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2(예배를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
2021. 8. 29(주일낮예배) 요한복음 4:23-24
하모나이즈라고 하는 합창단이 있다. 합창올림픽이라 불리는 월드콰이어 경연대회에서 2016년과 2018년 2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한 실력있는 합창팀인데, 그 하모나이즈가 제 10회 월드콰이어경연대회가 열린 남아공에서 부른 노래 중에 하나가 라이언킹에 나오는 Circle of life이다. 남아프리카 흑인민족들이 사용하는 졸루어(Zulu)로 된 노래인데, 아마 여러분들도 한번 이상은 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제일 먼저 젬베소리가 들리고, 그 후에 난트 인고냐마 바기티 바바(Nants ingonyama bagithi Baba)하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먼저 하모나이즈가 부르는 Circle of life를 보시기 바란다. <Circle of life 공연 동영상>
Circle of life 의 가사는 이렇다.
보아라 사자왕이시다. 동물의 왕 사자다.
우리 이 땅위에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세상에 너무 많이 있어
돌아보면 짧은 시간 아쉬움 가득하겠지만
고갤 들어보면 저기 하늘 끝에 우리 낙원 널리 펼쳐져
모두 살아가는 끝이 없는 길 고난이와도 함께 하면
언젠간 우리 낙원을 찾겠지, 희망안고 우리는 간다.
이 노래의 가사의 의미는 해야 할 일과 또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우리의 삶은 아주 짧고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안고 낙원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래할 때 계속하여 들리는 인고냐마 엥구 이나마발라( Ingonyama nengw' enamabala)는 졸리족이 사용하는 특별한 용법이 있을 것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어 뜻만 해석한다면 사자로구나 사자와 표범이 이 널따란 곳으로 오는구나 이다. 사자와 표범이 우리 편인지 적인지 모르겠지만, 희망을 안고 낙원을 향하여 가는 발걸음에는 만나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희망을 안고 낙원을 향하여 가고 있는가? 민수기의 시작은 전쟁할 수 있는 백성의 숫자를 헤아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숫자를 헤아린 날이 애굽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날이라(민 1:1)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출애굽 2년 2월 1일에 인구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민수기 9장 1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키는 날을 기록한다. 그 부분을 읽어보기 바란다.
(민 9:1-2)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첫째 달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월절을 그 정한 기일에 지키게 하라
하나님은 애굽땅에서 나온 다음 해 첫째 달에 유월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2년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킨 것이다.
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군사를 헤아리기 전에 유월절을 지켰겠는가? 가나안 땅을 향하여 광야길을 걷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군사의 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인구조사를 하는데, 그보다 먼저 한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었다는 그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유월절을 먼저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그런데 유월절을 준비할 때 사람의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된 사람이 모세와 아론을 찾아왔다. 그리고 이 사람은 모세와 아론에게 우리가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었거니와 우리를 금지하여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못하게 하심은 어찌함이니이까?(민 9:7)하고 원망썩인 말을 한 것이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시체를 만졌거나 여행중에 있는 자는 다음달 14일에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한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는 이 사실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스라엘의 회중에서 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말이겠는가? 미국에서 사역하였던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다. 그 목사님의 장인은 미국에서 힘을 좀 쓰시던 분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장로가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만, 이전에 가진 그 성품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사위가 목사가 되자 종종 교회에서 힘들게 하는 장로 없는지를 물었다. 그러면 목사님은 장로님이 다 좋으시다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사실은 목사님을 힘들게 하는 장로님이 한분 있었다. 목사님이 기도하며 준비한 사역을 당회에 가지고 가면 언제나 반대하면서 장로님이었는데, 그것을 장인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장인이 그 장로님을 불러서 라스베가스가 있는 네바다 사막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끊없는 사막 중간에 차를 세워두고 여기에 파묻어 버릴까? 아니면 목사님과 함께 교회를 잘 섬길래? 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 후 장로님은 변화되어 목사님의 좋은 동역자가 되었다고 한다.
왜 목사님 교회 장로님은 라스베가스가 있는 사막을 다녀온 후에 변화되었겠는가? 사막은 사람을 죽여도 묻어버리면 시체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광야길을 걷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공동체에서 끊어지면 이와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었습니다는 고백을 통하여 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유월절을 지키고, 또 출애굽 2년 1월 14일에 두 번째 유월절을 지켰다.
그러면 세 번째 유월절은 언제 지켰겠는가? 40년이 지나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넌다. 그리고 길갈에 캠프를 친 이스라엘은 여리고전투를 앞두고 할례를 행한 후에 유월절(수 5:10)을 지켰다. 요단을 건너고 여리고 전투를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는 것을 기억하고, 또 유월절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하여 주었습니다는 그 사실을 다시 기억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은혜를 기억하고 나아갈 때에 여리고가 무너지고, 가나안 전투에서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그렇게 많이 지키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네 번째 유월절은 히스기야 왕(역대하 30장)때 지켜졌고, 그 다음에는 요시아 왕(왕하 23장)때 그리고 그 다음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 후 유월절(스 6:19)을 지켰다. 제가 살펴 본 바에 의하면 구약에서 유월절을 지킨 사건은 이렇게 6번 나온다. 그래서 열왕기하 23장은 이렇게 기록한다.
(왕하 23:22-223)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여 주었다는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스라엘은 분열과 멸망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였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겠는가? 1899년 역사에 큰 영향을 준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그런데 한명은 한명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접경도시인 브라우나우 암 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지방세무서장이었기에 귀족들이 다니는 중산층의 삶을 살았지만,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으로 많은 상처를 받으며 이 아이는 자라났다. 그리고 16살에 군에 입대하여 군인이 되었다. 많은 아픔과 상처를 가진 이 아이는 군인이 되어서 자신의 삶을 펼쳐나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아이는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다. 독일계 스위스 이민자 출신의 집안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해군사관학교에 떨어지는 바람에 웨스트포인트에 3수를 하여 들어갔다. 그리고 육군 보병소위가 되어서 직속 선배인 더글라스 맥아더장군의 부관으로 워싱턴에서 4년, 필리핀에서 5년 동안 일하였다. 그때 맥아더 장군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주에 최고의 사무원이었다고 말할 만큼 일을 잘하였다. 그런데 승진이 늦었던 이 아이는 그 이후 고속승진을 한다.
그런데 1899년 같은 해에 태어난 이 두 아이는 1944년 전투에서 대면한다. 그리고 11개월을 싸운 결과 한 아이는 1945년 4월 30일에 지하방공대피소에서 자살하여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때 전세계는 그 아이의 죽음을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한 그 아이는 1969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전세계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899년 같은 해에 태어난 이 아이들이 누구인지 알겠는가? 한명은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간 아돌프 히틀러이고, 또 다른 아이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이다. 두명다 독일계이고, 또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이들의 삶은 완전히 달랐고, 또 역사안에서 이들의 평가 또한 완전히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이들의 삶이 왜 이렇게 달라야 했겠는가? 아이젠하워의 삶에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아이젠하워도 고등학교를 한 해 늦게 졸업해야 했고, 또 3수까지 하였는데 자신이 원하는 해군사관학교가 아니라,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에 들어가는 실패도 맛보았다. 그랬지만 아이젠하워는 어릴 때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집안의 가훈을 늘 기억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실패할 때도, 또 전쟁할 때도, 언제나 하나님을 기억하였던 아이젠하워는 히틀러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무슨 말인가? 꼭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꼭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BD 721년에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성이 앗수르에 의하여 무너졌다. 그 후 앗수르는 사마리아성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그 성에 이방민족을 거주하게 하여서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들을 혼혈족이 되게 하였다. 그런데 혼혈족이 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생긴 가장 큰 고민이 예배였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었을 때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산당을 짓고 거기서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다. 그랬던 북이스라엘은 혼혈족이 된 이후에는 사마리아오경을 만들어서 그리심산에서 자신들을 위한 예배를 드리면 된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사가 하나님 앞에 합당했겠는가? BC 586년에 남유다도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무너졌다. 그리고 유다의 성전은 무너지고, 또 인재들은 다 바벨론으로 끌려가야 했다. 그때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지은 것이 회당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고, 범죄하여 먼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면 바라보고 기도할 방향이었던 예루살렘이 무너졌을 때 유대인들은 회당을 만들어서 거기서 말씀을 읽고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또 그 은혜를 사모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제사는 드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사는 성전에서 드려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다는 예배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께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산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21절)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수가성 여인에게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역사 안에서 아주 재미난 일이 일어났다.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회당을 만들어서 비록 그곳에서 제사는 드리지 않았지만, 말씀을 읽고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억하려고 노력한 그 회당에 사도바울이 복음을 들고 들어갔다. 그래서 회당을 중심으로 전도하여서 그 회당이 교회가 되게 하여서 하나님의 임재와 온전한 예배가 이루어지게 한 것이다.
제가 왜 이 말씀을 전하겠는가?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의 예배가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일 수 없어서 역사 안에 생각도 못한 독특한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라도 예배를 드리며 또 말씀을 배워서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억하는 자들을 통하여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를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사모하며 주를 찬송하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우려서 우리의 예배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