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문인 재조명 박정남
약력
1940년 평북 정주 출생, 중앙대학교(60학번) 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국문학) 졸업, 1968년 월간《경기교육》 ‘문예공모’에 시부 장원, 1969-1973년 월간《경기교육》 매호 창작 시 발표 전담, 교직 35년 경력(옥조근조훈장 수훈), 월간《문예사조》 시 ‧ 문학평론 등단, 시집 『반짇고리에 담는 뜻은』, 평론 50여 편 발표, 현 중앙대학교문인회 회장, 《작가와함께》 편집인이었다
흔적
박정남
뒷산에 올라
청정한 바람을
허파 깊숙이 한껏 담노라면
그곳에도 하수구가 있다
마을 어귀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눈인사하고
돌아서는 발길은
텅 빈 자취만 만들고
눈에 차는 건
눈 덮인 먼 산
파랗게 덧칠한 하늘에
시간의 흔적을 물고 사라지는
작은 텃새
한 마리.
간헐천間歇泉)
박정남
보일 듯한 아우성이
올곧게 용출湧出해도
하늘이 무거워
너무나 무거워
천 갈래, 만 갈래 찢기며
다시금 추락하는
영속의 반복
혼돈으로 회귀하는
초저녁
가슴속 뿌리 깊은 응어리는
저 멀리 날려야 하는데
한사코 뱉어야 할 텐데
힘겨운 순리를 막는 건
숙명의 배반
시간은 야금대며
오가는 속에
엉킨 나날이 고요할 성싶지만
끔찍이 반복되는 거친
용트림과 추락
그래도 추악한 세태 속
천하가 잠잠하길
목이 타도록 기다려도
피가 마르게 애원해도
지겹게 찾아드는
침묵의 또 하루
독백‧2
- 왜 그러니?
박정남
세상에, 왜들 그러니, 나가는 자, 지키는 자, 모두가
왜들 그러니. 젊어져야 새로운데- 탈각(脫殼)해야 새 살이 돋는데- 나라 판 속물 다섯보다 철면피 열은 못 보고 노각(老殼)에 싸여 입만 뒤틀고 있으니. 몇 시간 노래하기 위해 매미는 긴긴날 허물벗기를 하고, 자작나무는 몇 치 몸을 키우려고 거듭거듭 살을 도려내는데, 인간의 탈을 쓰고 자뽕에 취해 귀동냥한 고사성어 몇 마디로 성인군자인 양 조잘대는 박새 무리, 시간을 역류시켜 유년으로 돌아가 언어 보습 다시 받아야 바른말 쓸 건지. 있는 재주 다 동원, 꼼수로 살아가며 한 걸음 앞을 헤아리지 못하는 무리, 왜들 그러니. 올곧게 백 년을 살고 꽃 한 번 피우기 위해 고사(枯死)를 마다않는 대나무, 수만 리 바닷물을 헤치고 고향 찾아 산란하고 죽음을 달게 맞는 연어의 삶, 미물도 사랑을 하고 배려하며 때로는 희생의 참뜻을 익히며 사는데 우리는 두 얼굴로 이기(利己)의 독기만 뿜고 있으니 사람 꼴 부끄러울 뿐, 시대의 폭풍에 스러진 민초는 일어설 기력조차 날린 채 끝 모를 하늘만 응시하며 어설프게 푸념하고 방황하는 가난한 심령에 시대의 훈훈한 기운을 안겨줄 신종神鐘의 여운은 지금 어디서 숨을 죽이고 있나. 이제는 아침 햇살을 향해 깊은숨 뿜고 두 팔 벌려 새 생명을 담아야 하고, 시간도 저 검은 하늘도 새로운 때깔로 입혀야만 하는데. 머물면 힘줄은 줄고 고깃살만 늘어 허리띠만 짧아지는 법, 문을 닫으면 어둡고 가슴 열면 순환되는 청량한 바람에 마음이 맑아지는 법, 그런데 정작 조타장操舵長은 물의 요정 안개에 묻혀 어디로 향할지 머리만 휘젓고. 아,
세상에- 세상에- 정말 왜들 그러니?
종지기여
박정남
보랏빛 하늘은
분노의 눈송이로
대지를 한껏 덮어도
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종지기는 뜬 눈으로
졸고 있는가 보다.
혹여나
초인의 명을 기다리는지
감감 기척이 없다.
칼바람에 상처 입고
촉촉한 봄비 기다리는
저 나목처럼
푯대 잃고 시대를 방황하는
가난한 심령을 일깨울 종소리는
어디서 쉬고 있는가.
팬데믹에 기회 얻은
뭇 군상들,
곤욕스런 입놀림에
오염된 귓속,
정갈한 샘물로
도려내듯 닦아내고
돌아앉아
경건히 푸념이나 해야지.
종지기여,
어서 일어나
새날을 알리는 종을
야무지게 울리시오.
법주사 팔상전
박정남
뒷짐으로 이리저리 말티재 넘어
노거수老巨樹 정2품 송 그늘 밟고
살얼음 짚듯 금강문 들어서면
넓은 뜰 무겁게 우뚝 선 목탑(木塔)
팔상전捌相殿
놀랍다
머릿속은
신의 계시로 찼고
손끝으로 창세를 현현한
대목장의 신묘한 솜씨가
그저 놀랍다.
안은 텅 빈 정밀靜謐 속 무극無極¹의 혼륜渾淪,
밖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소박한 우주관을 덕으로 삼아
둥근 보주寶珠의 첨단은 허공에 잇고²
사상四象³을 품은 월대는 땅을 밟고 섰다.
여유로운 오층五層 처마 곡선 모서리마다 걸린 풍경은
오행五行⁴의 변화를 저 멀리 바람에 실어 알리고
내부 회랑 따라 보시 계행 다지며 탑돌이를 할양이면
삼불三佛 앞 예불하는 스님, 삼재三才가 한 곳에 담겼다.
동녘부터 차례로 내걸린 팔상도捌相圖는
진정 선천팔괘先天八卦⁵ 그 아니던가.
놀랍다
태극, 양의兩儀, 삼재
그리고 사상과 팔괘,
또 하나의 우주⁶를 탄생시킨
그 대목장의 심오한 솜씨
그저 그저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