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열회고를 위한 시대회고
대열 임관50주년 계기 생도시절을 포함하는 54년을 회고하는 기념책자를 발간함에 있어, 제2부 현역시절 약사를 정리하는 대상기간은, 군복무 동기생들을 중심으로 1971년 3월28일 임관이후 이택호동기가 마지막으로 군문을 떠난 2009년 5월31일까지의 38년 2개월이 망라되겠지만, 여타 분야 행정부처, 중정, 청와대 진출과 조기사회진출 동기생들의 직장은퇴 시 까지도 포함해 2010년까지의 약 40년으로 보면 무난할 것이다.
그 현역시절 약사 정리는 현재 여타 분야 동기생들의 것들이 대충 정리된 상황에서, 군복무 현역들의 약사 정리과정이 오히려 더 복잡하다. 우선 계급별 직위별 상승 변동과정을 정리할 수 있는데, 병과별 개인별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권안도 동기가 포병병과 동기생들의 경우를 세밀하고도 명료하게 잘 정리해 6월4일 대열카페 “[특집]대열반세기 우리들 이야기”에 올려주어 그를 기준으로 여타 병과도 정리하면 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책자발간 편집진의 일원으로서, 동기생들이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대열동기생들이 현역시절 겪었던 우리 대한민국 격동기를 돌아보며, 국방이슈를 중심으로 군에도 영향을 줄 국가적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분야의 중요 계기를 한번 돌아본다.
이는 그 시기별 이슈에 대해 대열 동기생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떠한 국가적 사회적 공헌을 했던가를 떠올리게 해서, 여기에 올려줘 취합하게 된다면, 지난 54년 대열 스스로의 자랑스러운 회고로 장식될 수 있으리란 기대와 믿음 때문이다.
-2021.6.7.일 편집위원 김명수-
대열 현역시절의 국가적 이슈들
※ 기간 중 우리 동기들이 현장에서 대처해야 했던 대남도발 이슈는 뒤에 별도 정리
1971년 초임부대 도착 즉시의 1971년 4월17일 7대 대통령선거 (정치)
1972년 10월17일 유신체제선포 11월21 유신헌법확정 12월23일 8대 대통령선거(정치): 개인적인 회한들이 있을 격변기
1972년 7.4남북공동성명과 이를 위한 71년11월부터 72년3월까지의 제1기 남북대화 전개(남북관계)
※ 이를 두고 당시 대대장급 선배장교들은 1945년~1950년 해방정국에서 북한의 대남정치공세가 6.25남침을 위한 기만극이었다며, 남북 간에 더 긴장이 조성될 것이라 예측했고 그것이 동시기 남침땅굴 발견 등 사실로도 나타났었음
1971년~1973년 베트남전쟁(1965년~73년까지 작전파병) 참전(파병) 포함 해외파병 및 PKO활동
[참고자료]
<파병>
• 베트남전(1964~1973년) : 해병 청룡부대, 보병 백마부대 등 4만 8000명
• 걸프전(1991년 1월, 2~4월) : 국군의료지원단 154명, 공군수송단 160명, 수송항공기 5대
• 아프가니스탄(2001년 12월~2010년 7월) : 해ㆍ공군수송지원단(2001년 12월 18일~2003년 9월 1일 임무 종료), 건설공병부대인 다산부대(2003년 3월 28일~2007년 12월 14일), 국군의료지원단인 동의부대(2003년 2월~2007년 12월 14일) 연 780여 명. 유엔 아프간지원단 연락장교와 CSTC-A 참모요원은 2012년 현재까지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중에 있음
• 이라크(2003년 5월~2008년 12월) : 건설공병지원단인 서희부대ㆍ의료지원단인 제마부대(2004년 12월 말 임무 종료), 민사지원부대 자이툰부대(2004년 4월~2008년 12월 30일), 공군 제58항공수송단인 다이만부대(2008년 12월 21일 임무 완료)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 소말리아(1993년 7월~1994년 3월) : 공병대대(상록수부대) 연 516명
• 서부사하라(1994년 8월~2006년 5월) : 국군의료지원단 연 542명
• 그루지야(1994년 10월~2009년 5월) : 그루지야 정전감시단 옵서버 연 88명
• 인도ㆍ파키스탄(1997년 3월~1998년 3월 ): 인도·파키스탄 정전감시단 옵서버 연 88명
• 앙골라(1995년 10월~1996년 12월) : 101 공병대대 연 600명
• 동티모르(1999년 10월~2003년 10월) : 병대대(상록수부대) 연 3,283명/동티모르 참모 및 연락단원(2000년 1월~2004년 6월 임무 완료.)
• 사이프러스(2002년 1월~2003년 12월) : 사이프러스 사령관 1명(육군 중장)
• 레바논(2007년 1월~) : 유엔 레바논평화유지군 참모장교 3명(연인원 8명)/ (2007년 7월~) : 보병대대(동명부대) 359명(연 1,747명)/ (2008년 3월~ ) : 유엔 레바논평화유지군 서부여단 5명(연인원 14명)
• 소말리아 해역(2008년 1월~) : 연합해군사령부 참모 2명(연 3명)/ (2009년 3월~) : 청해부대 270명(연 594명)ㆍ연합해군사령부 협조장교 1명(연 1명)ㆍCJTF-HOA 협조장교 3명(연 3명)
• 아이티(2009년 11월~) : 아이티 안정화지원단 2명(연인원 1명)/ (2009년 2월~2012년 12월) : 아이티 단비부대 240명
1973년~1974년 1차 석유파동(경제):
※ 군에서도 경제난극복 동참을 위해 깨진 화이버도 꿰매는 등 피복 장비를 보수해 쓰고 텃밭경작으로 부식조달하는 운동이 벌어져, 내무반이 무슨 영선반으로 변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었음 개인적으로는 절약운동을 강조하는 대대 및 여단 교관이 되어 병사들을 교육했었음. 1978년~80년엔 제 2차 석유파동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중동건설수출 시대 개막
1976년~1993년 팀스피리트 한미연합훈련(FOAL EAGLE) /1994년~2007년RSOI/2008년 이후 키리졸브+FOAL EAGLE
1977년 미국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철수 기도 정세
1979년~1980년 [10.26][12.12][5.18광주사태] 전후의 정변과정(정치)
1986년 아시안게임 및 1988년 올림픽 유치과정(국제 및 체육문화)
1987년 6.29선언과 민주화 정국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이를 위한 1984년 이후 수재물자전달 위한 남북적십자회담 전개와 예술단교환, 1990년 남북예술단 서울공연 등 제2기 남북대화시기(남북관계)
1994년 7월8일 김일성 사망, 예정됐던 김영삼 김일성 남북정상회담 무산
1997년 11월 IMF외환위기
1997년 12월 김대중 15대 대통령 당선-초유의 여야정권 교체
1998년 11월 금강산관광 개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및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과 이를 전후한 제3기 남북대화시기(남북관계)
※ 이상태 동기 처럼 군사적으로 남북군사회담이나 철로연결위한 휴전선지뢰제거 등이나 군사회담 참여 등의 경험
2000년 7월 남북경의선 연결합의 9월 기공식 등 남북철도연결사업 추진
2002년 월드컵 유치
2004년 6월 개성공단 시범단지 완공
★ 이 밖의 국가적 이슈 중 누락된 부분은 동기생 여러분의 추가 의견을 구합니다. 그를 감안한 각자의 실무와 공헌을 제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북한의 군사적 대남도발]
16) 1971년 01월
대한항공 소속 F-27 항공기 납북미수 사건. 이 과정에서 납치를 시도한 북한 공작원이 사살되고 공작원이 떨어뜨린 폭탄을 조종사가 몸으로 막았음. 조종사와 공작원 2명 사망.
17) 1974년 02월
어선 「수원32, 33호」격침 및 납북사건 : 현재 어부 30명 억류
18) 1974년 11월
제1 남침용 땅굴 발견
19) 1974년 08월
8·15 대통령 저격미수 사건 :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시해됨
20) 1975년 03월
남침용 제2땅굴 발견
21) 1975년 09월
전라북도 고창으로 침투하던 2명의 북한 간첩이 저지됨. 1명은 사살
22) 1976년 06월
북한 간첩 3명이 비무장지대 남쪽 동부지구에서 사살됨
23) 1976년 08월
8·18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 미군 장교 2명 사망, 경비 병 8명 중상
24) 1976년 08월
제3신진호 납북사건
25) 1977년 07월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남한부부(윤정희/백건우 부부) 납치기도미수 사건
26) 1978년 02월
영화배우 최은희·영화감독 신상옥 부부 납치사건
27) 1978년 10월
제3 남침용 땅굴 발견: 경화기로 무장한 3만 명의 북한군이 매 시간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됨
28) 1978년 11월
북한 무장 간첩단(3명), 남한 민간인(5명) 살해. 이들은 충남광천에 침투한 무장공비들로서 아군은 한 동안 추적을 했으나 결국은 놓쳤음. 이들은 *공수여단 지역인 김포반도의 감위를 통과하여 월북함. 그래서 오늘날 *공수여단의 모토가 <감 바위를 잊지 말자>임.
29) 1979년 06월
한국인 고상문 오슬로 납치사건.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수도여고 교사인
고상문씨가 납치됨. 이 분은 아마도 분실여권 신고를 위해 한국 대사관을 찾는다는 것이 북한 대사관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측.
30) 1979년 10월
북한 간첩 비무장지대 동부지구 침투 사건 : 3명중 1명 사살
31) 1980년 01월
해왕 6, 7호 납북사건
32) 1980년 03월
북한 간첩 한강 침투미수 사건 : 3명 전원 사살됨
33) 1980년 11월
전라남도 황간도 무장간첩 침투미수 사건 : 3명 전원 사살됨
34) 1980년 12월
3명의 북한 간첩이 경상남도 해안에서 사살됨
35) 1981년 03월
강원도 금화에서 3명의 북한 간첩이 침투하다 1명 사살됨
36) 1981년 06월
충남 서산 앞바다 간첩선 침투사건, 9명 사살, 1명 생포, 이때 생포된 사람이 김광현씨로 당시 40대였음. 이 팀은 원래 광주 사태 때 광주로 들어올 예정이었으나 유고 대통령 티토의 장례식에 김일성이 참석하러 나가는 바람에 훈련이 중지되어 남파가 1년가량 늦어졌음. 이 사건 이후로 대남 공작 팀들의 평균 연령이 젊어지기 시작했음.
37) 1981년 07월
북한 간첩(3명) 임진강 침투미수 사건
38) 1982년 08월
캐나다 경찰이 북한의 전두환 대통령 암살 계획을 밝혀냄. 여기에 연루된 사람이 국제 태권도 연맹 총재인 최홍희씨임. 그러나 친북 좌익세력들은 최씨가 무고하다고 주장.
39) 83년 6월
임진강을 통해 문산 지역으로 침투를 기도하던 무장간첩 3명을 사살하고 1,400여점의 간첩장비를 노획.
40) 83년 월 미상(기억안남)
월성 원전 근처에 북한 공작원 침투 발견. 아군 응사하여 사살.
41) 1983.9.22.
대구 미 문화원 폭파사건. 한·미 관계를 이간하고 IPU/ASTA 총회 등 국내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국제행사를 방해하여 사회 혼란을 조성할 목적으로 침투한 간첩이 대구 미 문화원에 시한 폭발물을 설치하여 폭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음.
42) 1983년 10월
미얀마 랭군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 하던 17명의 고위 관리 사망, 14명 부상. 전 대통령은 이 살해사건을 『전쟁선포와 다름없는 중대한 도발 행위』로 규정, 이러한 도발행위가 재발 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 11월 4일 버마는 북한과의 외교관계 단절
43) 1983년 12월
무장간첩 전충남과 이상규가 다대포에서 생포됨
44) 1984년 02월
2명의 캐나다인 찰스 야노버와 알렉산더 제롤, 북한 간첩들이 전두환 대통령 암살 목적으로 1981년에 60만 불에 자신들을 고용했다고 법정에서 증언
45) 1985년 10월
북한 간첩선 부산 앞바다 침투 미수사건. 이들이 침투한 지역은 청사포 앞바다로 해공 합동 작전으로 격침시킴.
46) 1986년 09월
김포공항 폭탄테러 사건 : 15명 사망, 30명이상 부상
47) 1987년 01월
서해상 제27 동진호 납북사건 :어선 1척, 12명 납치. 원래 이 어부들은 송환될 예정이었으나 3월에 한국으로 김만철씨 가족이 망명하자 북측에서 김만철 일가와의 교환을 요구하며 억류.
48) 1987년 08월
MIT대 유학생 이채환 납치사건. 현재 이씨는 강제 수용소에 수감 중인데 평생 나올 수 없는 완전 통제구역에 있음.
49) 1987년 10월
서해상 제31진영호 피침사건
50) 1987년 11월
KAL 858기 공중폭파사건 : 승객 및 승무원 115명 전원 사망. 범인 김현희는 서울올림픽을 무산시키기 위한 테러였다고 자백
51) 1988년 01월
미 국무성, 1979년 수출관리 법률에 따라 『북한은 국제 테러 행위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지원을 제공한 국가』로 판정
52) 1989년 01월
제37, 38태양호 납북사건
53) 1990년 03월
제4 남침용 딸굴 발견 : 남한당국은 17개의 땅굴이 더 있는 것으로 판단.
54) 1992. 5.21
육군 백골부대 경계근무자가 북한 무장간첩 3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하하는 것을 관측하고 신속히 작전을 전개하여 DMZ 내에서 전원 사살
55) 1992년 10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간첩단 사건 : 고위 간첩 이선실의 지휘를 받는 남한 내의 400명으로 구성된 북한 간첩단이 남한의 국가안전기획부 에 의해 발각됨 .이 간첩단의 임무는 남한 내에서의 전복활동을 위한 지휘센터를 수립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짐.
56) 1994년 03월
북한 판문점 회담서 「서울불바다」협박
57) 1995년 05월-
북한 초계정, 남한 어선에 발포 : 3명 사망.
58) 1995년 06월
남측 구호물품 실은 선박, 북한 인공기게양 위협
59) 1995년 07월
안승운 목사 납치 사건
60) 1995년 08월
남한의 쌀 수송선 선원이 선상에서 사진촬영 이유로 선박 억류, 선원 체포
61) 1995년 10월
2명의 북한 공작원 부여에서 발각. 1명 사살, 1명 생포
62) 1995.10.17.
임진강을 통해 경기도 파주시 장단반도 지역으로 침투하던 무장간첩 1명을
사살하고,M16 소총 등 67종 564점의 간첩장비를 노획.
63) 1996년 04월
비무장지대 보전에 관한 휴전규정 일방적 파기, 수백 명의 북 한 무장군인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옴.
64) 1996년 05월
7명의 북한 병사 군사분계선 침범, 한국군의 경고사격으로 철수.
65) 1996년 05월
5척의 북한 해군 초계정 서해안 남한 영해 침범
66) 1996년 07월
북한 간첩 정수일(무하메드 깐수) 12년간 필리핀 교수로 행세하다 서울서 체포됨
67) 1996년 09월
강릉 북한 잠수정 및 무장공비 침투사건
68) 1996년 10월
한국외교관 최덕근 영사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살해사건
69) 1997년 02월
북한 공작원 귀순자 이한영 살해사건
70) 1997년 02월
김일성 사망 원인과 관련기사 실은 「조선일보」보복 협박
71) 1997년 03월
일본 산케이신문, 1977년 11월 일본인 여학생 「메구미 요코타」 납치되었다고 보도. 일본당국은 북한이 1970년대 중반 이래 적어도 9명의 일본인을 납치한 것으로 추정함.
72) 1997년 06월
북한 노동신문, 남한 국민들에게 김영삼 정부 전복 선동
73) 1997년 07월
북한군 병사 14명, 군사분계선 남방 70미터 지점까지 침범
74) 1997.10.27.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 체포
75) 1997년 11월
서울대 교수 고영복 등 6명의 고정간첩 체포
76) 1998년 04월
북한 대표, 북경회담서 전쟁 도발적 발언
77) 1998년 06월
북한 소형 잠수정, 속초시 근해에서 남한의 그물에 걸린 채 발견
1998년 08월
미국 정보기관들, 북한 비밀지하 핵시설 발견
1998년 08월
3단계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78) 1998년 11월
북한 고속간첩선, 서해안 강화도 부근 출현후 도주
79) 1998년 12월
남한 해군, 포격전에서 남해안 침투 북한 고속 반잠수정 1척 격침
80) 1999년 03월
북한 간첩선 2척 일본 영해 침투
81) 1999년 06월
연평 도발
82) 1999년 09월
민혁당 간첩 사건
83) 2000년 01월
김동식 목사 중국 길림성 연길서 납치 의혹 사건
84) 2000년 03월-
북한은 1970년 요도 호를 납치한 적군파 회원에게 더 이상 은신처를 제공하지 말고 추방하라는 미국의 요구 거절
2000년 연천 백학면 구미리 20킬로미터를 침입한 장거리 남침땅굴 발견
85) 2002년6월
6.29만행-백령도 함정도발 교전
2005년 2월10일 북한 핵보유선언
2006년 10월제1차 핵실험 (2017년 9월까지 6차례)
86) 2008년7월
박왕자 여인 테러
2010년 3월26일 천안함 초계함 격침사건: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도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