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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모음
[2013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극야의 새벽
김재길
얼붙은 칠흑 새벽 빗발 선 별자리들
붉은 피 묻어나는 눈보라에 몸을 묻고
연착된 열차 기다리며 지평선에 잠든다.
황도(黃道)의 뼈를 따라 하늘길이 결빙된다
오로라 황록 꽃은 어디쯤에 피는 걸까
사람도 그 시간 속엔 낡아빠진 문명일 뿐.
난산하는 포유류들 사납게 울부짖고
새들의 언 날개가 분분히 부서진다
빙하가 두꺼워지다 찬 생살이 터질 때.
제 눈알 갉아먹으며 벌레가 눈을 뜬다
우주의 모서리를 바퀴로 굴리면서
한 줌의 빛을 들고서 연금술사가 찾아온다.
황천의 검은 장막 활짝 걷고 문 열어라
무저갱 깊은 바닥 쿵쿵쿵 쿵 울리면서
안맹이 번쩍 눈 뜨듯 부활하라 새벽이여.
*극야: 밤만 계속되는 시간을 말함. ‘백야’의 반대 현상
[시조 당선소감] "시조를 향한 도전… 최전방으로 날아온 당선의 기쁨"
극야의 새벽 같은 시간에 따뜻한 여명의 빛 한줄기가 강원도 최전방의 초병에게로 날아왔습니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처음 시작해본 것은 경남대학교 청년작가아카데미에서 시조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무언가에 도전하려 하는 청춘의 자그마한 불꽃이었습니다. 모두가 저에게 랭보를 꿈꾸어야 할 청춘의 시간에 시가 아닌 시조를 쓴다고 의아해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늘 제 마음을 사로잡은 시조는 율(律)로서 완성된다고 굳게 믿고 제 발자국을 정법으로 삼아 또박또박 헤아리며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지독한 필사의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묘사와 은유의 공간에서 늘 회초리로 저를 때리며 살아왔습니다. 여름과 겨울마다 하동 평사리에서 가진 지옥훈련 같았던 창작교실이 지금의 저를 키웠습니다. 지금껏 시인들의 하늘을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가깝게만 느껴졌던 그 하늘이 이렇게 멀 줄은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바야흐로 운명의 폭발이 시작되었나 봅니다. 이제 스스로 운문의 하늘을 밝히는 초신성이 되었습니다. 청년작가아카데미 교수님들을 처음 뵈었을 때 저는 ‘빛을 머금은 원석’이라고 저를 소개했습니다. 이제 그 꿈만 같던 빛을 손아귀에 쥐었습니다.
이제 스스로를 더욱 세공하여 늘 정상에서 환하게 빛나는 보석이 되겠습니다. 따뜻한 바다 통영에 계신 사랑하는 부모님 그리고 존경하는 김정대, 정일근 교수님과 청년작가아카데미에 이 영광을 모두 돌리겠습니다. 이름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조선일보에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1991년 경남 통영 출생
▲경남대 국문과 3년 휴학. 경남대 청년작가아카데미 1기 수료
▲현재 육군 7사단 일병으로 현역 복무 중
[시조 심사평] 거침없는 상상력과 활달한 호흡으로 시적 지평 넓혀
‘약관’은 한때 신춘문예의 단골 수식어였다. 그 약관의 관을 얹어 한 시인을 내보낸다. 그의 이름은 김재길, 보무도 당당한 대한민국의 육군 일병이다. 스물을 갓 넘긴 청년의 야심 찬 걸음이 ‘쿵쿵쿵 쿵’ 지축을 울리는 듯하다.
응모작에는 충혈의 눈빛이 비치는 게 많았다. 끝까지 들었다 놓았다 한 것은 이윤훈·이병철·장윤정·하양수·송인영씨였다. 정형시로서의 미학적 완성도나 호흡의 안정감, 현실적 맥락을 잃지 않는 감각과 발상, 형식에 함몰되지 않는 신선한 긴장감 등에서 남다른 공력의 시간이 보였다.
반가운 것은 공소한 관념이나 낡은 서정이 아닌 오늘 이곳의 살아 있는 삶을 정형(定型) 안에 다듬어 앉히면서 자신의 목소리도 펼쳐낸다는 점이다. 시조에 대한 편견을 날려줄 작품이 늘고 있어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당선자는 그중에도 가장 헌걸찬 형상력과 보폭을 보여준다. ‘오로라’, ‘우주의 모서리’, ‘무저갱’까지 거침없이 오르내리는 상상력과 활달한 호흡으로 ‘새벽’의 시적 지평을 한층 넓히는 것이다. 낯설고 분방한 그래서 더 역동적인 비유와 이미지들은 정형의 율격을 시원하게 타 넘으며 보기 드문 대륙적 약동을 뿜는다. 이 모두 당선작을 기꺼이 들어 올리게 한 패기와 가능성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에서 비치는 기술의 과잉 같은 느낌은 주의를 요한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 크고 새로운 세계를 ‘번쩍’ 열기 바란다
--시조시인 정수자
2013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꽃씨, 날아가다
- 조은덕
바람이 날라다 준 햇살 한 줌 끌어안고
손가락 굵기만큼 동글 납작 눕히는 무
어머니, 물기 밴 시간 꼬들꼬들 말라 간다
짓무를라, 떼어 내고 뒤집어서 옮겨 놓는
뒤틀린 세월들을 하나 둘씩 펼쳐본다
여름이 남기고 간 속살 광주리에 가득하다
맵고 짠 눈물 섞어 켜켜이 눌러 담은
어둠 속에 숨 고르는 울혈의 무말랭이
주름진 생을 삭힌다, 아린 손끝 붉어온다
돌아가는 모퉁이길 얼비치는 맑은 아침
마른 뼈 꽉 움켜 쥔 말간 핏줄 여울목에
어머니 가벼워진 몸, 꽃씨 되어 날아간다
조은덕
△1965년 충남 공주시 출생
△숭실대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2006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 등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
△한국식물화가협회 회원
기다림이 있으므로 시간은 더디게 갔고, 더딘 만큼 견뎌야 할 생의 길이는 늘어났습니다. 늘어난 생의 길이만큼 또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에 매달려 날마다 초조한 것보다 희망도 소원도 없는 게 훨씬 더 편할 거 같아요."라는 김수현 선생님의 '사랑과 야망'에서 '미자'의 대사를 내 것처럼 중얼거리고 다녔으나 늘 바라는 것들은 더욱 커지고, 시간은 주체할 수 없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어젯밤 꿈에 스마트폰으로 합격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꿈처럼 2013년 신춘문예 수상소감을 씁니다. 고맙습니다. 멀리서 가까이서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 때때로 무너질 때 힘을 북돋아 주신 김봉집 선배님, 그리고 이 길을 가는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수 없이 목 젖혀 바라보았던 하늘을 우러릅니다. 기쁨도 감당하기 힘들면 울음이 되는가봅니다. 세상 600개의 언어로도 통역되지 않는 눈물의 빛깔은 투명합니다. 그 투명함 속에 내 어머니가 있고, 평소 '조시인'이라고 불러 주시던 먼 유년의 아버지가 계시고, 가까이 있어서 소홀했던 내 가족이 있고, 너무 가까우므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을 이웃이 있습니다.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하므로 용서받고 용서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풋것들' 가운데 제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큰 절을 올립니다. 우리의 숨결, 우리의 정신이 녹아 있는 현대시조의 마당에 한 계절 밝히는 꽃을 피우겠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언어로 이 땅의 위로가 되겠습니다.
--심사평
근년 들어 신춘문예에 응모된 작품의 대체적인 경향은 표현주의적 색채로 쏠린다는 점일 것이다. 표현이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이니 아직 원숙미가 부족한 신인들이라면 의당 여기에 치중하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 그쳐야 한다. 양념이나 조미료에 의존하는 한 재료 고유의 맛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으로 민승희의 「황소」, 유외순의 「인각사에서」, 조은덕의 「꽃씨, 날아가다」 등 세 편이 남았다. 이 작품들은 각각의 장점들을 지니고 있었지만 「인각사에서」는 역사적 소재가 지닌 창의성의 한계로 인해 순위에서 밀려나고 「황소」와 「꽃씨, 날아가다」를 두고는 장고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적 대상에 대한 관찰력과 사유, 감각적인 시어 선택, 상상력의 깊이 등 두 사람 모두 오랜 시력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소」는 선짓국을 뜨면서 황소의 존재를 떠올리고 흡사하게 살다간 아버지의 삶을 읽어내는 상상력의 깊이가 돋보였으나 시선이 과거의 반추에 멈춰버린 아쉬움이 남았다. 그에 비해 「꽃씨, 날아가다」는 무말랭이를 만드는 체험과정에서 발견해 가는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시조 특유의 양식적 긴장미와 맞물려 공감의 진폭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의 높은 완성도 또한 신뢰를 견인하였음을 밝혀두며 개성미가 넘치는 작품으로 시조단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켜 주길 기대한다
한분순,민병도 시조시인
2012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
바람의 각도
김태형
추위를 몰아올 땐 예각으로 날카롭게
소문을 퍼트릴 땐 둔각으로 널따랗게
또 하루 각을 잡으며
바람이 내닫는다.
겉멋 든 누군가의 허파를 부풀리고
치맛바람 부는 학교 허점을 들춰내며
우리의 엇각인 삶에
회초리를 치는 바람
골목을 깨우기 위해 어둠을 밀치는 것도
내일을 부화시키려 햇살을 당기는 것도
세상의 평각을 꿈꾸는
나직한 바람의 몫
중앙신인문학상 심사평] 패기 넘치는 ‘바람의 각도’에 몰표 쏟아져
또 한 명의 당찬 신인이 최고의 시조 등용문인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탄생했다.
별 당위성도 없이 지나치게 난해하거나 관념적인 응모작 중에서 눈에 띄게 선명한 작품을 보내온 김태형씨다.
좀 어설프더라도 신인다운 패기와 실험성을 갖춘 신인의 출현을 기대한 심사위원 전원은 ‘바람의 각도’에 최고의 표를 던졌다.
당선작 ‘바람의 각도’는 아무런 형체가 없는 바람에다 각도 개념을 부여한 제목부터 신선했다.
또 바람이 지닌 다의성을 시적 구도 속에서 포착해내는 능력이 뛰어났다. ‘어둠을 밀치’고, ‘햇살을 당’겨 ‘엇각’인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모습은 새로운 영웅이 등장해 타락해 가고 있는 세상을 구원하는 듯한 인상을 보여줬다.
둘째 수에서 나타낸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나, 셋째 수에서 드러낸 삶에 대한 따뜻하고도 낙관적인 인식은 이 땅에는 불안한 젊음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강한 메시지도 남겼다. ‘세상의 평각을 꿈꾸는’ 청춘의 아름다운 고민을 잘 보여줬다.
시조의 숙명적 조건인 형식미도 잘 갖추고 있다. 율격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기보다 그런 가락이 몸에 배어 있는 듯하다. 많은 습작이 만든 정제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편안하고 믿음직했다.
응모작 중에는 제목이나 내용 가운데 불필요한 외래어가 들어 있거나 이미지를 과도하게 빌려온 경우가 많았다. 시조에서 지양해야 할 문제점들 중 하나다. 당선작 외에도 개성 있는 작품이 많았다. 김주연·용창선·송태준·김영순씨의 작품도 활발하게 거론됐다.
◆심사위원=오승철·권갑하·이종문·강현덕(대표집필 강현덕)
당선 소감
졸업생의 마지막 학기처럼 떨어지는 달빛에 골목이 환해집니다. 그만큼 골목 한구석 깊어지는 어둠을 보며 우리사회의 견고한 벽 앞에 때론 좌절하는 청춘을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젊기에 밝은 내일을 꿈꾸는 우리의 청춘. 단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전력질주 하는 삶보다 중요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할 때마다 밤새도록 활자들을 써 내려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를 찾아 헤맸고, 울창한 시조의 숲을 이루기 위해 정제된 말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소외된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잠시 쉬어갈 그늘이 되라고 덜 여문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치열한 삶 속에서 희망의 세상을 꿈꾸며 뜨거운 시어한줄기 건져 올리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국어사전을 뒤지며 책상에 앉기보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담은 살아 숨 쉬는 시를 쓰기 위해 내달리겠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부족한 제 작품을 올려주신 심사위원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인으로서 가야 할 아득한 길 앞에 기쁨보다 무거운 책임감이 더욱 앞섭니다. 나를 관통했던 바람처럼 세상 속에 출렁이는 초록빛 언어와 여린 소리를 찾아 정형의 그릇에 잘 담아내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첫 번째 독자이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늘 격려해준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화성박물관에서 작품을 고민하며 썼던 시간을 떠올리며 활자에 맥박이 뛰도록 창작에 더욱 힘을 쏟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게 문학적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리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약력=1986년 서울 출생,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제20회 전국한밭시조백일장 대학일반부 장원, 제5회 전국지용백일장 대학일반부 최우수상.
[2013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2013 신춘문예 당선작/시조] 새는 날개가 있다-송승원
새는 날개가 있다
송승원
당찬 야성 내려놓고 발에 익은 길을 따라
날갯짓 접어둔 채 뒤뚱거린 몸짓으로
달뜨는 도시의 하루 쪼고 있는 도도새*
날아 오른 시간들을 깃털 속 묻어 두고
쿵쿵 뛰는 심장소리 뉘도 몰래 사그라진
그만큼 섬이 된 무게, 어깨를 짓누른다
화석에 든 아이콘이 무젖어 말을 건다
푸드덕 홰를 치는 한 마리 새 나는 행간
앙가슴 풀어헤친 채 물음표를 집어 든다
* 도도새 :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에 서식했던 새. 천적이 없어 날개가 퇴화돼 날지 못하다가 1505년 포르투갈인들이 포유류와 함께 이 섬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멸종됐다. 현실에 안주해 변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을 ‘도도새의 법칙’으로 비유해 일컫기도 한다.
◆ 당선 소감
부단한 담금질… 새는 날개가 있다
우리는 때로 새였던 시간을 잊어버린 채 힘껏 날 수 있었던 잠재력을 망각하며 지내는지도 모릅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은 어디에 두고 세상이 어려울 때 쉽게 모든 것을 포기하는 현실을 만나곤 합니다. 그러다 도도새처럼 도태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새는 날개가 있다’를 주제로 시상을 이끌어 내려 부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형시인 시조로 많은 사유와 사고를 담고 녹여낸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웃음을 잃어버린 채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면서 번민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가슴에 쌓여있는 울컥거린 그 무엇을, 3장 6구라는 시조의 장르에 풀어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적 이미지와 형상화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많은 날을 고민하다 하는 수 없이 응모를 했습니다. 이런 저의 설익은 글을 이렇게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관형사를 덧입혀 되돌려 주신 매일신문 관계자와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나태하지 말고 더욱더 분발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부끄럽지 않게 선배님들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아울러 늘 독려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교수님과 문우 여러분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또한 시조를 쓰도록 시간을 할애해 준 아내와 묵묵히 아빠를 응원해 준 우리 두 아들에게도 이 기회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 약력
▷1956년 출생
▷한성대학교 한국어문학부 졸업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강사
◆ 심사평…멸종한 새 통해 활달한 상상력·역동적 이미지로 삶 성찰
시조는 정형시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형식을 지키는 것이다. 시조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형식이 정제된 것은 우리 정서를 나타내는 데 적합한 형식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형식이 전통을 가진 것이라고 해서 전통적인 것만을 담는 형식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시조는 ‘시절가조'(時節歌調)를 줄인 말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 뜻이 오늘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 명칭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도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당선작을 뽑는 범박한 기준으로 삼았다.
일차로 7명의 28편을 뽑았다. 그중에서 한 사람의 작품은 당선 경험이 있는 작품이었고, 또 한 사람은 근년의 신춘문예에서 최종심까지 오른 작품이었다. 그러나 최종심에서 심사자가 작품에 대해 미흡한 점을 지적했지만 그것이 수용되지 않고 제목을 바꾸어 응모된 작품이라 제외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머지 세 분, 한경정의 '겨울 과원을 지나다'외 2편, 장윤정의 '0시의 녹턴'외 3편, 김경순의 '가을 쉼표'외 3편은 모두 깔끔한 작품들이었다. 시조에 대한 열정이 묻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감성에 기대었고, 비교적 관념 노출이 빈번한 점이 아쉬웠다.
나머지 이한의 '산수화에 대한 소견' 외 4편과 송승원의 '새는 날개가 있다' 외 3편을 두고 거듭 읽었다. 이한의 작품은 소재가 그림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고, 나름대로 개성적이었다. 그러나 송승원의 작품이 가진 소재의 다양성과 깊이를 따라잡지 못했다. 따라서 송승원의 '새는 날개가 있다'를 당선작으로 올린다. 날개가 퇴화되어 날 수 없었고 결국 멸종해 버린 도도새를 통하여 활달한 상상력과 역동적인 이미지로 우리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한 점을 높이 샀다. 우리는 늘 의문부호를 찍으며 산다. 그 의문부호 하나 선명하게 찍은 작품이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아깝게 선에 들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문무학(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