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5 주일설교
겨자씨를 심는 하나님의 마음
마태복음 13:31-32
사람이 무슨 중요한 말을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엉뚱하게 이해하면 참 속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천국 비유에 대해 사람들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으니 예수님은 얼마나 답답하실까요?
지난주에 살펴본 ‘가라지 비유’도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했는데 오늘 살펴볼 ‘겨자씨 비유’도 많은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비유의 내용도 오해하고 교훈도 오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 비유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고 바른 교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음 몇 가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겨자는 어떤 식물일까요?
2. 모든 씨보다 작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3. 나무가 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4. 새가 깃들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5. 이 비유를 통해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겨자는 영어로 mustard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겨자를 부를 때 채소는 겨자라고 부르면서도 겨자 씨앗 소스는 mustard라고 부릅니다. 겨자 씨앗을 갈아서 식초, 겨자씨 기름, 전분, 설탕 등을 섞어 만든 소스가 우리는 먹는 머스타드 소스입니다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 겨자는 mustard인데 사람들이 성경에 나오는 겨자를 어떤 특이한 식물로 오해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겨자씨가 모든 씨보다 작다는 말과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말 때문입니다. 모든 씨보다 작은 데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식물, 그게 무엇일까요?
2. 모든 씨보다 작다는 말씀의 의미
겨자씨가 모든 씨보다 작다는 말씀 때문에 사람들은 아주 작은 씨앗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이스라엘의 야생담배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담배씨가 작은 편에 속하는데 이스라엘의 야생담배, 타바코 씨도 아주 작습니다. 게다가 자라면 제법 큰 나무가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한 겨자씨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베드윈 사람들은 까만 타바코 씨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관광객에게 팔았고 순진한 순례객들이 그것을 사 와서 성경공부 시간에 보여주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있는 타바코 나무는 1800년대에 이스라엘에 들어왔는데 1세기의 예수님이 1800년 후에 들어올 식물 이야기로 사람들을 가르쳤을 가능성이 없죠. 그러므로 겨자는 타바코가 아니고 우리가 먹는 식물인 겨자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겨자씨가 모든 씨보다 작다고 하셨을까요? 정답은 비교 대상 때문입니다.
우리 집에 세 아들 가운데 막내아들의 키가 가장 큽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첫째아들을 어릴 때부터 큰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크다는 말은 키를 말하거나 덩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막내는 군대에 가기 전까지 ‘아가야’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막내가 군대에 갈 때도 키가 120센티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정황을 모르는 사람이 우리 집 장남은 골리앗이고 막내는 피터팬인 줄 생각한다면 웃기는 이야기죠.
예수님이 겨자씨가 모든 씨보다 작다고 하셨을 때 비교 대상은 세상의 모든 씨앗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좀 전에 씨뿌리는 비유와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시고 이제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씨뿌리는 비유, 가라지 비유에서 등장한 씨앗은 무슨 씨입니까? 밀이 보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는 겨자씨는 밀이나 보리에 비교해서 가장 작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모든 씨보다 작다”라고 하신 것은 밀, 보리, 겨자 중에 가장 작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밀이나 보리는 1m가 안 되지만 겨자는 2m나 자랍니다.
3. 나무가 된다는 말씀의 의미
여러분은 나무와 풀의 차이를 아시지요? 나무는 다년생으로 자라고 점점 굵어집니다. 그래서 나무는 풀보다 굵고 단단합니다.
그러면 대나무는 어떨까요? 대나무는 식물학적으로 볼 때 풀입니다. 대나무는 단단하고 다년생으로 자라기에 흔히 나무라고 부르지만 처음 죽순으로 올라온 굵기로 키만 자랍니다.
조선 시대 윤선도 시인은 대나무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고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벼는 풀이지 나무가 아닙니다. 저는 어릴 적에 모내기를 해보았습니다. 이른 봄에 아버지가 못자리를 만들고 볍씨를 뿌려 놓으면 싹이 자랍니다. 모가 15센티쯤 자랐을 때 그것을 뽑아서 논에 나누어 심는 것을 모내기라고 합니다. 8살 때 모내기를 하는데 누나가 내 다리에 거머리가 붙었다고 알려주었어요. 깜짝 놀라 울면서 팔짝팔짝 뛰었는데 나중에 보니 떨어져 나가고 없어졌어요. 그랬던 제가 서울 아이들이 벼를 쌀 나무라 부른다는 말을 듣고 어이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벼는 나무가 아니거든요.
그러면 옥수수는 단단하고 키가 2m까지 자라는데 그것은 나무인가요? 아무리 크고 단단해도 나무가 아닙니다.
이처럼 흔히 나무라고 부르는 것과 식물학적 분류는 다릅니다. 모든 채소가 봄에는 잎사귀뿐이지만 여름이 되면 추대가 올라와서 꽃이 피고 씨가 맺힙니다. 겨자도 마찬가지죠.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채소의 줄기가 올라오면 그것을 나무라고 불렀습니다. 겨자는 추대가 1m~2m까지 자라는데 그것을 예수님은 나무가 되었다고 하셨고 당시 사람들은 다 알아들었습니다.
4. 새가 깃들인다는 말의 의미
예수님께서 겨자 나무에 새가 깃들인다고 하신 말씀은 더욱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우리말에 깃들인다는 말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그 속에 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깃들인다고 번역된 헬라어 카타스케노오(κατασκηνόω)는 ‘산다’, ‘거주한다’. (가지에)‘앉는다’ 등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겨자가 2m 정도로 자라서 씨앗이 익으면 작은 새들이 그 사이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새가 겨자 나무 사이에 날아다니거나 가지에 앉는 것을 예수님은 카타스케노오(κατασκηνόω)라고 하셨습니다.
5. 겨자씨 비유의 교훈과 하나님의 은혜
이제 겨자씨 비유의 교훈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봄에 갈릴리에 가면 온 들판에 노란 겨자꽃이 만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5월쯤에 겨자씨가 익고 겨자 나무가 마르면 새들이 그 속에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흔한 겨자는 굳이 밭에 심을 필요가 없는 식물입니다. 땅을 갈고 돌을 골라낸 밭에는 밀을 심어야 식량이 나올 텐데 거기에 겨자를 심는다면 이상한 사람입니다.
저는 봄에 망초 나물을 즐겨 먹습니다. 망초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흔해서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망초 나물을 먹기 위해 밭에 망초를 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망초는 1897년에 경인 철도 건설 때 철도 침목에 씨가 묻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철도 주변에 많이 자랐는데 일제 강점기에 온 나라에 퍼지자 사람들이 망국초, 망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 농부가 밭을 갈아놓으면 제일 먼저 망초가 자라므로 망할 놈의 풀이라고 해서 망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망할 놈의 풀을 일부터 밭에 심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겠죠. 흔해빠진 망초를 그냥 잘라다 먹으면 됩니다.
우리나라에 망초가 흔하듯이 갈릴리 들판에 흔한 것이 겨자인데 그런 겨자를 밭에 심을 필요는 없습니다. 밭에는 한 평이라도 밀을 심어야 가족들의 식량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이해하고 생각하면 천국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심은 씨앗이고 그게 마구 자라서 점점 커진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예수님의 이 천국 비유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들판에 흔해 빠졌고 굳이 밭에 심을 가치가 없는 겨자씨 하나, 그것을 애써 갈아놓은 밭에 심는 농부, 그 바보 농부는 누구며 이것이 천국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천국의 특징을 이야기하신 것이지 농사 이야기나 채소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가치 없는 겨자씨는 겨자라는 식물이 아니라 바로 저에 관한 이야기이고 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여러분이 생각해도, 하나님이 저를 살리기 위해, 또 여러분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사림이 되어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모든 수치와 모진 고통을 당하고 죽어주실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81억 명의 인구가 있는데 그중에 나 하나가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 하나 천국에 데려가신다고 나 때문에 천국에 무슨 보탬이 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죠. 여러분이 천국에 간다고 천국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찮은 것에 엄청난 투자를 하셨습니다.
심을 필요가 없는 겨자씨, 들판에 흔하디흔한 겨자씨를 힘들게 일구어 높은 밭에 정성껏 심는 어리석은 농부처럼, 천국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나 같은 존재, 여러분 같은 사람 하나를 위해 생명을 주시기를 아까워하지 않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등의 가치가 없는 저와 여러분에게 엄청난 투자를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가 하나님더러 가치 없는 것에 투자했다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다. 그저 황송하고 너무나 감사하고 그 위대한 선택과 결정에 진심을 다해 목이 터지도록 찬송할 따름이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물 삼으시고 죄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하나님은 하등의 가치가 없는 나 하나를 살리시려고, 천하의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불사하고, 그 아들을 보내어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야 할 아무런 가치가 없고 그럴 필요가 없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고 결정하여 저를 위하여, 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신 사랑, 그것이 바로 겨자씨 비유의 교훈입니다.
이제 이 사랑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이 합당한 반응입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그 감사가 차고 넘치면 우리 역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바보같이 투자하는 것이 합당한 반응입니다.
첫댓글 https://youtu.be/i7F7aqu2qSM
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