 인물이다.
그의 창작활동의 두 축은 교향곡과 리트이며 그의 교향곡은
바로 리트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러의 가곡은 낭만주의적인 시와 민요에서
영감의 원천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작으로는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Lieder eines fabrendenGesellen)와
말러 자신의 자전적 체험을 담은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eder)가 있다.
말러와 동시대에 활약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auss 1864~1949)도
오페라와 교향시 못지않게 리트의 탁월한 작품을 남기고 있는데,
대부분 청순한 서정을 다루고 잇으며가수에게 다소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고는 있지만
낭만적인 화성을 배경으로 한 달콤한 선율이 성악가들로 하여금
자주 레퍼터리로 선정하게 한다.
리트만이 아니라 프랑스의 멜로디(melodie)나 러시아, 이탈리아의 가곡들도
시의 정서를 피아노 반주에 담아 표출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은 유사하다.
프랑스에서 멜로디란 이름의 예술가곡이 많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슈베르트의 작품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출간되면서부터였다고 하는데,
작곡가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는 자신의 가곡 작품을 출간하면서
거기에 샹송이나 로망스(romance,멜로디 이전에 가곡을 지칭하던 용어)란 명칭 대신
멜로디란 명칭을 사용.
이런 명칭을 쓴 것은 평이하고 단순하게 악절을 구성하는 로망스의 특징을 벗어나
시의분위기에 맞는 과감한 화성과 리듬의 변화, 낭송하는 듯한 선율 등 이전의
프랑스 가곡 전통과는 차이가 있는 어법을 쓰고있기 때문이다.
베를리오즈의 '여름 밤'(Les Nuits d'Ete)이후
오페라 작곡가인 구노(Charles Francois Gounod 1818~1893)와 비제도
가곡을 작곡했으며, 리스트는 현란한 그의 오케스트라 작품과는 별도로
소박하고 서정적인 프랑스 가곡 '꿈에 오소어'(Oh! quand je dors)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가곡은 포레(Gabridl Faure 1845~1924)에서 전기를 맞는다.
피아노 독주곡과 실내악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였던 포레는
베를리오즈나 구노의 가곡들이 후렴 부분을 갖는 유절가곡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시의 감정에 따라 음악도 발전해 나가는
통절가곡의 방식을 취하면서 피아노의 비중을 대폭 강화시켰다.
특히 베를렌(Paul Verlaine)의 시를 접하면서 그의 가곡은 한층 세련되어졌는데
'베를렌의 시인의 사랑'이라 할 수 있는 가곡집'다정한 노래(La bonne chanson)는
그의 대표작 '달빛' (Clair de Lune)과 '꿈을 꾼 후에'(Apres un Reve)등을 통해
프랑스 시의 뉘앙스가 갖는 우아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포레의 뒤를 이은 뒤파르크(Henri Duparc 1848~1933)와
쇼송(Ernest Chausson 1855~1899), 드뷔시(Claude Debussy1862~1918)는
멜로디의 절정을 이룩함과 동시에 보들레르와 고티에, 말라르메 같은
프랑스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이면서
개인적인 감정의 발산보다는 순수하게 정화된 음의 세계를 추구한다.
독일과 프랑스에는 못 미치지만 러시아와 이탈리아,
다른 나라들도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와 시에 기초한 예술가곡을 남기고 있다.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와 무소르그스키, 라흐마니노프 등이 이 분야에
좋은 작품들을 남기고 있으며,
노래의 나라 이탈리아 역시 주옥같은 가곡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가곡(칸초네)은 독일과 프랑스에 비하면
피아노의 서법에 있어 비교적 단순하고 가사의 의미 전달보다는
성악 선율에 더 비중을 둔다는 점에 있어
'시와 음악이 대등한 결합을 통한 피아노와 노래의 이중주'란
낭만주의 예술가곡의 전형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나라마다 언어의 늬앙스가 다르고 발음구조가 판이하므로
가사의 정감에 대한 음악적 대응물인 예술가곡은
나라마다 고유의 특징으로부터 비교적 독립해있다해,
그것이 열등함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이탈리아 가곡이 지니는 특성 중 하나일 따름이다.
[출처] 슈베르트 & 가곡들|작성자 piano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선생님
리트가 점점 끌려서 공부위해 정리해보았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