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순 안과 밖이 없는, 문 없는 물 ai작곡 <김영순>
문은 들어오라 부르지 않고
나가라 재촉하지도 않는다
저 문을 통과하는 것도
되돌아 나오는 것도
모두 내 마음
본래 안과 밖이 따로 없어
내가 가면
비로소 문은 문이 된다
문은 들어오라 부르지 않고
나가라 재촉하지도 않는다
빛과 그늘이 마주 선 자리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저 문을 통과하는 것도
되돌아 나오는 것도
모두 내 마음이다
바람은 안과 밖을 나누지 않고
햇살도 경계를 묻지 않는다
걸음을 옮기는 순간마다
세상은 새로 열리고
어디에 서 있든 괜찮다고
어디에 서 있든 괜찮다고
머무는 것도 떠나는 것도
모두 나의 시간이니까
정호순 안과 밖이 없는, 문 없는 물 ai작곡 <김영순>
1. 안과 밖이 없다는 인식 ― 불이(不二)의 사유
“본래 안과 밖이 따로 없어”라는 구절은 불교에서 말하는 **둘이 아님(不二)**의 인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경계는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나누어 놓은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문이 경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지나갈 때 비로소 문이 된다는 인식은
형상보다 마음의 작용을 더 근본으로 보는 불교적 세계관과 닿아 있습니다.
2. 선택과 책임 ― 업(業)과 마음
“저 문을 통과하는 것도 / 되돌아 나오는 것도 / 모두 내 마음”이라는 부분은
삶의 방향이 외부가 아니라 자기 마음의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행위가 마음에서 비롯되고, 그 결과 또한 스스로 짓는다고 봅니다.
이 시는 그것을 설교처럼 말하지 않고, 조용한 장면으로 보여 줍니다.
3. 머묾과 떠남의 평등 ― 집착을 놓는 태도
“머무는 것도 떠나는 것도 / 모두 나의 시간이니까”
이 구절에는 어느 한쪽을 더 옳다고 하지 않는 태도가 있습니다.
불교에서 괴로움은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보는데,
이 작품은 머묾에도 떠남에도 집착하지 않는 중도의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4. 문 없는 문 ― 선(禪)의 화두적 이미지
‘문 없는 문’이라는 제목은 선불교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징을 연상시킵니다.
깨달음의 길은 따로 정해진 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통과하는 순간 열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시의 마지막 정서는
어딘가에 도달한다기보다
이미 있는 자리를 알아차리는 깨달음의 정서에 가깝습니다.
불교적 총평
이 작품은 교리를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불이, 무집착, 마음의 근원성, 중도라는 불교적 사유를
아주 일상적인 이미지인 ‘문’ 하나로 담아낸 점이 돋보입니다.
말을 낮추고 힘을 빼서, 읽는 사람 스스로 생각이 일어나게 만드는 방식도
선적인 시의 미덕에 가깝습니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출처: https://cloudleisurely.tistory.com/1975 [하얀구름 따라 유유자적(시, 기사 외 펌 금지):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