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7일(월) 광주일보

영국의 전 수상 마가렛 대처의 삶을 다룬 영화 <철의 여인>은 메릴 스트립에 의한 메릴 스트립을 위한 메릴 스트립의 영화라고 말 할 수 있다. 대처 수상이 밟아온 삶의 족적을 아마 메릴 스트립만큼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는 연기자가 누가 있을까? 그녀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는 2012년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이라는 타이틀이 대변한다.
영화는 대처 수상의 업적이나 정치적 행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인간 대처의 삶 자체에 시선을 두고 진행된다. 이제는 치매에 걸려 보통 할머니로 살아가고 있는 대처의 모습부터 시작하는 영화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식료품집 소녀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큰 뜻을 품고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낙심한 그녀를 눈여겨 본 사업가 대니스 대처는 후원자가 되기로 약속하고 그녀와 사랑을 키우게 된다. 젊은 날의 대처 수상이 남편을 만나 들른 오페라 극장, 극장에서는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가 공연되고, 그녀와 남편은 이 오페라의 아름다운 선율과 이야기를 들으며 사랑을 약속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운다.
이 공연장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바로 저 유명한 아리아 ‘정결한 여신(Casta Diva)'이다. 수없이 많은 오페라 아리아들이 사랑받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인 아리아로,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선율이 청자를 감동시키는 노래다.
벨리니의 <노르마>는 비극적 결말을 가진 오페라다. ‘정결한 여신’은 제1막에서 주인공 노르마가 부르는 아리아로, 비밀리에 사랑해온 로마총독 폴리오네가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져버린 것을 비탄해하면서, 그가 돌아올 것과 갈리아 지방의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다. 이 노래에서 ‘정결한 여신’은 곧 ‘달’을 뜻한다.
노르마 최고의 가수는 마리아 칼라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기교와 가창력에서 마리아 칼라스보다 나은 가수들은 많았지만, 호소력있는 연기와 캐릭터 자체에 자신의 삶을 강하게 투영시켰던 칼라스를 넘볼 수 있는 가수는 당시에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들은 불멸의 멜로디와 함께 영원히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노래와 연기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안젤라 게오르규와 함께 순식간에 오페라계 양대 디바로 떠오른 네트렙코는 마리아 칼라스를 잇는 진정한 카스타 디바를 노래한다. 섬세한 기교와 압도적인 카리스마, 육감적인 외모는 마리아 칼라스의 연기에 화려한 기교를 더했다는 평가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공연 영상 등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가수인지를 금세 알 수 있다.
영화속 치매에 걸려 자신의 남편을 추억하는 대처의 눈빛은 ‘정결한 여신’을 노래하는 극중 노르마와 다르지 않다. 노르마의 애타던 심정이 곧 영국을 쥐고 흔들었던 철의 여인 대처의 마음 아니었을까? 카스타 디바의 가사는 이런 대처의 마음을 더욱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아! 아름다운 사람아 내게 돌아오라/당신의 평온한 빛과 함께/살고 싶어라 당신의 품안에서/조국이여 그리고 하늘이여/아, 돌아오라 다시금 예전의 당신으로/그때에 나의 마음을 네게 주었었지/아, 돌아오라 내게로...”
<독립영화감독/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