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낼 자유 / 최종호
‘퇴임식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퇴직을 앞두고 몇 달 동안 계속된 고민이다. 예전에는 하는 쪽이 대세였다면 최근에는 조용히 물러나는 사람이 많다. 코로나 시국이라 더욱 그랬다. 때가 되면 말없이 떠날 것이라고 여러 번 다짐했건만 그 시점이 다가오자 망설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그마치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 직장에 근무했는데 마침표는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가까운 지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카페 같은 분위기 좋은 장소에서 시기에 맞추어 출판 기념회를 겸하면 좋겠다는 의견에 솔깃해졌다.
궁금한 나머지 몇몇 선배에게 물어 보았다. 조용하게 그만두었다고 한 분이 여럿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우려되기도 했지만 남은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 큰 이유란다. 한 선배는 수도권에서 초등 교사로 근무하는 딸이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저녁 회식하는 것도 못마땅해한다.”라고 했단다. 그래서 자기는 다른 교직원의 퇴직과 동등하게 체육관에 모여 퇴임 인사를 한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 방법도 괜찮은 것 같았다.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최종 결정은 내 몫이지만 갈팡질팡했다. 날짜가 가까워지자 더는 미룰 수 없어 교감 선생님에게 일단 하는 쪽으로 생각하라고 말했지만,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며 여지를 남겨 두었다. “교직원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준비도 간단하게 해서 진행하면 좋겠다.”라고 주문도 해 두었다.
여름방학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교감과 교무, 나 셋이서 점찍어 두었던 읍내의 한 카페에 갔다. 그곳 2층은 가끔 교육청의 작은 행사에 사용하던 장소다.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쓴 일이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주인이 바뀌어 내부 공사 중이라 둘러보지 못했다. 같이 갔던 두 사람이 아무래도 장소가 좁을 것 같단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에 있는 작은 한옥 카페도 가보았으나 이곳도 마땅치 않다고 했다.
마침내 학교 체육관으로 결정하고 나니 이제 진행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다. 출판 기념회를 겸하는 퇴임식은 경험한 적이 없어서다. 내가 어려우면 남도 그럴 것이기에 내 아이디어를 정리해 두기로 했다. 2학기 개학하고 이틀 후에 교감을 불러 어떻게 진행할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간단히 적어 둔 것을 내밀었다. 그것을 보며 내 생각을 정리한 것을 말하며 조율했다. 최대한 간단하게 하자고 했다. 융통성 있게 진행하면 30분 안에 끝날 것 같은데 자꾸 한 시간이 넘을 것 같다고 하여 이해되지 않았다. 초대한 사람이라야 교직원, 그동안 같이 공부해 온 동아리 회원 여덟 명, 퇴직 후에 놀 사회 친구 다섯 명, 가족 네 명 등 40명 남짓이다. 이후 준비 상황이나 진행을 전부 맡겨 두었다.
퇴임식 당일이 되었다. 오후 들어 전임지에서 행정실장이 찾아와 축하한다며 작은 선물을 내밀었다. 그리고 얼마 뒤, 생각하지 않은 누나 두 명과 여동생이 어찌 알고 왔다. 교장실에서 차를 마시다 말고 벌써 시간이 되어 체육관으로 갔다. 작년에 같이 근무했던 교무부장과 젊은 선생님들도 축하해 주러 왔다. 뜻밖이었다. 초대한 친구들도 와서 자리하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배경으로 교장으로 근무하던 학교의 행사와 내 사진을 모아 만든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예정된 시각에 식이 진행되었다. 먼저 사회자가 참석자를 소개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내가 한 명 한 명 소개했다.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 같기도 하고 내 나름대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다. 꽃다발과 선물을 받은 후, 지내 온 교직 소회를 말했다. 첫 발령지와 두 번째 근무지에서 있었던 숨겨 놓은 이야기, 근무하면서 어렵고 힘들었던 일 등을 얘기했다. 그리고 책을 낸 사연과 내용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나니 20여 분이 흘렀다. 뒤이어 포스트잇에 읽은 소감을 미리 받아 둔 것을 몇 개 소개하고 질문도 받았다. 이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같이 공부하는 회원들이 각자 찍은 영상 메시지를 누군가 하나로 이어서 편집한 동영상이 죽 펼쳐졌다. 배경 음악과 함께 내게 받은 영향과 고맙다는 내용이 연달아 나와서 가슴이 먹먹했다. 뒤이어 교직원과 학생들이 언제 연습하고 찍었는지 영상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좀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재미있었다. 연습을 많이 한 것 같아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간단하게 진행되리라 생각했던 식이 남은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퇴직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그런데 별다른 계획 없이 생활한다. 그냥 그러고 싶다. 지금껏 계획된 틀 속에서 열심히 살았으니 당분간 자유롭게 쉬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스스로 이런 생활에 못 견딜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혼돈 속에서 질서의 필요성을 느끼고 창조적인 이정표를 찾으려고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