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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기행 25 사막이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외로운 배 같은 - 콥트교회
‘알렉산드리아’를 2회로 끝내려니 아쉬움이 남아 한 번 더 씁니다. 도시는 대부분 자연적으로 생기고 성장합니다. 강변이나 해안 등 교통과 경제의 중심지에 인간들이 모여 살면서 생기고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성장하죠. 그런데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건설한 도시입니다. 지중해를 통해 유럽과 교류하는 이집트의 관문이 되었지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닮았습니다. 러시아는 내륙 깊숙이 모스크바 오지에서 몽골과의 투쟁을 통해 발전하지만 여유가 생기자 서쪽으로 눈을 돌려 서유럽의 문명을 동경하지요. 1700년 발트 해 지역에서 스웨덴과의 패권다툼에서 승리한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1703년 이 도시를 건설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이름 짓습니다. 표트르의 영어식 표기가 Peter이니 상트페테르부르크는 St. Petersburg 피터대제의 도시라는 말입니다. 알렉산드리아와 비슷합니다. 표트르 대제는 신분을 숨기고 덴마크나 프랑스 등 서유럽을 여행하면서 선진 문물들을 견학하기도 하지만 주로 이 도시를 통해 서유럽의 문화를 받아들입니다. 러시아 혁명으로 레닌그라드가 되었다가 소련 해체 후 옛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642년 이슬람 군대가 들어오면서 건설된 도시죠. 그 이전에는 나일 삼각주의 습지였다고 합니다. 1170년대 이후 성장하였다니 고려 중기에 해당합니다.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332년 이후 그리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거쳐 케이자르와 클레오파트라의 시대 이후에는 로마의 속주로 유럽 대륙과 교류하는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여전히 그 명성을 누리고 있는데 비해 알렉산드리아는 600년간 전성기를 누린 후 로마시대 야만족 반달족의 지배, 이슬람세력의 지배를 거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제 이집트의 제2도시로 부활하고 있네요. 그러나 300년 역사에 불과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비해 엄청난 기간 동안 번영을 구가했으니 서러워할 건 없겠지요.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이집트 문명보다는 그리스-로마시대의 유산들이 많습니다. 그리스 시대의 원형 극장이나 로마시대 카타콤 지하공동묘지, 폼페이우스의 기둥(Pompey’s Pillar) 등을 구경했습니다. 기둥의 원래 이름은 Amud el-Sawari(기마상 기둥)으로 알렉산드리아가 기근에 헤맬 때 구원한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의 기마상이 있었다는군요. 이게 잘못 전해저서 폼페이우스 기둥으로 바뀐 겁니다. 노천극장은 규모가 자그만 하고, 카타콤도 별로 크지 않고 텅 비어있는데 허리를 굽혀 동굴로 들어가기가 힘들더군요. 폼페이우스 기둥은 런던 트라팔가 광장 중앙 높은 기둥 위에 세워진 넬슨의 동상 같이 보였습니다. 꼭대기에 있던 기마상은 없어졌고 기둥 앞에 있는 스핑크스는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이라 하군요. 얼굴이 약간 통통한 게 그리스 미인이라기보다는 양귀비가 목욕했다는 서안 화청지(華淸池)에 있는 이 중국미인의 인상을 풍기네요.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를 합쳐놓은 것 같습니다. 꼭대기 바침대 부분에 연꽃인가 파피루스 줄기와 잎같이 보이는 장식을 한 오벨리스크 같은 기둥과 클레오파트라를 앉힌 스핑크스를 만들어 폼페이우스라는 로마 장군을 기념한 것이니 세 나라 역사의 융합이지요. 그런데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비슷한 것들을 본 탓인지 별 감흥이 없습니다.(사진1, 폼페이우스 기둥)
일행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대표적인 이슬람 교당을 방문하여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들었습니다. 여행기 2편 ‘관광산업의 빛과 그림자’ 편에서 미국인 신발을 도난당한 자그마한 에피소드가 일어난 곳입니다. (사진 2, 알렉산드리아 이슬람 교당 내부) ‘무슬림’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이라 명사로만 쓰이며 ‘이슬람’종교나 문화 등을 의미하여 Islamic culture, Islamic religion 등으로 씁니다. 그러나 엄격히 구분 짓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이 기행기에서도 ‘무슬림 군대’라 사용해도 이상하지 않더군요. 이슬람 교당은 내부에 그림이나 조각상이 없는 게 특징이죠. 단지 코란 글자만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조각상이나 그림으로 요란하게 장식된 가톨릭 성당이나 동양의 불당을 익숙한 탓인지 약간 썰렁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마음이 차분해 지더군요.
카이로로 돌아가는 길에 콥트 교회(Coptic church)를 찾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알고 싶었던 교회입니다. 로마의 바티칸 교황(Pope)이 전 세계 가톨릭에 대해 권위를 갖기 이전 시기에는 로마 외에 알렉산드리아,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시리아와 접경 지역인 터키의 지중해 연안 도시 안티오크(Antioch), 그리고 예루살렘에 대주교(Patriarchs) 등 교황과 같은 지위를 가진 수장이 독립적으로 지역 내 교회를 관리했습니다. 기독교 세계가 그만큼 분권적이었다는 말입니다. 안티오크는 로마시대 로마,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제3의 대도시로 유대인 거주지인 예루살렘보다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였습니다. 다른 지역들이 쇠퇴하면서 로마의 교황에게 권위가 몰렸다고 하겠지요. 오늘날에도 그리스 정교회의 수장은 대주교라고 부릅니다. 영국 성공회는 로마 교황청과 결별했고 그 수장은 영국 국왕입니다.
콥트 정교회는 동방 정교회의 분파로 이집트와 북동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원래 본거지는 알렉산드리아였지만 지금은 명예 총대주교만 여기에 거주하고 실권을 가진 대주교는 카이로의 성 마르코 콥트 정교회 대성당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하젬은 카이로 시내를 구경시켜 주면서 이 교회를 가리키더군요. 그러나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콥트 교회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에 의해 수시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가톨릭과의 충돌 배경이 무엇인지, 교리상의 갈등인지 세력다툼인지 궁금합니다. (세력다툼도 교리를 내세워 전개되었겠죠.) 교회사에 정통해야 하니 저의 범위를 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이슬람 극단세력인 Isis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죠. 이 교회에서 사용하는 예배언어가 콥트어인데 오늘날 이집트 언어의 조상이라 합니다.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데 기여를 한 로제타스톤(Rosetta stone)에 쓰여 있는 3개의 문자 중 고대 이집트 대중들이 사용한 데모틱(Demotic) 문자가 콥트문자의 선조뻘이라 하군요.
가이드 하젬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카이로로 돌아오는 길에 나투룬 계곡(Valley of Natroun)에 있는 콥트교회로 안내하더군요. 말이 계곡이지 평지이고 저 너머 나일강이 보입니다. 인상적이더군요. 이슬람 세계라는 광막한 사막 가운데 고립되어 있는 조그만 섬 같았습니다. 이 교회가 보유한 땅이 무려 3,000 에이크랍니다. 1 에이크가 4047㎡이니 대략 12㎢, 3x4km가 되는 광활한 지역입니다. 평지이지만 날씨가 흐려서인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땅입니다. 무슬림 정권이 기독교도들에게 이만한 땅을 주면서 자급자족 생활을 하면서 이슬람 사회와 충돌하지 말고 살아가라고 한 것이랍니다. 일종의 독립왕국을 허용한 것입니다. 이슬람 정권은 세금만 내면 토착민들의 종교에는 간섭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슬람의 세속 통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흔히들 무슬림은 정복지에서 ‘한 손엔 칼을, 다른 손에 코란’을 들고 이슬람으로 개종할 것을 강요했다고 하는데 이건 동방 문명을 매도하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표현입니다. 영국 문필가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이 지어낸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영웅론(Heroes in History)>의 ‘무하마드’ 편에는 ‘칼로써 그의 종교를 전파했다’는 정도의 표현만 있네요. 후인들이 이를 부풀린 것인가요? 아니면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인가요?
칼라일의 <영웅론>은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그에게 진정한 영웅이란 성실성과 통찰력을 겸비하여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인물입니다. 예수의 수난이 바로 이것입니다. ‘수난’은 영어로 suffering이지만 passion으로도 씁니다. 고통과 정열을 겸비한 인물인 영웅입니다. 독일어 Leindenschaft은 passion입니다. Leidenschaft가 Leiden, 슬픔, 고통에서 나왔다는 게 신기해서 입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슬픔’이 Leiden입니다. 칼라일이 꼽은 영웅은 정복 군주보다는 역사를 이끌어 진전시킨 북구 신화의 오딘, 무하마드와 루트 같은 종교지도자, 단테, 섹스피어, 루소, 괴테와 번즈 등 문인, 크롬웰, 나폴레옹 같은 인물들 입니다. 인도와 섹스피어를 바꾸지 않겠다는 말도 이같은 맥락에서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직전 파시스트 추종자들에 의해 그의 영웅 숭배론은 ‘총통숭배’와 동일시되어 곤욕을 치릅니다. 제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읽혔던 책 중 하나입니다.
런던 유학시절 칼리일의 집이 저의 집 부근에 있었지요. 박물관이 된 그 집 앞을 수 없이 지나면서도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저녁 먹고 가족들과 산보하러 나가면 문이 닫혀있었지요. <영웅론>외에도 <프랑스 혁명사>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어 꼭 보고 싶었는데, 시간을 정해 작정하고 나서지 않았더니 끝내 들어가 보지 못했던 겁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남산 타워에 올라가 보지 못한 꼴이었지요.
이야기가 빗나갔습니다. 콥트 교회에 도착하니 가이드 하젬의 친구인 메쿠리우스(Mercurius)라는 고위 성직자가 문 앞에서 우리를 맞아 주군요. 여행기 15편에서 베네치아 상인들이 무슬림의 박해를 피해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성마가의 유해를 돼지고기로 덮어 반출해 오늘날 베네치아의 상징인 마르코 광장과 교회를 건설했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이 때 성마가의 유해를 이집트 콥트교회의 동의아래 가져간 것이 아니라 훔쳐 간 것이라고 내뱉은 분이 바로 이 양반입니다.
교회에 머문 1시간 정도인데 모든 것이 놀라웠습니다. 이슬람 세계 한 가운데 버젓이 기독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놀랐고 이슬람 정권이 이토록 폭 넓은 정치적 관용을 보여주었다는데 놀랐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보여주듯이 기독교와 이슬람은 서로를 적대시하여 종교적 관용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성당에 걸린 세례요한이 예수를 세례 하는 의식, 예수와 그 제자들의 그림에도 놀랐지요. 다 빈치 등 유럽화가들이 그린 성서 그림과 비슷하면서도 달리 보이는데 이상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르네상스 이전 기독교 초기 성화가 남아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이슬람 문자와 콥트문자를 나란히 쓴 성경에 놀랐습니다. 성경이 이슬람 문자로 번역되어 버젓이 교회에서 배치되다니.... 물론 교회에서는 콥트문자 성경을 읽고 예배를 보겠지만 이 옛날 문자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교인들을 위해 설교는 아랍말로 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확인하지 못했네요.(사진 3)
마지막으로 교회의 벽과 문들을 만든 나무에 놀랐습니다. 시카무어(sycamore)라는 나무라고 하군요. 여행 첫날 카이로 박물관에서 알라바스트 대리석관을 보았을 때와 같은 놀라움이었습니다. 시카무어는 워즈워스(W. Wordsworth)의 ‘틴턴 애비에서 몇 마일 상류에서 지은(Composed a few miles above Tinturn Abbey)’시에서 처음 만났지요. 윈저 궁에서 서쪽으로 가면 웨일즈와 잉글랜드 접경 지역 와이(Wye) 강변에 있는 틴턴 애비라는 수도원이 나옵니다. 헨리 8세가 폐허로 만들어 지금은 빼대만 남아 있습니다. 워즈워스는 이곳을 두 번 찾아 검은 시카무어 아래에서 시상을 가다듬습니다. 저도 두 번 갔습니다. 그는
‘검은 시카무어 그늘에 앉아/
시골집 앞 과수원 텃밭에서 아직 익지 않아/
푸른색이 감도는 과일이/
덤불에 묻혀 형태를 알아 볼 수 없는 광경’
을 앞에 두고, 저 멀리 숲속에서 홀로 사는 유랑인이 피운 연기를 보면서 명상에 잠기는 장시를 남깁니다.
The day is come when I again repose
Here, under this dark sycamore, and view
These plots of cottage-ground, these orchard-tufts,
Which at this season, with their unripe fruits,
Are clad in one green hue, and lose themselves
'Mid groves and copses.
저는 가카무어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조그마한 무화과나무 정도로 알았지요. 우리 가요 ‘무화과 그늘 아래서 사랑을 나누는’ 자그마한 나무 정도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정글에서 원숭이들이 열매를 따먹는 무화과나무는 엄청 큽니다. 시카무어는 성경에는 이집트나 소아시아에서 나는 무화과이고 신대륙에서는 단풍나무(maple) 혹은 플라타너스(buttonwood)라고 하네요. 얼마나 크기에 두꺼운 바둑판만한 뚜께의 문짝이나 기둥 벽장식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이 나무로 만든 검은 색상의 문과 장식벽을 만져 보았습니다.(2018.7.14.)
사진 1, 폼페이우스 기둥아래서
사진 2, 알렉산드리아 이슬람 교당 내부
사진 3, 콥트 교회에서(그림 밖의 검은 장식 나무가 시캄무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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