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상 4대부분을 휩쓸어 우리나라 문화와 영화산업이 세계적인 우수한 자랑거리로 등장 하여 우환폐렴으로 그리고 경제정책 실패로 먹고 사는 문제로 짜증나고 부글부글 끓고 있는 국민들에 반짝이지만 기분 좋게 신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최근 자고 나면 코로나19 사태로 확진자가 일~이백명씩 나타나고 있음에도 정부는 적극적인 대처가 아닌 경계단계를 유지하면서 날로 확산되고 있어 정부의 대처가 미흡하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 파리처럼 앞발 싹싹 비비면서 중국의 아픔의 아픔이라는 말로 중국인들에 대한 통제 없이 계속 입국하고 있어 국민들은 정부를 불신하고 믿을 수가 없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자영업자들 뿐 아니라 소위 “정규직”이라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가봐야 장사도 안 되고 할 일도 없어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면서 가급적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 TV를 끌어안고 있어 봐야 TV프로를 볼 것이 없다.
방송은 청소년부터 청년. 장년, 노년이 다 함께 보는 것으로 건전하고 명랑하고 느낌이 있는 즐거운 방송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에 맞는 그리고 제4세대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현실을 재조명해주는 방송으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1-20년 전에 제작 된 프로를 재방송으로 시간을 떼우는지 기가 찰뿐이다.
지상파 방송을 제외하고 종편을 비롯한 케이블, 인터넷 방송 등 엄청난 많은 찬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라고 방송하는 것이 이미 고인이 된 김무성, 조경환, 여운개, 박주아, 최진실, 김영애 등등 이미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넘는 故人들이 TV에 활개를 치고 있으니 보기에도 섬뜩한데 그분의 가족, 친지 분들은 새삼 다시 생전에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그 아픔과 고통은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재방만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이해를 하겠지만 “태조 왕건” “용의 눈물” “무인시대” “광개토대왕” “제1공화국” “장희빈” “대장금” “허준” “이재마” 등등 이미 시대에 맞지 않는 흘러간 프로를 하루에도 두~세번씩 재방, 삼방을 하고 있어 정말 보기 싫어도 보고 또 보고 있다.
그리고 코미디 프로도 과거에 도박, 탈세, 부동산투기, 불륜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사람들이 “예능”이라는 프로에 등장하여 80년대에 이미 사라진 고교생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TV화면 반을 가리는 큰 얼굴로 쥐어짜는 웃음으로 혐오감을 주고
그리고 한때 모든 프로에 하차하였던 방송인은 얼굴에 황칠을 하고 남나가 색동옷까지 걸치고 조잘 되는 저급한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일일이 프로마다 트집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에 박수는 받지 못할망정 시청자 얼굴을 찌푸리는 방송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는 진행자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출연하는데 처음에는 신선감을 주고 또 실패하고 병을 얻은 사람이 고통스럽고 외로움을 이겨내고 병마를 이기고 나름의 행복을 다시 찾는 모습을 볼 때 많은 사람에 공감을 주었으나 최근에는 산에서 생산되는 소위 “산삼” “장뇌삼” “산도라지” “더덕” 등 몸에 좋다는 것을 은근히 밝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시청자들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특히 자연인과 같이 식사를 준비하고 같이 먹으면서 자연의 삶에 대한 대화는 나름의 느끼고 생각할 수 있어 좋았는데 천편일율 적으로 스토리가 똑 같고 등산하여 버섯이나 약초 캐고 흐르는 물에 세수하거나 목욕하고 그리고 힘든 일 조금 도와주는 스케줄이 매회 똑같은 범주를 벗어나지 못해 이미 프로의 생명은 다 한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은 스스로 자기 몸은 자기가 관리하겠지만 방송으로 보면 자연인이 땅에 묻어 놓은 김치를 비닐장갑도 끼지 않고 손으로 꺼내 역시 맨손으로 김치를 찢어 진행자 입에 넣어는 주는 것을 볼 때 사실은 아니겠지만 위생적으로 혐오감을 주고 있다.
“한끼줍쇼” “아는 형님” “도시 어부” 이러한 프로는 출연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꾸라지 한 마리 온 도랑물 흐린다고 그중에 인간이하의 저급한 말을 하는 사람, 비열한 언행으로 시청하다 찬넬을 돌리게 하는 프로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방송이 연예, 예능, 드라마. 스포츠 프로 등은 그렇다 치고 “시사” “뉴스” “평론” 그 중에 특이 “기자회견” “특별대담” 등은 아마 시청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
가장 좋은 예가 얼마 전 인터넷에 우리나라에서 1~2위를 다툼하는 방송사에 9시 뉴스 “광고”가 한건도 없었다. 는 기사를 읽었다.
광고는 시청자가 있어야 광고도 있을 것이다. 광고가 없다는 것은 시청자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깊이 생각해보면 방송은 公正이 생명인데 편협된 방송, 특정 정치에 매몰되어 편향적인 방송을 하기 때문에 시청하지 않는다.
그리고 80년대 전두환 대통령 당시 저녁 9시 뉴스를 “땡 뉴스”라고 했다.
지금도 정부와 정권이 내편, 네편으로 선을 긋고 갈라놓아 뉴스를 믿는 사람도 없고 거짓과 위선이라는 선입견으로 뉴스시간만 되면 찬넬 돌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살다살다 죽은 사람이 다시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정말 시청자들을 고객으로 모신다면 이런 행태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 국민은 개, 돼지라고 하는 것인가.
조지오웰의 “동물의 왕국”을 새삼 뒤집어 볼 수 있는 것이 요즈음의 방송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위상이 부끄럽고 개, 돼지 취급 받는 시청자들은 짜증스럽지만 하소연 할 데가 없다.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