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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 간 문 학 이 야 기 원문보기 글쓴이: 마운틴
2. 로버트 킨케이드
1965년 8월 8일 아침. 워싱턴 주의 벨링햄. 로버트 킨케이드는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의 3층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자기 집 문을 잠갔다.
그는 사진 촬영 도구가 가득 든 배낭과 옷가방 하나를 들고 나무층계를 내려가 복도를 통해 뒷문으로 나왔다.
아파트의 입주자를 위해 마련된 주차 공간에 그의 낡아빠진 시보레 픽업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트럭 안에는 이미 배낭 하나와 중간 크기의 아이스박스, 삼각 다리 두 개, 카멜 담배 및 상자, 더모스 보온병, 과일이 든 가방이 실려 있었다.
트럭 뒤칸에는 기타 상자가 있었다. 킨케이드는 배낭을 앞자리에 놓고, 아이스박스와 삼각 다리 두 개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트럭 뒤칸에 올라가서 기타 상자와 옷가방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놓고, 스페어 타이어를 버팀목 삼아 길다란 빨랫줄로 그 둘을 타이어에 묶었다.
그리고 닳아빠진 스페어 타이어 밑으로는 검정색 방수천을 깔았다.
그는 운전석에 앉아서 카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머릿속으로 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구색을 갖춘 필름 2백 통, 저속코닥크롬, 삼각 다리, 아이스박스, 카메라 세 대와 렌즈 다섯 개, 청바지, 카키색 바지, 셔츠, 그리고 촬영할 때 입는 조끼는 입고 있었다.
됐어. 그밖에 잊은 다른 물건이 있으면 여행중이라도 살 수 있을 것이다.
킨케이드는 물빠진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오래 신은 레드윙 부츠에 카키색 셔츠, 오렌지색 멜빵 차림이었다.
넓은 가죽벨트에는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스위스제 군용칼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8시 17분. 시동을 두 번째 걸고서야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기어를 변속해, 이제 막 햇빛이 들기 시작하는 골목을 천천히 빠져나갔다.
그는 벨링햄의 도로를 타고 나가 워싱턴 11번 도로를 탄 다음 남쪽으로 향하다가 푸겟 사운드 해안을 따라 몇 마일을 달렸다. 그러다가 20번 국도를 만났다.
햇빛이 드는 쪽으로 차를 돌린 그는 길고 구불구불한 캐스케이즈 마을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고장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이 풀어져서 이따금씩 차를 세우고, 앞으로 돌아볼 구미가 당기는 곳을 메모하거나 그가 '기억용 스냅 사진'이라고 부르는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사진을 찍는 목적은, 다시 방문해서 더 자세한 접근해 보고 싶은 곳을 기억 창고에 담아두기 위해서였다.
오후 늦게 그는 스포케인에서 북쪽으로 돌아 2번 국도를 타고 북부의 여러 주를 가로질러 미네소타 주의 덜루스까지 갔다.
그는 살면서 개를 한 마리 가졌으면 하고 수천 번도 더 바랐다. 황금색 리트리버(사냥개의 일종 : 옮긴이)가 한 마리 있으면 이렇게 여행을 할 때 좋은 친구가 되어 주련만. 그러면 집을 떠났다는 느낌이 한결 덜할 것이다.
하지만 밖으로 도는 경우가 자주 있었고, 해외 여행도 만만치 않게 잦았으므로 그것은 동물에게 공평치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는 그 문제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너무 들어서 힘든 야외 작업을 하지 못하게 되면 개를 한 마리 기르겠노라고.
'그때가 되면 개를 한 마리 데리고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는 트럭 창문을 비켜 지나가는 침엽수에 대고 중얼거렸다.
이런 드라이브는 언제나 침울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개도 그 일부분이었다.
로버트 킨케이드는 말할 수 없이 외로웠다.
외아들인 데다가 부모가 다 돌아가셨고, 먼 친척들은 그가 어디 사는지 몰랐고, 그도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 몰라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도 없었고.
그는 벨링햄의 길 모퉁이 가게 주인과 그가 필요한 도구를 구입하는 사진 기자재 상점의 주인 이름은 알았다.
또 몇 군데 잡지사 편집사들과 공식적인 직업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상은 잘 아는 사람도 없었고, 또 그를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집시는 보통 사람들을 친구로 삼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도 일종의 집시 기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킨케이드는 매리언 생각을 했다. 그녀는 9년 전 그를 떠나갔다.
5년 동안의 결혼 생활 후였다.
이제 그가 쉰두 살이니, 그녀는 마흔 살이 채 안 되었으리라.
매리언은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포크싱어가.
그녀는 위버즈의 노래 전부를 잘 알았고, 시애틀의 커피점 몇 군데에서 그 노래들을 굉장히 잘 불렀다.
예전에 킨케이드는 집에 있을 때면 그녀를 태우고 재즈 연주회장에 가서 그녀가 노래하는 동안 관객석에 앉아 있곤 했다.
그가 장기간 집을 비우는 일이 -- 어떤 때는 두 달. 석 달씩 -- 결혼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 그들이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매리언도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았고, 두 사람 다 애매하게나마 어떻게든 잘 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 되질 않았다.
한 번은 그가 아이슬랜드에서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그녀는 떠나고 없었다. 쪽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로버트, 잘 되질 않았어요.
당신에게 하모니 기타를 남기고 가요. 계속 연락하세요.'
그는 계속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1년 후 이혼 서류가 오자 그는 서명하고,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날아갔다.
매리언은 자유 외에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밤 늦게 몬타나 주의 칼리스펠에서 차를 세웠다.
'코지 인'은 숙박비가 비쌀 것 같지 않았고, 과연 그랬다.
그는 객실로 소지품을 옮겼다.
테이블 림프 둘 중 하나는 전구가 나가서 들어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을 읽으면서 맥주를 마시노라니 칼리스펠의 제지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아침에 그는 40분간 조깅을 하고, 팔굽혀펴기를 쉰 개 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아령 삼아 늘 하는 체조를 했다.
몬타나의 꼭대기를 달려 북 다코타 주로 접어들었다.
그는 메마르고 평편한 이 지방이 산맥이나 바다만큼이나 매혹적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지역에는 엄숙한 아름다움 같은 것이 있었다.
킨케이드는 몇 번이나 차를 멈추고, 삼각 다리를 세우고 고풍스런 농장 건물을 흑백으로 촬영했다.
이런 풍경이 그의 작가적인 구미에 맞았다.
인디언 거주 지역은 쇠락해가고 있었다.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마는 마을. 인디언들이 북서부 워싱턴에 자리잡았다고 해서 환경이 더 좋아졌다고 할 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가 본 인디언 마을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8월 14일 아침, 덜루스를 떠나 두 시간을 달려 그는 북동쪽을 빠져나가 히빙과 철광산으로 올라가는 뒷도로를 탔다.
공기중에 빨간 먼지가루가 떠다녔고, 커다란 기계와 철광석을 슈피어리어 호의 운송선으로 실어 나르도록 특별히 고안된 기차가 있었다.
킨케이드는 히빙을 둘러보면서 오후 한나절을 보냈다.
보브 딜런이 출생한 곳이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별로 들지 않았다.
보브 딜런의 노래 가운데 그가 정말로 좋아하는 곡은 '북부 지방에서 온 소녀' 딱 한 곡이었다.
그는 그 노래를 연주하면서 노래할 수 있었다.
킨케이드는 그곳을 뒤로 하면서 혼자 노래를 흥얼거렸다.
매리언은 그에게 코드 몇 개와 초보적인 기타 반주법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그녀에게 남겨준 것보다 그녀가 내게 남겨준 게 더 많았지요."
전에 그는 아마존 유역 어느 곳의 맥컬로이 바 라는 곳에서 어떤 주정뱅이 뱃사람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슈피어리어 국립 공원은 근사했다. 정말로 멋졌다.
뱃사공의 고장. 킨케이드는 어렸을 때 배로 운송하는 시절이 끝나지 않았으며 하고 바란 적이 있었다.
그러면 그도 뱃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는 초원 근처를 달리면서 세 마리의 어미사슴과 수많은 아기사슴들, 그리고 빨간 여우를 보았다.
연못에서 차를 멈추고, 이상한 모양의 나뭇가지가 물에 그림자를 드리운 장면을 몇 장 찍었다.
촬영을 끝내고 그는 트럭 뒤칸에 걸터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카멜 한 대를 피우면서 자작나무 숲에 바람 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여자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는 담배 연기가 연못 위로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나이가 드니 마음이 이상해지는군.'
하지만 그가 집을 떠나 있는 일이 너무 잦으니 집에 남은 사람에게는 고통일 터였다.
이미 겪어 봐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킨케이드는 벨링햄의 집에 있을 때면 시애틀의 광고 대행사에서 부장으로 일하는 여자와 이따금씩 데이트를 했다.
그녀와는 공동 작업을 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여자는 마흔 두 살이었고, 밝고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킨케이드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하게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때때로 두 사람 다 약간 외로울 때면,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곤 했다.
영화관에 가고, 맥주를 홀짝이고, 상당히 근사한 사랑의 행위를 나누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한 여자였다.
두 번 결혼한 경험이 있었고, 대학에 다니면서는 몇 군데 바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었다.
정사를 나눈 후 함께 누워 있을 때면 그녀는 어김없이 이렇게 속삭이곤 했다.
"당신, 최고예요. 로버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어요.
누구도 당신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할 거예요."
남자라면 누구라도 듣기 좋아할 말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경험이 많지 않은 그로서는 그녀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한 번은 그녀가 그의 마음을 맴도는 이야기를 했다.
"로버트, 당신 안에는 내가 들춰낼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나는 거기에 닿을 힘이 없어요.
때때로 당신이 여기 오랫동안, 한 사람의 생애보다도 더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혼자만의 공간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구요.
당신은 내게 다정하게 대해 주지만, 나는 당신이 두려울 때가 있어요.
당신을 향하는 내 마음을 제어하려고 나 자신과 싸우지 않으면 난 내 중심을 잃게 되고 말 거예요.
그래서 다시는 찾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는 어렴풋이나마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 알았다.
하지만 그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킨케이드는 오하이오 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던 소년 시절에도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넘쳐나는 생각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감상에 잠기곤 했다.
다른 아이들이 '저어라, 저어라, 노를 저어라' 같은 노래를 부를 때면 그는 그 영어가사를 블란서의 카바레 노래에 갖다 붙이곤 했다.
그는 낱말과 이미지를 좋아했다.
블루 라는 말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였다.
그 말을 할 때의, 입술과 혀가 만들어 내는 느낌이 좋았다.
어릴 적부터, 낱말에는 단순한 의미뿐만 아니라 뭔가 느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킨케이드는 또 '머나먼' '나무를 땐 연기' '고속도로' '옛날' '통과' '뱃사람' '인디아' 같은 낱말을 좋아했다.
이런 말이 소리나는 방식과 혀끝에 맴도는 감칠맛, 또 마음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좋아하는 낱말을 적은 목록을 벽에 붙여놓았다.
그리고 또 낱말들을 조합해 구절을 만든 다음 벽에 붙여 놓곤 했다 :
가까이 하기엔 너무 뜨거운 불.
나는 몇 안 되는 여행자 무리와 함께 동쪽에서 왔다.
나를 구해 주려는 사람들과 나를 팔려는 사람들은
계속 즐거운 듯 지껄인다.
부적이여, 부적이여, 내게 너의 비밀을 보여달라.
키잡이여, 키잡이여, 나를 집으로 데려가라.
푸른 고래들이 헤엄치는 곳에 벌거벗고 누워 있기.
그녀는 그가 겨울의 역을 떠나는 증기 기관차이기를 원했다.
어른이 되기 전에 나는 화살이었네 -
아주 오래 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이름을 적은 목록도 있었다.
소말리 해류, 빅 해쳇 산맥, 말라카 해협, 그리고 다른 이름도 길게 씌어 있었다.
그의 어머니조차도 그가 뭔가 남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킨케이드는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다가 세 살이 되자 어느새 완전한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했고, 다섯 살 무렵에는 무엇이나 거침없이 읽게 되었다.
그는 학교에서는 무덤덤한 학생이어서 선생님들을 조바심나게 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그의 아이큐 지수를 보고 그에게 성취에 대해,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해 주었다.
너 정도의 수준이라면 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을거라는 말도 해주었다.
고교 선생님 한 분은 그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썼다 :
'그는 아이큐 지수가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좋지 못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아이큐 테스트가 사람의 신비스러운 일면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비스러움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고, 또 논리적인 것의 보완물로도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그의 부모와의 면담을 제의하는 바이다.'
그의 어머니는 선생님 몇 분과 만났다.
선생님들은 로버트가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괴팍스런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로버트는 자기가 만든 세계 속에서 살고 있어요.
내 아들인 것이 분명한데도 이따금씩 그애가 남편과 나 사이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그애가 돌아가려고 애쓰는 다른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유배된 아이 같다는 기분이 들때가 있어요.
아들애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애에게 학교에서 더 잘하라고 한 번 더 용기를 북돋워 주겠습니다."
킨케이드는 지방 도서관에서 모험 소설과 여행에 관한 책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무도회나 풋볼 게임 같은 떠들썩한 일은 질색이었다. 홀로 지내면서 마을의 구석을 따라 흐르는 강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그는 낚시를 하고 수영을 하고 산보를 했다.
또 키 높이 자란 풀밭에 누워, 어딘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저곳에는 마법사가 있어. 가만히 귀를 열고 있으면 마법사의 소리가 들리지."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을 함께 나눌 개를 한 마리 가지고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대학에는 진학할 만한 돈이 없었다.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열심히 일했고 그의 어머니와 그에게 잘 대했지만, 밸브 공장에서 일하는 것으로는 개를 키울 비용을 비롯해 다른 일을 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는 열여덟 살이었고, 대공황의 바람이 심하게 불어닥쳤다.
그는 어머니와 자신을 부양하기 위한 방법으로 군대에 자원했다. 그리고 4년 간 군대에 복무했지만 그 4년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군대 상급자들이 무슨 생각에서 그랬는지, 카메라 조작법조차 모르는 그를 사진사 보조 업무에 배치했다.
하지만 그 일에서 그는 직업을 구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사진 기술을 배우는 일이 너무 쉬웠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킨케이드는 두 명의 정식 사진사들을 도와 암실 작업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간단한 피사체는 직접 촬영해도 좋다는 허가까지 얻었다.
사진사 중의 한 사람인 짐 피터슨은 그를 좋아해서, 특별히 시간을 내어 사진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로버트 킨케이드는 포트 몬마우스 시립 도서관에서 사진 서적과 예술 서적을 읽으며 공부했다.
그는 특히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과 렘브란트의 광선 이용법을 좋아했다.
그는 곧 터득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대상은 피사체가 아니라 빛이라는 것을. 피사체는 단지 빛을 반사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광선이 좋으면 언제나 촬영할 만한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때 35밀리 카메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는 그 지방 상점에서 중고 라이카 카메라 한 대를 샀다.
킨케이드는 그걸 가지고 뉴저지 주의 케이프 메이로 가서 일주일 휴가 내내 해안을 따라 사는 인생들을 촬영했다.
또 메인 주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히치하이킹으로 해안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우편선을 타고 스토닝턴에서 오호뜨 섬까지 간 후 여객선 편으로 펀디만에서 노바 스코티아까지 간 일도 있었다.
그는 촬영을 위해 다시 가보고 싶은 지역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가 스물두 살의 나이로 군대에서 제대했을 때는 상당히 괜찮은 사진사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뉴욕에서 유명 패션 사진 작가를 돕는 일자리를 얻었다.
여자 모델들은 아름다웠다. 그는 몇 명의 모델과 데이트를 하고 한 사람이랑은 조금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가 파리로 옮겨가는 바람에 헤어지게 되었다.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로버트,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파리로 나를 만나러 와줘요."
그는 그러겠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말할 때는 정말 그럴 의도였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몇 년 후 그는 노르망디 해안에서 사진 작업을 하면서, 파리에서 간행된 책 속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했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둘은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녀는 영화 감독과 결혼해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는 패션이라는 아이디어에 열중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유럽 패션 비평가들의 조언에 따라 춤을 추었다.
완벽하게 훌륭한 옷이라도 서둘러 벗어 던졌고, 서둘러 옷을 지어 입었다.
킨케이드에게는 멍청한 짓들만 같았다.
그는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이 왜소해진 기분이었다.
그 일을 그만두고 나서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생긴 대로 살자'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뉴욕에서 일한 지 두 해째 되었을 때 죽었다.
그는 오하이오로 돌아가서 어머니를 묻었고, 변호사 앞에 앉아서 그가 읽는 유서 내용을 들었다.
유산은 별로 없었다.
뭐가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터였다.
하지만 부모가 결혼한 이래 계속 살았던 작은 집이 은행 빚도 없이 고스란히 그의 몫으로 남겨졌다는 사실에 그는 깜짝 놀랐다.
그는 그 집을 팔아 일류 기재를 샀다.
카메라 세일즈맨에게 돈을 치르면서 그는 아버지가 그 돈을 벌려고 일했던 세월과 부모의 검소했던 삶을 생각했다.
그가 작업한 사진의 일부가 작은 잡지에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전화가 왔다.
그들은 킨케이드가 케이프 메이에서 찍은 달력 사진을 봤다고 했다.
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간단한 일을 맡았다.
전문가답게 처리한 덕분에 정식으로 계약을 하고 일하게 되었다.
1943년, 군대에서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킨케이드는 해군과 함께 남태평양으로 갔다.
어깨에, 등에 카메라를 둘러메고 상륙 작전을 하는 모습을 찍었다.
그는 그들의 얼굴에 어린 공포를 보았고 스스로도 공포를 느꼈다. 기관총을 맞고 몸뚱이가 반으로 토막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하나님과 어머니를 부르며 도와달라고 외치는 것도 보았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찍었고, 살아났다.
영광과 낭만이 넘치는 전쟁 사진은 찍은 적이 없었다.
1945년 제대한 후, 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전화했다.
그쪽에서는 언제라도 그에게 일을 맡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킨케이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오토바이를 한 대 사서 남쪽으로 달려 빅서로 갔다.
그리고 카멜 출신의 첼리스트와 해변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워싱턴 주를 탐살하려고 다시 북쪽으로 갔다.
그는 그곳이 마음에 들어서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쉰두 살의 나이에 그는 아직도 광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소년 시절 벽에 붙여놓은 거의 모든 장소에 가보았고, 래플즈 바에 앉아 있거나, 칙칙 푹푹 소리가 나는 배를 타고 아마존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낙타를 타고 라자스타니 사막을 건널 때는 그런 곳을 방문해 그곳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다.
슈피어리어 호는 듣던 것만큼 근사했다.
그는 앞으로 참고하려고 몇 군데 표시를 하고 나중을 위해 기억할 만한 곳을 촬영했다.
그리고 남쪽으로 미시시피 강을 따라 아이오와 주로 향했다.
아이오와 주는 처음 길이었지만 커다란 강의 북동쪽 언덕을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겼다.
클레이톤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멈춘 그는, 어떤 어부의 모텔에서 투숙하며 이틀 동안의 아침을 예인선을 촬영하며 보냈다.
또 술집에서 만난 뱃사람의 초대로 예인선에서 오후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1965년 8월 16일 월요일 아침 일찍, 그는 65번 국도를 돌아 디모인을 통과해 아이오와 92번 도로에서 서쪽으로 꺾어 매디슨 카운티로 향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거기에는 지붕이 덮인 다리들이 있었다.
다리는 정말 있었다.
텍사코 주유소에서 일하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다리까지 가는 길을 제대로 알려주었다. 모두 일곱 개였다.
처음 여섯 군데는 사진 촬영을 위해 지도를 보고 전략을 제대로 짰으므로 수월하게 찾았다.
일곱 번째의 로즈먼 다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더운 날씨였고, 그도 더웠다.
해리 -- 그의 트럭 -- 도 더웠고, 그는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자갈길 주변을 맴돌았다.
외국에 갈 때면, '세 번 물어보라'를 마음 속에 철칙으로 정해놓고 있는 그였다.
세 가지 답을 얻으면, 하나같이 잘못된 대답이라고 해도 차츰 가고 싶은 곳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두 번만 물어도 충분하리라. 앞쪽에 우편함이 나타났다.
그것은 백 야드 가량 되는 길의 끝에 세워져 있었다. 상자에는 '리처드 존슨, RR2'라고 쓰여 있었다. 그
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어 길을 따라 올라갔다.
그가 마당에 들어서자 현관문 앞에 어떤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곳은 시원해 보였고, 여자는 그보다 훨씬 더 시원해 보이는 뭔가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가 현관에서 내려와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섰다.
킨케이드는 트럭에서 내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더 자세히 그녀를 보았다.
아름다웠다.
적어도 예전에는 아름다웠을 얼굴이었고, 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조금이라도 끌리는 여자를 만날 때면 늘 겪게 되는 다루기 힘든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