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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혀는 달콤하다
이 홍사
그녀의 혀는 달콤하다.
달콤하다? 그것도 음식이 아닌 남의 혀가 달콤하다?
달거나, 쓰거나, 시거나, 맵다는 맛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어떤 사물을 빨아보거나 하다못해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녀의 혀가 달콤하다고 말한 나는 그녀의 혀를 빨거나 맛보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 나는 매일 밤 그녀의 혀를 맛본다. 매일 밤이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은 아내라고 넘겨짚겠지만 단언컨대, 아내의 혀가 아니다. 아내와 각방을 쓴 지가 오래되었다. 아내와의 금슬에 문제가 있어서 각방을 쓰는 게 아라 순전히 담배 때문이다. 지독한 애연가 수준을 넘어서 골초로 명명할 수밖에 없는 나는 자다가도 일어나 담배를 핀다. 담배생각이 간절해서 깰 때도 있다. 잠결에 간접흡연에 질린 아내는 자다가 일어나 제 이불을 들고 딸애의 방으로 가서 자고는 했다. 그러다가 딸애가 대학을 들어가고 방이 비자 그 방이 마치 제 방인 양 그곳에 이부자리를 편다. 자연스럽게 각방을 쓰게 되었다. 어쨌거나 매일 밤 혀를 맛보는 여인은 아내가 아니라 꿈속에 나타나는 여인이다. 그녀의 이름을 아랑이다. 이름은 그녀가 수줍어하며 알려주었다. 꿈속의 연인! 내가 아는 것은 아랑이라는 이름뿐이다. 생시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꿈속에서만 만나는 여인이다.
그녀가 꿈에 나타나기 시작한 건 작년 가을부터였다. 참 소설 같은 얘기지만, 매일 밤, 잠을 자다가 아랑을 만난다. 장편 연재 같은 꿈을 꾼다. 깨어보면 너무도 생생한, 생시 같은 꿈이다. 그녀의 꿈을 꾸고 진한 키스를 하다가 깨어나면 입안에 달콤한 침이 고여 있다. 쭉쭉 빵빵, S라인의 지닌 슈퍼모델 같은 여인은 아니다. 작달막한 키에 볼이 통통하고, 유난히 희고도 고른 치아를 지닌 조선시대의 미인상이며 품어보면 가슴이 따뜻하고 품에 착 안기는 몸피를 지닌 참 귀여운 여자다. 나이는 삼십대 초반정도로 보이니 나랑은 거의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사랑이란 그 정도의 나이 차이와 무관하기에 우리의 사랑은 뜨겁다.
참 이상한 일이다. 생시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인이 매일 밤 꿈에 나타나 서로 끌어안고 진한 키스를 나누고 볼을 쓰다듬어 주고 달콤한 그녀의 혀를 빨다가 꿈결에, 이게 또 꿈이지? 하면서 잠에서 깨어난다. 꿈속에서 만나면 이름이라도 물어보아야지 다짐을 하지만 번번이 사랑에 빠져서 이름을 물어보는 것을 잊어버렸는데 서너 달 전에 꿈속에서 그녀의 혀를 맛보다가 어딘지 모를 어느 건물의 타일 벽에 그녀를 밀어붙여놓고 이름을 물어보았다.
-자기, 이름이 뭐야?
-그냥 아랑이라고 불러줘요.
그 말만 듣고 벌떡 잠이 깼다. 너무도 생시같이 그녀의 이름을 들었다.
아랑이라....... 아랑........
어느 저명한 소설가가 페미니즘이 판을 치고 그런 소설들이 문단에서 고발성 소설로 부각되어 여류작가들의 목소리가 여성해방을 넘어서 여성상위로 부각될 무렵, 그 페미니즘에 지극히 대비되는 현모양처, 일부종사와 열녀, 부부유별을 제일의 덕목으로 삼는 조선시대의 정숙한 여인상인 소설을 발표해서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시대를 역행한다는 악평과 더불어 구제할 수 없는 남성우월주의 보수작가라는 지탄을 받았다. 나도 그 소설을 읽었다. 소설의 제목은 잊었지만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 아랑으로 나는 기억한다. 그 소설속의 아랑인가? 아니면 아리랑의 줄인 말을 닉네임으로 불러달라는 것인가?
아랑이라는 이름을 꿈속의 여인으로부터 들은 날 나는 머리맡의 스탠드를 켜고 그녀의 이름을 되뇌며 담배를 빼물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 여자가 왜 매일 밤 하루도 빠짐없이 꿈에 나타나 사랑을 나누는 거지? 아랑을 만날 때마다 달이 왜 보이는 거지? 달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누구에게 그 참으로 기이한 꿈을 얘기하고 싶어 입이 간질거렸지만 그런 천기를 누설하면 혹 아랑이 내 꿈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싶어 혼자서만 전전긍긍했다. 그러면서도 그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아 어느 날 용하다고 소문난 철학관으로 가서 해몽을 하려다가 철학관 앞에서 발길을 돌린 적도 있다. 그 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천기를 누설하지 말자’ 다. 꿈이 너무 달콤해서, 아랑과의 만남이 너무 즐거워서 혹 아랑이 꿈에 나타나지 않을까봐 언제부턴가 잠자리에 들면서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런 조바심은 지나친 기우다.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이 잠이 들면 어김없이 아랑을 만난다.
술친구들과 한잔 걸치고 저녁에 헤어질 때 인사말로 다른 친구들은 조심해서 들어가라고 말하지만 나는 좋은 꿈을 꾸라고 말한다. 내가 날마다 아랑을 만나는 꿈을 꾸기 때문에 그런 꿈을 친구들도 꿔보라는 뉘앙스가 진하게 배어있는 인사다.
매일 밤 꿈에 아랑이 나타나 사랑을 하지만 진한 키스에서 끝이다. 키스보다 더 진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꿈을 꾸고 싶지만 그건 내 꿈 일뿐 애석하게도 그런 꿈은 꾸어지지 않았다. 어딘지 모를 길거리에서 호떡을 먹는 꿈이나 또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차를 같이 마시는 꿈을 꾸었고, 그냥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서로의 팔을 걸어 속칭 러브 샷으로, 또 정확히 장소를 알 수 없는 허허벌판 볏가리에 기대어 둥근 보름달을 보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진한 키스를 나누고 그녀의 머리에 붙은 지푸라기를 사랑어린 손길로 떼어주다가 잠에서 깨곤 했다. 보통 깨어나는 시간이 새벽 세 시쯤이다. 다시 잠들기 어중간하게 깨어나지만 나는 꿈을 탓하지 않는다. 꿈에 하던 키스의 여운이 남아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며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책을 읽는 날도 있지만 읽는 책의 글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랑의 생생한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랑의 꿈은 늘 달콤하다. 아니, 아랑의 혀는 참으로 달콤하다. 아내와 의무적으로 하는 키스와는 그 짜릿함과 농도에 차이가 있다. 또한 특이점이 있다면 그녀와 만나는 시간대는 늘 밤이다. 그녀를 사랑을 나눌 때면 부둥켜안은 어깨너머로 항상 달이 보인다. 그 달이 초승달일 때도 있고 보름달일 때도 있고 달이 보이지 않으면 달빛이라도 보인다. 처음에 아랑과 마주 앉아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보름달이 그녀의 얼굴을 뒤에 배경화면처럼 보였다. 마치 부처상의 광배처럼 은은한 빛을 발하는 둥근달이 배경으로 보였다. 아랑은 달과 무슨 연관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짐작이 된다.
달과 아랑의 꿈, 그리고 입맞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아랑이 내 꿈에 나타나기 시작한 건 지난 가을이니 그 즈음부터 내가 고혈압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혈압에 낮추기 위해 먹는 약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을 먹어야 한단다. 그 약을 먹기 시작하니 새벽마다 팬티를 부풀게 했던 발기가 시원치 않았다. 고혈압에 먹는 약은 혈관을 늘려주는 게 아니라 혈관을 부드럽고 신축성 있게 만들어주는 효험을 지닌 탓으로 뼈가 없는 생식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내가 경험한 임상실험에 의하면 고혈압으로 진단받고 약을 먹으면 그때부터 발기가 시원찮아진다. 아랑과 진한 키스를 하는 꿈을 꾸어도 아랫도리에는 별 문제가 없다. 대체로 그런 꿈을 꾸면 몽정이나 발기 때문에 잠이 깰 터이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아랑의 꿈을 꾸고 잠이 깨어, 나는 생식기를 쓰다듬어 보지만 전혀 변화가 없이 서운할 정도로 얌전하다.
거듭되는 얘기지만 아랑의 꿈은 너무나 선명했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인간이라면 그녀의 얼굴을 한 치의 변화도 없이 그려낼 정도로 꿈은 선명하고 아랑의 얼굴은 내 뇌에 입력되어 있다. 입은 작으면서 입술은 도톰하고 총명한 눈빛에 볼이 통통한 아랑! 이 여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전생에 만난 여인인가? 아니면 언젠가는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야만 할 숙명을 지닌 여인인가? 그것이 궁금해서 잠을 설치는 날이 부쩍 늘었다. 가끔씩 꿈에 나타나는 여자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일이라고 여길 터이지만 연속으로 매일 밤 아랑을 보니 무슨 인연인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한곳에 집착하면 끝을 보는 내 성격에 에러가 난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아랑의 꿈을 연속으로 꿀 수가 있단 말인가? 내 머리를 의심하며 내 성격을 찬찬히 짚어 본다. 아랑은 누구인가? 그 숙제를 풀어야 한다. 분명 달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무엇이던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것이 내 성격이다. 끝을 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 성격 때문에 누구에게 지고는 못 산다. 예컨대, 한 대 맞으면 기어이 한 대를 때려야 발을 뻗고 자고, 누구에게 명분 없이 한 잔 얻어먹으면 언젠가는 한 잔을 사야 직성이 풀린다. 그 성격은 태생적으로 아버지께 타고난 모양이다. 아버지께서도 살아생전 무슨 일이든 끝을 보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평생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김을 매더라도 그렇고, 벼를 베다가도 몇 줄을 남겨놓고 그 날 일손을 놓지 못한다. 오밤중이 되더라도 기어이 그 일을 마치고 들어오신다. 그날 할 일을 다음날로 미루는 느긋한 성질을 지니지 못하셨다. 내가 그 성격을 타고난 것이다.
어릴 적 일을 한 가지 예로 들자. 벌써 그게 삼십여 년이 훌쩍 지난 일이지만 나는 선명히 기억한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사 학년쯤으로 기억된다. 거의 팔십 가구가 살던 내 고향 시골 마을에 정노라고 불리는 형이 살고 있었다. 이웃이다. 우리 집에서 대여섯 집을 지나가면 길 건너에 정노의 집이 있다. 그를 두고 형이나 선배라고 부르기 싫어, 정노가 없을 때는 아이들끼리 정노라고 이름을 그냥 마구 부르고 어떤 녀석은 ‘정노개끼’라고 욕까지 첨하여 그를 지칭했다. 하여튼 정노가 골목대장을 넘어서 불량배나 폭력배로, 아이들 사이에 낙인이 찍혔다. 툭하면 아무 이유 없이 꼬맹이들을 불러다 쌍욕을 하고 ‘어? 이 새끼 눈깔에 힘이 들어가네!’ 하면서 종아리를 걷어차거나 때려서 동네 아이들은 정노 앞에 불려가 서면 오줌을 지릴 정도였다.
정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 때만 해도 중학교에 시험을 쳐서 들어갔는데 면소재지에 있는 중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져서 재수를 했다. 우리 때는 무시험으로 중학교를 진학했지만 정노는 중학교 시험을 쳐서 들어가는 마지막 세대다. 속된 말로 ‘더럽게 재수 옴 붙은 시대, 에 태어난 것이다. 지금처럼 학원이 없던 시대, 재수를 하려면 다니던 초등학교에 나와서 공부를 했다. 중학교에 떨어져서 학교에 나오는 그들을 두고 우리는 ‘칠 학년’이라고 불렀다. 칠 학년이 공부하는 교실은 별도로 제공되었다. 그 칠 학년이라는 명명이 아주 불명예스런 호칭임에는 틀림이 없다.
정노는 칠 학년을 마치고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칠 학년까지 다니며 재수를 했지만 재수가 없는지 대가리가 나쁜지 또 떨어진 것이다. 나는 속으로 고소함을 느꼈다. 분명코 그 고소함을 느낀 아이는 나뿐이 아니리라 짐작된다.
근대화나 산업화가 시작되지 않은 그 시절의 전형적인 농촌, 우리 면소재지에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불리지만 국민학교가 셋이나 있었고 내가 다닌 학교에 학생 수가 거의 천오백 명에 육박했다. 오일장이 서는 장날이면 장터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와글거리던 시절이었다.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돈을 따라서 도회로 하나 둘 빠져나간 지금은 학교가 통합되어 하나로 줄었고 학생 수가 겨우 백 명에 미치지 못하지만 육십 년대 후반 농경사회였던 그 때, 면소재지 장터에는 장날이면 술꾼들로 불야성을 이룰 정도로 흥청거리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중학교 시험도 만만찮았다.
어쨌거나 중학교에 두 번 떨어진 정노는 팔 학년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걸어서 학교로 다니던 지름길인 바람재 고개에서 소가 먹을 풀을 뜯으며 빈둥거리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들을 잡아 괴롭혔다. 중학교도 못 가는 주제에 무슨 겉멋이 들어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시시껄렁한 자세로 담배를 피우고 이빨 사이로 침을 찍 뱉으며 거들먹거렸다. 하교하는 아이들을 잡아다가 책보를 빼앗아 놓고 집에 가서 아버지 담배를 훔쳐 오라고 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주머니를 뒤져 잔돈을 빼앗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바지를 내리게 하고 누구 오줌이 멀리 가는가를 지켜보고 오줌발이 약한 아이들을 골라다가 제가 해야 할 일인 소 풀을 뜯게 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아이들을 이유 없이 솔밭에 ‘대가리 박아’ 를 시키거나 ‘서로 뺨 대리기’를 시켰다. 아이들은 그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꼬맹이들에게 그의 말은 바람재의 법이었다. 그게 싫어 정노를 피해서 지름길인 바람재로 다니지 않고 신작로로 돌아서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아무도 그의 말을 거절하거나 대들지 못했지만 나만은 그렇지 않았다. 되바라지게 그에게 대들었다. 이유가 뭐냐고? 대들다가 몇 번이고 맞았다. 맞으면 맞을수록 정노의 성질을 건드렸다. ‘중학교에도 못 가는 주제에 왜 때리는데?’ 그렇게 정노의 상처를 건드리는 말로 약을 올리며 대들었다. 그 때는 맞붙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냥 맞으면서, 코피가 터지면서, 대들기만 했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아 덩지도 크고 난폭한 정노와 붙어도 이기지 못하지만 언제가 붙어서 복수를 하리라, 이를 갈고 있었다. 형에게 일러바쳐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에게 하나 있는 형은 정노보다 한 살 작지만 중학교에 먼저 진학해서 자전거를 타고 신작로로 다니고 있었으며 정노에게 붙어도 질 게 뻔하다. 정노를 이길 사람은 아버지 밖에 없었다.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고 정노를 혼내 줄 수도 있지만 나는 그건 사나이 복수방법으로는 비겁하다고 생각하며 내 힘으로 정노에게 이길 방법을 모색했다. 정노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때리면 때릴수록 더 대들었다. 어느 날 정노가 아이들 보는 앞에서 코피가 터져도 대드는 나를 보고 이빨 사이로 침을 찍 뱉으며 말했다.
-아, 요 새끼 요고, 독종이네.
그 때부터 정노와 신경전이 시작된 것이다. 정노는 내가 온순하게 제 말을 들을 것을 기대하며 때렸지만 나는 죽기를 각오하고 맞으면서도 계속 씩씩거리며 대들었다. 정노에게 그렇게 대들고 나면 나보다 한두 살 많은 아이들은 아무도 나를 건들지 않았다. 정노에게 대드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을 누가 건드리거나 때리겠는가? 나는 정노에게 맞고 대들면 대들수록 아이들의 우상이 되어갔다. 먼저 하교한 아이들이 바람재 아래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오면 나랑 같이 바람재를 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랑 같이 가면 정노가 눈에 가시인 나만 불러서 이것저것 시키려다 죽어도 말을 듣지 않는 나만 때리니까 아이들이 나에게 착 달라붙어 다니는 것이었다. 맞는 것도 이력이 생기니까 별로 겁나지 않았다. 코피가 터져도 나는 울지 않고 씩씩거리며 대들었다. 하교 길에 맞고 오는 것이 내 일상이고 어쩌다 바람재를 넘어오는데 정노가 없는 날이면 뭔가 이상하고 직무유기를 한 것처럼 허전하기까지 했다. 맞아서 터진 코피를 닦으며 정노에게 복수의 시기와 그 방법을 물색하며 머리를 굴렸다.
머지않아 추석날이었다. 나는 추석날을 디데이로 잡고 그 날을 기다렸다. 직접적으로 붙지 않고 간접적으로 정노에게 복수할 방법을 나름대로 차근차근 구체적 계획을 세우며 그날을 기다렸다. 그렇게 복수의 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바람재를 넘으며 정노에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맞았다.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들이밀며 때리라고 씩씩거렸다. 순순히 말을 듣고 집에 달려가 아버지 담배를 훔쳐다 주거나 시키는 대로 다른 아이들처럼 풀을 뜯어주면 맞지는 않겠지만 내 성격상 그게 용납되지 않았다.
드디어 디데이로 잡은 추석날이 되었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 때만 해도 정노네는 동네에 일가친척이 많아 추석차례를 지낼 적에 집안 식구들이 모여 이 집 저 집 돌아가며 차례를 지냈는데 나는 추석빔을 갈아입고 골목에 알짱거리다가 정노네 집으로 일가친척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드디어 마루에 병풍을 치고 차례음식을 진설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절을 시작하고 축문을 읽으려고 할 적에 나는 정노네 마당을 가로질러 정노네 일가친척, 어른들이 엎드린 마룻바닥에 올라가 뒹굴며 울었다. 그러면서 소리쳤다.
-오늘도 맞으러 왔다. 정노 이 자식아! 때려라 때려! 매일 맞는데 오늘이라고 안 맞을 수 없다. 코피가 나도록 오늘도 때려라 때려.
정노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고 차례를 지내던 어른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난데없이 나타난 동네 꼬맹이로 인해 엄숙하게 지내던 차례가 아수라장이 되었음에 진노했고 정노의 비행이 어른들 앞에 낱낱이 밝혀졌다. 정노 아버지가 마룻바닥을 뒹구는 나를 붙들고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나는 그 동안 정노에게 당한 일을 울면서 다 불었다. 차례를 지내던 집안 노인들은 ‘허 거참!,하며 맹랑한 꼬맹이를 보고 헛기침을 했고 정노 아버지가 나를 달랬다. 자기가 정노를 혼내 줄 터이니 그만하고 집으로 가라고 했지만 나는 마루에서 내려서서 울먹이고 있었다. 어른들은 상에 올렸던 술잔을 내리고 차례를 처음부터 다시 지내야 했다. 차례를 마치는 동안 나는 마루아래 서서 울먹이고 있었다. 차례를 마치자 정노 아버지가 어른들 음복도 하기 전에 차례 상에 올렸던 송편과 사과를 몇 개를 집어주며 집으로 가라고 했다. 충분히 알았으니 자기가 정노를 혼내주겠다고 다시 말하며 나를 달랬다. 남의 추석 차례를 엉망으로 만든 나는 승리감을 만끽하며 전리품인 사과와 송편을 쥐고 집으로 왔다. 그날 저녁 무렵 아버지에게 되게 혼이 났다.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정노의 소행을 아버지에게 낱낱이 일러바쳤다.
-아무리 그래도 남의 차례에 그렇게 하면 안 되는 법이다.
아버지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복수를 후련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음날 우리들이 놀고 있는 ‘묘사터’에 정노가 나타난 것이다. 참고로 우리 집 뒷동산에 봉분이 커다란 산소 세 기가 있는데 잔디가 너무 좋아 그 곳이 우리 꼬맹이들의 놀이터였다. 봉분에 올라가 잔디에 미끄럼을 타고 막대로 자치기를 하는 곳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산소는 경은 이맹전 선생의 산소다. 그것을 모르는 우리는 그냥 ‘묘사터’라고 불렀다. 그곳에 아이들이 놀면 산지기 아저씨가 득달같이 달려오곤 했지만 우리는 산지기 눈을 피해 그곳을 놀이터로 정하고 놀았다. 우리가 뒹굴기에는 잔디가 안성맞춤이었다. 그곳으로 정노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정노도 자기 아버지에게 뒈지도록 맞거나 혼났음이 분명했다. 이번에는 정노가 씩씩거리며 나의 뺨을 때렸다. 내가 맞다가 넘어지자 나를 마구 밟았다. 다른 아이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내가 맞는 사이 다 도망 가버리고 나 혼자서 죽도록 맞았다. 나는 그렇게 맞으면서도 씩씩거리며 대들었다. 허벅지와 옆구리에 피멍이 들어 움씬 할 수도 없었다. 밤새 통증으로 신음하며 잤다.
다음날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앞에서 나는 바지와 셔츠를 벗어야 했다. 온 몸에 피멍이 든 아들을 보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정노의 집을 찾아갔지만 정노는 없었다. 대구에서 작은 섬유공장의 공장장으로 있다고 했던 자기 삼촌이 그 섬유공장에 취직시켜 준다고 하여 삼촌을 따라 대구로 떠난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정노 아버지 앞에서 또 바지와 티셔츠를 벗어야 했다. 정노 아버지도 내 몸을 보고 깜짝 놀라며 아버지와 나에게 다음에 정노를 혼내주겠다고 하며 사과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과로는 어림없다고 이를 갈며 언젠가 정노를 만나면 또 복수 하리라 마음에 칼을 갈고 있었다.
정노가 사라진 바람재에는 평화가 왔다. 아이들은 안심하고 바람재로 하교하고, 범이 나간 자리에 토끼가 왕 노릇을 한다고 바람재는 우리가 하굣길에 쉬어가는 놀이터로 삼았다. 그 소문이 아이들 사이에 돌자 나는 정노를 이긴 꼬맹이로 아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정노를 사라지게 한 것 순전히 나의 공헌으로 아이들은 생각했다.
아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엉뚱한 내 성격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정노에게 기어이 사과를 받아냈다. 그날은 추석이 지난 서너 달 후의 설날이었다. 섬유공장에 취직했다는 정노가 명절에 고향을 찾은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골목에서 알짱거리며 지켜보고 있다가 추석날과 똑 같은 방법으로 정노네 집의 엄숙해야할 차례를 또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설날 오후에 정노가 우리 집 골목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맞을 준비를 하고 나갔다. 그러나 정노의 태도는 백 팔십 도로 바뀌어 있었다. 솔가지와 잔디밭에 잔설이 남은 ‘묘사터’로 나를 데리고 간 정노는 나에게 그 동안 미안 했다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사나이다. 사나이 대 사니이로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는 정노의 악수를 순순히 받아주었다. 그리고 정노가 들고 온 과일이 든 비닐봉지도 받아주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정노도 정노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나도 지독한 독종이다. 정노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정노는 섬유공장이 아니라 선반기계를 깎는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조그만 정밀회사를 차려 돈을 벌어 도시 변두리에 땅을 사서 공장을 크게 짓고 도회가 커지면서 그 땅이 아파트 부지로 팔려 듣기 좋은 말로, ‘왕창 벌어’ 지금은 대구에 호텔과 빌딩을 몇 개나 갖고 있는 갑부가 되어있단다. 고향마을 경로당을 지을 적에 정노가 가장 많은 금액을 내놓았고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면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내는 걸쭉한 인물로 변해있다. 동네 노인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 중학교에도 못 간 정노도 저렇게 잘 사는데 그까짓 공부가 무슨 대수냐고 아이들을 독려할 정도가 되었다. 삼십 년이라는 세월은 한 인간을 그렇게 변화시켜 놓았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그건 다 지난 옛날 일이고 아랑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아랑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밤에도 아랑의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아랑과 둘이서 어느 강변의 제방을 걷는 꿈이었다. 억새가 키 높이로 자란 둑길을 팔짱을 끼고 한없이 걷다가 아랑이 나를 돌려세우고 나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바를 알아차리고 두 손으로 아랑의 볼을 쓰다듬으며 입맞춤을 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혀가 내 입술을 살며시 열며 밀고 들어왔다. 농도가 진한 키스였고 내 입 안으로 들어온 그녀의 혀는 내 혀를 감미롭게 빨아주었다. 나는 그녀의 다리를 걸어 억새밭에 살며시 눕혔다. 그러고도 키스는 계속 되었다. 어떻게 된 일일인지 팔짱끼고 제방을 걸을 때는 낮이었지 싶은데 이상하게도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비탈진 강변의 제방, 억새밭에서 달빛에 젖은 그녀를 눕히고 그녀의 탄력 있는 젖무덤을 더듬거리며 키스를 하다가 더 발전하지 못하고 ‘이게 또 꿈이지?’ 하면서 깨어났다. 깨어보니 입안에는 어김없이 달콤한 침이 고여 있었다. 머리맡의 스탠드를 켜고 시계를 보았다. 깨어난 시간도 다시 잠이 들기 어중간한 새벽 네 시가 가까웠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좀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아랑의 꿈을 꾸기 전에도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난다. 그 새벽시간은 온전한 내 시간이다. 아무도 간섭할 사람이 없는 정물 같이 조용한 시간대다. 그 시간에 일어나서 새벽 예불을 듣거나 그 날 할 일을 계획한다. 그러나 아랑이 꿈에 나타나기 시작하고부터는 늘 아랑의 생각에 빠진다. 아랑의 꿈이 지닌 의미가 무엇일까? 언제쯤 아랑을 생시에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날이 밝는다. 누구에게도 이야기는 않고 있지만 내 머릿속에는 아랑으로 가득 차 있다. 길을 가다다 낮달을 보아도 그 달 속에 아랑의 얼굴이 떠오르고 초저녁에 뜨는 달을 보아도 아랑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요즘 들어 길을 가다가도, 누구를 만나더라도 여자들만 보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혹 아랑과 비슷한 인물이 있나 살피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뒷모습이 아랑과 비슷한 여자가 길을 가면 나는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어 그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지나가는 남의 여자 얼굴을 아래위로 빤히 살피니 엉큼한 작자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심지어 어떤 여자들은 그렇게 훑어보는 나에게 눈을 흘기고 외면하기도 한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서도, 어쩌다 이용하는 대중교통에서도, 차 안이나 승강장주위의 여자들 얼굴을 살핀다. 그러나 어디에도 아랑은 보이지 않는다. 생시에 아랑이 너무 보고 싶다. 틀림없이 어디에선가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도통 보이질 않으니 환장할 일이다. 그러면서도 밤마다 꿈속에서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아랑의 꿈은 달콤하다. 그 달콤함을 맛보려면 잠을 자야한다. 아랑을 만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내 머리에는 온통 아랑으로 가득 차 있다. 어디가면 아랑을 만날 수 있을까? 아랑이라는 실제의 인물이 있을까? 무슨 인연이기에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 거지? 짬만 나면 아랑 생각으로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겨를이 없다. 아랑 중독증에 걸린 나는 잠이 모자라 자꾸만 수척해지고 있었다. 몸뿐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정서적으로 수척해지는 것이다.
옛 외갓집 살구나무 꽃 필 때
막내이모는 아궁이 속에서 굴러 나온
달을 품고 잠이 들었다..........
달을 품고 잠이 들었다?
아궁이에서 굴러 나온 달? 퍼떡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무용수가 시와 잔잔히 흐르는 선율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시립 도서관 소강당에서 열리는 가을의 시낭송 음악회에 참석하여 객석에 앉아 있었다. 시를 좋아해서 관람하러 온 게 아니다. 도서관 직원인 K가 객석의 머릿수를 채워달라고 안내장을 보내서 마지못해 참석해 앉아 있는 것이다. 해마다 열리는,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가을의 작은 행사다. 시낭송회가 진행되는 동안 별 감흥이 없이 앉아 있었으나 장옥관 시인의 시 ‘다시 살구꽃 필 때’ 가 낭송 되는 동안 시와 음악을 들으며 내 눈은 무대 뒤에서 가벼운 걸음으로 날듯이 나와 황홀한 춤을 추는 무용수의 몸동작에 꽂혀 있었다. 사회자가 누구라고 무용수의 프로필을 소개했지만 나는 흘려들었다. 헌데 중요한 것은 그 무용수가 조명이 바뀔 때마다 꿈에서 보던 아랑과 겹쳐지는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벌떡 일어설 뻔 했다. 조명이 바뀌어 아랑이다, 하고 벌떡 일어서려면 아랑이 아니었다. 다시 조명이 바뀌면 아랑과 얼굴이 겹쳐졌다. 한 순간도 무용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나 혼란스러웠지만 기분은 황홀했다. 혹시 이게 꿈이 아닌가? 의심하며 허벅지를 꼬집어보고 객석을 둘러보았다. 분명 꿈은 아니다.
둥그스름 달집 내 딸 아이의 몸속으로
벌건 숯불 다시 타올라........
그야말로 은쟁반 옥구슬 굴러가듯 낭창한 목소리로 낭송은 계속되고 무용수의 춤은 황홀의 경지를 넘어서 나를 환장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타오르는 건 벌건 시의 숯불이 아니라 내 가슴이다. 휘감고 돌아서는 무용수를 보며 긴장되고 정말 벌겋게 타오르는 가슴으로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그 시의 낭송이 끝나고 무용수가 인사를 하는데 보니 아랑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늘씬한 키도 엄청 커고 무용으로 다듬어진 날씬하고 탄력 있어 보이는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아랑은 분명 아니었다. 나는 옹골차게 한숨을 뱉었다. 실망스런 순간이었다. 내가 아랑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행사 뒤풀이를 함께 가자는 도서관 직원인 K시인의 제안을 뿌리치고 도서관을 나와 버렸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왜 아랑이 보였을까를 짚어보았다. 하마터면 행사 중간에 아랑이라고 부르며 나도 모르게 무대로 뛰어나가는 퍼포먼스 같은 행동을 연출할 뻔 했다. 나는 건물 밖으로 나와 화단에서 담배를 빼물었다. 짧은 가을 날씨에 밖은 이미 어두워 있었다.
무용수가 왜 아랑과 겹쳐 보였을까?
춤과 달, 분명 무슨 관계가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가닥을 잡을 수가 없다. 내 머리 속에는 온통 아랑뿐이었다. 내가 아랑에 너무 집착하는 건 아닌가? 너무 집착하지 말자. 아랑은 꿈의 연인이다. 찾으려고 하지 말자고 볼이 깊이 파이도록 담배를 빨며 다짐했다. 그렇게 다짐하지만 소용이 없다. 내 생각과 조급한 궁금증의 좌향은 아랑을 향해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앉은 좌향을 돌릴 수가 없다. 내 성격상 그게 되질 않는다. 나는 아랑을 되뇌며 집으로 향했다. 도서관에서 집은 걸어서 십 분 거리가 되지 않는다.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창에 아랑을 쳐서 검색해 보았다. 몇 년 전에 한국공포영화의 제목으로 아랑이라는 영화가 나왔으나 흥행에 실패했었고 연예인을 꿈꾸는 카페의 이름으로 아랑이 있다. 아무리 연관을 지어도 내 꿈속의 아랑과는 해당 사항이 없다. 괜히 궁금증만 더 키웠다. 컴퓨터를 끄고 이번에는 국어대사전을 뒤졌다. 아랑이란 무슨 뜻인가를 찾아보았다. [아랑 : 소주를 고은 뒤에 남은 찌꺼기]라는 명사를 말한다. 그런 명사가 있는 줄을 몰랐다. 소주를 내린 뒤에 남은 찌꺼기라....... 그것도 먹으면 취할 것이다. 나는 지금 아랑에 취해 있는 것이다. 공통점이라고는 그것 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국어대사전을 덮고 책상에 턱을 괴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번호를 보니 술친구인 K번호다. 들으나마나 한 잔하러 나오라고 할 것이다. 폴더를 열고 들어보니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단지 단서가 하나 붙었다. 지난번 몽골여행에서 사 온 보드카를 들고 나오라는 것이다. 만주에서 재미있는 손님이 오셨으니 그 보드카를 마시자는 것이었다. 만주에서 손님이 오셨다고? 좀 의외였지만 나는 냉장고에 얼려둔 보드카 한 병을 꺼내 쇼핑백에 넣어서 들고 그들이 있다는 식육식당으로 갔다. 육회를 먹으러 자주 가는 그 식육식당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식당은 허름하지만 고기는 언제나 싱싱한 식육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K와 만주에서 오셨다는 손님 그리고 여자 한 명이 둥근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나는 식육점으로 들어가서 의자에 앉기 전에 깜짝 놀랐다. 아니 그대로 굳었고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아주 붉은 현기증이 일었다. 그 여자가 바로 아랑이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본 아랑과 너무 닮았다. 아니, 닮은 정도가 아니라 바로 아랑이다. K가 만주에서 오신 손님들이라고 소개를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랑을 보다가 남자가 내민 손을 의식하고 악수를 하고 겨우 자리에 앉았다. K가 소개하는 걸 들어보니 심양에서 백화점을 하는 남자고 그 부인이란다. 보나마나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 여자이고 나이 차이는 한 눈에 보아도 스무 살이 넘어 보인다.
K가 내 소개를 하고 서로 명함을 주고받고 인사를 한 뒤, 마주 앉은 남자는 하던 이야기로 화재를 몰고 갔다. 나는 그의 명함을 볼 겨를이 없이 수첩에 넣었다. 심양에 사는 한국인의 이야기다. 나랑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 그를 가만히 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다. 어디서 보았을까?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으며 그의 얼굴을 더듬다가 무릎을 쳤다. 벌써 삼십 년이 다 되어 가는 일이 내 기억의 수면위로 솟구친 것이다. 마주 앉은 남자는 내가 나온 대학의 같은 학번이다. 최근도. 그의 이름이다. 대학 이학년 때 미팅에서 만나 사귀던 숙경이이라는 심리학과에 다니던 아이가 있었다. 그녀를 빼앗아 간 그 작자다. 나는 수첩에 들어있는 명함을 꺼내 그의 이름을 확인했다. 앞면은 중국어 간자체로 되어 있고 뒷면에는 영어로 심양백화 대표 최근도라고 선명히 찍혀 있었다. 대학 이학년을 마치고 내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최전방에서 총을 들고 철책을 도는 사이에 속칭, 고무신을 거꾸로 신어버린 숙경이, 그 숙경이를 빼앗아 간 최근도. 그 비열한 놈이다.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마치고 복학해보니 숙경이는 졸업하고 없었다. 그 후에 나도 취업준비에 학점관리에 바빴다. 후문에 들어보니 최근도 이 작자와 숙경이가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숙경이를 어디다 버리고 아랑을 부인이라고 데려왔을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술을 마시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최근도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었다. 내 귀에는 그의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내 눈은 번갈아 최근도와 그의 부인이라는 삼겹살을 굽고 있는 아랑의 눈에 비치는 달을 훔쳐보며 며칠 전에 읽은 아사다지로의 소설 ‘철도원’에 나오는 설원 속의 여인을 문득 떠올렸다. 세상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있는 모양이다.
최근도가 나를 알아보면 무어라고 대답하나 전전긍긍하며 보드카를 마시고 아랑이 구워주는 삼겹살을 안주 삼아 씹고 있었지만 솜을 씹는 것처럼 맛을 모르겠다. 최근도가 잠시 스쳐간 나를 알아보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나 보다. 그는 끝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공무원인 K가 어떻게 최근도와 아는 사이인지, 어떻게 이런 술자리가 만들어졌는지 그게 궁금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랑은 조선족 이세다. 이야기 듣기만 하다가 아랑에게 불쑥 물었다.
-조선족 이세면 그곳에서 한국말을 하나요?
-예! 조선말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지요.
-이름도 조선어로 쓰나요?
-예! 대충 그러합네다.
-실례지만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저 말입네까? 김아랑입네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그녀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아니다. 그 이름이 흘러나오길 사뭇 기대하고 있었다는 말이 맞겠다.
-아........ 예.......
말을 얼버무리는데 머리카락이 솟는 느낌이 들며 온 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꿈이 이렇게 맞을 수가 있을까?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최근도가 숙경이를 빼앗아 간 그 미안함을 만회하려고 아랑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 것일까? 그 때 최근도가 내 얼굴을 다시 한 번 주시하며 무슨 말인가 하려하고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는 이제야 나를 알아보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설 때가 된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밤에도 꿈에 이랑이 나타날까? 그게 무척 궁금했다. 꿈에 계속 나타나면 좋으련만 꿈에 보이지 않으면 어쩌지? 아랑의 혀는 달콤했는데......... 입맛을 다시며, 최근도가 나에 대해서 얘기하기 전화 휴대폰을 들고 급한 일이 생겼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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