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이면 좋겠다 강 성 희(리디아)
중학교를 졸업한 후, 여고 입학을 며칠 앞두고 여고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마음이 조금 들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춘분이 가까웠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코끝이 맵기도 했다. 바람이 없는 양지쪽 담벼락 아래에는 따사롭고 포근한 햇볕을 받아 말라 있던 냉이풀이나 꽃다지 같은 풀들이 새 잎을 내며 조금씩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내가 달력에서 지워버리고 싶던 그 날, 세월이 흘러 반백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결코 잊혀지진 않는다. 그날의 충격은 지금도 그 날처럼 생생하지만, 이제는 그 날처럼 절망으로 그 날을 기억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 날의 철없었음을, 그 날의 난감했을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그래, 그럴 수 있어, 두렵기도 했을 거야.’ 하며 아이도 어른도 아닌 그 때의 나에게 위안을 건네곤 한다.
그 날은 이웃에 사는 사촌오빠의 둘째 아기가 탄생하는 날이었다. 아침을 먹고 일찌감치 엄마께서는 ‘언니에게 산기가 오는 것 같다’는 오빠의 전갈을 받고 사촌 오빠네로 건너 가셨다. 오빠네에는 그 전 해에도 아기가 태어났었다. 이제 갓 돌을 넘겨 그 날 태어날 아기와는 연년생일 터였다. 나는 그 날 사촌 오빠의 첫아기 돌보미 역할을 맡았다. 길수라는 이름의 사내 아기는 순하고 귀여웠다. 별일 아닌 일에도 까르르 웃기를 잘하고 도리 도리 잼잼을 시키면 신나게 따라하면서 웃는 눈이 반달처럼 되어 더욱 예뻤다. 길수가 오빠나 언니 품에 안겨 우리 집에 오는 날이면 동생과 나는 서로 길수를 안아 보겠다며 부산을 떨거나 차례를 기다려 안아보곤 했다.
아침에 언니의 산기 소식을 가지고 달려온 오빠는 길수도 데리고 왔다. 나에게 넘겨진 길수는 그 날 따라 전에 없이 심통을 부리고 업어 달라고 떼를 썼다. 동생에게 엄마를 뺏긴다는 걸 벌써 아는 눈치인가 싶기도 했다. 웃지도 않고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듯이 내 품을 파고들며 기운이 없어 보였다. 아랫니 윗니 여덟개의 이빨을 드러내고 하얗게 웃던 길수가 오늘 따라 우울한 날, 그 날은 나도 한없이 우울한 날이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 나는데 기분이 상쾌하지 못하고 마음이 묵직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얀 속옷에 빨간 이슬이 맺혀 있었다. 나는 내 몸과 뇌리에 번개가 스치는 듯한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 느낌은 너무 무섭고 절망스러웠다. 앞으로 무엇에겐가 억압받아야 한다는, 구속당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비관적인 느낌, 그러나 내가 거역할 수 없고,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 없다는 무기력감과 절망감에 숨도 크게 쉴 수가 없었다. 얼굴은 새빨개졌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아니겠지? 아니겠지?’하며 다시 화장실을 다녀 왔지만 빨간 이슬은 틀림이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첫 가정시간에 가정 선생님께서는 ‘여자가 되는 시간’을 특강 하셨다. ‘항상 용모를 단정히 해야 한다. 속옷을 격식에 따라 깨끗이 갖추어 입어야 하며, 실과 바늘은 필수품으로 소지품과 함께 지녀야 한다. 그리고 곧 초경이 시작될 터이니 미리 마음의 준비와 그 때 필요한 생리대를 준비해 두어야 한다.’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생리를 빨간 이슬로, 초경을 첫이슬로 표현하셨다. 우리는 그 때 초경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생리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요즘에는 이르면 초등학교 3학년에 초경을 시작하는 아이도 있고, 그런 면에서는 개방된 교육과 문화로 인해 생리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친구끼리 주고받지만, 그 당시에는 금기어처럼 아주 친한 친구와도 그런 이야기는 잘 주고받지 않는, 우리에겐 일급 비밀어였다. 단지 장난처럼 진담처럼 너 첫이슬 왔어? 하고 친한 친구끼리 서로 은밀히 묻곤 하였다. 우리는 비밀의 문 앞에 선 여행자처럼 호기심과 부끄러움으로 상기된 채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는 아직 여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날의 숙제는 다음 가정시간까지 외올베(거즈천) 준비하기였다. 엄마께 다음 주 가정시간에 외올베를 가져가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면서도 나는 남동생들이 들을세라 조그마한 목소리로 엄마의 귓전에다 속삭이듯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진정 여자가 되는 시작이며, 당당한 여자로서 거듭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왠지 부끄러워해야 할 것 같았고 또 부끄러웠다.
그렇게 여자가 될 준비를 해두고 거의 3년이 되어 갈 무렵이었다. 이웃의 사촌 오빠네 둘째 아기가 태어나는 날 아침, 나는 속옷에 묻은 빨간 이슬을 확인한 후 부터는 내가 내 정신이 아닌 듯 허둥대었다. 부끄러워 엄마께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혹시 아닐 수도 있어‘하며 언니에게도 한참동안 말하지 못했다. 오빠네 둘째 아기가 딸이라는 소식도, 길수가 내 등에 업혀 칭얼대는 일도 나에겐 관심 밖의 일처럼 아득했다. ’어쩌나? 사실일까? 빨간 이슬이 맞나? 하느님께서 잘못 주신 건 아닌가? 하느님께서 실수로 내리셔서 내일이면 아니, 지금 당장 거두어 가실 것은 아닐까?‘ 부정하고 싶었다. 가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 빨간 이슬이 아니었으면 했다. 망설임 끝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건 빨간 이슬이 아니야, 조금 더 기다려야 해’ 하는 말을 듣고 싶어 언니에게 나의 일을 이야기 했다. 언니는 ‘너도 이제 여자가 되었네, 축하해’ 하며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며 확인 사살을 하듯 내 명치를 찌르는 대답으로 돌려 주었다. 언니의 태도는 다정했지만 나에겐 찬바람으로만 느껴졌다. 언니는 엄마와 언니가 사용하는 생리대를 담아둔 상자에서 하얀 외올베를 꺼내 주면서 ‘여기 있으니까, 꺼내서 써. 그리고 나중에 애벌빨래만 해 두면 내가 삶아 빨아 널어 줄게’하고 말했다. 나는 언니의 그런 친절에도 고맙다는 말도, ‘그럴게’ 라는 긍정의 대답도 하지 못하고 산만하고 부끄러워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칭얼대는 길수를 핑계 삼아 괜스레 바깥을 서성였다. 길수는 동생으로 인해 엄마를 빼앗겨 우울하고, 나는 세월로 인해 소녀 시절을 빼앗겨서 우울한가? 앞 집의 한지 봉창을 통해 들려오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선 ‘사무치게 그리워서 강변에 서면 눈물 속에 깜박이는 강 건너 등불’ 하며 촉촉한 여자 가수의 목소리가 리듬을 타며 나의 우울감을 부추기고 있었다.
양지 담벼락 밑에는 갓 올라온 듯한 여린 아기 풀들이 곧 봄이 올 것임을 알리지만 나는 다시 겨울로 가는 시간에 오른 것만 같았다.
‘오늘이 만우절이면 좋겠다. 오늘이 만우절이서 하느님께서 나를 한 번 놀래켜 주시려고, 거짓말을 하셨노라고 하시며 껄껄껄 웃어 주시면 좋겠다. ’ 노래가 한 곡 끝나기 전에 이 생각을 열 번 정도는 한 것 같다.
어림도 없이 불가능할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나의 특별한 기념일을 온통 잿빛으로 칠하며 그 날 하루를 보냈다.
지금까지의 생을 살면서 그 날 이후에도 오늘이 만우절 이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한 날이 한 두 번 쯤은 더 있었다. 반백년 전의 빨간 이슬 사건이나 그 후의 힘들다고 생각했던 사건들도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니거나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을 만큼 그런 큰 어려움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힘들고 어려운 일을 이겨내며 새로운 경험치를 높이고 뒤에 올 어려움의 해결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 이제 어려움이 있을 때 만우절 타령은 하지 않는다. 또, 만우절의 피해자가 되어 사월의 바보가 되는 것도 사월의 물고기가 되는 것도 그다지 두렵지 않다. 힘들면 힘든 대로,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삭히고 삼키는 내공도 삶의 두께와 비례해 쌓여가는 모양이다. (끝) 2019.04.04
첫댓글 어린 소녀가 격은 알면서도 놀란 사건을 진솔하게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느땐 꿈이길 바라고 어떤 소식을 접해 당황하며 거짓말이길 바라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게 내 뜻과는 다르게 살아 갈 수 밖에없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며 재미있고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들에겐 생소한 얘기네요. 그게 그렇게 힘들고 낯선 통과의례였음을 어림짐작 해 봅니다.
우리는 살면서 오늘이 만우절 이었으면 싶은 일들을 수없이 겪어 온 것 같습니다.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 것도요.
잘 읽었습니다.
여자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였습니다. 지금은 초경을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으나, 그 당시는 매우 당황하였으리라 짐작됩니다. 여자만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당혹스럽거나 원하지 않는 일을 겪으면 사실이 아니고 그날이 만우절이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촌조카가 탄생한 날, 여성으로서의 첫 출발 신호를 받은 그날은 축복의 날임이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당혹스러운 일을 당하면 꿈이었으면, 만우절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데 그 때 우리들은 초경을 맞으면 너무 부끄럽고, 숨기고 싶어했습니다. 저는 언니도 없고 남형제 뿐인 상황이었는데 어머니한테도 부끄러워 말 못해 끙끙 앓았던 기억이납니다. 리디아님은 언니의 배려와 가정선생님들 상세한 안내로 잘 치르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동급생이라도 시골에서 문명퇴치 바람이 불어 집에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와 언니같은 친구들이 어느날 3학년에 편입되는 일이 6.25 이후에 시골학교에는 있었다. 자연히 정상적으로 들어간 친구와 나이가 많은 친구들이 끼리끼리 모여 놀기 마련이다. 자기들끼리 앉아 이야기하는데 쫓아가 앉으면 하던 이야기를 뚝 끊는다. 처음엔 영문을 몰랐지만 한참 후중학교 때는 그것이 초경이야긴줄 짐작하게 되었다. 가정시간에 선생님께 배웠지만 늦게 맞은 나도 당황했답니다. 초등 3학년 말쯤 손녀가 초경을 한다기에 딸을 키워보지 않았던 나도 놀랐다. 초경을 기념하기위해 팥밥을 해먹었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다.
"만우절이었으면 좋겠다." 만우절이 아니어서 좋았네요. 그제사 진정 여자가 되었으니까요. 남자들은 치려지 않는 여자들의 특권?에 대해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3년을 기다리고 준비해서 마술에 걸린 날이 만우절이네요.
그때는 말못하는 가슴앓이였지만
요사이는 부모님께 당당하게 말하고 선물까지 받는다고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리디아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쿡 웃음이 나왔답니다. 중 2때 몽정으로 팬티를 버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했었던 일이 생각이 나서요. 그때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좀 늦었군요. 요즘은 그 반대인 것 같은데? 옛날을 회상하며 잘 읽었습니다.
초경이 온 딸에게 꽃다발을 선물 했다는 친구 말이 떠 오릅니다. 아버지에게 초경 사실을 당당하게 알릴 수 있는 세대.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강선생님의 복잡했던한 심경을 요즘 어린이들에게 들려 준다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합니다. 아무튼 숨기고 싶었던 얘기를 글로 표현 할수 있는 용기. 수필가로서 가능성이 크다하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