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장
民不畏威, 大威至矣. 無狎其所居, 無厭其所生. 夫惟不厭, 是以不厭. 是以聖人自知不自見, 自愛不自貴, 故去彼取此.
백성이 (저절로 그러한 재앙, 환란, 형벌, 법령과 같은) 위威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몸이 일부러 일삼아 사라지게 되거나 망가지게 되는) 큰 위威가 이르게 된다. (따라서 임금은) 그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백성의) 거처를 깔보거나 얕보는 바를 가지는 바를 없애야 하고, 그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백성의) 재화에 대해 만족스럽게 여겨야 한다. 이른바, 오로지, (임금은 그것에 대해) 만족스럽게 여겨야 하는데, 따라서 (백성이 그것을) 싫어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위威를 두려워하게 되며, 따라서 큰 위威가 이르지 않게) 된다. 따라서 성인은 (자신이 가지는 바가 있는 거처와 재화가 저절로 그러한 바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따라서 그것을) 일부러 일삼아 드러내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스스로 아끼고, (따라서 그것을) 일부러 일삼아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이른바 성인은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자신의 거처와 재화를 깔보고 얕보며 싫어하는) 저것을 내버리고, (그것에 대해 깔보거나 얕보지 않고, 만족스럽게 여기는) 저것을 취한다.
威者, 灾禍刑辟, 凡可畏之事, 皆是也. 大威, 謂死亡也. 不畏天者, 灾, 必逮之. 不畏人者, 咎, 必萃之. 不畏法者, 刑, 必加之. 不畏戕賊者, 疾病, 必嬰之. 患小而不畏者, 大僇, 必從之. 管子曰, 畏威如疾民之, 上也.
위威는 (저절로 그러한) 재앙, 환란, 형벌, 법령으로서, (백성이) 두려워할 만한 모든 것을 뜻한다. 대위大威는 (일부러 일삼아) 사라지게 되거나 망가지게 되는 것을 뜻한다. (저절로 그러한)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재앙이 반드시 미치게 된다. (저절로 그러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허물이 반드시 이르게 된다. (저절로 그러한) 법령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형벌이 반드시 더해지게 된다. (저절로 그러한 몸과 마음을) 덜어내고 해치는 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질병이 반드시 생겨나게 된다. (저절로 그러한) 환란이 작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크게 욕됨을 당하는 바가 반드시 따르게 된다. (따라서 춘추春秋시대) 관자(管子; 管仲, BC.716~645)는 (『국어國語』 권卷10 「진어4晉語四」에서) 일컬었다. “위威를 (저절로 그러하게) 두려워하는 바가 질병(을 두려워하는 것)과 (더불어) 같이 하는 백성은 (오래 살고 오래 보여지는 정도와 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狎, 狃也. 玩也. 畏之反也. 人, 知畏非常之事. 而不知可畏之, 尤在於居, 恒日用之間也. 莊子曰, 人之, 所取畏者, 衽席之上, 飮食之間, 而不知爲之戒者, 過也. 狎, 一本, 作狹. 無狹其所居, 則謂知足也.
압狎은 깔본다는 말이다. 얕본다는 말이다. 외(畏; 두려워한다)의 반대(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두려워할 줄 안다. 늘 그러하지 않은 일은.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두려워해야 할 바는 이른바 자리한다는 것을. (늘 그러하게 날마다 일부러 일삼아) 머무는 바(의 위아래)에, 늘 그러하게 날마다 일부러 일삼는 바의 사이에. (따라서) 『장자莊子』는 (「달생達生」에서) 일컬었다. “세상 사람들이 이른바 두려워하는 바를 얻어야 하는 것은 (일부러 일삼아) 옷깃을 여미는 일과 의자에 앉는 일의 위(아래)에 자리하고, (일부러 일삼아 물을) 마시는 일과 (밥을) 먹는 일의 사이에 자리한다. 이른바, (세상 사람들은 저절로 그러하게 그것을) 일삼거나 삼갈 줄 모른다. 잘못된 일이다.” 압狎이 어떤 책에는 협(狹; 비좁게 여긴다)으로 쓰여 있다. (따라서 무압기소거無狎其所居는) 무협기소거無狹其所居가 되고, 따라서 (임금은 그 백성이 사는 곳을 일부러 일삼아 비좁게 여기는 바를 가지는 바를 없애야 한다는 말이 되며, 임금은 그 백성이 사는 곳에 대해 저절로 그러하게)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所生, 謂服食奉養之具. 吾之, 所資, 以生者也.
소생所生은 (백성이) 입고, 먹으며, (백성이 몸을) 돋우고, 기르는 도구이다. 백성이 재화로 삼는 바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無厭不厭之厭, 皆厭, 足也. 是以不厭之厭, 謂厭, 惡也. 譬諸飮食, 不足, 則常不厭. 過足, 則飫. 飫, 則斯惡之矣.
무염無厭과 불염不厭의 염厭은 모두 (싫어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다거나,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로서, 이른바) 염厭이 만족스럽게 여긴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시이불염是以不厭의 염厭은 이른바 염廉이 싫어한다는 뜻이다. 비유컨대, 마시고 먹는 일에 있어서, 충족되지 못하면, 늘 그러하게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지나치게 충족되면, 물리게 된다. 물리게 되면, 싫어하게 된다. 〔옮긴이가 생각하기에, 염厭을 족足과 오惡로 분리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염厭을 싫어한다거나 꺼린다는 하나의 뜻으로 풀이해도 의미나 맥락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人之, 有生. 固不能以無養也. 毋寜, 常不足. 不足, 故不盡. 不盡, 故從身. 享之, 而常有餘. 是, 其不足, 乃所以爲有餘也. 故曰, 夫唯不厭, 是以不厭.
백성은 (저절로 그러하게) 재화를 가지는 바가 있다. 이른바, (백성이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재화가) 없게 되면,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대로 몸을) 기르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백성이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재화에 대해) 편안하게 여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되면, (몸이) 늘 그러하게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대로) 충족되지 못하게 된다. (몸이 늘 그러하게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대로) 충족되지 못하게 되면, (몸이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대로 오래 살게 되고, 오래 보여지게 되는 바를) 다하지 못하게 된다. (몸이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대로 오래 살게 되고, 오래 보여지게 되는 바를) 다하지 못하게 되면, (일부러 일삼아) 몸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재화에 대해, 편안하게 여기는 바를 가지는 바) 그것을 누리게 되면, (몸이) 늘 그러하게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대로 오래 살게 되고, 오래) 남겨지게 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이것이 그 (저절로 그러한 백성의 재화에 대해, 임금이 싫어하는 바가) 충족되지 못하는 바가 (그 백성의 몸이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대로 오래 살게 되고, 오래) 남겨지게 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이른바, 오로지, (임금은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백성의 거처와 재화에 대해) 만족스럽게 여겨야 하는데, 따라서 (백성이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자신의 거처와 재화를) 싫어하지 않게 된다.”
彼, 快然足, 於一時者, 雖美, 而無以繼之. 無以繼之, 則大威, 且至矣.
저,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백성의 거처와 재화에 대해, 깔보고, 얕보며, 싫어하는 바를) 충족하기를 즐기는 임금은 이른바 잠깐동안 (백성의 거처와 재화를) 아름답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백성은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대로 몸이 오래 살게 되고, 오래 보여지게 되는 바) 그것을 이어가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그것을 이어가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되면, (몸이 일부러 일삼아 사라지게 되고, 망가지게 되는) 대위大威가 이른바 이르게 된다.
無狎其所居者, 知懼以攝生, 無厭其所生者, 知足以嗇己, 皆, 畏威之道也.
그 (임금이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백성의) 거처를 깔보거나 얕보는 바를 가지는 바를 없애는 일은 (백성으로 하여금, 일부러 일삼아 오래 살게 되고, 오래 보여지게 되는) 삶을 지키는 바를 두려워할 줄 알게 하는 일이며, 그 (임금이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백성의) 재화에 대해 만족스럽게 여기는 일은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이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재화에 대해) 만족스럽게 여길 줄 알게 하는 일로서, 모두 (백성으로 하여금, 저절로 그러한 재앙, 환란, 형벌, 법령과 같은) 위威를 두려워하게 하는 방법이다.
見, 讀如現. 表諸外也. 貴者, 尊重之意. 愛其身者, 奉養, 欲其厚, 嗜好, 欲其得, 聲名祿位, 欲其加乎人, 此, 小人之愛也. 夫能眞愛其生者, 故不欲生生之厚. 故下章曰, 夫唯無以生爲者, 是, 賢於貴生也.
견見은 현現과 (더불어 뜻이) 같이 새긴다. 밖으로 드러낸다는 말이다. 귀貴는 (받들어) 높이고, 무겁게 여긴다는 뜻이다. 그 몸을 아끼는 데 있어서, (그 몸을) 돋우고 기르는 바가 그 두터운 바를 일부러 일삼고자 하고, (그 몸이) 즐겁게 여기고 좋아하는 바가 그 얻는 바를 일부러 일삼고자 하며, (그 몸에 대해) 불리는 이름과 부르는 이름, (그 몸에 대한) 봉록과 지위가 그 남보다 더해지는 바를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것, 이것은 소인小人이 (그 몸을) 아끼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삶을 아끼기를 잘하고, 참되게 하는 사람은 이른바 (제50장이 일컬은) “삶이 그 (유위有爲가) 두터운 바를 (일부러 일삼아) 생겨나게 하는 바”를 일부러 일삼고자 하지 않는다. 따라서 다음 (제75)장은 일컬었다. “이른바, 오로지, (일부러 일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로써, 삶을 일삼는 사람, 그가 (이른바) 삶을 (받들어) 높이고, 무겁게 여기는 데 뛰어난 사람(이자, 대인大人)이다.”
自知自愛. 則其, 所以有諸內者, 全. 不自見自貴. 則其, 所以待乎外者, 約. 全乎內, 則能攝生. 約乎外, 則能嗇. 此, 所以去彼之狎且厭而取此之不狎不厭也.
(성인은 자신의 거처와 재화가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바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따라서 그것을) 스스로 아낀다. 왜냐하면, 그는 (그) 안(內; 心·性)이 (무위無爲가) 오롯한 바를 가지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성인은 따라서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자신의 거처와 재화를) 일부러 일삼아 드러내지 않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 밖(外; 身·命)이 (무위無爲와 더불어) 얽히고설키는 바를 기대기 때문이다. (이른바, 성인은 그) 안으로 (무위無爲가) 오롯한데, 따라서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대로 자신의) 삶을 지키기를 잘하게 된다. (그) 밖으로 (무위無爲와 더불어) 얽히고설키는데, 따라서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대로 자신의 몸을) 아끼기를 잘하게 된다. 이것이 (성인이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자신의 거처와 재화를) 깔보고 얕보며 싫어하는 저것을 내버리고, 그것에 대해 깔보거나 얕보지 않고, 만족스럽게 여기는 이것을 취하는 까닭이다.
첫댓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