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 (32)
올레길에서 만난 사람
지난 2019년 가을부터 제주 올레길을 틈나는 대로 걷고 있다. 대개 하루에 15~20km 정도로 대여섯 시간 걸린다. 지형이 평탄하고 숲길과 바닷가 도로, 작은 언덕 정도를 걷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다. 80대 할머니와 20대 손녀가 같이 걷는 경우도 보았다.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옆에서 걷는 사람과 이야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오늘 만나 내일 헤어질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무 부담 없이 개인적인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
올레길전문 캠프가 있는데 빨리 걷는 토끼반과 느리게 걷는 거북이반을 운영한다.
거북이반의 한 중년 부인이 걸으면서 서울의 친구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친구가 ‘지금 뭐하고 있어요?’ 하고 물으니 ‘설거지하고 집 청소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올레길을 걷고 있다고 왜 말을 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으니 친구의 사정이 딱하여 감히 올레길 이야기는 꺼낼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애달픈 사연인즉슨, 친구의 남편은 교장선생님이셨는데 정년을 한 달 남기고 집 안뜰의 나무를 베다가 나무가 넘어지면서 사람을 덮쳐 교장선생님은 척추, 경추부위의 골절상을 당하였다고 한다. 척추 골절상은 팔, 다리의 골절과는 달리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하반신마비라는 엄청난 후유증을 초래하였다. 종일 누워만 있으면 등, 어깨, 엉덩이 부위에 욕창이 생길 수 있어 자주 돌려눕혀야 한다. 상체와 정신은 온전하여 답답함과 울적함에 입만 살아 가족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했다. 아내가 남편수발하느라 힘들어 뼈만 남았다고.
아들딸들이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시려고 하니 친구 남편은 화를 내며
“요양병원에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 내 연금 받아 겨우 붙어먹고 사는 놈들이 나를 요양병원에 처넣으려고 하느냐?”,
“아버지 돈 안 받고 월 350만 원 이상 받는 최고급 요양병원으로 모실 테니 일주일 만이라도 가봅시다. 어머니가 힘에 부쳐 죽을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애원해도 그분은 막무가내라고 한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그 친구가 먼저 올레길을 걷자고 말하여 저도 이곳을 알게 되었지요. 요즘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 제주 올레길 걷는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어 전화로는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요양병원도 많이 발전하고 진화하였다. 산업재해나 교통사고 등으로 장애를 입은 젊은 사람들이 재활 목적으로 가는 요양병원도 있고, 암 재활전문병원, 치매전문병원, 수술 후 안정을 위한 병원, 사망이 임박하여 고통을 덜고 편안한 임종을 위한 호스피스 요양병원도 있다.
요양병원 의사로서 말하자면 이분 교장선생님은 재활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치료하는 것이 집에 있는 것보다 백번 낫다고 본다. 하반신마비가 있으면 환자가 더 무거워지기 때문에 집에서 아내가 간병하는 것은 체력에 한계가 있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암 간병하는 배우자가 먼저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요즘은 의술이 발달하여 장애환자와 암환자의 생존율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30년을 더 살아야 할 아내의 건강도 환자 못지않게 중요하다.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집에서는 하루에 열 번 돌려눕히기도 힘들지만 요양병원에서는 교대로 근무하는 튼튼한 의료진에 의해 하루 20번도 돌려눕힐 수가 있는 것이다. 때마다 물리치료를 하고 균형 잡힌 식단으로 식사를 하고 운동과 목욕을 할 수 있고 비슷한 병을 가진 친구들과 동병상련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요양병원에 있는 것이 환자나 가족에게 백번 낫다고 말하고 싶다.
올레길을 걸으며 전혀 다른 환경의 사람들을 만나 길동무가 되고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하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대부분 은퇴자이거나 시간 여유가 많은 사람들이다.
어린 자녀들을 두고 오는 여성도 있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삶의 전환점을 찾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다. 말기암 진단을 받고 가족을 떠나 홀로 걷는 사람도 보았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은퇴 후나 삶을 재정비하고 싶은 분들에게 올레길을 걸어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해운대그린시티 주민은 장산이 있기에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건강할 때 건강을 가꾸자. 우거진 숲으로 여름에 걷기 좋은 숲속길로 유명한 장산. 숲속 길을 걸으며 힐링과 건강과 행복을 느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