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
틱낫한 스님 저
*열
이름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 한 그루 옥수수 >
P.121
🌱팝콘을 만들려면 옥수수 알을 튀기는 대신 흙이
조금 담긴 화분에 심는다고 합시다.
그러면 작은 옥수수 그루를 쉽게 기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준다면 몇 주 지나지
않아 이파리 하나둘 돋아날 것입니다.
🌱이즈음에 이르면 옥수수 씨앗은 더이상 그 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옥수수 씨앗의 모습을 더는 간직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습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씨앗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비존재의
영역으로 들어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씨앗을 심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씨앗은 이제 한 그루 옥수수로 자라났습니다.
그러므로 모습이 바뀌었다고 해서 씨앗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옥수수 씨앗이 옥수수 그루 안에 아직
살아 있다는 점에 동의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옥수수 씨앗이 옥수수 그루의 모든 세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옥수수 씨앗을 옥수수 그루와 분리해서 밖으로
끄집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옥수수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오직 식물의 모습만 볼 뿐,
씨앗이 되었던 옥수수 알은 보지
않습니다.
식물을 볼 때 그 씨앗까지 보려면 약간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수행입니다.
🌱우리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분들은 언제나 우리 안에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서 우리
부모님을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의 아버지나 우리 안의 어머니에게 말을
걸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를 익숙한 형상으로는 더이상
볼 수 없지만 부모 자식 간의 대화는 언제나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더이상 익숙한 상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이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옥수수 그루가 옥수수 그루일 뿐 옥수수 씨앗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옥수수 그루를 온전히 보지 못한
것입니다.
아들이 그저 아들일 뿐이고 아버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아들을 온전히 보지 못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아들도 없습니다.
아들에게서 아버지를 없애버리면 아들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없으면 아버지는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원인과 결과는 항상 함께합니다.
🌱[반야심경]은 몸이 비어 있다는 사실,
즉 색이 곤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모든 상을 초월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상을 초월할 때 ‘나’ 혹은 ‘내 것’이라고 할 만한
분리된 자아 개체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알게됩니다.
몸과 모든 현상이 공한 것은 물론이요,
우리가 사물을 가리키고 묘사할때 사용하는 상도
공합니다.
현상과 상은 모두 본질적으로 비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가르침을 ‘공상’과 ‘무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든 상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태어남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
오고감과 같은 상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이라는 지혜가 가닿고 실재의 참 본성인 ‘그러함’에
가닿으려면 공이라는 상 혹은 표식조차도 버려야
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이 수행의 인연공덕으로
보리사 뜨락에 아이들 웃음이 가득하기를
이 수핼의 인연공덕으로
아침에 한 사람을 기쁘게하고
저녁에 한 사람의 슬픔을 거둘 수 있기를
이 수행의 인연공덕으로
세세생생 부처님법 만난 은혜 갚고 살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연아 합장정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