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 교회에서의 청년부 생활 이야기 중 일부이다.
청년부는 대학생부터 아직 결혼하기 전의 직장인까지의 연령을 대상으로 한다.
내가 대학생이 막 되었을 때 청년부는 ‘가정’이라는 명칭으로 많은 수를 가정으로 나누었다.
쉽게 분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이와 성별을 골고루 섞은 분반.
우리 분반은 다들 친하고 똘똘 뭉치기로 소문이 났다.
기억안남, 효진 누나, 정현이, 영애, 선희 누나(작은)
나(동하), 선희 누나(큰), 다행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성경공부도 하며 모임을 했다.
어떤 날은 분식집에서, 어떤 날은 교회에서, 어떤 날은 가정의 장인 큰 선희 누나네 집에서...
우리 가정의 장은 사진의 오른쪽 아래에 있는 예쁜 누나인 큰 선희 누나였다.
선희 누나가 둘이라 큰 선희, 작은 선희 누나로 우리는 불렀다.
물론 사진 위쪽의 작은 선희 누나도 예쁘긴 하다. ㅋㅋㅋ
작은 선희 누나 미안...
큰 선희 누나가 너무 예뻐서 내가 잘 따르고 좋아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누나는 동생들인 우리(나, 정현, 다행)에게 참 잘해주었지.
그렇게 우리는 자주 만나 친목을 도모하고 끈끈해졌다.
어느 토요일 가까운 포충사로 자전거 하이킹을 가기로 했다.
주말엔 거의 집에서 잠만 자던 우리(나, 정현, 다행)였는데 자전거 하이킹을 가자니 너무 좋았다.
해태마트 앞에서 자전거를 빌려 한줄 기차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도로의 큰길을 벗어나 작은 길을 따라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굴린다.
포충사는 효덕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으로 자주 놀러갔던 곳이다.
포충사에 모두 무사히 도착하여 다같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준비해 온 도시락을 맛있게 까먹고, 게임을 하며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
우리의 청춘은 그날의 오후처럼 그렇게 기분 좋게 흘러갔다.
진월동을 떠난 후 어느 날 친구와 함께 포충사를 찾았다.
그때는 30대가 된 후의 직장인이었다.
포충사는 예전 그대로였다.
변한 게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만히 있지 않고 흘러갔다.
지금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이 사회의 어딘가에서 각자 맡겨진 일에 열심을 다해 살고 있겠지.
그 시절이 참 좋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여서.
돌아갈 순 없지만 추억할 순 있다.
추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행복해진다.
#나의진월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