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의 두번째 소설을 읽었다. 단순한 열정을 빌리러 갔다가 너무 얄봐 옆에 있던 이 소설도 같이 빌려왔다. 이 소설은 아니 에르노의 초창기 작품이란다. 그래서 아니 에르노의 독특한 문체라던지 넓게 지면을 띄어높은 특유의 글쓰기는 없었다. 자기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글을 쓴다는 아니 에르노의 말대로라면 이 책의 십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소녀도 자신을 투영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춘기 소녀의 생각이 어떨까에 대한 조그만 답이 있었다. 그러나 서양소녀였고, 우리보다는 성적으로 조숙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아닌가 우리도 똑같은가, 세월이 변해 어떤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두명의 딸을 키웠다. 그들이 사춘기시절을 돌이켜보면 문을 닫고 들어가면 어떤 말도 붙히기 어려운 때도 있었다. 과연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켜볼 수 밖에, 지금은 딸들과 사이가 좋다고 느낀다. 이것도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그렇다해도 그들의 생가과 생활을 내가 원하는대로 할 수는 없다. 이또한 지켜볼 수 밖에, 이 소설에서 소녀가 그의 부모들을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아닌 그와 그녀로 지칭할 때 마음이 아팟다. 딸이 무슨 생각을 하던, 무슨 행동을 하던, 그 생각과 행동에 부모는 무한 책임이다. 그 무한책임을 자식들이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조금은 좋은쪽으로 결정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했느냐면 그렇지 않다. 이것이 인생의 아이러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냥 지켜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