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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1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 / 神様の完璧な赦し。
본문; 에베소서 4:25-32
엡 4:25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말을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26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27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28 도둑질하는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하지 말고, 수고를 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게 하십시오. 29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 30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25. だから、偽りを捨て、それぞれ隣人に対して真実を語りなさい。わたしたちは、互いに体の一部なのです。26. 怒ることがあっても、罪を犯してはなりません。日が暮れるまで怒ったままでいてはいけません。27. 悪魔にすきを与えてはなりません。28. 盗みを働いていた者は、今からは盗んではいけません。むしろ、労苦して自分の手で正当な収入を得、困っている人々に分け与えるようにしなさい。29. 悪い言葉を一切口にしてはなりません。ただ、聞く人に恵みが与えられるように、その人を造り上げるのに役立つ言葉を、必要に応じて語りなさい。30. 神の聖霊を悲しませ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がたは、聖霊により、贖いの日に対して保証されているのです。31. 無慈悲、憤り、怒り、わめき、そしりなどすべてを、一切の悪意と一緒に捨てなさい。32. 互いに親切にし、憐れみの心で接し、神がキリストによってあなたがたを赦してくださったように、赦し合いなさい。
지난 주일에는 우리를 죄와 허물로부터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실력으로는 죄의 유혹을 완전하게 차단할 수도 없고,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는 모든 죄를 이길 힘을 우리에게 공급하여 주십니다. 그것이 곧 성령충만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삶의 습관을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넉넉히 채워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사함의 축복을 풍성하게 누림으로 참으로 유익하고 놀라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교인들을 가르치는 내용이지요. 또한 거룩한 일상생활에 대한 조언이기도 하지요.
이처럼 성경은 자주 우리에게 경건하고 거룩하며 정결한 생활방식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이는 또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올바른 삶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단순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존재가 되기 위한 하나의 인간개조 프로그램 정도로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무리 성품이 좋은 사람의 행동과 말을 따라 하고 흉내를 낸다고 해서 그 영혼까지 변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본보기와 모범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예수님과 동일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종종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나 은혜, 혹은 회개하며 돌이키는 것을 자신의 노력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믿음이 있고 없는 것을 실력처럼 여기는 경우까지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이 자신은 믿음이 부족해서 신앙생활을 잘못한다고 말씀을 하시는데요.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잘하고 못하는 것은 ‘믿음’이라는 이름의 실력에 따른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믿음생활과 또는 회개는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차원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죄사함의 능력과 은혜를 말함에 있어서 계속 회개를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데요. 혹시라도 회개라는 것이 어떤 믿음생활의 실력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또한 회개가 믿음이라는 실력을 향상시키는 노력과 같은 것이라고 오해하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결단코 우리가 믿음이라는 실력과 회개라는 노력을 통해 남들보다 좀 더 개선된 윤리와 도덕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기독교라는 종교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생의 삶을 있는 그대로 누리고 감사하기 때문인 것인데요. 성경은 우리가 구원과 영생을 우리의 노력이 아닌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따라서 구원받은 자의 경건과 거룩함, 그리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은 우리의 노력과 실력으로 이루어내야 할 어떤 높은 경지를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영생이란 우리의 신앙생활을 자격시험으로 만들어서 합격하는 사람에게 주는 어떤 티켓이나 자격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생의 자격증을 획득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영생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기에 예배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예배는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반응로 나타나는 감사와 찬양인 것입니다.
그러니 예배의 시간을 처음 찬양할 때부터 지키는 것이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되도록 여러분이 예배에 지각하지 않도록 권면하고 안내해 드리는 것은 감사와 찬양을 표현하는 것에 부족함이 없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또 어린이들이 예배하는데 집중하도록 돕는 것도 마찬가지... 그 귀하고 복된 예배에 대해서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되도록 예배의 시작 시각을 잘 지켜 주시고... 어린이 예배가 시작된 뒤에 오시게 되면 예배실 뒷문으로 들어오실 수 있기를 안내하고 있으니 다들 협조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성경은 우리가 자라고 성장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5-16)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영적으로 반드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가 자라는 것을 바라시고 또 원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라나는 일에 유일한 양분이 되는 양식이 있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이며,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를 자라게 하는 은혜와 능력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노력이나 실력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께서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려주시는 온갖 은사와 선물들이 곧 은혜와 능력인 것이지요. 그 은혜와 능력은 오직 회개의 반복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용서하신 만큼 은혜와 능력을 채우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회개하면 내면의 이기심과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쏟아내게 됩니다. 그렇게 내면을 비울 때 그 곳에 은혜와 능력을 채우십니다. 우리에게 채워진 은혜와 능력으로 우리는 마침내 죄를 이기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회개를 반복해도 변화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죄스러운 마음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회개해도 여전히 죄의 유혹과 미혹에 넘어지는 자신에게 좌절하는 이들도 있지요. 그래서 회개하기를 중간에 멈추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회개를 멈추면 결국 자신이 넘어지는 죄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도덕적 윤리적 실력과 노력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지요. 죄를 이길 능력은 오직 빛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사와 은혜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슥 4:6)
여기서 말하는 힘과 능력은 일본어 번역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곧 군사적인 무력과 권력, 즉 인간적인 노력과 실력을 뜻하는 것이고, “영으로 된다”의 “영”이 곧 성령의 능력이며, 은혜와 은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말하고, 회개를 말하는 것이 단지 기독교를 믿는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내기 위한 종교적 노하우나 규범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현실적으로 우리가 직면해 있는 모든 실질적인 문제의 근본적인 대책도 실제로는 회개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문제에 직접 맞닿아 있는 것만 해결하면 모든 일상이 온전해질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당장에 눈에 드러나는 문제를 아무리 해결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것을 간과하여 결국 큰 문제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이 있는데요. 어느 거리에 작은 유리창 하나가 깨진 건물을 수리하지 않고 방치해 두거나, 낙서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도시와 마을에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내용입니다. 마치 빈 플라스틱컵 한 개가 놓인 화단이 머지않아 쓰레기 투기장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 이론에 의하면 우범지역에 있는 지저분한 환경을 깨끗이 청소하고 깨진 유리창들을 새것으로 교환하면 범죄의 발생률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이것을 “회개”와 우리 “일상”의 상관관계에 적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현재의 문제는 과거의 그 언젠가 깨졌던 작은 창문 하나로 인해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깨어진 창문을 수리하고 새것으로 교환함으로 말미암아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발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깨친 창문들을 새것으로 교환하는 과정은 곧 주님께 회개하고 동시에 일상에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과 같이 경건한 삶의 방식을 지속적으로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는 노력을 통해 믿음생활의 실력을 향상해야 한다는 윤리도덕의 행동지침이 아닙니다. 나의 존재를 원래 창조의 가치로 회복하고 유지시키는 은혜를 채우기 위한 최소한의 연습이며, 삶의 방향인 것입니다.
이왕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 산다고 한다면, 결국 사람답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복스러운 삶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회개하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용서하시고, 깨끗이 정결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반복해서 넘어져도, 그때마다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하셨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 18:22)
여기서 일곱 번에 일흔 번까지...라는 말은 완벽하고 완전하다는 숫자 7의 반복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는 완벽하고 완전하게 용서해야 한다는 뜻인데요. 사실상 우리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이렇게 완벽하고 완전하게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용서받아 경험하게 된 담대함으로 용감하게 죄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회개를 통해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이유는 우리를 용납하시고 구원하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죄를 이기는 삶으로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곧 우리 삶의 깨어진 창문들을 새롭게 갈아 끼우고 낙서를 지우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렇게 새롭게 깨끗하게 갈아 끼워진 창문들로 마을과 거리가 되살아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깨끗하고 건강하게 되살아날 것을 믿습니다.
당면한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는 결코 바람직한 삶을 지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으로 복되고 아름다운 존재로 살기를 바라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대로 용서하시는 사랑 안에 거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 거듭나서 영생을 누리며 산다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수사나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놀라운 축복의 일상을 살기 위해서 가장 근본적이고 1차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죄와 허물로 인해 더러워지는 발을 씻는 과정으로써 회개를 반복할 때 마침내 죄가 싫어지고 이겨지는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은혜의 감동을 경험하게 되지요. 우리가 회개할 때 하늘로부터 부으시는 은혜와 은사가 내면에 채워지고, 그로 인해 삶은 더욱 생기가 넘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영생의 능력으로 활력이 충만히 채워지는 것을 실감 나게 체감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회개하면 할수록 더욱 견고하게 자라나는 믿음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활기차게 자라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언제나 행복한 마음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일상을 누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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