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양이씨(江陽李氏)
시조: 이초(李超)
<氏族의 연원>
시조 이초(李超)는 고려조에 사재령(司宰令)을 지냈다. '朝鮮氏族統譜'에 보면 이개지(李開之)의 후손인데, 합천이씨(陜川李氏)와 동원(同源)이라고 한다.
<本貫地 연혁>
강양(江陽)은 경남 합천(陜川)의 옛 이름이다. 주요 성씨로 李씨가 있었다. 한편 합천(陜川)은 신라 초기의 대양주군(大良州郡) 또는 대야군(大倻郡)이다. 경덕왕 때 강양군(江陽郡)으로 개칭하고, 고려 현종 때 합주(陜州)로 승격하였다. 이조 태종 때 다시 군(郡)이 되어 합천(陜川)으로 개칭하고, 1914년에 삼가(三嘉)·초계(草溪)·합천(陜川)의 3군을 병합해서 현재의 군이 되었다.
<氏族史의 개요>
강양군(江陽君) 이개(李開)는 도시조인 경주(慶州) 문선공(文宣公) 표암(瓢巖) 이알평(李謁平) 시조의 39세손이다. 그는 신라말의 충신으로 신라의 운이 쇠진하고 고려가 건국되자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충절로 불복, 관직이 가수현장(嘉樹縣長) 및 합천호장(陜川戶長)으로 전락되었다. 그후 합천읍(陜川邑) 중흥동(中興洞)에 만서정(晩捿亭)을 짓고 여생을 보내다 경순왕의 흉보를 듣고 즉시 순국하였는데, 고려조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의 장계로 문충공(文忠公)의 시호를 받았다. 강양이씨(江陽李氏)는 각각 9세손과 10세손에 이르러 11개파로 분파되었는데, 9세손 이양실(李良實) 이양진(李良眞)으로부터는 참지공파(參知公派)로 나뉘었다. 그리고 10세손 이림(李琳)은 전객령공파(典客令公派), 이수전(李守全)은 전서공파(典書公派), 이기(李起)는 병사공파(兵使公派), 이필(李蹕)은 교리공파(校理公派), 이공실(李公實)은 첨사공파(詹事公派)로 분파되었으며, 이공주(李公柱)는 목사공파(牧使公派), 이세방(李世芳)은 부사공파(府使公派), 이원경(李元慶)은 제학공파(提學公派), 이춘계(李春啓)는 상서공파(尙書公派)로 나뉘었다.
1985년 현재 전체인구 4,476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