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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성씨 관련 글들을 보면 이따금 "6대 국반(國班)"이라는 출처 불명의 어휘가 눈에 띈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위 6개의 양반 가문'이라는 뜻일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인지라 "국반(國班)"의 보다 확실한 뜻을 알아보기 위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열람했지만 표제어(標題語)로 등록되어 있지 않아 그 뜻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알았다.
『조선왕조실록』ㆍ『승정원일기』 등 조선시대 문헌을 검색해 보아도 국반(國班)이라는 용어는 발견되지 않는다. 분명히 쾨쾨한 조선시대 냄새가 짙은 말인데 정작 조선시대에는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간행한 『한국고전용어사전』을 비롯하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의 『한국한자어사전』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양반(兩班)' 항목의 기사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발견된다.
". . . . . 같은 양반 중에는 문묘에 종사된 대현(大賢)이나 종묘 배향공신(配享功臣)을 배출한 국반(國班) 및 대가(大家) · 세가(世家) 이외에 도반(道班) · 향반(鄕班) · 토반(土班) · 잔반(殘班) 등의 구분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따라 벌열(閥閱)이 아닌 미천한 양반은 양반으로서의 대우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말에 이르러 전통적인 신분 체제가 붕괴되면서 더욱 심해져서, 양반이라는 칭호 마저 ‘이양반’, ‘저양반’ 하는 대인칭(對人稱)으로 격하되기에 이르렀다. . . . . ." ※집필자 이성무(1937~2018): 국사학자. 국민대ㆍ한국정신문화연구 교수, 제7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 학술원 부원장 등 역임.
위의 문맥에서 보면, 국반(國班)은 "문묘에 종사된 대현(大賢)이나 종묘 배향공신(配享功臣)을 배출한" 양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나무위키>의 '양반' 항목에서는 위의 해석을 확대 또는 수정(?) 해석하여 6개의 특정한 가문을 국반(國班)으로 보고 있다.
". . . . . 문묘 배향 18현이나 종묘 배향 공신을 배출한 가문을 국반(國班)으로 부르기도 한다. 문묘 및 종묘에 함께 배향된 인물을 배출한 가문은 총 6개 가문이며 다음과 같다.
여주이씨: 회재 이언적(1491~1553). 문묘(1610년 9월), 종묘(1569년)
진성이씨: 퇴계 이황(1501~1570). 문묘(1610년 9월), 종묘(1610년 3월)
덕수이씨: 율곡 이이(1536~1584). 문묘(1682년), 종묘(1886년)
은진송씨: 우암 송시열(1607~1689). 문묘(1756년), 종묘(1776년)
반남박씨: 현석 박세채(1631~1695). 문묘(1764년), 종묘(1722년)
광산김씨: 신독재 김집(1574~1656). 문묘(1883년), 종묘(1661년) . . . . "(열람의 편의를 위해 약간 편집함)
※율곡 이이와 우암 송시열은 추배(追配)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종묘 배향 시기가 늦어짐.
그런데 <나무위키>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국반(國班)에 대한 정의(定義)와 유사하게 "문묘 배향 18현이나 종묘 배향 공신을 배출한 가문"이라 하면서 정작 해석은 문묘와 종묘 양묘에 함께 배향된 인물을 배출한 가문으로 살짝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위키백과>를 보니 <나무위키>와 마찬가지로 국반(國班)의 의미를 살짝 비틀어 놓았다. 다음은 <위키백과>의 해석이다.
"문묘 종사 대현과 종묘배향공신을 동시에 배출한 여섯 가문을 6대 국반(國班)이라고 하기도 한다."
<나무위키>와 <위키백과>는 똑같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양반(兩班)' 항목에서 이성무 교수가 제시한 국반(國班)의 정의를 인용하면서 원래 문구(文句)의 의미를 확대 또는 수정(혹은 왜곡? 곡해? 오해?)하여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터넷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도 눈에 띈다.
". . . . . 호서 지역 명문이자 조선시대 '3대 국반(國班, 양반 중 양반)'으로 꼽혔던 광산김씨 문중. . . . ."(https://v.daum.net/v/20151218160114286)
". . . . . 삼대 정승(三代政丞) 집인 달성 서씨, 시대(時代)마다 인물(人物)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최고의 국반(國班)으로 자긍(自矜)하는 연안이씨도 문묘에 배향된 인물이 없다. . . . . ."(https://cafe.daum.net/hanilforum/6MFU/25617?q=%E5%9C%8B%E7%8F%AD&re=1)
". . . . . 김극효는 본인의 학행과 처가의 배경을 바탕으로 당대의 명사로 부상하게 되고 두 아들 김상용, 김상현의 현달을 계기로 17세기 이후 장동 김씨는 명실공히 국반(國班)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 . . . ." (https://blog.naver.com/moonhi1944/223355917300)※장동김씨(壯洞金氏): 이른바 신안동김씨(新安東金氏)의 한 분파(分派).
위의 예들에서 보듯이, 사람(또는 가문)에 따라 국반(國班)의 의미를 조금씩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광산김씨를 '3대 국반'이라 했는데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아마 '조선시대 3대 대제학을 배출한 광산김씨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가문, 연안이씨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가문, 대구서씨[또는 달성서씨?] 약봉(藥峯) 서성(徐渻) 가문'을 일컫는 말이리라. 그런데 연안 이씨와 대구서씨는 문묘 배향 인물을 배출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명실공히 국반(國班)의 지위'에 올랐다고 하는 장동김씨 역시 문묘에 배향된 인물이 없다. 그럼에도 국반(國班)이라 일컫는 것 같다. 결국, 국반이란 말은 쓰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반(國班)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지는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닌 듯하며, 아직 사전상에서 명확히 정의된 것도 아닌 듯하다. 설령 일각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의미, 즉 '문묘(文廟)와 종묘(宗廟)에 동시에 배향(配享)된 인물을 배출한 가문'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우스꽝스럽게 들린다.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전체 종족(宗族)이 어느 날 갑자기 국반(國班)이 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예를 들어, 현석공(=남계공)(박세채: 반남박씨 15세)이 양묘(兩廟)에 배향되었다고 해서 어느 날 느닷없이 반남박씨가 국반이 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현석공의 직계 후손들이야 자랑스러운 조상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반남박씨 전체를 국반(國班) 운운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으로 합당한 일인가? '국반(國班)'이라는 말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과연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만들었을까?
끝으로 한마디 더 보탠다면, 어떤 성씨를 두고 국반(國班)이니 양반(兩班)이니 명문(名門)이니 하는 것은 모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담론(談論)일 뿐이라는 것이다. OOO씨가 21세기 대한민국 현재에도 그대로 국반이요 양반이요 명문이요 하는 소리는 그야말로 허황한 잠꼬대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것은 그저 지나간 과거일 뿐, 그걸 무슨 대단한 자랑인 것처럼 떠들어대면서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이야말로 '팔불출'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 옛날 이야기는 그저 호사가(好事家)들의 심심파적 거리로만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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