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부흥회 마지막 말씀입니다.
-오늘의 말씀-
Ⅶ. 일상이 영생이 되게 하라
02/11월(月)마 6:31-34/ 벧전 1:3-7 / 골 3:1-4
일상이 영생인 삶은 이 땅에서의 삶을 영원의 세계와 연결되게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일상이 영생이 됩니다.
일상이 영생이 되면 하나님 사랑에 눈이 떠집니다.
예수께서 하는 행동이 다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그 대상이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은 감정에 충실한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다른 사람을 살려 내는 것입니다. 사랑에 눈 뜨면서 하는 일은 일상이 영생이 됩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는 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눈 뜨면 두려움과 결핍이 사라집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두려움에는 예수 생명이 없습니다. 형벌만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 안에 거할 때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일상이 영생이 되면 내 마음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상한다는 것은 마음은 내가 가지고 있는데 타인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 자아의 삶입니다. 내 마음의 열쇠가 타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할 수는 있지만 마음을 조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거짓 자아에서 참 자아로 가는 삶입니다. 만일 타인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면 마음을 닫으면 됩니다. 내 마음의 열쇠를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키는 내가 혹은 하나님의 손에 드려야 합니다. 내가 죽고 예수가 사시면 마음의 열쇠를 주님이 가지고 막아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하나님이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 사랑,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능력은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입니다. 절제는 나 자신을 조절하는 마음입니다. 나쁜 감정은 내 마음이 아니니 바로 좇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일상이 영생이 되면 감사(풍성)가 넘치는 삶이 됩니다.
일상이 영생이 되면 결핍이 사라지니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실존적으로 채워집니다. 우주보다 크신 분이 내 안에 오시니 하나님 생명이 부요합니다. 남을 도와주고, 전도하고, 타인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결핍이 해결되지 않으면 영생의 삶이 되지 못합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한 두 가지는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터진 웅덩이는 욕심으로 생긴 거짓 자아입니다. 거짓 자아에 붙들리면 욕심이 많아지고, 욕구불만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거짓 자아의 삶은 일종의 정신질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거짓 자아에 붙들려 정신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세상보다 크신 주님이 오셔야 채워집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
주님이 세상보다 큽니다. 주님이 오시면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대부분 자신에게 불만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불만을 투영시키게 되어 대인관계가 좋지 못합니다. 내면이 채워질 때 타인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에릭프롬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과 이기주의는 전혀 다르다고 말합니다. 자기 소중성은 내 속에 주님이 오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속에도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도 귀중합니다.
내가 죽고 주님이 살면 내가 하는 일이 하늘(영생)과 연결이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우리 인생은 아직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나의 최고의 날은 천국에서 열려집니다. 내가 드려진 재료로 하늘의 집을 짓게 됩니다. 우리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일상의 삶이 영생이 되면 긍정적 종말론(재림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우리나라 기독교는 부정적 종말론입니다. 사단에게 미혹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참고 견디며 주님의 재림만 기다리면 됩니다. 긍정적인 종말론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 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주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긍정적 종말을 보게 됩니다. “너희에게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 1:7)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은사와 능력이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긍정적 종말론이 확실한 복음입니다.
일상의 삶이 영생이 되면 세상 속에서 초월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에 거하면 초월의 삶을 살게 됩니다. 높은 하늘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귀다툼을 하며 사는 모습이 한심해 보입니다. 톨스토이는 인생을 난감한 상태로 묘사합니다. 이런 난감한 인생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삶은 꿈입니다.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일상에서 영생으로 가는 삶입니다. 인생을 여유 있게 살아야 합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경기의 재방송을 보면 여유 있게 경기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면 승리로 완성됩니다.
일상이 영생과 연결되려면 과거나 미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미 지나간 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대한 염려, 근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 3:12-13) 과거나 미래에서 벗어나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면 됩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파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주님께 붙잡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됩니다.
And...
요셉은 비록 노예지만 다른 노예들에 비해 열심입니다. 보디발의 눈에 요셉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죄수들에 비해 눈빛이 살아 있습니다. 그러니 간수장의 눈에 들어옵니다. 요셉은 거짓 자아에 붙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마음(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타인에 의해 내 마음이 상하는 사람은 가장 낮은 인격입니다.
‘마음이 상할 때’ 그 자리를 피하고 주님을 찾는 것이 마음의 열쇠를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나쁜 감정, 우울한 생각은 마귀가 준 마음으로 빨리 쫓아내야 합니다. 시기, 질투, 음란, 미움, 걱정, 근심은 거짓 자아로 다른 사람의 나쁜 영향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참 자아는 날마다 기쁨, 감사로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나님 생각을 수혈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일상이 영생이 되는 길은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 복음으로 믿음으로 됩니다. 일상의 삶을 예수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 안에 있는 나는 참 자아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 예수가 보입니다.
영생은 예수 생명입니다. 예수 생명은 시작과 끝이 없습니다. 죽음이후부터 시작하는 그 시간이 실재입니다. 그러나 일상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일상은 꿈이니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지워지기 때문입니다. 나와 관련된 것, 나 중심으로 살았기에 내가 끝난다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목숨은 순간 끊어집니다. 십자가는 목숨이 살아 있는 지금 이곳에서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서 천국(하나님 나라)이 들어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죽은 자리, 나의 무덤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사는 목적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 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사는 이유는 내 속에 주님이 사시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사는 이유는 내 속에 주님이 사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를 통해 하실 일이 있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 하실 일을 바라며 사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이 영생이 되려면 날마다 거짓 자아에서 벗어나 참 자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예수와 함께 해야 합니다.
일상의 삶은 꿈입니다. 다 지나갑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있다면 속은 것입니다. 이 세상은 다 지나가고 영생의 삶이 기다립니다. 이 세상의 삶에서 참 자아를 찾아야 합니다. 일상에서 우리의 선택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존 오트버그는 ‘영생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고 후회하는 삶은 속은 것입니다. 일상의 삶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합니다. 거짓 자아에서 참 자아를 찾는 삶이 일상이 영생이 되게 하는 삶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삶,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삶이 바로 일상이 영생이 되게 하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 일상이 영생이 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S
※ 예장 통합 서남성서신학원에서 2019년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2년 4학기제로 수업은 월, 화, 목 오후 6시40분에서 9시 50분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은 평신도, 사역자 환영합니다. 각종 장학제도 있습니다. 졸업 후 전도사 고시, 서울장신대학교 3학년 편입 가능합니다. 현재 원서접수중입니다. 자세한 상담 010-8886-6632번으로 문의 바람.
※ 제 38회 전국평신도 초청 전도동력세미나가 2019년 2월 18일(월)~ 20일(수) 곤지암 소망수양관에서 있습니다. 민경설 목사의 주강사로 평신도 전도자 만들기 프로젝트는 누구든 참석하면 전도자가 되고 교회는 부흥합니다. 문의 1544-0647(미래목회 연구원)
하늘 소망
https://youtu.be/34nuDVgBN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