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이정원
1.
날마다 팔레트에 물감을 섞는다
비가 오는 날에는 블루와 레드를, 귀에서 이명이 들리는 날에는 그린과 블루를 섞는다
기억이 임계점을 향해 달려갈 때는
블루와 그린과 레드가 한꺼번에 섞여 백색이 되기도 한다
거울 앞에 선 물체의 색은 같은 방향을 유지한다
마이크로폰이 처음 목소리를 이탈하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는 색만이 아니다
음성이 벽에 부딪쳐
난반사되어, 블루로 변하기도, 블랙으로 변하기도 한다
어떤 마음들은 부딪치다가
블랙아웃되기도 한다
2.
어둠이 오면 색의 경계가 사라지고 너머의 광장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창밖 어둠속에
익숙한 얼굴이 어제처럼 다가온다
지나간 것들은 무슨 색으로 정의될까
나만의 방식으로 색을 입힌다
그리움에는 또 무슨 색을 칠해 놓을까
레드, 그린, 블루, 옐로, 화이트, 블랙...
그대로 놓아둘까
도화지를 찢어 버릴까
점점 줄어드는 나의 여백에,
점점 넓어지는 너의 부재에
3.
검정색 새 한 마리가 허공으로 날아간다
찰나에서 찰나로
* 2021년 공직문학상수상작
이효성선생님께 바톤을 넘김니다
#색즉시공#공직문학상#이정원#시#이정원시인#2021공직문학상#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