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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장군, 고홍건신도비(高弘建神道碑) 및 묘 고희장군과 그의 아들 고홍건에 대해 부안답사 준비하면서 처음 알았다. 석불산 아래 사당이 있는데 아주 좋은기운이 들어오는 곳에 위치하여 은은한 중에 봄 날씨가 더해져 포근함이 더한다. 입구에 고홍건신도비가 있는데 귀부를 아주 잘 표현한듯 보인다. 신도비 뒤편으로 고희장군, 고홍건묘가 있는데 양룡으로 퍼져서 들어오는용이 부실하고 안산도 밋밋하여 거의 없는 수준이다. 사당이 있는 곳은 국세가 잘 짜여져 있어서 이곳의 발복지가 아닌가 싶다. 충분한 시간이 없어서 대강대강 훑어보고 왔다. 이곳은 석불산이 아주 멋지고 그 아래에 용호가 잘 감싸주는 곳에 영당과 사당이 있다. |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장군 본관은 제주(濟州).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수문장이었던 고희는 선전관이 되어 왕을 호위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당시 곽산군수이던 이경준(李慶濬)이 왕을 호종하게 됨에 따라 특지로 이경준의 직을 맡게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호조판서 김수(金睟)의 천거를 받아 공세전운사(貢稅轉運使)에 임명되어 명나라 사신들의 영접에 진력하였다. 1601년 홍원현감 재직시에도 늙고 귀가 어두운데다가 행정을 향리에게 일임하여 민간의 원성이 높다는 탄핵을 받았으나, 파직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과 유원첨사를 거친 뒤 풍천부사를 역임하였다. 1604년 호종공신으로 18공신회맹록(十八功臣會盟錄)에 들었으며,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록되어 영성군(瀛城君)에 봉하여졌다.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고홍건신도비(高弘建神道碑) 거북과 용머리를 새긴 이 비는 조선 현종 9년(1668)에 세운 것이다. 신도비란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이나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우는 비이다. 고흥건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공신록에 이름이 오른 고희의 아들로, 조선 선조 13년(1580)에 출생 하였으며,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 왕을 호위한 공으로 호성원종공신에 이름이 오른 사람이다. 고흥건의 자는 입부이고 본관은 제주이다. 그는 호성공신 영성군 고희의 큰 아들로 선조 13년에 태어났다. 그는 선조 36년(1603)에 무과에 급제 수문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아버지 영성군의 공적으로 말미암아 영원군에게 습작하였고, 뒤에 찬화사로 통정대부에 올랐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임금의 어가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다. 그는 이때 장단부사로 있었는데 자원하여 서문협 수장을 하였다. 이때의 공으로 충청 병마절도사에 제수되었다. 그 뒤에 자헌대부로 승진되었고, 지중추부사를 역임하다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향년 76세로 죽었다. 1668년 세워진 고흥건신도비는 지방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용두귀부의 절묘한 솜씨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당대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고,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111호로 지정 되었다. 고흥건 신도비를 지나면 두채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영성군 고희장군 사적문과 효충사이다. 효충사는 고희장군의 위패를 모신 목으로 유림에 의하여 매월 3월 22일에는 의례를 행하고 앞쪽건물은 재주 고씨 문중의 문중유물이 372년(1522-1894)에 걸친 다양한 유품이 전시되는 곳으로 20여종에 이르는 총215종이 일괄 보물 739호로 지정되어있다.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인용> |
문화재지정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1호 |
문화재명칭 | 고홍건신도비(高弘建神道碑) |
소재지 |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석불산길 138 (하서면) |
관리자(연락처) | 부안군, 제주고씨 |
▼고홍건신도비(高弘建神道碑)와 고희, 고홍건 묘역
▼고홍건신도비(高弘建神道碑)
▼고홍건신도비(高弘建神道碑)
▼고홍건신도비(高弘建神道碑) 안내판
▼고홍건신도비(高弘建神道碑) 뒷쪽으로는 묘소가 있다.
▼고홍건(高弘建) 묘는 품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고홍건(高弘建) 묘비
▼고홍건(高弘建) 묘 석물
▼고홍건(高弘建) 묘 측경
▼고홍건(高弘建) 묘 후경... 안산이 거의 없다. 나무로 비보를 해놓았지만 바람길을 막지는 못한다.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장군 묘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장군 묘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장군 묘비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장군 묘 석물... 넝쿨이 이곳의 기운을 말해주는듯...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장군 묘 백호쪽 석물...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장군 묘 후경...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장군 조부 묘... 경력공 고세호 묘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장군 사적문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장군 사우 효충사 연혁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장군 사우 효충사 입구 홍살문...
▼효충사와 석불산... 아주 멋들어진 현무봉이다.
▼효충사 삼문 표충문...
▼효충사
▼영성군(瀛城君) 고희(高曦)장군 영당
▼효충사 인근에 석불산영상랜드가 있다. 불멸의 이순신 촬영지였는데 지금은 방치되어 거의 폐가 수준이다.
▼효충사 입구에 반송나무가 있다. 안내문에 새겨진 반송나무의 유래
조선조 효종3년(서기1656)3월 조정에서 갑자 이괄난과 병자호란 때의 호성영국원종공신이며 영성군 고희장군의 아들인 영원군 고홍건장군을 이곳 석불산에 예장할 당시 예관으로 왔던 예조좌랑 이휘진이 반송나무의 묘목을 가지고와 영성군의 사당과 영당 부근에 기념식수한 것으로 이나무의 수종은 보통 반송나무와는 다른 희귀한 나무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