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1,2,3세대
2024. 9. 22.(주일낮예배) 마태복음 19:13-15
일제강점기 때에 평안남도 출신의 강돈욱 장로(1871년-1943년)이라는 장로님이 있었다. 칠골교회와 창덕교회에서 장로로 시무한 강돈욱 장로는 창덕학교를 설립하여 학교교감으로 재직한 교육자이다. 기독교 신앙으로 학교를 세워 근대교육을 실천한 강돈욱 장로의 첫째 아들 강진석은 목사가 되었고, 둘째 딸 강반석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첫째 아들이 김성주(金成柱)이다. 외할아버지가 설립한 창덕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성장한 김성주는 이름을 김일성으로 개명하였다. 그리고 해방 소련이 북한을 남한을 미국이 지원하고 있을 때 소련이 달아준 대위 계급장을 달고 나타났다. 그 김일성이 6.25 전쟁을 일으켜 자신을 신격화 하는 북한정권을 세웠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때 정동제일감리교회 담임을 지낸 손정도(1882년-1931년) 목사는 감리교 목사였다. 정동제일감리교회에서 담임할 때 유관순 여사가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 손정도 목사님은 일찌기 상해로 망명하여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2대 의장을 역임하였고, 대한적십자회를 창립한 존경받는 목회자이고, 또 독립운동가였다. 그 손정도 목사님의 장남이 우리나라 해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원일 제독이다. 1948년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손원일 제독은 대한민국 해군과 해병을 창설하였고, 대한민국 군목제도를 창설하여 대한민국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였다.
무슨 말인가? 일제강점기 때 강돈욱 장로와 손정도 목사님은 모두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의 후손의 삶은 정반대가 되었다. 강돈욱 장로의 집안에 외손주로 태어난 김일성은 자신을 신격화하는 공산정권을 만들었고, 손정도 목사의 집안은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앞장서는 집안으로 계속 나아가게 된 것이다.
왜 강돈욱 장로의 집안과 손정도 목사의 집안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났겠는가? 지난 9월 2일(월)-3일(화)에 걸쳐서 교회교육 엑스포가 부산경남권은 포도원 교회당에서 있었다. 한국교회 교회학교 다시 세우기 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엑스포는 교회와 선교단체의 주일학교 사역들을 전시하여서 한국교회의 주일학교를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강사들의 강의를 통하여 이제 주일학교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강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교회는 주일학교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가정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사님들은 통합예배와 부모교육을 강조하였다.
왜 교회교육 엑스포에서 이렇게 교사가 아니라, 부모교육을 강조하고, 또 통합예배를 강조하고 있는가? 신앙의 세대는 1세대, 2세대, 3세대로 구분한다. 신앙의 1세대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여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신앙의 1세대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런데 신앙의 2세대는 하나님의 역사를 아버지로부터 들어서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들은 나의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부른다. 그런데 신앙의 3세대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도 듣지도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면 여러분은 신앙의 몇세대인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셨다. 그 후 창세기 26장을 보면 이삭이 그랄에서 우물을 파고 빼앗기기를 반복하다 브엘세바에 올라가게 된다. 그 밤에 하나님은 이삭을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창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이삭에게 너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창세기 28장을 보면 야곱이 형님 에서를 피하여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할 때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 주었다. 그때 하나님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창 28:13) 는 말씀으로 당신을 소개하였다. 이삭은 한평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아브라함의 하나님만 듣고 산 것이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을 체험하고 깨닫는 신앙의 1세대로 살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야곱도 마찬가지이다. 야곱은 삼촌의 집에서 20년을 보낸 후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때 형님 에서를 만나야 했던 야곱은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창 32:9)라고 하나님을 부른다. 야곱은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하지 못하고 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에서의 손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그런데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6) 고 말씀하신다. 아니 애굽의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 창세기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은 아버지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신앙의 2세대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체험하여 1세대의 신앙인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런데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는 이러한 구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출애굽과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은 1세대는 죽고, 그 다음 세대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는 2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2세대를 통하여 태어난 3세대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죽고 그 세대들이 다 조상들에게 돌아간 후에 일어난 세대를 3세대라고 부른다. 그런데 성경은 3세대를 뭐라고 부르는지 사사기 2장 10절을 읽기 바란다.
(삿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3세대는 1세대와 2세대와 다른 세대로 분류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왜 이들이 3세대가 되었는가? 우리나라는 인구총주택조사에서 종교조사는 10년에 주기로 하고 있다. 그래서 2015년의 결과를 보면 개신교 19.7%, 불교 15.5% 천주교가 7.9% 순으로 나타났고, 무교는 43.9%였다. 그런데 다음 10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한국리서치에서 종교인구 비율을 2023년 1월–11월까지 22번 조사하였다. 그 결과 개신교 20%, 불교 17%, 천주교 11%의 순으로 나타났고, 종교가 없다는 사람은 51%였다. 코로나 이후 가장 크게 성장한 종교는 무교이고, 그 후 천주교, 불교 순이다. 개신교는 고작 0.3% 성장을 하였다.
무교의 성장이 무섭지 않는가?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무교의 비율이 어릴수록 더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구감소로 종교인의 수는 감소하고 있는데, 거기에 어릴수록 종교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기에 한국사회는 곧 무교사회가 될 위험 앞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때에 계속하여 부흥하는 종교가 있다. 개신교, 불교, 천주교는 물론이고 무교도들도 철석같이 믿는 종교가 있는데, 혹시 그 종교를 아는가? 그 종교는 대학교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은 어떤 종교를 가졌던지 상관없이 좋은 대학을 가야 인생 행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자녀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녀 학업이 가정의 1순위이고, 가계부에서 절대 깍지 않는 것이 학원비이다.
이러한 부모들이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는가? 우리교회가 문화교실을 시작하면서 초등학교 학부모들에게 자녀들에게 부모로서 꼭 해 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았는데, 한가지 요청이 있었다. 그것이 코딩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저는 직장생활로 지친 부모가 자녀들에게 해 주고 싶은데 못해주는 것을 우리 문화교실에서 채워주려 하였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고민을 하였는데, 그때 경주 역사 스템프 투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경주에 가서 석굴암, 불국사, 무열왕릉, 첨성대 등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스템프에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황리단길에 가서 쫀득이, 10원빵도 사먹으면서 여행의 즐거움도 누린다. 그런데 요즘 부모님들은 이런 역사여행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과학관도 많이 가고, 또 체험관과 도서관도 간다.
왜 부모님들이 이런 정성을 쏟고 있는가? 책살 돈이 없어서 도서관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가는 것은 체험하고, 느끼고, 깨닫게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자녀들이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또 그 길을 찾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대학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신다는 믿음을 가진 우리는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겠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마 19:13-15)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여기서 꾸짖다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29번이 나온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며 주여 그리마옵소서 하고 말한다. 그때 항변하다는 단어가 꾸짖다는 단어와 같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꾸짖으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고, 풍랑이는 바다를 꾸짖고, 또 열병을 꾸짖는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꾸짖었다. 그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왜 예수님이 제자들을 꾸짖고 있는가?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와서 말씀을 듣고, 또 예수님을 통하여 안수받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마태는 안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마가복음 10장 16절에는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체험하고, 느끼고, 깨닫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우리 자녀를 체험하고, 느끼고, 깨닫게 하고 있는가? 신명기 29장에는 모세가 고별설교를 한다. 출애굽하여 광야 40년동안 하나님이 옷과 신이 헤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었음을 설교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아멘으로 화답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호수아 8장에서 여호수아가 에발산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고, 모세의 율법을 여호수아가 기록하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은 다 목도하였다. 그리고 역대하 20장의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유다를 치려 했을 때 여호사밧은 온 백성과 함께 구국기도회를 열었다. 아니 에스라 10장은 에스라가 회개운동을 벌일 때에도 온 백성이 다 있었다.
여기서 온 백성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남자 어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하나님의 은혜 앞에 아멘으로 화답할 때 자녀들도 아멘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을 것이다. 아니 여호사밧이 구국기도회를 할 때 부모만 눈물 흘리며 기도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기뻐하고, 기도한 아이들은 3세대가 되어서 다른 세대가 아니라, 1세대가 되어서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는 자녀가 되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이 정말 기뻐하는 모습이 이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우리교회가 가을학기가 시작되었다. 부모님이 한구절 묵상을 할 때 자녀들에게 성경 본문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바란다. 또 행복나눔축제를 앞두고 전도를 하는데, 부모만이 아니라, 자녀들도 전도대상자를 품고 같이 전도할 수 있도록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느끼고, 깨달아 온 가족이 함께 1세대의 신앙인으로 나아가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