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치마에 꽃을 꽂았네요!”
『채털리 부인의 사랑』과 『아들과 연인』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데이비드 로렌스(David Hervert Lawrence)의 단편 「국화 냄새」.
광부의 아내 베이쯔는 어둑해질 무렵, 5살 된 아들 존과 함께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길가에 헝클어진 분홍빛 국화”가 덤불에 여기저기 매달려 있는 것을 본다. 그녀(베이쯔)는 아들이 “볼썽사나운 국화꽃다발에서 꽃잎을 뜯어내 한 움큼씩 길에다” 버리는 것을 보고 나무란다.
그녀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창백한 꽃 서너 송이가 달린 가지 하나를 꺾어” 얼굴에 갖다대더니, 버리지 않고 “앞치마 띠에 꽂아”두고 집으로 들어선다.
중심 캐릭터인 광부의 아내 베이쯔와 ‘국화’의 관계는, 일상에 지치고 의욕이 없는 노동자의 아내와 길가에 무심하게 피어있는 꽃이기에 쉽게 겹쳐진다. 그녀가 국화를 대하는 풍경은 결코 행복한 모습이 아니다. 앞치마에 국화 몇 송이를 꽂아두고 오는 행동거지가, 서민적인 그녀의 삶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국화’ 이미지는 빈곤에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의 사물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남편과 같이 일하는 광부들은 일을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남편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술집에 들렀기에 오지 않는다고 그녀는 투덜댄다. 기척이 있어 남편인가 했더니 학교에 간 큰 딸이다.
그녀는 무심히 잊고 있었는데, 딸아이가 앞치마에 꽂힌 ‘국화’를 보고 예쁘다고 난리다.
가난 때문에 감정이 무뎌진 그녀는, “국화송이들을 입술에 갖다대면서” 감탄하는 딸아이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고, 추억에 잠긴다.
“내가 너희 아버지와 결혼할 때도 국화였고, 너희들이 태어날 때도 국화였어. 그리고 처음으로 사람들이 술에 취한 너희 아버지를 집에 데려다 주었을 때도 네 아버지는 단춧구멍에 갈색 국화를 꽂고 있었어.”
아내의 앞치마와 남편의 단춧구멍의 ‘국화’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 속에서, 서로 조응을 이루며, 친밀감과 사랑을 함축하고 있다.
그녀(베이쯔 부인)는 과거의 추억 속에서 ‘국화’와의 각별한 인연을 잠깐이나마 아이들에게 자랑하듯이 말했지만, 결코 행복한 상념은 아니었다. 더구나 현재의 가난한 생활 속에서, 늦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점차 분노를 느낀다.
“자기들 세 사람에게 이런 고통을 가져다주는 애들 아버지에 대한 노여움으로 그녀의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남편과 같이 일하는 이웃집에 가서 동료에게 물어도 보았지만, 술집에도 없다는 등 근심이 증폭된다. 그러던 중에 시어머니가 갑자기 찾아와서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며, 통곡한다.
잠시 후에, 남편의 동료들이 남편의 시신을 들고 들어온다. 탄광촌에 남아 야근을 하다가 갱의 일부가 무너져 질식사한 것이었다. 그녀는 울고난 후, 차분하게 남편의 시신을 모셔둘 작은 방으로 들어가 정리한다.
“촛불이 촛대의 유리에, 분홍빛 국화가 몇 송이 담긴 두 꽃병에, 침침한 적갈색의 식탁에 깜박거리는 불빛을 던지고 있었다. 방안에는 차갑고 죽음 같은 국화 냄새가 가득했다.”
작가 로렌스는 이 소설에서 탄광촌의 실상과 광부들의 삶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은, 처음에는 가볍게만 보이는 ‘국화’ 이미지가, 서사의 후반부에 이르러,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로 돌변한다.
길가에 흔하게 피어있는 ‘국화’가, 남편의 시신이 놓여있는 방에선, ‘죽음’의 분위기를 지닌 소도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화’는 복합적인 성격의 꽃 이미지로 독자들에게 다가오며, 제목처럼, 국화 ‘향기’보다는 ‘냄새’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첫댓글 작가의 새로운 면을 잘 보여준 적품평입니다.차타레아 부인의 사랑으로만 알려져 마땅치 않게 여기는 독자들에게 작가의 진면목을 보여주신 좋은 평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들국화 그림 한 점을 보는 것 같습니다.
주 박사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