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필름
김채영
미혹
새로 지은 집에 이사를 갔다. 마지막 5층 빌라였는데 이국적인 이미지의 기품과 격조가 어우러진 그런 집이었다. 실내는 북유럽 풍 양식 같기도 하고, 어느 틈입조차 허투루 하지 않은 듯 끝 처리까지 오묘했다. 안방 침대에 누우면 주변 강가에서 솟구치며 날아가는 하얀 새 무리가 보였고, 베란다는 통유리여서 앞산이 한눈에 보였다. 색감이 다르게 중첩된 산봉우리와 이곳저곳의 오솔길에는 드문드문 산에서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아스라이 보였다. 특히 밤에 창가에 서면 고요 속에 잠겨있는 곳에 불빛들이 별들과 함께 아련하게 투사했다.
그 겨울은 눈이 엄청나게 내렸다. 까치가 함박눈을 털면서 창문 밖에서 날아가는 것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서 어미 새가 어린 새들을 몰고 줄지어 가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함박눈이 자주 내려 하얀 앞산에 마구 찍힌 발자국과 어김없이 눈발을 헤치고 날아가는 까만 새들을 보며 거실에서 머무는 시간이 좋았다. 손님이라고는 가끔 오는 반장 여자였는데, 입주자의 논의 사항을 들려주면서 이웃 얘기를 흘리는 게 전부였다.
거실을 서성이면 적멸 속에 나를 두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 옥상에 올라 집 주변을 감상하며 사색을 즐겼는데, 언제나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작은 옥탑 방이었다. 외관은 집 전체와 같은 반짝이는 타일을 재질로 썼으나, 조그만 창문은 차일처럼 거미줄을 뒤덮였다. 정교한 거미줄에 걸려든 온갖 곤충들이 조각난 채로 뜯겨져 내걸린 것이 살풍경했다. 동화 속의 라푼젤이 마녀에게 갇혀있는 것처럼 비의가 엿보였다. 나는 습관처럼 옥상에 올라 옥탑 방을 엿보며 뭔가 있을 듯, 뭔가 있었을 듯, 괴리한 집착과 일련의 스릴을 보태며 찌릿한 전율을 느꼈다.
겨울이 깊어서도 여전하게 함박눈이 내렸다. 한참 만에 갑자기 반장이 찾아와서 이상한 얘기를 해주었다. 우리 건물에 누군가가 숨어서 살고 있다. 새벽이면 어디선가 여자 아이들 소리가 나고 라면 끓이는 냄새가 난다고 사람들이 무서워 술렁거린다. 새벽에 누군가는 노랫소리를 들었다며 혹시 이상한 점을 알게 되면 전해달라고 했다. 빌라가 두 동이었는데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 모두가 경계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본 사람도 없고 심증만 있는 얘기였다. 어디 숨을 데가 있어서? 며칠이 지나고 반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거침입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가출 소녀 두 명이 옥탑방(물탱크)다락에서 발견되어 일단 경찰서에 데려갔다는 얘기였다. 무슨 사연을 안고 어린 소녀들이 한 겨울에 냉골에서 긴장을 하며 숨어 지냈는지, 또한 내 상상 속의 예감이 맞았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다락방의 통로는 바로 우리 집하고 붙어있었다. 집안처럼 원목으로 되어있어 출구가 감쪽같았다. 사람들이 도구를 가져와 문을 여니 계단이 세 개 있고 작은 내부가 보였다. 먹다만 빵쪼가리, 물 두병과 라면 3개 . 휴대용 라스렌지와 냄비 두개. 흩어진 빈 과자봉지. 이것이 두 소녀가 겨울을 살다가 간 흔적이다. 물탱크 옆 공간은 둘이 눕기가 부족한 공간이었다. 냉기가 가득한 그 곳에서 혹한의 나날을 여린 소녀들의 체온으로 데우며 살았던 곳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어쩌면 마법에 걸린 라푼젤이 성 밖의 마녀를 긴 머리로 다락에 끌어올리듯, 소녀들의 고통스런 날들은 입소문으로 퍼져 그 빌라의 슬픈 동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저승밥집
유려했던 봄꽃들이 피고지고 신록이 푸르다. 차창밖에는 엽록소가 풋잎에 투사되어 오련한 빛깔을 뽑아냈다. 이런 날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건만, 나는 비창한 심정으로 화장터에 간다. 그는 생화를 가득 장식한 미끈한 벤츠를 타고 앞서가고, 나는 조문객들과 함께 병원 버스를 타고 뒤따라간다. 몇 년 투병생활을 하던 그는 오십을 갓 넘어 사망을 했다. 하루하루 누구는 신생하고 누구는 사멸하는 게 이치겠지만, 겨우 그 것 살라고 뭐 하러 태어났나. 오늘도 누구는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고 누구는 무망하게 살아지거나 했다.
삼일을 울었더니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대기실에는 그날 화장할 고인들의 영정이 나란하게 배치되었는데, 40대에서 오십대로 추정되는 아직 젊은 측에 속했다. 전광판에서 화장하는 순서를 현황으로 보여주었고, 그는 아직 대기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화장이 끝나면 종소리 같은 음향으로 신호를 알려왔다. 그날이 죽은 자에게 길일인지 화장터는 바쁘게 돌아갔다. 대형버스가 까마귀 떼처럼 많은 사람을 쏟아냈고, 여기저기서 애타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을 끝낸 측은 떠나고 다시 장례버스 두 대가 들어왔다.
필생을 이러저러한 문제를 일으키면서 큼직큼직한 사고를 쳤던 그는 남들에게 간 쓸개 다 빼주고, 가족에게 죽는 순간까지 서릿발처럼 매정했다. 그에 대한 원망과 짧은 생의 연민이 육화되는 것을 머리를 흔들며 지웠다. 그보다 아이들과 내게 미구에 닥쳐올 일이 암담해졌다. 처음 와본 화장터, 저승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보여주는 듯 검은 연기가 끝없이 치올랐고 뼈와 살이 타는 냄새가 매캐했다. 숲 밖은 여전히 밝고 청명하건만, 화장터를 둘러 싼 숲이 감옥처럼 밀생하여 어둡고 음산했다. 남편은 전광판 끝 번호에 올라왔다. 천양이 양립하는 이 공간은 대낮에도 어스름하고 봄날에도 발끝부터 전신이 시리다
그때 손님이 도착했다. 먼 곳에서 오는 길이라 아침도 걸렀다는 말에 주변의 식당을 찾았다. 아, 이런 쓰러져 갈 듯한 오두막에 백발의 할머니 다섯 명이 방안에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 둥굴게 앉아 화투를 치는 할머니들은 퍼머나 커트를 치지 않고 백발머리 그 자체로 낭자를 틀듯 꼬아놓았다. 그 모습이 오히려 조선시대 풍경이 순간 이동을 하거나 환영을 보듯 괴이했다.
식당에 붙은 메뉴는 더욱 그로테스크하다. 지금 고인들의 몸이 불에 타고 있는데, 때가 잔뜩 묻은 벽면에 ‘사골 탕’이라고 쓴 메뉴가 달랑 붙여있었다. 내가 예민한 탓인지 모르지만, 대형 무쇠 솥에 가득 부글부글 끓고 있는 사골 냄새가 이물감처럼 메스꺼웠다. 망자를 생각하면 불경스러운 것 같기도 했다. 다른 메뉴에 대해 물으니 방안의 머리가 하얀 노인들이 고개를 내밀며 말곁을 한다. 상주들이 영양이 가득한 사골 탕을 먹어야 기운내서 망자를 잘 보낸다는 둥,12시간 푹 끓인 우리 사골 탕은 아주 진국이라는 둥, 어떤 사람은 이 진국을 못 잊어 단골로 한 번씩 다녀간다는. 어허!
이곳은 큰 길에서 산길로 빠져 한참을 들어온 길이다. 백발노인들로 구성원을 이룬 이유는 무엇일까. 귀곡 산장에 온 것 같은 오싹함을 느꼈다. 한쪽은 망자의 육신이 불꽃 속에서 소멸되고 있는데, 같은 구간의 유일한 밥집이라는 곳이 사골을 푹푹 다리고 있다니 아이러니한 삶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나는 조문객들의 의향을 묻지도 않고 라면을 몇 그릇 시켜주었다. 그리고 저승밥집을 쫓기듯 나왔다. 전광판에는 그가 대기자 명단 4번째로 올라가 있었다.
김채영
대전 출생, 수필가. 1990년 여성동아 논픽션 대상,
1996년 현대그룹 문학상 대상, 1996년 청구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보냈을 소녀들의 밤이 안타깝네요.
그 아이들에겐 이승이 저 따듯한 저승(?)보다
견디기 어려운 곳이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