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로 기원하여 소원을 이룬 국토횡단>- 안0철(남, 75, 2021.4.20.)
안0철 씨는 미리 기도문을 작성해서 걷기 전 잃었다. 또박또박 쓴 글씨가 아무런 사고 없이 그리고 걷기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실하게 담겼다. 그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신이시여!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두렵고 힘들어 합니다. 경제적으로 더욱 힘들고 어렵습니다. 심 소녀가 인당수 푸른 물에 한 몸을 던져 아버지 심 봉사의 두 눈을 번쩍 뜨는 기적처럼, 걸어서 인천 송도에서 정동진까지 횡성 한우의 위상을 널리 알리려 합니다. 가는 길이 험하고 힘들어도 한 걸음 한 걸음에 힘을 주시어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애절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간곡히 기도드립니다.
안0철 씨가 국토횡단을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 심청이의 기적처럼 코로나19를 극복하기를 바랐다. 비장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명문이다. 안광철 씨는 인터뷰도중에도 그런 간절한 기원을 드러냈다.
“마음속으로 많이 기도를 드리지. 또 막 힘들고 이럴 적에.”
안0철 씨는 국토횡단을 두 번이나 하였다. 한 번은 아들이 손자 낳기를 바라며 했고, 둘째는 횡성한우 알리기를 위해서였다. 가정과 마을공동체의 소원을 위한 행위였다. 첫 번째 걷기를 하면서 빈 기도는 소원성취를 하였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모두 손자를 낳았기 때문이다. 안0철 씨는 복덩이라고 해서 손자를 돼지라 불렀다. 그래서 복 돼지 세 마리가 됐다면서 무척 좋아했다. 게다가 걷기를 하면 건강도 좋아진다. 한 번 할 때마다 허리띠 구멍이 둘 씩 줄어든다.
두 번째 걷기는 올해가 신축년(辛丑年)이라 소띠 해기 때문이다. 횡성사랑에서 비롯했다. 안0철 씨가 몸을 담고 살고 있는 마을을 위해서 할 일을 찾다가 생각했다. 횡성은 아무래도 한우가 잘 돼야 모든 게 잘 된다고 생각했다.
걷기를 가기 전 마을사람 몇 명이 동조를 했다. 오0영, 김0환, 최0묵, 홍0표 씨 등이 함께 가기로 했다. 그러나 모두 자신이 없는지 우천에서 정동진까지만 걷겠다고 했다. 그래서 안0철 씨 혼자서 인천 송도에서 출발했다.
인천의 상륙작전기념관에서 출발해서 강릉 정동진의 모래시계까지 가는 코스이다. 이 코스를 잡은 원인은 군대생활을 인천 송도에서 했던 기억 때문에 이곳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쪽 바다를 접해 있어 국토 서쪽 끝이라는 의미를 띄기 때문이다. 게다가 6.25한국전쟁을 끝내고 민주주의를 수호한 계기를 만든 상륙작전기념관이 이곳에 있다는 상징 때문이다. 그 의미는 역사와 개인의 의견이 상반되지만 어찌 되었든 전황을 바꾼 사실은 맞다. 그리고 강릉의 정동진 모래시계를 종착지로 잡은 것은 국토 정동의 진이 있던 곳이며, 안방극장 <모래시계>로 잘 알려진 곳이기 때문이다.
안0철 씨는 국토횡단을 하기 전에 연습을 많이 했다. 걸을 때는 신발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신발로 실험을 했다. 안전화를 신고도 연습을 했는데 안전화는 물집이 생겼다. 그래서 2년 전 신었던 신발로 다시 걷기로 했다. 신발 바닥은 닳았지만 발이 편하고 물집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뒷굽이 다 닳은 운동화 한 켤레를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어쩌면 가장 영광스런 물건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잘 보관하고 있다.
혼자 인천 송도에 갔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안광철 씨는 택시 기사에게 부탁을 해서 출발 사진을 촬영해서 국토횡단을 하는 사실을 알렸고, 중간에는 식당 주인에게 부탁을 해서 사진을 찍었다. 준비한 현수막을 펴고 취지를 알리면 모두 “아휴, 대단하세요,”라고 놀라면서 기꺼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이 사진을 함께 하기로 한 친구들에게 보냈더니 언론에 나오기도 하였다.
송도에서 출발하여 막 걷고 있는데, 횡성군수님이 전화를 주셨다. 그때가 새벽 5시 20분이었다.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나 횡성군수 장0상이에요.”라는 거였다. 군수님은 걱정이 돼서 전화를 한 것이다. 그런데 군수님 전화를 받고 나니, 감격해서 엄청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었다. 생각에 “군수님이 날 쳐다보고 있구나!” 그런 생각에 그냥 신이 나서 아픈 줄도 모르고 걸었다 그 이튿날도 전화오고, 그 다음 날도 전화를 해서 위로하니, 힘든 줄을 모르고 걸었다.
안0철 씨는 원래 걷기를 무척 좋아한다. 환갑 때 부부동반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는 한라산 등반을 하였다. 친구들은 안0철 씨 때문에 계획을 바꾸어 한라산을 등반한 것이다. 그 기억이 좋아서 안0철 씨의 부인이 나중에 다시 한라산을 가자고 했을 정도이다. 이런 경험은 올해 친구들을 만나면서 구체화 되었다. 친목계에서 국토횡단을 하자고 말하면서부터이다. 그때 많은 친구들이 동참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가려니 인천부터 동참한 친목계 회원은 한 명도 없고, 우항에서 정동진까지는 동참을 했다. 모두 부담감 때문이었다.
평창 오대산 만과봉에 가서는 함께 걷던 세 사람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코로나여 물러가라! 독도는 우리 땅! 한우는 횡성 한우!”
만과봉은 세조대왕이 상원사에 와 있을 때 과거시험을 치른 곳이다. 그 때문에 더 의미가 있었다. 일행은 대관령을 넘을 때는 옛길로 갔다. 대관령에 올랐을 때는 강릉이 보이고 동해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드디어 정동진 모래시계탑에 도착했다.
“야, 다 왔다.”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소리를 쳤다. 우천면장을 비롯해서 몇몇 분들이 마중을 와서 환영을 해 주셨다. 도착 기념으로 꽃다발을 안겨주었고, 다시 한 번 현수막을 걸고 횡성한우의 발전을 빌었다. 기념으로 주문진항구에 가서 밥을 먹고 우천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