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이론 양자의 세계 –궁극의 이론 뉴에이지-※
모래알 하나를 쪼개어 놓으면 그곳에는 원자와 전자가 있다. 다시 원자를 쪼개어 놓으면 중성자와 양성자가 나온다. 다시 이 중성자와 양성자를 쪼개어 놓으면 빛보다 빠른 쿼크가 나온다. 다시 이 쿼크를 쪼개어 놓으면 이제는 입자가 아닌 진동하는 끈의 형태인 파동이 나온다.
물질은 이 끈의 진동패턴에 따라 전하와 질량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나무와 흙의 차이는 이 끈의 파동에 따라 물질의 질량이 달리 결정되어 나온 것뿐이다.
이 끈은 너무나 미세하여 쿼크를 태양계 크기로 확장하여 놓으면 이 끈의 크기는 지구 위의 나무만한 크기라 관찰이 도저히 불가능하다.
지구 과학이론은 이미 종교에 말해온 궁극의 근원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조그만 기다리면 우리세대에 생명과 우주의 비밀이 증명될 것이다.
아직까지 끈 이론을 증명할 관찰기구는 없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확신에 가까울 정도로 끈 이론을 지지한다.
원자에는 근원의 전체가 담겨있다.
전자에는 근원의 전체가 담겨 있다.
모래알에는 근원의 전체가 담겨있다.
물방울 하나에는 근원의 전체가 담겨 있다.
나는 근원의 전체로부터 생각을 취한다.
양자파동과 우주
양자 장(무, 공)은 물질이 된다.
물질은 진동하는 양자 층이다.
여기서 잠깐 양자파동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이 양자가 관찰되어질 때 그것은 어느 하나의 가능성이
실현되어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관찰자가 없을 때 이것은 어떤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관찰자로부터 관찰이 될 때 이것은 우리 눈앞에 하나의 상으로 나타난다.
이 양자의 영역에선 시간이나 공간이나 거리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곧 그 자신이 모든 시간이며 모든 공간이며 그 거리로서 0 을 가진다.
물질은 양자 층(무)의 진동으로부터 온 파동 층과 같다.
이 파동은 어느 한순간 물질의 파동수를 가지는가 싶더니 다시 양자파동 그 자체로 전하가 걸리어 버린다. 물질의 파동수와 양자 층은 시간의 초 초 초 만분의 일의 순간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여 파동이 오면 그것은 물질이 된다.
이것이 끊임없이 반복하여 일어날 때 우리 우주의 실상이 된다.
이 세계의 실상이라는 것이 파동과 양자의 비연속성으로 인해 생성된 것이다.
공기와 하늘과 물질과 에너지 공간 이것은 양자가 진동하는 파동의 바다와 같은 것이다. 무에서 유가 출현한다. 그러나 다시 유에서 무가 출현한다.
나타남과 사라짐이 순간 일어났다 사라진다.
무가 먼저인지 유가 먼저인지 알 수 없다.
파동이 관찰되어 진다.
이것은 드디어 관찰자 그 대상을 투영하여 하나의 실상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어떤 실상으로도 실현되어 이 세상을 그러낼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관찰되어질 때 그것이 원인이 되어 실상의 상이 나타난다.
관찰자는 그 자신이 이 세상을 창조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인식하지 않을 때 이것은 무 즉 양자층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을 인식하는 순간 현상계의 출현이다.
파동으로 가득한 곳이 이곳이다.
이것이 진동하여 물질이나 우주가 출현한다.
양자란 하나의 의식이다.
이 의식으로부터 물질이 파동 쳐와 나무나 바위 식물이 출현하게 된다. 양자는 이제 파동 쳐 식물로서 이 세상에 출현하게 된다, 양자는 이제 바위나 산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게 된다.
이것은 이제 나무의 성질을 가진 의식으로 존재하게 된다.
양자는 이제 인간의 뇌와 몸의 구조를 연출하게 된다.
그리고 인식 그 자체는 이 두뇌와 몸을 통하여 흐르게 된다, 이것은 이제 인간으로 그 의식을 가지게 된다. 생각은 두뇌의 작용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두뇌의 인식은 근원의 양자적 파동으로부터 본질 성을 가질 뿐이다.
이 세계란 것이 꿈이라 할 수 또한 아니라 할 수도 환영이라 할 수도 아니라 할 수 없다.명상이란 어는 한순간 감각이나 느낌 생각이 다시 근원 그 자체로의 전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이 현상과 근원에서 우리의 의식은 비연속성의 하나이다.
생각의 영역도 공이며 감각 느낌의 영역도 공이다.
이것을 다시 역으로 보면 공은 생각이 되고 느낌이 되고 감각이 된다. 생각과 공은 그 경계가 없다. 이것은 비연속성의 하나이다. 지금의 나 즉 나는 그대로 전체로서 모든 것이다. 나와 그것을 경계 지을 경계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는 실상으로 나타나고 이 실상은 다시 무로 전환된다.
이것의 경계는 없다. 여기 지금 당신이 그것이다.
단지 무아 이렇게 이야기하면 된다.
이것이 진리이다.
당신이 하느님이며 창조자다.
당신이 이 우주를 창조한 그이며 메시아이다.
양자적 파동은 모든 가능한 우주를 그 안에 담고 있으며 내 심상에 따른 하나의 우주를 시시각각 그려낸다. 이 파동은 내 선택에 따라 현실 가능한 어떠한 우주라도 우리의 의식으로부터 출현할 수 있다.
원인을 만들 경우 이것은 어떠한 우주라도 현실로 투영된다.
즉 달리 표현하면 모든 가능성은 실제로 실현된다.
의식이 작용하는 순간 이것의 파동함수가
붕괴됨과 동시에 인식자로부터
모든 가능한 우주들이 현실화 된다.
즉 모든 가능한 우주를 이 양자는 그려낸다.
단 이것은 관찰자로부터 모든 가능한 우주를 투영한다.
나의 존재에 그 시간대에는 무한수의 우주가 프로그램화된다.
즉 나와 무한 수의 평행우주는 병존하며 원인으로부터
그것은 현실화된 우주를 투영하여
지금 여기 자신의 현실을 만들어 낸다.
시간 여행이나 공간 이동은
이 양자 의 무시간 무공간의 영역에서
그것이 심상을 취할 때 원하는 장소
원하는 시간대에 출현하는 양자의 파동 원리에 따른 것이다.
컴퓨터의 하드웨어에는 무수한 블로그가 존재한다.
양자는 하드웨어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다른 화면이나 다른 공간 이동할 때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접촉하면
공간이나 거리의 제약 없이 순식간에 이동해 버린다.
컴퓨터의 하드웨어는 모든 블로그가 숨겨져 있어
이것이 펼쳐지면 공간이나 색상으로 나타난다.
나머지 블로그들은 하드웨어 속에 프로그램으로 저장된다.
양자적파동이 이 컴퓨터의 원리와 비슷하다.
관찰자에 의하여 그것은 우주로 출현하며
모든 가능한 관찰 우주를 투사한다.
따라서 내 선택에 따라 그 선택에
우주가 출현하며 다른 가능한 우주는
양자에 숨겨져 창조의 영역에 머물러 있게 된다.
예지 몽과 미래의 예언이란
이 양자의 무 공간 무 시간에서 진입한
그것과 접촉한 의식이 어떤 선택에 따른
매래의 우주를 투영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란 우리의 선택에 따라 그것은
시시각각 창조되며 양자 파동은 매 순간 그것을
미래의 가능한 현실로 투사한다.
미래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지금 그 선택에 따라 그것은 미래의 모델로 투사된다.
따라서 내 선택은 곧 그 미래에 있을
어느 현실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인 동시에 창조의 과정이다.
즉 이 현실의 창조자는 당신 그 자신이란 사실이다.
당신이 당신의 현실과 당신의 우주를 창조한다.
[출처] 궁극의 이론 |작성자 뉴에이지