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웹툰 <미생>, 드라마 <미생>, 단행본<미생 1권~9권>,현재 연재중인 <미생 2>를 모두 보고 있는 미생의 열렬한 독자다. 하지만 난 미생을 싫어한다. 너무 무섭고, 속이 답답하고, 짜증나고, 슬프기 때문이다.
사실 난 이 드라마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니 이해했다고 말하면 현재 회사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너무 죄송할 것 같다. 이를 이해했다고 하는 건 고삼의 하루라는 다큐를 보고 대학에 갈 수는 있을지, 내가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맞는지,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갈지 등 수도없는 고민을 반복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마음을 중학생이 이해했다고 하는 것과 같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 나는 모른다. 근데 무섭다. 영업팀이 그리고 정확히 신입사원이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상황이 힘들다는 건 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힘들고 무서운데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견뎌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생을 '공감'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무섭다. 미생이 진실이라는 증거니까. 그리고 나도 몇년 뒤에 그 속에서 살아 남아야되고 아니 우선 그 속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할테니까.
이 드라마를 보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인물은 바로 초반에 잠깐 나왔던 안영이와 같이 PT를 했던 서울대학교에 나온 어떤 인턴이었다.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하나였다. 가장 사람같아서. 가장 솔직했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원 인터네셔널이 대기업이니 아마 거기에서 인턴이라도 하고있는 사람들은 최선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대학교 4년이 고등학교의 연장같았다."는 대사가 이를 잘 말해준다. 근데 그런 사람이 많고 그 중에서도 걸러 걸러 인턴이 된다. 그런데 장그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장그래는 정말 얄밉운 존재다.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왔는데 그 사람은 여기가 시작인 것 같아서. 그럴 때의 기분은 끔찍할 것이다. 근데 여기서 장그래를 눈에 띄게 싫어하는 사람은 사실상 그 사람 한명이다.(물론 그 정도가 좀 심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싫을 거지만 별로 내색을 하지 않거나 쉬쉬한다. 물론 자신의 감정을 무조건 드러내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하나같이 자신에게 혹여나 해가 될까 아니면 자기가 너무 힘들어 다른 사람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사실이 너무 슬펐다. 그 사람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게 좋다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과 조그만 일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감정을 어느 정도는 다스리고 숨기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근데 생각해보니 숨겨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그리고 추석연휴에 엄마와 같이 드라마를 봤는데 엄마의 말씀 하나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래도 저긴 대기업이니까 딱 자기 일만 하잖아. 중소기업은 저런 거 없다. 그냥 다 해야돼."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 정도가 찰 때까지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엄마는 저런 일을 얼마나 많이 겪으셨을까. 드라마니까 그리고 대기업이니까 조금씩은 다 미화가 되었다면 현실은 어떤 것일까. 내가 만약 지금 이해할 수 없는 이 많은 요소들을 이해하는 날이 오면 난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는 지금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