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
이번 해파랑길 트레킹은 32번째 이고
드디어 해파랑길를 끝내는 날이다.
오늘은 서울에서 출발한 박용수친구가 동행하기로 했다.
-걸었던 날 : 2024년 11월 11일(월요일)
- 걸었던 길 : 해파랑길 50코스.(통일안보교육원~재진검문소~통일전망대~명파해변)
- 걸은 거리 : 15km (약10,000보+차량 이동, 4시간)
- 누계 거리 : 750km.(거리 누계는 전체 거리로 정정함)
- 글을 쓴 날 : 2024년 11월 17일(일요일).
6시 아침 일출을 본다.나의 해파랑길을 축복이라도 하듯 일출은 맑았다.그 동안 동해일출은 여러번 볼수 있었으며 매번 일출을 볼때마다 설레었다.일출은 나에게 하루의 시작이고 출발이었다.오늘은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차량으로 이동하기에 서두를 필요가 없어 차분하게 출발한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친구 박용수를 만나러 속초고속 터미널로 향했다.우리는 친구를 만나기전에 영랑호수를 한번 더 걷기로 했다.영랑호는 7.8km로 제법 큰 호수이며 도심속 휴식처이기도 하다.나는 지난번에 발가락 사고로 걷지 못해 초행이고, 아내는 두번째 걸음이다.오늘 일기예보에 약간의 비소식도 있었으나 워낙 미미하여 무시했었다.영랑호를 절반쯤 걸었을때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하늘엔 어느새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고 낭패였다.배낭을 차에 두고 우산도 가져오지 않았으니 서둘러 달리며 비 피할곳을 찾았다.마침 호수 데크길위 비가림 천막이 설치된 2인용 의자가 있어 지나가는 비를 피했다.이럴때가 호사다마인가 했다.그나마 비가림 의자에서 기다리는 동안 호수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감상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가을비는 가을의 그리움이 터져 영랑호에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최헌의 노래가사가 생각났다.
잊어야지 언젠가는 잊혀지겠지
세월 흐름속에
나 혼자서 잊어야지
잊어 봐야지
슬픔도 그리움도 나 혼자서 잊어야지
가을비는 그렇게 기다림과, 기억과 추억들까지 영랑호수로 빠져 들고 있었다.
가을비 내리는 적막한 호수
새는 이미 쉬었다 갔는지도 모른다.
새를 찾는 소년
소년은 온 종일
오늘도,내일도
소년은 그렇게 망원경으로 새를 찿고 있었다.
속초 고속터미널에서 친구 용수를 만난다.친구는 동서울에서 9시에 출발하여 10시30분에 도착했다.늘 바쁘게 사는데 하루를 짬내서 속초까지 트레킹 동참을 위해 달려온 것이 고맙다. 35~36년전 우리는 20대 후반에 후지산에 같이 오른적이 있다.모두 결혼전이었고 당시 일본 여행중에 진수,용수,성일 이렇게 네명의 친구가 만났다.누구인지 모르지만
"야 후지산 오르자!"
라고 말했고 우리는 후지산(3,776m)을 오르기 위해 몇 시간을 운전하고 달렸다.그리고 후지산 아래 여관에서 하루를 묵었고 젊은 청춘의 용기로 후지산을 등산 장비없이 올랐다.계절은 한 여름이였으나 후지산 분화구 아래에는 아직도 잔설이 쌓여있었다.그때 같이 후지산을 오른 친구들은 간혹 그때를 이야기하고 이제는 히말라야을 같이 가지고 하기도 하고 티벳을 가보자고 이야기를 하곤 한다.아내들 입장에서 보면 골치 아픈 남편들이다.
우리는 통일전망대 신고소에서 출입신고서를 작성하고 영상을 시청하여 출입교육를 대신하고 자가 차량으로 재진검문소를 경유하여 고성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통일전망대 건물은 DMZ 이미지로 D자를 형상화한 건물이었다.건물 외벽에 붙인 조각조각 타일은 분단 현실의 상황들을 표현한것으로 생각했다.
통일전망대에 올랐다.간단하게 기념 사진을 찍고 북녁을 봤다.지척에 북녁 해안이 펼쳐져 있었고 북한군 초소도 가깝게 보였다.저렇게 가까운 거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멀어져만 간것 같아서 안타까웠고 새처럼 자유로운 왕래라도 할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이제 해파랑길 전 구간 50개코스를 완주했다.
"여보 고생 하셨소! "
라고 말하며 악수를 청했더니 뜬금없는 악수냐며 약간은 부끄러워 한다. 우리가 걸어던 구간은 750km 거리였으며 1년 동안 10번째로 출발을 하여, 걷는날 누계, 32일 동안 걸었다.백두대간처럼 높은산이 아니여서 쉬웁기도 했고,때로는 마을이나 도시를 경유하며 맛난 점심을 사 먹기도 했고 시원한 동해를 바라보며 걸어서 마음조차 깨끗해지고 생각은 맑아졌다.혼자였다면 중단하거나 외로움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둘이여서 서로가 위안이 됐고 외롭지 않았다.
이제 내년 2월부터 다시 남파랑길을 걸으려 한다.그리고 서해랑길, DMZ 평화 누리길까지 코리아 둘레길 4,500km를 다 걸어 보겠다,.
사람들의 둘레길 걷기는 제주 올레길에서 부터 시작이 된듯하다.스페인 싼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돌아온 언론인 출신 서명숙씨는 싼티아고에서 만난 서양인으로부터
"너희 나라는 걷는곳이 없니?"
라는 말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그녀는 돌아오고 나서 제주도 해안길을 생각했고 마침네 2007년 제주 올레길 첫구간을 만들기 시작하여 2010년 올레길 전구간이 만들어졌다.그렇게 태어난 제주 올레길은 국민적 관심얻었고 걷는 열풍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영향인지 모르나 지리산 둘레길도 생겨났고 다른 지역에서도 둘레길들이 곳곳에 만들어졌다.
코리아 둘레길은 남한의 전지역을 한바퀴 돌아보는 것인데,해파랑길은 750km로 50개코스이고 2016년 5월 개통하였다.남파랑길은 1,470km로 90개코스가 2020년 10월, 서해랑길은 1,800km로 109개 코스가 2022년 6월 개통하였다.그리고 마지막 DMZ평화누리길은 2024년 9월 개통하여 마침내 코리아 둘레길 초 장거리가 모두 완성되었다.(누리누비 앱 자료를 참고함)
두루누비 앱을 보면 오늘 현재 해파랑길은 17,297명이 걷는 중이고, 남파랑길은 8,975명, 서해랑은 7,888명, DMZ 평화누리길은 1,035명이 걷고 있는 중이다.그래서 내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나 처럼 걷고 있다.각자 사연이 있을수도 있고,서로 다른 목표가 있을수도 있으나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마음일것 같다. 우리나라 국토를 사랑하고, 부지런하며 아직 두 다리가 튼튼하고 열정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반드시 모두 완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 중단 할수도 있다. 다만 그럴 경우에는 반드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때 가능한 일 일것이다.
나는 그렇게 계속 걸을 것이다.나는 더 나이가 들어 힘이 없어지기전에 더 멀리 걸어 보고 싶은것이며 코리아 둘레길 그 길을 걷는것이 나의 인생 후반부 소망이기도 하다.
통일전망대를 뒤로하고 나오면서 동해의 최북단 명파해변으로 갔다.그러나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다시 짐을 싸들고 4차선 도로의 다리 아래로 옮겨와 자리를 폈다.돼지목살을 굽고 상추쌈을 하며 소주도 곁들었다.참맛이 있었다.인생은 이럴때 행복지수가 높고, 건강 엔돌핀도 팍팍 나오지 않을까?
어떤일을 완성하고 목표을 달성 했을때 획득하는 성취감도 있지만 허탈감도 있나 보다. 내가 그랬다.갈수만 있다면 북녁땅 저 해안를 더 거를러 올라가고 싶었다.이제 갈곳이 끝났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더 걸을곳이 없다는 아쉬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60대 중반! 친구도 나도 머리가 제법 빠졌다. 세월의 무게는 어쩔수 없고 인생도 영원한것은 없다.그래서 하고 싶은 일은 해 보는것이다.중간에 포기를 하더라도..
먼 훗날 해파랑길 경험이 추억이 되고 삶의 지혜가 되어 영양제가 되길 바라는건 욕심일까?
둘째딸이 어릴적 추억이 많아서 행복하다고 말한적이 있었는데 나도 그런 경험이길 바랬다.
이제 친구와 헤어질 시간,여유로운 시간은 짧았지만 아쉬움에 회포차에서 소주 한잔을 더하고 헤어졌다.
'친구야 건강하게 살자~'
'그리고 또 만나서 걷자~'
그리고 청평으로 딸아이를 만나러 갔더니 딸아이는 해파랑길 완주 축하기념으로 와인 한병과 약간의 다과를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따님 고맙네! '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 집으로 귀가해서 해파랑길 모든 일정을 마친다.
(마지막 여운을 더 간직하고자 인물 사진을 더 올려둠)
2024년 11월 17일 낮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