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학술지인 경찰고시 84년 5월호에 실린 글이며 국회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p120-125)
맨 아래 목차인 <마인드컨트롤 그 악랄한 최면수법>을 보면 1975년 8월, 제임스 무어라는 미국의 언론인이 전 CIA간부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기사화 한 것이 나오며 그 때 이미 전파와 전자력에 의해 인간을 로보트화 하는 마인드컨트롤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그리고 지금은 그로부터 30년이 더 지난 2010년 12월인 것이다. 기술의 발달 속도를 생각하면 30년은 엄청난 시간이다.
울고 있지만은 않는다. 중요부분은 색 수정을 했다.
<본문>
심리분석 분야에 뛰어난 CIA
미국 펜실베니아주 드리마일섬에서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나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해수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킨 것 등 KGB의 교묘한 파괴공작에는 뒤지지만 CIA가 뛰어난 부분도 없지 않다. 그 하나가 심리분석 분야이이다.
이 심리분석을 처음 사용한 대통령이 존 F.케네디였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 소련의 흐루시초프에 관해 심리분석보고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CIA는 망명자의 증언, 흐루시초프의 언동, 첩보요원의 보고 등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유능한 심리학자와 정신 분석학자에 의해 행해진 분석으로 그의 인간성을 파악할 수 있있다.
즉, 그는 얼핏 보아 성격이 양성이고 허풍이 센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음성적인 면이 더 많아 스탈린에게서 아낌을 받고 암흑시대를 별고없이 살아왔다는것이다. 그가 가끔 국제회담 석상에서 허풍과 수선을 떠는 것도 실은 국내에 대한 제스처이고 그 하나 하나가 세밀한 계산이 되어 있고, 감정의 기복이 격한 것처럼 보일 뿐 내심은 항상 냉정하다는 것이다.
케네디는 이 분석결과를 단단히 머리에 기억하고 빈에서 열린 수뇌회담에 임함으로써 흐루시초프가 의제에도 없는 베를린문제를 끄집어내어 허풍을 쳤을 때 추호도 동요하지 않고 같이 허풍으로 받아 넘겼다. 만약 그에 대한 분석을 소홀히 했다면 그의 허풍에 눌려 어떤 타협이나 양보에 끌려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이 분석은 후에 쿠바위기에서도 실효를 거두었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에 대해서도 이 심리분석이 실효를 거둔 일이 있다. 즉 쿠바위기의 폭발 직전 케네디는 서방측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어서 영국의 맥밀란, 서독의 아데나워, 그리고 프랑스의 드골에게 사자를 보냈는데, 맥밀란과 아데나워에게는 국무차관을 보냈으나 CIA의 분석결과 드골은 미국에 대해 라이벌의식을 갖고 있는, 오만성과 과대망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여서 차관급으로는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으므로 그의 비위에 맞는 인물인 애치슨 전국무장관을 보냄으로써 양자의 보수주의적인 성격이 잘 어울려서 프랑스로 하여금 미국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서방측은 결속해서 이 위기에 맞설 수 있게 되었다. 심리분석과 함께 CIA가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타국의 정치가나 그 측근의 신원조사이다. (KGB의 경우는 상대방의 신원에 대한 약점을 들추기보다 그들이 지목하고 있는 목표에 대한 약점을 조작해 낸다) 이 조사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의 가족, 친구관계, 여성관계등에 대해서도 철저히 행해지고 있다.
이 조사로 얻어진 지식을 가장 잘 이용한 사람이 헨리 키신저였다. 그는 여러 회의장소나 교섭장소에서 상대방의 수행원의 가족 이름까지 기억해서 그들에게 그 가족의 이름을 대며 안부를 묻기도 하여 그들을 놀라게 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의 건강상태 등도 파악하고 <요새 혈압이 높으시다고 들었는데 좀 어떠십니까>하는 식으로 묻기도 했다.
그러나 이 조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방첩이 주체이다. 키신저처럼 자료를 겉으로 내놓고 쓰는 것은 드문 일이고 대개의 경우 교섭이나 회의때 뒷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좋은 예가 랑브이예 회의 때 CIA가 사전 입수한 일본 미끼(三木)수상의 측근에 관한 정보였다. 미끼 자신에 대해서는 <문제없음>으로 되었지만, 그의 측근의 한 사람, 그것도 매우 영향력이 있는 어느 인물에 관해서는 크게 의심이 갈만한 자료가 나타났다. 그 자료란 그가 어느 폴란드 여성과 교제를 갖고 임신까지 시켰다는 사실이었다. 상대가 공산권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대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 여성을 통해 강제적이거나 자의에서거나 KGB에 정보제공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했으며 이미 그랬을지도 모른다.
회의에 떠나기 전, 포드대통령은 CIA로부터 엄격한 충고를 받았다. 미끼 앞에서는 NATO의 전략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포드는 이 충고를 충실히 따랐고 다른 지도자들이 NATO에 관해 말하려고 할 때마다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것도 모르고 귀국한 미끼는 포드와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했다고 득의만만해 했다.
에이전트 오브 인플루언스
에이전트 오브 인플루언스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에이전트로서 그 위치를 이용해서 다른 나라에 유리한 여론을 만들어 내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류의 에이전트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즉, 확실한 의식과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자, 그리고 자신은 생각지도 않는데 자연적으로 그 역할을 해내고 있는 자이다. 전자의 경우의 예를 든다면 가령 어떤 신문사의 간부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KGB로서는 반드시 그를 포섭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접근하여 갖은 방법으로 그를 구어삶는다. 귀국 후 그의 신문에는 자연히 친소적인 기사가 실리게 되는데 노골적인 스파이 활동이 아니니까 본인으로서는 죄악감을 느끼지 않는다.
후자의 경우는 극히 간단하다. 소련에 가는 일반 여행자는 반드시 KGB의 통제하에 있는 국영 여행사 관할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여행자의 일정은 이 여행사에 의하여 짜여진다. 견학하는 장소, 만나는 사람 등 모두 그 계획에 따라 정해지며 그들은 이 일정을 통해 여행자가 소련에 대하여 호의적인 인상을 갖게끔 조종한다. 여행자는 뒤에 숨어 있는 책략은 알지도 못하고 제나름대로 보고싶은 것을 보고, 시민들과 얘기도 하고, 소련 그대로의 모습을 알게 된듯한 인상을 갖게 된다. 이런 인상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KGB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이런 올가미에 잘 걸리는 자는 학자나 언론인들이다.
일본에 대해서는 KGB가 구태여 만들어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에이전트 오브 인플루언스가 얼마든지 있다. 에이전트 오브 인플루언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한 예로는 중공을 들 수 있다. 일, 중공 국교정상화와 그 후의 일, 중공 평화우호조약 체결시에 이들 에이전트는 실로 유효하게 쓰여졌다.
중공으로서는 이들 에이전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가 않았다. 일본인의 단순한 성질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기만 하면 충분했다. 우선 이거다하고 노린 목표인물에게 중공정부의 초청장을 보낸다. 물론 비용은 전액 중공부담이다. 북경에서는 마오타이주와 중화요리의 열렬한 환대가 기다리고 있다. 어디를 가나 우호, 친선의 무드가 들떠있다. 우호나 친선이란 말에 약한 일본인은 보기좋게 넘어간다.
그리하여 귀국하여서는 북경의 대변인이 된다. 그들의 얘기는 연일 신문에 크게 게재되어 착실히 여론을 만들어 나간다. 이와 같은 대합창이 계속되면 정부로서는 커다란 압력이 된다.
결국은 충분한 논의도 되지 않은 채 체결된 평화우호조약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중공의 페이스에 말린 교섭이었고, 그 체결은 타이밍까지 중공측의 계획대로였다. 즉 중공측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조약을 체결해야 할 사정이 생겼다. 그것은 월남전쟁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에는 돈이 드는데 일, 중 조약이 체결되면 여러가지 명목으로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얻을 수가 있다. 실은 이러한 계획아래 움직였다. 결과적으로는 중, 월전쟁에서의 중공측 전쟁비용은 일본이 떠맡다시피 한 것이었다.
당시 일본정부로서는 여론이 아무리 뜨겁게 달아오르더라도 그와 같은 중대사는 냉정한 비판과 논의를 거듭해서 결정지어야 했었다. 이 일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면 중공측이 훨씬 단수가 높았다는 것이며, 에이전트 오브 인플루언스를 잘 사용하면 일국의 정부도 용이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에이전트 컨트롤에 고민하는 CIA와 KGB
오늘날 CIA와 KGB가 가장 고심하고 있는 것은 에이전트의 통제문제이다. 발탁된 에이전트가 가끔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KGB의 경우에는 왕왕 강제적으로 에이전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화근이 되어 적을 이롭게 만들거나 배반을 당하는 일이 많다. 또 사회제도 그 자체에 염증을 느껴 망명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그 에이전트가 거물급이라면 국가의 초극비 사항이 누설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KGB는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해외공관내에서의 피차 감시를 강화하며, 특히 중요임무를 띤 에이전트에게는 특별한 감시를 붙여놓는다. 결과적으로는 KGB맨이 KGB맨을 쫓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이러한 에이전트에게는 3년간에 걸친 훈련중 사상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반드시 결혼을 시켜 가정을 갖게 한다. 그 가족은 인질로서 소련에 남게 되는데, KGB는 이것으로도 안심이 안되어 여자 에이전트를 이용하여 유혹하는 등 몇 번이고 테스트를 한다. 가족에 대한 애착을 갖지 않을 때에는 그들 인질은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CIA의 에이전트는 배반이나 망명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다른 뜻으로 역시 에이전트 통제에 힘쓰고 있다. 너무 거대한 규모이기 때문에 지휘계통에 지장을 가져오며 말단 케이스 오피서나 에이전트에 대해서는 그 감독체제가 손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가 쿠바 미사일위기 때 윌리암 하비하는 케이스 오피서의 경우이다.
1962년 10월, 쿠바의 미사일을 둘러싸고 미, 소의 역사적 대결이 시작되었을 때 하비는 독단으로 30명 이상의 에이전트를 쿠바에 잠입시켰다. 전투개시와 함께 쿠바 국내에서의 파괴공작에 착수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한 사후보고를 접수한 CIA장관 존 맥코온은 깜짝 놀라 즉각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로버트 케네디는 노발대발하여 매코온에게 즉각 그들 에이전트를 불러들이라는 지령을 내리도록 지시했다. 지령은 내려졌으나 그때는 이미 10명의 에이전트는 쿠바의 산골 깊숙이 들어가버려서 되불러들일 수가 없었다. 이때 로버트 케네디는 대통령을 대리해서 소련대사와 쿠바문제를 상의하고 있었는데 교섭은 매우 미묘한 단계에 있었다. 만일 쿠바에 남은 에이전트들이 활동을 일으킨다면 이 미묘한 교섭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올지 몰랐다. 할 수 없이 로버트 케네디는 UN의 쿠바 대표부에 연락하여 10명의 에이전트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10명으니 붙잡혀 비밀리에 처형되었다.
에이전트 중에서도 특히 독주하기 쉬운 경우가 콘트랙트 에이전트(contract agent)이다. 그들은 다른 에이전트와 달리, 어떤 일거리에 얼마라는 계약을 맺고 그 일을 수행하는 일시 고용 된 에이전트이다. 그러니까 일정한 훈련도 받지 않는다. 또 케이스 오피서의 지시나 명령을 무시하는 일도 있고 일이 효과적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독자적인 판단으로 움직일 때도 있다. CIA로서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전체의 사전계획이 틀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가령 CIA가 어느 중남미 국가 정부를 전복시킬 계획을 세운다고 하자. 작전국이 거기에 대해서 상세한 사전계획을 짠다. 그 사전계획의 일부로서 현존하고 있는 지도자 암살에 들어간다. 이 일에 어떤 직업적인 암살자가 계약 에이전트로 채용된다. CIA는 그에게 어떠한 상황아래서 어떠한 타이밍에 죽일것인가를 브리핑한다. CIA로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겨 계획 전체가 좌절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용된 암살자는 타이밍이나 상황 같은 것은 별로 문제시하지 않는다. 요는 자기 몸을 다침이 없이 목표물을 죽이면 된다. 필연적으로 그는 그 자신에 대해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타이밍이나 상황을 택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일은 성공했다고 하나 타이밍이 빨라졌다든지 계획이 완전히 틀어진 상황아래서 살해가 저질러졌기 때문에 CIA가 생각도 못했던 분자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래서 CIA의 사전계획은 무너지고 만다. 씨름에는 이겼지만 승부에는 패한 셈이 된다.
이렇게 독주를 하는 계약 에이전트의 대표적인 예로 WI/ROGUE를 들 수 있다. CIA가 붙여준 암호명인데 아직까지 그 정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는 전 콩고수상 루뭄바의 암살을 위해 고용됐었는데 유럽 일대에 꽤 얼굴이 알려져 있어, 콩고로 떠나기 전에 성형수술을 받기까지 했다. 그는 케이스 오피서의 지시를 받으려 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독불장군이었다. 그래서 CIA로서는 몇번이나 위험한 궁지에 빠진 일도 있었다. 이와 같이 지휘계통을 무시하는 인물을 CIA는 무엇때문에 고용하는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가 가져다 주는 이익이 독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단점보다 크기 때문이다.
마인드컨트롤 그 악랄한 최면수법
서투른 사람을 에이전트로 쓰면 아무리 CIA나 KGB의 감독이 철저하다고 해도 사고는 그칠 사이 없이 일어난다. 망명, 배반을 위시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인간의 약점을 속속들이 드러내는 예가 많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임무는 실패에 그치고 만다.
이러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하여 CIA와 KGB 모두 추진해 온 것이 인간의 의식 조작에 관한 연구, 개발이었다. 에이전트의 정신을 지배함으로써 그들을 자유로이 조종한다는 소위 마인드컨트롤(mind control)이다.
전 CIA장관 리차트 헤롬즈는 미국상원 처치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에이전트롤 100퍼센트 신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한가지 생겼다. 그것은 그들을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소유해 버리는 것이다> 이 완전 소유의 절대적인 수단이 바로 마인드컨트롤인 것이다.
이 마인드컨트롤에 관한 한 가지 실례를 들기로한다.
월남전에서 귀환한 3명의 미국병사가 자기네들이 도대체 월남에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를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보병이나 전차부대에 있었는데 모두 특수공작부대에 배속되어 있었다. 세 사람이 한결같이 건망증에 걸렸다고는 볼 수 없고, 그렇다고 싸움터에서 뭔가 큰 쇼크를 받아서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할 만한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같은 특수공작부대에 소속해 있었고 제대 직전 육군병원에 보름씩 입원해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보통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그 직전 병원에서 일단 의료 체크를 받는다. 그러나 보름씩이나 입원하는 일은 없다. 게다가 세 사람은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던 것이다.
병원에서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즉, 월남전에 종군했던 시기에서부터 제대 직전 병원의 검사때까지의 자기의 생활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은 간단했다. 그 병사들이 월남에서 수행한 공작이 극비를 요하기 때문에 그 공작에 관한 그들의 기억을 지워버릴 필요가 있어서 15일간이라는 장기간의 입원에 의한 시술을 받게 한 것이었다.
1975년 8월, 제임스 무어라는 미국의 언론인이 어떤 잡지에 흥미있는 기사를 썼다. 그 기사는 무어가 전 CIA간부로부터 입수한 350페이지에 걸친 자료에 의한 것이었다.
주제는 RHIC와 EDOM (RHIC: 전파 최면에 의한 뇌내부의 컨트롤, EDOM:전자력에 의한 기억 말살)에 관한 CIA의 견해였는데 어떻게 인간을 로보트화시키고 컴퓨터에 의해 프로그램화시켜 원격조정으로 움직이게 하느냐 하는 것이 그 자료의 중심 내용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마인드컨트롤인 것이다.
무어가 손에 넣은 그 자료에 의하면 인간을 로보트로 만드는 그 과정은 두가지로 나뉜다.
우선, 제 1단계가 RHIC. 이것은 대상이 되는 인물을 강제로 최면상태에 빠뜨려, 어떤 일정한 신호(소리나 시그널)로 항상 그 상태에 빠지도록 훈련한다. 다음에는 그 상태로 놔둔 채로 프로그램을 설정한다. 여기에는 뇌의 어떤 부분에 전파 시그널을 보내어 자극을 준다. 즉, 뇌의 명령기능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무어는 설명한다.
<뇌의 어떤 부분이 시각이나 청각 등 외부로부터 작은 전파자극을 받으면 감정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분노>라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뇌의 부분에 인공적인 자극을 주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이론대로라면 분노와 마찬가지로 파괴나 암살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필요한 부분에 자극을 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프로그램이 준비된다. 그리고 사전에 결정한 암호나 신호에 의해 프로그램화 된 사람은 최면상태에 빠지고 암살이나 사보타지 등을 실행한다. 이 컨트롤은 평생 유효하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기억의 말살부분에 대해서도 내가 여러차례 말했듯이 가장 피해가 심했던 2004년 12월~2005년 2월경의 3개월의 기억이 거의 없다. 그 이전과 이 이후는 몇일이라는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데도 말이다.
원격으로 신체를 조종당하는 것에 대해서도 계속적으로 주장하는 부분이다.
|
첫댓글 이쯤되면 지금 우리에게 하는 생체실험은 단순히 인간 생체신호 데이터를 얻기 위한 수준을 넘어, 인공지능을 기계학습시키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미 무수히 많은 개개인의 뇌지도는 어느정도 그려졌을 것이고, 그 다수의 사람들을 손쉽게 원하는대로 컨트롤할 인공지능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이해가 간다.
소프트웨어 즉, 컴퓨터 프로그램은 1950년대부터 존재했고, 60년대부터는 상품화되기 시작. 즉, 최소 50년대부터는 기초적인 수준일 지라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공공연히 가능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